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의 국부론 - 인간 노동이 부를 낳는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재유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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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제학의 어머니, 애덤 스미스

국가 부의 원천을 말하다

EBS books의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하나같이 다 명저 인것 같다. 해당 고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배경지식을 탄탄하게 잡아준다. 원전을 읽기 전 읽어야 할 긴 주석 같달까.

애덤 스미스 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또 얼마나 자주 인용되었던가. 하지만 시장자유주의자로 배웠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그의 개념 보이지 않는 손 이 얼마나 왜곡되어져 왔는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결과부터 예고하자면,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은 자본가의 입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으며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당시 식민지독점무역을 지배한 정부에게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애덤스미스는 국부가 노동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런 그의 경제철학이 어쩌다 자본가들의 논리로 악용되어 온것인지... 역시 고전은 당대의 시대적 배경과 저자의 개인적 철학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유머는 불분명한 것을 분명한 것으로, 불변하는 사실로 알려진 것을 허상으로 밝힐 수 있는 정신적 태도다. 이 정신적 태도가 있을 때,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위인의 삶을 본받자는 것도 아니고, 실용적으로 먹고사는 데에 써먹자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유머라는 정신적 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는 곧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철학적 세계관의 정립은 자신이 당연한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모든 의심에서 출발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어떤 유머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는 무엇을 의심하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정립시켜갔을까? 그리하여 나의 유머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구체적인 의미이지 않을까? 그 의미를 찾는 여행을 이제 시작해보자. (p. 5) -서문 中-

저자는 <국부론>이라는 고전에 대해 어떻게 접해야 할지 그 태도롤 설명하는 것으로 책의 시작을 알린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으로 <국부론>을 다 아는 것처럼 되어버린 이 시대에 <국부론>이라는 오래된 경제철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먹고살기 바쁜데 그런걸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라는 반문을 예상하여 '우리는 왜 먹고살기 바쁠 수밖에 없냐고?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p. 15)' 이라고 말하며 <국부론>이 부르주아 경제학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기 위해 당대의 시대사상 먼저 설명하기 시작한다.

원자화되고 이기적인 인간관과 사회계약(론)에 따른 절대적인 국가와 자본의 등장은 근대의 철학적 세계관의 동전의 양면이다. 근대 철학은 경험론적 세계관과 합리론적 세계관으로 나뉜다. 경험론적 세계관은 이기적인 인간관과 연결되며, 합리론적 세계관은 절대적인 국가와 자본의 등장과 연결된다. (p. 19) 그런데 애덤 스미스는 흄과 마찬가지로 근대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지만, 경험론적 세계관과 합리론적 세계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그의 인간관이 공감의 인간관이다. 그리고 이 인간관에 기반해 <국부론>에서 '자유방임주의'(보이지 않는 손, 야경국가), '분업화', 그리고 노동가치설과 임금·이윤·지대의 관계를 논의했다. (p. 20) 이러한 공감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자유방임주의가 등장한다. 이때 자유방임주의는 시장방임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인간이 공감을 끊임없이 확대해나가게 해주는 자연적인 사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방임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타난다. 분업 역시 공감에 기초해 있다. (p. 21)

냉정하고 이기적인 표현으로 알았던 '보이지 않는 손'이 공감의 인간관에서 시작되었다고? 처음부터 의아해지는 <국부론>의 실체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도덕철학자로서의 애덤 스미스에 대한 연민과 궁금증도 커져가게 된다. 스미스의 '자기애'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이기심'이 아니었다.

이때의 '자기'는 자기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는 관계 총체로서의 '인간'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 총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다. 자기에 대한 사랑은 배타적인것이 아니라 '사회적인'것이다. 자기애로서의 사회적인 사랑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것이다. 이 공통적인 것이 흄과 스미스에게 '공감'이다. 그리고 이 공감은 '보이지 않는 손'이며 '공평한 관찰자'이다. 또한 공감은 '실천적 행위'로서 근대의 '노동'을 통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며, 이 노동은 자기 자신의 욕구 충족이 아니라 타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노동으로서의 '분업'의 형태를 띤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 각각의 욕구는 '인간다움의 충족'이라는 공통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처해진 현실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p. 39) 재화의 생산과 이 생산을 통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은 타인의 공감과 그 공감의 실천적 행위인 노동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렇게 스미스의 도덕철학의 핵심인 '공감'은 정치경제학에서 '노동'으로 재탄생된다. (p. 40)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노동이 부의 본질이라고 본 사람은 스미스밖에 없었다. 그는 노동을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의 기준으로 본다. 그래서 <국부론>에는 무엇보다 '인간의 노동', '노동의 인간학'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p. 41)

시장경제학의 기초개념이자 자본주의의 대표논리이며 무책임한 이기심의 발로라고 생각했던 '보이지 않는 손'이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한 '노동의 인간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공감=공평한 관찰자=노동=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등식은 <국부론>을 읽고 싶은 고전이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게 커다란 호기심을 만들어냈다. <국부론>이 정치권력의 자본가의 '부'를 중요시한 책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을 중요시한 책이었다니!!!

스미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모든 국민의 부와 사회적 이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경제학은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이 주장하는 시장만능주의적 자유방임(이를 오늘날 신자유주의라 칭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소수의 부의 독점과는 상당히 다른 사상적 기반 위에 있다.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국부론>이다. 그리고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생겨났을 때, 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국부론>이 등장하는 한, <국부론>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p. 47)

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근대 경제학의 어머니 애덤 스미스'의 철학에 대해 기초 개념들을 설명해주다 보니 당대의 세계관과 인간적 애덤 스미스의 삶이 함께 설명되어진다. 2장에서 본격 적으로 <국부론> 읽기 가 진행된다. <국부론>의 내용을 인용해가며 개념적 이해를 돕는다. 3장에서 <국부론>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 여러 권 소개되는데 그 책들 중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있다. 알고보니 <자본론>은 스미스의 <국부론>을 큰 개념적으로 이어받은 이론이었다. 자본가의 '국부'와 노동자의 '혁명'이 연결되어 있었다니.

애덤 스미스의 '공감'의 도덕철학과 인간관은 이기적 인간관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의 도덕철학과 인간관이 <국부론>의 내용에 녹아들어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가 주장하려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책을 읽는다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좀더 얻을지는 몰라도, 그의 진정한 생각은 이해할 수 없으며 나아가 오늘날 처해 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의 싹을 그로부터 얻을 수 없다. (p. 58)

스미스는 '부'의 원천은 노동자의 '노동'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부'는 노동자의 '노동'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었고 노동자의 '노동'이 좀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당대의 독점적 국가 권력의 개입을 저지해야 했기에 자유방임적 시장을 강조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는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믿는 스미스의 도덕철학이 깃들어 있었다. 개별화된 근대철학에서 유기적 관계의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공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고전읽기의 필요성은 이렇게 스미스의 <국부론> 읽기와 나아가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연결되었다.

이 작고 얇은 책 한권이 교과서 속에 죽어있던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현실세계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궁금해질 것이다. <국부론>이. 그러나 <국부론>을 읽지 않더라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국부론>속 '보이지 않는 손'의 따듯함을. 그리고 그 온기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 생각해볼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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