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 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
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임지연 옮김 / 북스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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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

역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세상 참 좋아졌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 편이라 이런저런 종류의 역사책들을 읽어왔는데 갈수록 구미가 당기는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역사는 보고 또봐도 볼때마다 새롭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음식의 역사가 아니라 짤막한 프랑스 역사가 아니라, 프랑스 통사를 음식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로 엮어내다니, 그래서 한입씩 크게 베어물면 한 시대를 번쩍 훑어볼 수 있다니 이역시 구미가 당기는 책이었다. 그러니 크게 한입 베어먹는 수밖에. ㅎㅎ

이 책의 저자는 2명인데 부부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자란 남편은 영국에서 식품 분야의 광범위한 경력을 쌓다가 지금은 독일의 고급 치즈 상점에서 일하고 있고, 미국에서 국제 문제 연구원 겸 편집자로 일하다가 영국으로 공부하러 왔던 부인은 런던에서 현 남편을 만나 결혼 후 전쟁학 박사를 취득 후 강사로 재직 중이다. 연애시절에 음식의 기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던 남편에게 부인은 본격적인 프랑스 역사로 엮어볼 것은 제안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남편이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나 할까.

프랑스에 대한 끝도 없는 이야기를 빛내는 한 가지 특징을 꼽자면, 숭고함과 터무니없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한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역사의 많은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계몽된 국가라는 명성을 누리면서도 기이한 관습과 정치, 미식 습관으로 방문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당신도 장엄함과 재기발랄함, 유쾌함과 지독함의 조합이 이처럼 강렬하고 때로는 황당하게 느껴지게도 하는 프랑스의 특징을 만들어냈다는 데 동의하기를 바란다. (p. 7) -들어가며 中-

저자는 역사전공자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위해 학자들의 책을 신뢰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덕후들의 책이 더 훌륭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책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두루 거치며 살았지만 그 역사의 바탕이 프랑스 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음식의 기원이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서인지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프랑스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무엇보다도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프랑스내에서 순.수.프랑스인 이라던가 프랑스민.족.주의 같은 우파적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걱정하며 이에 대해 반론을 역사로 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시 말해 '순혈의' 정통 프랑스 요리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사실상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앞으로 밝혀내도록 하겠다. (p. 10)' 이러한 태도는 결코 반프랑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 프랑스내에서 퍼지고 있는 우려스러운 사회분위기에 대해 역사를 바탕으로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한편으론 멋있기도 했다.

책에서 한 입 크기씩 먹기 좋게 잘라놓은 역사는 51조각이다. 골족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의 시대를 두루 훑으면서 그 시대별로 중요한 사건들과 얽혀 있는 음식들 이야기를 함께 읽다보면, 그냥 역사로 읽었을 땐 몰랐던 프랑스인들의 문화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와인과 치즈와 빵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과 식습관을 좀더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며 이해하게 됐다. 나로선 이해하지 못했던, 그 음식들에 대해 정말 진심인 프랑스의 문화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달까. ㅎㅎ

와인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기원전 600년 무렵 포카이아 출신의 그리스인 해운업자들이 세운 유서 깊은 프랑스 도시이자 항구인 마르세유 주변에서 작은 규모로만 생산되었다. (p. 17) 프랑스 교육제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골족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첫째, 그들이 '프랑스인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p. 18) 두번째 사실은 마법의 물약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드루이드가 만든 이 물약을 마시면 굉장히 강해진다고 한다. (p. 19) 이 시대의 와인은 현대인의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을 것이다. (중략) 와인은 그 맛이 아닌 사교 행사와 종교 의식에 유용하다는 차별화된 특징으로 인해, 그리고 깨끗한지 의심스러운 물을 대신할 소독제로 알려지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p. 21)

골족의 기원에 대한 첫 장에서 포카이아, 와인, 마법의 물약 등의 단어들을 읽다보니 최근에 읽었던 <불멸의 열쇠>라는 책이 생각났다. 저자의 역사탐구가 최신 정보들로 다양하게 이루어졌구나 싶기도 했고 열심히 공부했겠구나 싶은게 책을 읽는 내내 느껴져서 재미와 유익을 동시에 잡은 역사대중서로 손색이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역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골족부터 시작한 내용은 '콩팥의 성모'라던가 '여성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라데군트 이야기등으로 기독교가 정착되던 시대를 빠르게 지나간 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폭넓게 풀어놓는다. 아마도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들이 혹은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음식들이 그 시대를 많이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던 사람들은 평민들보다는 귀족이라던가 성직자들 같은 특권층이었기 때문에 더욱 권력층의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역사읽기를 좋아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역사내용들 위주로 읽게 되긴 했지만 매번 등장하는 음식들의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수도사들의 치즈, 성전 기사단의 자두, 엘레오노레의 와인, 카타리파와 채식주의, 흑태자와 카술레(스튜의 하나), 흑사병과 식초, 식민지와 초콜릿, 프랑스의 사탕무, 초승달과 페이스트리, 루이14세와 완두콩, 루소의 음식에 대한 계몽주의식 접근법, 카페에서의 혁명, 빵의 평등, 감자와 기근, 나폴레옹의 다섯번째 크레프, 혁명 연회, 철도와 굴, 녹색요정 압생트, 땅콩의 비애, 군인반란과 웃는소 치즈, 사회주의자의 바게트, 레지스탕스와 키르 칵테일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프랑스 역사의 현재시점에 와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끔 현대를 오가며 음식에 대한 추이를 환원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대순으로 역사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특정음식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 읽으면 야사를 읽는 듯한 신선함이 있었고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역사를 좀더 편하고 쉽게 접근하게 할 수 있는 서술이라서 부담없이 읽히는 것이 좋았다.

지구상 가장 낭만적인 나라에서 낭만을 없애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도 힘들겠지만 우리 책이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에 대해 계속 전해져 온 신화를 해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 많은 프랑스 사람이 지역 시장에서 현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지만 교외의 기업형 대형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보기도 한다. (p. 423)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분열과 불평등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p. 424) 프랑스 전역의 다양한 요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프랑스인의 정체성이 획일적이지도,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용한 예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요리 또한 획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p. 426) 우리는 이렇듯 확대된 역사 이야기를 통해 꼭 집어 말하면, 국민전선 같은 극우 단체의 주장이 처음 접했을 때보다 얼마나 어이없는지 이해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p. 427)

먹고살기 힘든 시대일수록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무책임을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탓으로 돌리는데 능수능란해진다. 하지만 잘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의 몫을 줄이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를.

혼란한 시대에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우리만의' 무언가는 허상일 때가 많다. 역사는 한번도 멈추거나 섞어지 않았던 때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 요리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이지만, 미식가들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이지만, '순수한 프랑스 미식은 없다. (p. 427)' 고. 외국인 혐오, 타종교 혐오, 타집단에 대한 혐오를 추동하는 이들의 선전문구에 현혹되지 말자. '순수한' 것은 없다. '순수한'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현혹되려 할때 역사를 읽자. 비록 한 입 크기의 역사이더라도 배부르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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