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페인팅 Final Painting - 화가 생애 마지막 그림을 그리다
파트릭 데 링크 지음, 장주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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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꽃을 찬란하게 피워낸 화가들

그들은 생을 다하는 그 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화가의 이젤 위에는 어떤 그림이 올려져 있었나?

마지막 말, 마지막 노래, 마지막 작품... 누군가의 마지막은 '마지막'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두고두고 회자가 되곤 한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 이라서, 더이상은 들을 수도 부를 수도 볼 수도 없기에, 한껏 애틋해진 마음으로 그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곤 한다. 여기 화가들의 마지막 작품에 관심을 갖고 그 마지막 작품들을 모은 책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화가들 30명의 마지막 작품을 모아서 보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의 짜릿한 활력이 인정받고는 하는데, 평론가 바바라 헤른스타인 스미스는 이를 '노망든 숭고함'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말기 작품들이야말로 작가가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몸부림쳐 얻은 자유로움이다. 작품과 그 창조자 모두 그 어떤 진부한 가치나 기준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그들(주로 남성)에게 기대하는 원숙함, 지혜, 사려깊음 같은 따분한 자질에 관심이 없다. (p. 7)

여기서는 5세기에 걸친 회화사에에서 주요 화가 30명을 택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마지막 작품이 의미 있고, 저마다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죽음은 자기 마음대로 찾아온다. 그 사실을 아무리 망각하고 억누르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말기 작품'이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작품이란 화가가 20대였을 때 그려진 것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p. 9)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화가의 마지막 작품에 대해 그 의미를 짧게나마 훑어본다. 저자가 말했듯 죽음은 자기 마음대로 찾아오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마지막' 이라는 개념은 매우 상대적이다. 죽음을 미리 알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가들이라고 달랐겠는가, 지금 화가가 이젤 위에 얹어 놓은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화가 본인도 미처 알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500여년간의 기간에서 30명을 추려냈다고 말했다. 화가들은 시대순으로 등장하고 있기에,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이라하면 중세시대이고, 그 시대 혁혁한 변혁을 일으켰던 얀 반 에이크 로부터 저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세 시대의 화가들은 실력을 인정받고 유명세를 얻고 나면 작업실에 제자들 혹은 조수들을 다수 받아들여 함께 작업했다. 함께 라고는 하나 조수들이 숙련될수록 화가의 참여는 적어지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후대의 미술학자들이 화가의 작품이 진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화가의 손길이 어느정도까지 미쳤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었기에...

ㅡ 어떤 경우에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작품이 완성되기도 했다. (p. 11)

ㅡ 여러 명의 조수를 두고 작업실을 운영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의 작가가 누구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p. 17)

는 의미의 문장들은 중세 시대의 화가들 생애에서 내내 발견된다.

얀 반 에이크, 조반니 벨리니, 라파엘로, 티치아노, 틴토레토, 엘 그레코,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렘브란트 등 거의 대부분의 화가가 작업실에 조수를 두고 공동작업했다. 시대가 혼란스러워지고 화가의 삶이 불안정해진 고야 나 '인상주의' 화가들의 개인적 사생이 일반화 되기 전까지 내내 화가의 작업실은 거의 그림공장처럼 작품들을 생산해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화가들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저자의 설명들이 미처 몰랐던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예를 들면,

ㅡ 알브레히트 뒤러는 레오나르도에 비길만한 다재다능함을 보였다. (p. 29)

ㅡ 티치아노를 존경했던 루벤스가 이 초상화(티치아노의 자화상)를 소유했으며 그는 1640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앤트워프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 겸 주택에 소장했다. (p. 38)

ㅡ 미술사가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현상 때문에 당대에 명성을 누린 틴토레토의 딸 마리에타가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은 이제껏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그녀가 비교적 일찍 1590년에 사망한 점도 여기에 한몫했다. (p. 43)

ㅡ 카라바조는 계속 도망다니며 (중략) 불안하게 지낸 생의 마지막 4년 동안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50여 점 중에서 거의 1/3에 이르는 양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p. 51)

ㅡ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국가를 위해서'라는 호소로 이 작품을 사는데 필요한 1천만 파운드가 모금되었으며, 애늩워프 태생인 반 다이크가 영국의 국민영웅 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p. 70)

라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밖에도 화가들 별로 인상적인 내용들을 조금 정리해보면,

못그렸다고 해야 하나 못생겼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미술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땐 초등생 그림 같은 몇작품만 알고 있던 화가 고야는 의외로 초상화 전문이라 놀랐고 윌리엄 터너는 초기 자신의 작품들을 노년에 수정한 다음 다시 전시하곤 했다는 점이 존경스러웠다.

혁신적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는 마네는 뜻밖에도 작은 여성 초상화나 꽃과 과일을 그린 정물화가 인기리에 판매되었고 반 고호가 외톨이라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라는 저자의 설명은 신선했다.

고갱에 대한 설명이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마음에 들었는데,

작가는 자기홍보에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는데, 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한 첫 번째 서양 작가로 자기 삶과 공개석상의 모습을 일종의 수수께께 같은 소설로 만들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은 보헤미안, 추방자, 반항아, 잉카의 후손, 아름다운 야만인, 순교자였다. (중략) 세상을 떠날 때쯤 고갱은 파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전설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 작품 가격은 급등했고 전시회가 개최됐다. 고갱의 현실도피와 신비하고 감각적인 이국적 정취는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끌엇으며, 그 후로도 작가는 계속해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 시대의 다른 남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 그의 전설적 요소를 벗겨내는 치열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에 고갱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지나친 성욕을 가진 남성 우월주의자로, 몹시 서양 중심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시선으로 '원시적인' 사람들과 사회를 바라봤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정체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한 인물로 널리 비치고 있다. 게다가 고갱은 젊고 '이국적인' 여성들에 대해 주로 성적이고 심미적인 대상으로 생각한 남성이었다. 오늘날의 규범과 가치관을 관습이 달랐던 과거에 적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더라도 이러한 평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p. 113~114)

wow 완전 속시원한 해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갱의 그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자, 유럽내에서 돈도 없고 인정도 못받던 화가가 유럽현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소식을 부풀려 유럽에 흘려보내면서 한편으론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돈 없이도 원주민이자 어린 소녀를 성적으로 마음껏 취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고갱의 화가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전문가인 저자의 설명을 읽고나니 이제야 고갱의 허구적 가치가 좀 떨어지려나 싶어 몹시 기분이 좋아졌다.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해서도 '비록 그는 캔버스에 '던져' 넣듯 한 번에 완성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가 구도를 준비하는데 일년 이상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략) 그림을 완성시킨 뒤에 고갱은 산속으로 들어가 비소를 삼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몰두한 그의 허구 중 하나일 뿐으로 추정된다. (p. 115)' 라고 일갈하니,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ㅎㅎㅎ

화가들의 화가라고 알고 있던 세잔도 '사후에야 비로소 작가가 받아야 할 응당한 대우를 온전히 인정받았다. (p. 121)' 라는 건 의외였고, 구스타프 클림트를 '시대에 뒤떨어진 말년의 화가 (p. 126)' 라고 표현한 것이나 르누아르를 '영원한 행복을 그린 화가 (p. 138)' 라고 표현한 것엔 동의하기 어려웠다. 클림트의 일관성을 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쳐도, 고갱을 그토록 신랄하게 비평한 저자가 여성혐오발언을 수시로 했다던 '르누아르'의 진면목을 밝히지 않고 그저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설명한 것은 아쉬웠다.

유명한 화가들이라고 해도 현재 그 화가들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는 화가는 생각보다 드물었는데 에곤 실레 미술관이 있는 걸 보면서 그 짧은 생애를 살다간 젊은 화가가 남긴 작품들엔 '마지막' 이라는 의미가 몇 배로 더 들어가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절한 작가들의 작품은 그 희소성 때문이랄까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랄까 '마지막'의 상징성이 더 높아진다고나 할까... 에곤 실레 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딜리아니도 이른 나이에 요절 한데다 생애가 파란만장했기에 죽고나서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 및 시력저하로 색을 잘 알아보지 못한 나머지 전작들과 달리 어둡게 채색했다고 그리고 나중에 수술로 시력을 회복하고 나서 그때 그렸던 어두운 색채의 작품들을 개탄스러워했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 같은데 그 어둡게 그려진 대표작 [그란 데코라시옹] 이라는 수련 그림에 대해 저자가 높게 평가한 것도 좀 의외였다. 개인적으론 모네의 그림을 밝든 어둡든 다 좋아하지 않아서 뭐...;;;

뭉크의 성격이 고뇌에 차 있긴 했지만 '사업가, 협상가, 전문적인 애호가, 부유한 작가이자 사교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단순히 고통받는 영혼 이상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졌다. (p. 159)' 라는 설명이나 몬드리안이 '뉴욕에서 즐긴 열정적인 사회생활을 고려한다면 근엄하고 별나고 고독한 은둔자라는 이미지 역시 수정될 필요가 있다. (p. 164)' 라는 설명등은 고흐 때와 마찬가지로 고독한 이미지의 화가에 대해 신화적 고독함을 벗기려는 것 같아서 썩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고 해도 너무 신화적으로 꾸밀 필요 있겠나, 어차피 다 인간인데, 우리처럼.

앙리 마티스, 잭슨 폴록, 파블로 피카소 에 대한 과한 창찬은 그들의 작품이 추상화 이기에 더욱 개인적 호불호가 갈릴 내용들 같았다. 하지만 프라다 칼로 와 에드워드 호퍼의 생애에 대한 설명은 읽어봄직 했다.

이 책은 30명의 화가들에 대해 그 생애를 짧게 설명하고 마지막 시기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서너 작품씩 큰 그림으로 보여준다. 인쇄된 도판 질도 좋고 큰 사이즈로 그림을 볼 수 있으니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좋을 책이겠지만, 나는 화가들의 생애를 읽는 것이 더욱 좋았던 책이었다.

이십대에 죽건 100세 가까이 살다 죽건 그들의 마지막 작품은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평소 하던 데로 그들의 그림을 그렸을 뿐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그렸으나 그날 자신이 죽을 줄 몰랐으므로 그저 그리던 데로 자신들의 그림을 그렸을 뿐이었다. 마지막 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었다. 그 그림이 '마지막' 이라는 것은 결국 화가는 몰랐고 화가의 죽음 이후 우리만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마무리 글 없이 본문만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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