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 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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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지난 20년간 세계가 경험한 거의 모든 정책 실험과 사회적 논쟁에 대한

명쾌한 비평"

이 책의 저자인 폴 크루그먼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 학자이다. 그는 리더의 나쁜 신념을 토대로 하면 학문적으로 멍청한 정책임에도 끊임없이 반복 등장하는 정책들을 좀비 정책 이라 부르며 명쾌하게 비평한다.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그런데 왜 그러한 좀비정책들은 사라지지 않고 죽지않는 좀비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는가? 저자는 미국의 경제 정책들에 대해 20여년간 자신이 발표했던 칼럼들을 모은 이 책을 통해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경제학은 당신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어느 특정 가치군을 반영한 정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정치화가 등장한다. 특히 정부 역할의 확대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런 역할이 비도덕적일뿐더러 비생산적이고 심지어 파괴적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싶어 한다. 증거가 그러한 주장에 들어맞지 않으면 증거도, 그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도 다 공격한다. (p. 36) 가장 끈질긴 좀비는, 부유층에 세금을 물리는 일이 경제 전반에 막대하게 해악을 입히며 따라서 고소득층에 매기는 세금을 낮추면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p. 37)

이 책의 첫번째 주제는 '부자감세 : 좀비는 왜 그토록 강할까?' 이다.경기침체 시기에 (그 구체적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부자감세인 정책을 시행한 리더와 정당은 한결같이 그러한 경제정책이 (낙수효과이든 산업발달로 인한 경제 향상이든) 서민을 비롯한 모두에게 커다란 이로움을 안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부자감세라는 마법에 보내는 광신이야말로 최강 좀비다. 사실 이 최강 좀비를 죽이는 일이 왜 불가능한지 증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부자 감세는 이롭다는 맹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 누가 이득을 보는지 한 번만 따져보라. 자신의 부 가운데 극히 일부를 떼어, 감세 바이러스를 흔쾌히 퍼뜨리는 정치인, 두뇌 집단-아니 실은 '무뇌'집단- 당파적 언론 매체를 지원할 의향이 있는 소수의 억만 장자만 있으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쉽사리 좀비가 비척비척 계속 돌아디니게 할 수 있다. (p. 53~54)'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한 경제정책은 '실제로 기업이 도로 들여온 돈은 한 푼도 없었고, 감세로 십중팔구 국민 소득만 줄었을 것' 이라고. '적어도 미국 국민의 90퍼센트가 저 감세 탓에 더 가난해질 것이다. (p. 73)' 라고. 첫번째 주제부터 확 꽂히지 않는가? 지금의 정부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경제정책이 뭐였더라?! 트럼프 시대의 과정과 결말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따라서 5년 후의 우리나라 상황이 예측되지 않는가?!

혹시 부자감세 라는 좀비정책에 대해 공감가지 않는다면 이 책의 두번째 주제인 '누구를 위한 무역 전쟁인가?' 를 보면 좀비정책의 실체에 대해 좀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국제 무역 협정을 맺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를 다른 국가의 불공정한 관행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국제 무역 협정의 진짜 목적은 오히려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곧 무역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특수 이익 집단의 정치 활동과 철면피한 부정부패를 제한하는 데 있다. 그런데 트럼프 지지자들은 특수 이익 집단들의 부패 또는 방행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세계 무역 체제는 대체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끔 견고하게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는 이를 망가뜨리고 싶어 하지만. (p. 97) 무역 정책에서 우리가 꼭 이해해야 할 핵심 내용은 경제학 개론에 나오는 자유 무역 옹호론이 실제 정책에서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무역 협상에서는 확실히 그렇다는 점이다. (p. 101) 트럼프가 관세를 다시 부패로 얼룩지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p. 108)

트럼프는 기업인이었다. 따라서 그는 기업의 이익과 부자들의 이익을 늘리는 방법에 무역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빠삭하게 알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휘두른 경제정책들로 인해 그의 재임 시기 미국의 경제상황은 크게 위험에 처했다. 저자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썩어 빠진 부패로 향하는 문 (p. 110)'을 열었다고 말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미국의 신뢰가 크게 떨어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의 무역 정책과 관세 정책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기업이익을 중점에 두었을까 나라의 이익에 중점에 두었을까? 하긴 이러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무역 정책은 신경도 못 쓰고 있는 것 같으니.

지난 수년 동안 불평등을 둘러싼 논의를 어지럽혀 온 보다 미묘한 문제는 널리 퍼져 있는 세 가지 오해와 관련이 깊다. 첫번째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까닭이 고학력 노동자가 저학력 노동자보다 대개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지 소수의 고학력 노동자 하위 집단이 나머지 모두로부터 떨어져 나온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나는 <대학 졸업자 대 과두 정치>에서 이 오해에 맞선다. 두번째 끈질기게 반복되는 것으로, 때때로 올바른 믿음에서 항상 출발하지는 않지만, 노동자 계급의 부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가 가족의 가치를 점점 경시하는 현상처럼 사회 문제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돈과 도덕>에서 나는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사회에서 위착되는 증상은 기회 감소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세번째는 불평등이 전적으로 기술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지식에 기반을 둔 산업이 성장하면서 사회가 고학력 노동자를 요구하거나 아니면 대개는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맞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하지만 <저임금은 로봇 탓이 아니다>에서 내가 주장하듯이 증거에 따르면, 기술은 많은 이가 생각하고 싶어하는 만큼 불평등의 심화와 관련이 깊지 않으며 그보다는 권력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p. 114~115)

세번째 주제는 '불평등을 감추려는 좀비들' 이다. 우리가 상식처럼 이해하고 있는 불평등의 원인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마치 가스라이팅 처럼 세뇌되어 있는 잘못된 상식인 경우가 많을 수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가 아니고 새우끼리 싸우게 해놓고 고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감추고 있달까. 그러한 정책들은 결국 그러한 정치인들을 뽑은 국민들 덕이다. 저자는 '트럼프 지지 지역은 사실 스스로 가난해지겠다는 쪽에 표를 던진 셈이다. (p. 162)' 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는 과연 아닐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판단은 이 책의 네번째 주제인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주의' 를 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표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쓰디쓰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 책의 다섯번째 주제처럼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크! 사회주의!' 하고.

이후로도 저자는 거침없이 좀비 정책들의 이면을 드러낸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어떤 좀비 정책의 활약인지, 트럼프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언론이 어떻게 정치를 내리막길로 몰아넣었는지, 사회보장제도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편적 의료보험을 물어뜯는 좀비들은 누구인지 등등 구체적으로 현실문제를 논파하면서 점점 경제학적으로도 거품과 붕괴가 무엇이었는지, 위기관리는 방해하는 논리들이 무엇이었으며, 다른 좀비 정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따져본 글들을 읽고 나면 지금 현실이 (현실경제 뿐만 아니라) 경제학적으로도 얼마나 위기인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이론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경제를 다룬 폭넓은 경제서도 아니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경제상황추이와 정책들에 대해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비판에 비판을 거듭해온 저자의 칼럼 모음집이다. 하지만 미국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이든 비슷하게 견주해볼 만한 상황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결국은 우파와 좌파의 대립이었고 양측의 정치가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호도했는지 보여주고 있는 글들이었다. 그러니 이미 지난 미국경제정책에 대한 칼럼을 지금 왜 읽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지 말고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도 부자감세 좀비와 기후변화부정 좀비와 불평등의 좀비와 긴축의 좀비 등 어떤 경제정책들이 좀비정책들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는 좀더 나은 선택을 하며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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