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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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지능이나 지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뇌라던가 생각이라던가 여하튼 유형의 머리속 무형의 어떤 능력을 연결짓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일상에서 때때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라든가 몸이 기억하고 있다 라는 식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생각과 몸은 다른 능력인가? 어쩌다 하나의 신체에서 이렇게 따로따로 능력이 구분되었나? 그러다 또 어쩌다 하나의 능력에만 꽂혀서 AI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나? 그렇게 인간의 뇌가 AI로 대체될 수 있나?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얻게 되는 체화된 지식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몸이 지능을 형성하고 보유하는 데 어떻게 중요한지, 오로지 정신에서 지능이 비롯되고 정신 안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견해를 철학자, 신경과학자, 인지과학자, 로봇 연구가, 인공지능 전문가 들이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체화된 지식은 신체 그 자체가 지식을 습득, 보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알게 될 때 몸은 단순히 뇌를 감싸는 도구가 아니라 지성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p. 15) -서문 중-

지성이라고 했을때 우리는 대부분 뇌의 능력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뇌 뿐만 아니라 몸도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주장한다. '인공지능AI에 열광하는 요즘의 흐름은 알고리즘을 돌리는 수많은 서버가 인간의 지성을 재현하거나, 심지어 능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있다. (p. 21)'며 지능이 오롯이 뇌에 있다는 생각에 대해 비판을 시사한다. 또한 '이제는 지식 습득에서 몸이 하는 역할을 무시하는 풍조를 멈추고 뇌와 몸이 어떻게 결합되어 우리가 인간의 지능으로 간주하는 것을 만들어내는지 탐색해볼 시간이다. (p. 21)' 라며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몸의 지식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THE POWER OF NOT THINKING '생각하지 않는 것의 힘'이 되었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뇌의 능력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뇌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몸의 능력에 대해 이제 다시금 집중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말해보는 것이다. AI시대가 될수록 더욱더 몸에, 인간의 신체능력에.

참고로, 이 책의 서문은 굉장히 상세한 편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서문]의 내용이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이라기 보다 거의 본문 요약에 가깝다. 그러니 본문을 읽으며 좀 이해가 어려웠다 싶은 사람은 서문을 다시한번 정독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17세기 유럽에서 우주와 천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말할 때는 기계론적 사고에 입각한 설명이 압도적이었다. 우주가 작동하고 행성이 이동하는 것을 기계론적 원칙에 따라 설명한 것이다. (p. 34) 이 당시의 해부학적·철학적 사고에 의하면 타고난 몸도 외부의 힘에 지시를 받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인간의 신체는 정신을 관장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작동한다. 즉 영혼이 몸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중략) 데카르트는 인간을 구성하는 두 가지의 '본질'을 구분했다. 먼저 비물질적으로 사고하는 능동적인 영혼 또는 정신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적이고 사고하지 않는 수동적인 몸이 있다. (p. 35) 이 시각에서 데카르트는 과학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과정이라는 입장을 정립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과학적 방법은 18세기 유럽 사회를 왕성한 과학적·정치적·철학적 담론의 시대로 이끈 계몽주의의 핵심이다. (중략) 이성의 시대는 지식을 취득하는 수단이 정신임을 확실히 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몸을 단순히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중략) 데카르트의 정신-몸 이원론이 중요성을 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소수만 이해하는 17세기의 개념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정신과 몸이 작동하는 각기 다른 역할에 대한 데카르트의 시각은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다. (p. 40) 우리는 뇌를 신성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p. 41) 빅데이터의 출현과 분석은 경험에 의거해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객관적 시선에 의지하는 과학적 실행의 또다른 사례다. 빅데이터 분석은 정신과 몸을 구분하는 데 근거한 지능공학이다. (p. 53)

과학이 발전해온 방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관점이었다. 신앙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넘어오고 그렇게 계몽된 인간이 발달시켜온 철학과 과학에 있어서 지금의 AI로 귀결되기까지 데카르트의 철학이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몸을 천시하고 수동적으로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시 신앙적 사고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은데 그러한 시각이 인간의 다른 능력보다도 뇌의 능력에 천착하게 했고 그렇게 다른 그 어떤 인공적 능력보다 AI가 먼저 태동하게 된 것이라니.. 그렇다면 이성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인간의 다른 능력에 초집중하게 됐었다면 AI가 아닌 다른 4차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구나... 신선한대?!

서구의 주류 교육은 사고의 자동화와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개념을 영속화 시키는 정신-몸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다. 아이들은 시각, 소리, 촉감, 냄새, 그리고 맛과 같은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각은 교육과정이 진행될수록 더욱더 경시되고 있다. 실용적 지식보다 학문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서구의 교육체계를 암묵적으로 지배해왔다. (p. 63)

우리네 교육 또한 서구의 교육체계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므로 정신-몸 이원론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렸을 적에야 오감교육이니 뭐니 하지만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체험학습들마저 박물관에 전시관에 이어지게 되고 그러다 입시를 앞두게 되면 체육시간은 고작 일주일에 한 타임뿐이게 된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우리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이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나빠졌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뇌만 잘 돌아가면 뭐하나? 몸이 안 움직인다면!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격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정신을 가장 중요시했다면, 메를로 퐁티는 간결하게, '나에게는 몸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알 수 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몸은 메를로 퐁티의 인식과 지식 이론에 핵심을 차지한다. 메를로 퐁티는 이전 시대를 지배했던 고차원적 형태의 논리적 지능이 정신에 위치한다는 아이디어를 따라가지 않고 우리의 사고는 몸에 의지하고 몸의 안내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p. 71)

저자는 이성의 시대를 열었던 데카르트에 맞서 메를리 퐁티를 내세우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게 총3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2부와 3부는 그 새로운 관점을 설득시키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설득은 아주 완벽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신체적 경험'을 몸의 지식으로서 강조하지만 그러한 경험치 또한 데이터로서 뇌에 쌓이기 마련이고 그렇게 뇌의 판단은 여전히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경험'을 강조할 수록 그게 결국 '데이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경험치보다는 무의식적 신체반응에 대해 좀더 증거들을 탄탄히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감각을 중요시하는 내용들을 읽다보니, 로봇과 AI로 점쳐지는 미래에 대해 의외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이 더 중요할 수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준 것은 중요한 포인트 였다.

가장 심오한 사실은 인간의 체화 작업이 우리가 어떻게 이처럼 의미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내고 이해하는가의 핵심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세상을 영원히 바꿀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인간의 체화 능력이 우리의 지능을 복제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데 위안을 얻어야 한다. 몸을 무시하기보다는 기뻐하고 축하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초능력이니 마음껏 즐기고 기뻐하자. (p. 294)

AI는 인간의 뇌보다 우월하다. 더 빨리 더 정확히 계산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행복이나 만족, 사랑 같은 감정이나 수없는 연습 끝에 머릿속에서 순서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알아서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는 신체화된 능력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어떻게 따라할 수 없는 분야이다. 그러니 인공적 뇌가 발달할수록 인간은 이러한 감정적 신체적 능력을 가진것만으로도 초능력을 가졌다고 여겨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몸뚱아리 하나 가진 인간이 우월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아니다. 지능과 지식이 대세인 시대에 뇌의 능력은 가장 우월한 능력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뇌의 능력만이 다가 아니라는 위안을 찾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뇌말고 인간의 신체를 똑같이 구현해내는 일은 어렵다는 점에서 자존감을 챙겨볼수도 있지 않나 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을 소개하며 '비즈니스 영역에서 거의 20년간 일했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인류학자라고 생각한다. (p. 295)' 라고 표현한다. 이 문장에서야 아차차 싶어서 책날개에 있는 저자약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선도적인 비즈니스 인류학자' 라... 나도 모르게 '인류학자'에 방점을 찍고 이 책을 읽은 건데 사실 이 책은 저자의 '비즈니스' 경험에 더 영향을 받은 책이었다. 그러니 썩 그럴듯한 저자의 주장에 빠져들다가도 갸웃하게 되고 학문적인가 싶다가도 갸웃하게 되어서 결국 저자의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참고하게 될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뇌와 몸의 역할에 대한 통념에 맞선 저자의 의견은 꽤 근사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지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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