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디에고 데 란다 지음, 송영복 편역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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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초기 시대 유럽의 시각으로 바라본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역사책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역사서들은 대개 서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세계사책을 읽더라도 중심은 분명 서양 그 중에서도 유럽사이기 마련이고 그 유럽사와 아주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슬람사조차도 등한시되기 마련인데 그 유럽 열강들이 침략하고 정복했던 지역이라 그 죄를 숨기고 싶은 지역일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대한 역사는 그야말로 드물고 드물어 희귀하고 희소한 그런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모르니 멀게만 느껴지고 돌고돌아 풍월로만 접하니 신비하게조차 느껴지는 그런 역사인 마야문명에 대해 국내연구자가 낸 책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서양인들이 파괴하고 없애버려서 그들의 역사조차도 침략자의 글줄로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 배경과 속뜻을 알아가며 읽어야 할 역사이니만큼 전문가의 세심한 주의와 정확한 정보가 갖추어진 책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초기인 16세기에 디에고 데 란다는 에스빠냐 신부 자격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에게 선교 사업을 펼쳤다. 이 책은 그가 마야문명 정복의 역사와 주변의 지리, 원주민들의 문화, 생활, 환경 등을 상세히 다룬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중남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p. 8) 이 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는 희소성이다. 상대적으로 아즈텍이라고 불리는 메시까와 남아메리카의 잉까문명에는 많은 사료와 기록이 남았다. 반면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식민지 초기 종합적인 1차 사료는 여기에 소개하는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이 유일하다. 그렇기에 마야문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책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 (p. 9) 마야 원주민을 탄압한 장본인의 책이 고대 마야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란다의 종교적인 강경함과 원주민에 대한 시각이 책의 전반을 통하여 강조와 왜곡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저술 내용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조 알아두어야 한다. (p. 12) -머리말 중-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은 마야문명을 파괴한 스페인정복자들 중 마야문명 대부분의 자료를 불태우고 수많은 원주민들을 종교재판으로 죽여없앤 란다신부가 남긴 기록이다. 파괴자의 기록을 바탕으로 역추적 해야 하는 마야문명에 대해 파괴자의 주관적 해석을 지워가며 읽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러니 더더욱 이 책의 가치가 빛난다 할 것이다.

불행히도 디에고 데 란다가 쓴 원본은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다. 본 한국어 번역본의 저본은 초간본을 읽고 요약하여 복사한 것이다. 이것마저 1616년의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초간본의 제목은 'Relacion de las Cosas de Yucatan'으로 이를 직역하면 '유까딴 문물에 관한 보고서' 혹은 '유까딴 문물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된다. 한국어본의 저본이자 현재 전해지는 요약본의 제목은 '산 프란씨스꼬 교파 소속의 디에고 데 란다 신부가 쓴 유까딴 문물에 관한 보고서의 발췌본'으로 이 책이 발췌본 혹은 요약본이라는 사실이 제목에 명시되었다. 초간본은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식민지 시대 여러 사료에 언급되었다. 이 책은 (중략)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중략) 최초 저술의 요약 필사본이 (중략) 발견되었고, 1864년 대중에게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중략) 본 한국어본은 1959년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에 의하여 멕시코에서 출간된 가리바이본을 기초로 번역되었다. (p. 13) -머리말 중-

원본이 있는 과거의 역사책은 그 저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중요하고 원본이 아닌 번역본으로 읽는 만큼 어느 판본을 기초로 했는지도 중요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머리말부터 신뢰감을 탄탄히 심어주는 책이었다.

사실, 마야문명 이라는 단어가 낯설지까진 않더라도 잉카문명이나 아즈텍문명과 딱딱 구분짓지 못하는 나로서는 마야문명에 대한 첫 책으로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말에 이어 [이런저런 일러두기] 에서 저자는 이 책의 원본과 번역, 주석 그리고 용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 책에 대한 저자의 노력이 엿보여 한층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400여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사실 50~100페이지 정도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52개의 챕터 본문은 두어페이지 남짓으로 A4지로 치면 한장 안팎 정도가 될 듯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짧지만 주석의 양이 엄청나다. 본문의 반 정도 되는 깨알같은 주석이 본문 페이지 보다 분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저자가 이 책의 원본에 대한 해석에 있어 왜곡이 되지 않게끔 상당히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세심한 저자의 노력 덕분에, 그동안 나도 모르게 서양인의 시선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을 많이 고쳐낼 수 있었다.

식인 풍습에 대한 내용은 16세기 이곳 원주민들을 정복한 서양 사람들에 의하여 부풀려지고 강조되었다. 식인과 인신공양 풍습은 원주민들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로 이용되었다. 서양 사람들에 의하여 아먄적 행위이 대명사로 손가락질받던 인신공양은 인간의 피를 신에게 바침으로써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그들의 독특한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마야의 종교가 만들어낸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며, 실제로 마야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종교가 많건 적건 간에 인명의 희생을 요구해다는 점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인산공양의 전통은 서양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몰아가는 가장 큰 구실이 되었고, 큰 의미에서 보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야만인으로 몰아세우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녀를 화형에 처하는 행위나 로마 시대의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행위도 일종의 종교적 인신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구체적인 타당성은 일단 접어두고서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이 신체를 희생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사료에서는 마야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구속하기 위하여 인신공양의 횟수나 정도를 부풀려서 원시성과 잔인성을 부각하기도 하였다. (p. 50)

가장 중요한 사료라고 불리는 란다신부의 기록은 곳곳에서 왜곡과 혐오가 넘쳐난다. 따라서 '그 당시 다른 사제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원주민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정복과 선교를 정당화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또한 이러한 생각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사실인 양 혹은 자신이 직접 본 것인 양 무분별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p. 55)' 라는 내용과 비슷한 내용의 주석 또한 곳곳에서 읽혀진다. 마야문명에서 인신공양이 없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수시로 무분별하고도 흔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수천년간 이어온 의식에서 인신공양에 희생된 사람보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복시절 군인과 선교사들에게 희생된 원주민들의 수가 훨씬 많을 것 같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그 희생또한 인신공양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누가 더 많은 목숨을 종교앞에 바쳤는가를 기준으로 했을때 월등히 서양인들이 앞서고 그러니 누가 더 야만적이고 잔인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바뀌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공용어는 에스빠냐어다. 그러나 마야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마야문명의 후손들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300여 년간의 식민 지배와 이후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에스빠냐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 국가들에서 마야어를 듣는 일이 드물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원주민 언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비단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멕시코의 마야 지역과 과테말라, 벨리세의 내륙지역 등지에서는 읍내의 장터와 대도시의 공원에서 만나는 상당수 하층민이 대부분 일상 속에서 그들의 모태어인 마야어를 사용한다. 마야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치를 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고, 공식적인 수치에 큰 신뢰를 갖기도 힘들지만 대략 많게는 육백만명에서 적게는 이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아직도 유럽 침략 이전 마야인들이 사용했던 마야어에서 조금 변화된 형태의 마야어를 사용하고 있다. (p. 73)

남미의 고대 문명들은 죄다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신비스러운 문명으로 알려져 있는게 아닐까 싶다. 마치 환상의 아틀랜티스섬 처럼. 하지만 남미의 고대문명들은 실존했던 역사였고 그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남은 한 끊어졌다고 할 수 없는 거였다. 마야어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토착어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니... 결국 역사연구와 언어연구 또한 인기와 비인기 혹은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역사와 언어에는 학자들이 굳이 심도있게 연구하지 않아온 게 아닐까. 서양역사와 연결지어진 부분이나 그들 역사에 없던 고대의 시간들에 대한 호기심 약간 이거나 서양역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정도로만 연구해온 것이 아닐까. 그래놓고 사라진 문명이니 야만적 문명이니 폄하해온 것이 아닐까.

구대륙의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던 원주민들에게 유럽인들과의 접촉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수치가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죽었다는 점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유럽인이 최초로 정복한 카리브해의 섬들에는 현재까지 원주민이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쿠바, 자메이카, 아이티, 트리니다드, 토바고 같은 나라들이 바로 여기 해당되는데, 전염병도 원인이었지만, 초기 에스빠냐 정복자들의 살인과 학대, 무차별적인 노동 착취 역시 원인이었다. 전염병이 있기도 전에 상당수 원주민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을 가장 중요한 원주민 사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나 모든 책임을 전염병으로만 돌리는 해석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에는 유럽인들이 식민지 건설의 잔호감을 다소 완화하려는 기재가 다분하다고도 볼 수 있다. (p. 104)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 몰살은 유럽인이 방문함으로써 함께 간 병원균들 때문이라고 전염병 때문이라고 알려진 것은 역사적 상식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군인의 칼에 신부의 종교재판에 농장의 노동 착취에 이미 많은 목숨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는데 그 희생들을 전염병으로 면피해왔던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란다는 유까딴의 실세를 쥐고 있던 몬떼호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친척과도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몬떼호를 언급할 때는 항상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저술의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p. 111)

16세기가 면죄부가 판을 치고, 종교개혁을 부르짖던 시대였음을 생각해보자. 특히 에스빠냐는 이러한 종교개혁을 거부하고 가톨릭을 끝까지 고집했던 몇 안 되는 유럽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한편 원주민 선교를 우선순위로 둔 가톨릭 사제들은 선교를 거부하거나 비협조적인 원주민들에게 형벌을 가하고 죽이는 등의 처벌이 극히 당연하 처사라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식민지 체제가 안정되면서부터 많은 원주민이 종교재판으로 처형되었다. 란다는 그 책임의 한가운데 있었다. (p. 147)

저자인 란다가 이 글을 쓴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음을 이미 옮긴이의 머리말에서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유까딴에 있는 선교사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에스빠냐의 정부와 왕, 기독교 전파를 위하여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에스빠냐의 왕과 고위 관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작성된 것이었다. 따라서 란다는 본인에게 불리한 이야기나 그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 등을 생략하거나 미화시켜서 이 글을 기록하였다. (p. 155)

이 책의 원제에 '보고서'라는 단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역자가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란다는 유까딴에 대한 기록을 순수한 문명관찰서로 남긴 것이 아니었다. 란다의 선교활동에 이어지는 잔혹한 종교재판들로 인해 스페인 본국으로 송환되어 참석해야 할 만큼 내부고발적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 재판에서 본인의 활동에 대한 논리적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었다. 그리고 란다는 그 재판에서 승리하여 당당히 유까딴으로 되돌아왔다.

란다는 원주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가장 극단적으로 탄압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가 여러 지역에서 종교재판을 열어 원주민들을 우상숭배의 죄목으로 죽이고, 원주민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모든 조각품과 그림, 책 등을 불살라버린 사실을 여러 사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마니와 소뚜따, 과테말라 등에서 집행한 종교재판의 잔혹함은 매우 악명 높다. (p. 338)

나는 성경을 읽은 적이 없어 소돔에 대한 에피소드를 잘 모르지만 선교사들에게 소돔은 최대의 무기인것 같다. '란다는 자신처럼 원주민들을 강경하게 응징하지 않았다면 소돔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합리화하였다. (중략) 란다가 이 책을 집필한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으로 고발을 당하자 이를 소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생각하면 그가 원주민들을 강경하게 처벌한 것을 합리화하려고 이러한 내용의 성격구절을 강조한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p. 288)' 란다는 수완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권력층과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선교사들이 다 란다같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그때 그시절에 그곳에 란다가 선교사로 가게 된 것이 참 안타깝기 그지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란다의 기록을 통해 그 역사를 알아가야 한다니 더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종교를 중시하더라도 과거역사에 대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란다가 그리스나 로마에서 선교했다면 우상들이라며 자신들 조상의 조각이나 그림, 책들도 모두 불살라버렸을까...

그러니 너, 주님의 사제여, 악마를 섬기는 한심한 제사장들이 하는 짓을 똑똑히 보았느냐, (중략) 만일 네가 여기서 잘못된 점을 발견하였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며, 스스로가 지고한 주님의 사제라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사제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인간보다 더한 천사의 깨끗함으로 청렴하고 신중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p. 363)

잔혹한 란다는 스스로에게 신의 목소리로 당부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이 천사의 삶보다 더 훌륭하다며 자부심과 긍지를 뿜뿜 드러낸다. 읽을수록 기가차지만 역자의 상세한 설명덕분에 그나마 객관적으로 이해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책을 내주신 역자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인디오들이 에스빠냐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학대를 받고 괴롭힘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디오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죽이고 노예로 만들며, 악마들에게 인신공양 하는 것은 더욱 모진 모욕과 학대이기 때문이다. (중략)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당신의 몫으로 신에게 청하여 나의 소박한 봉사를 받아 주어 그러한 잘못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그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을 비호하는 것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 주십시오. (p. 424)

끝까지 란다는 너무나 당당했으며 이 책의 집필의도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란다도 흘리듯 적어놓았다. 자신들이 오기전에도 유까딴 사람들은 잘 살고 있었노라고.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 전 원주민들은 (여러)마을에 함께 모여 살았다. 행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고, 땅은 깨끗했으며, 잡목들이 잘 관리되어 있었고, 좋은 나무도 많이 심겨 있었다. (p. 135)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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