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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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시대가 온다

이제 미술의 역사를 다시 쓸 차례

일명,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6권 중 1권과 2권을 읽으며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시리즈 전체에 욕심이 났던 책이었다. 서양사를 읽을 때도 박물관에 전시물을 보러 갈때도 꼭 한번 읽고 넘어가야 할 시리즈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동양미술에 대한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1권은 인도편이다. 아~! 기대된다!!!

미술을 회화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서양의 기준에 익숙하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탐험할 동양미술의 세계는 훨씬 넓고 깊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단단히 준비해주세요. (P. 16)

저자는 이른바 고대문명발상지 4곳중 3곳이 동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서양사관에 젖어 온게 아니냐고 묻는다. 동양미술 이라고 하면 수묵화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서양의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진 때문이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따라서 동양미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보다 열린 태도로 임할 것을 당부하며 보다 광범위한 예술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을 예고한다.

1872년 일본정부에서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만들어낸 번역어예요. 독일오 쇤네 쿤스트(Schöne Kunst)의 번역얼오, 쿤스트는 원래 미술보다 예술이란 뜻에 더 가까워요. 그림 뿐만 아니라 시, 음악, 조각, 공산품 등이 포함되죠. (p. 18) 그런데 우리가 아는 미술사는 서양 관점이에요. 혁신을 핵심 기준에 놓은 미술이죠. 동양 미술은 달라요. 서양미술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일상에서 먼 곳까지 달려나갔다면 동양미술은 생활에 밀착해 있습니다. (p. 20) 동양미술이라는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곳에서 동양미술이 단서를 찾을 수 있어요. (p. 23)

미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인들이 만든 번역어 였다. 번역어란 아무리 충실해도 원어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란 어렵다. 예술을 의미하는 Art 라는 영어단어의 기원도 찾아 올라가다보면 테크네라는 그리스어로 거슬러올라가지게 되는데 테크네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기술에 가까웠다. 여하튼, 그러한 미술이라는 단어 자체도 일본이 서양을 바쁘게 쫓가며 만든 단어였기에 서양 관점이 담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게게 지금 미술이나 예술은 일상과 너무나 멀고 먼 비싸고 귀한 무엇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동양미술 세계는 달랐다고 말하여 따라서 서양식 관점을 벗어날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또한 동양과 아시아라는 단어의 의미와 그 간극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는데 일단 '동양미술'로 부르기로 한다.

우리가 먼저 가볼 곳은 인도입니다. 동양미술의 시작으로 인도만큼 적당한 출발지가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p. 38) 제야의 종도 원래는 불교 행사였어요. (p. 39) 통치방식을 바꾼다고 1000년간의 세계관이 갑자기 바뀔 리 없지요. (중략) 조선 건국 이후 600년이 더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그 세계관 안에 있습니다. 잘 몰라서 안 보이는 것뿐이에요. (p. 41) 한가지만 강조하고 싶어요. 미술에는 그 미술을 만들어낸 이들의 역사와 문화, 즉 세계가 깃들어 있습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는 서양 중심으로 세상을 봐왔지만 그 역시 여러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물론 알던 대로, 익숙한 대로 세상을 본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닫힌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가치는 충분하죠. 알에서 깨어나야 더 넓은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요. 동양미술, 더 나아가 동양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p. 42)

저자는 동양미술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양이란 어디이고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왜 동양미술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말이 많아서 포스트잍을 붙이며 읽다가 앗! 했는데, 소단원내용이 하나 끝날때마다 <필기노트>로 깔끔하게 이미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이 책을 읽고 요약해보고픈 사람은 매 단원마다 있는 이 <필기노트>로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 대단원이 끝날때마다는 본문에 나왔던 유물들을 모아 간략한 설명과 연표로 정리해놓음으로써 핵심노트 뿐만 아니라 시각적 자료의 되새김까지 가능하게 해놓았으니 이 책의 친절한 구성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도가 지금과 같은 영토를 갖춘 건 영국 식민지 시기부터입니다.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영국이 '여기 다 우리 땅!'하며 경계를 긋고 이를 인도란 이름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지요.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일이에요. (p. 59)

이 책은 '미술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긴 하지만 풍부한 미술적 자료를 갖춘 역사책에 가까웠다. 그렇다고해서 인도의 역사이야기 라기 보다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 역사의 유래를 풀어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인도라는 나라의 이름부터 지금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설명되는 인도 역사는 동양미술, 인도미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 바탕이었다. 제대로 된 '의미'파악은 늘 제대로 된 배경'지식'에서 출발하게 되므로.

문명의 시작 연대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인도 최초 문명을 인더스 문명이라 배웠겠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문명이 최근에 발견됐거든요. (p. 79) 이 문명을 인더스 문명에 앞선 문명이란 뜻에서 먼저 선(先)자를 붙여 선인더스 문명이라 불러요. (p. 80) 기원전 2000년경 기후 변화로 날씨가 급격히 건조해지자 메르가르에 살던 사람들이 인더스 계곡으로 이주했을 거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p. 82) 메르가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기원전 7000~6000년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약9000년 전입니다. (p. 83) 메르가르는 비교적 최근인 1974년에 발굴됐습니다. 이 사실이 교과서까지 반영되려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해요. 시간이 충분히 지나야 '추상적인 무늬를 그린 게 신석기 문화의 특징이다'라고 배웠던 우리의 고정 관념도 바뀔 수 있을 겁니다. (p. 88)

신석기혁명과 농업혁명에 너무나 익숙한 나로서는 괴베클리 테페의 유적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 충격이었다. 농업혁명 이전에 집단거주가 있었을 수도 신석기 혁명이 신석기 혁명이 아닐 수도 있게 할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1963년 발견되었을 땐 그저 무덤이겠거니 했다가 1994년 재발굴에 들어가면서 1만년~9천년 전의 고대인류 유적지로 인정받아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발굴 및 연구중이다. 그런데 1974년에 발굴된 선인더스 문명에 대해선 왜 지금껏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을까? 이런....

동양 문명이 서양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한 서구 학자들의 선입관이 반영돼 있습니다. 즉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의 지모신은 그리스 문명이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까지 퍼져 나간데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애초에 인도 최초 문명의 발상지를 인더스강으로 봤던 것도 인더스강이 메소포타미아와 가깝기 때문이었고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는 생각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오랫동안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인더스 문명을 만든 드라비다인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까지 했죠. 하지만 메르가르의 발굴을 통해 드라비다인이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먼저 문명을 일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p. 92~93)

아직 논쟁중인 문제에 대해 저자는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지금껏 상식이라고 여겨왔던 고대문명에 대한 상식을 깨트릴 것을 제안하는 듯 했다. 모든 문명은 서로 교류했다. 따라서 서로 영향을 끼쳤다. 어디가 먼저이고 어느것이 우수한지를 따지는 것은 나중 문제다. 그러한 것보다는 그 교류와 영향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나또한 그런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감한다. 이후 저자가 풀어내주는 이야기들은 그러한 오픈마인드를 더 탄탄하게 지탱해줄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처음 봤을 땐 두꺼워보이던 책이었지만 재미난 소설읽듯이 책장이 아주 술술 넘어갔다.

다만 유념했으면 합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동양이라는 말의 의미를 짚었던 걸 기억하나요 아시아를 하나로 묶기 위해 동양이라는 단어를 쓰고, 불교를 공통된 정신으로 내세운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고작 몇백년 전인 19~20세기의 일본에서였지요. 일본 근대미술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오카쿠라 덴신이 최초로 동양이란 세계를 정의하고 퍼뜨린 사람입니다. (p. 496) 오카쿠라 덴신의 주장은 훗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 대동아 공영권 개념을 뒷받침할 때 이용돼요. (중략) 여기서 우리가 불교라는 관점에서 인도를 돌아본 것처럼 19~20세기 일본 학계에서도 같은 일을 했었단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끔까지 인도를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이해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 프리즘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불교를 통해 아시아 미술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방향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에요. 아시아 일대에 불교가 어떻게 영향력을 미쳤는지 좇는 여정은 여전히 의미있고 유효합니다. 다만 그 여정에는 과저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와 동양, 인도에 덧씌워놓은 선입견을 벗겨내는 과정이 동반돼야 할 거에요.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가 그 성공적인 시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 497~498)

책에 실린 이미지 자료들보다도 매단원마다 잘 정리된 핵심포인트들보다도 역사와 맞물려 흥미롭게 읽히는 동양미술이야기 보다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있던 바로 저 문장들이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갇혀 있던 미술에 대한 예술에 대한 프레임을 넓히고 선입견을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한 노력에 이 책과 이 시리즈가 한몫할 것이라 믿으며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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