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유재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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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종교·문화적으로 시대를 지배한

'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 작고 얇은 책의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지만, 이 작고 얇은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집대성한 그의 대표작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 이렇게 작고 얇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엄청난 책을 읽기 전 보면 좋을 훌륭한 책이다. 원전번역서가 아니지만 원전번역서와 세트로 읽어야 할 책이라고나 할까 ㅎㅎ

이 작고 얇은 책은 사실 시리즈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로 동서양 철학 고전을 쉽고 입체적으로 읽도록 도와주는 안내서인데, 시리즈 중 한권인 <모어의 유토피아>를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다른 책들도 궁금했고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철학자이자 현실의 철학자다. 그의 모든 사상이 그러하지만, 인간의 삶을 다루는 윤리학적·정치학적 저술들 속에서는 이를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그는 타고난 외모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을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철학자이다. (p. 5)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분량에 있어서나 내용 이해의 측면에서 평범한 독자들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어내기 힘든 저술이다. 이해를 방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그의 개념 사용에 있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몇 개의 핵심 개념들 (중략) 이해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현대적인 관점에서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염두에 두면서 만들어졌다. 부디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직접 대면할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p. 7)

결론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아주 유익했다. 엄두도 못냈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대면할 용기가 조금은 생긴듯 하다. 비록 근시일내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아예 손도 못대볼 고전이 아니라 내가 언젠간 읽을 고전목록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포함된 것은 이 작은 책 덕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작한 학문의 이름에는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생물학, 화학, 경제학, 경영학 등 우리가 들어본 적 있는 대부분의 학문분과들이 포함된다. 그에 걸맞게 후대 사람들은 그를 '만학(萬學)의 왕'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양 중세 시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대사상가들로부터 '그 철학자'로 불렸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언급할 필요 없이 그냥 '그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는 식으로 한 명의 사상가가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져던 것이다. (p. 13)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는 행복, 중용, 덕, 정의, 우정 등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행복'개념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p. 14) 역사상 위대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돈이나 타고난 음색이나 외모 같은 '우연'적인 것들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철학자다. 그는 돈이나 타고난 재능 같은 '우연성'들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참된 행복과 우연성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p. 16)

이 책에는는 '행복한 사람이 욕망에 대처하는 자세'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부제만 보면 어찌어찌해라 라는 식의 실용적 지침을 배울 수 있는 책 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부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집중 탐구한 주제를 압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데 그 행복이 무엇이냐를 탐구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지켜야 할 무엇을 탐구하게 되고 결국 행복한 사람이 갖게 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이것이 모아져서 일종의 윤리처럼 받아들여 지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라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 '훌륭한 성품을 갖춘' 사람을 만들기 위한 책이다. (중략) '윤리'는 그리스어 '에티코스'를 번역한 단어다. '에티코스'의 어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이고 우리가 습관을 들여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성격' 혹은 '성품'이다. 이런 점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성격에 관한 책' 혹은 '성품에 관한 책'이지, 착한 사람이 따라야 하는 법칙이나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윤리학'은 정확하게 말해서 '성격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p. 33)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행복'의 윤리학으로 불린다. 그의 '윤리학'적 사유는 '행복'에 관한 논의로 시작되어 '행복'에 관한 검토로 막을 내린다. (p. 36)' 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행복론 혹은 성품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윤리학'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상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내려놓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윤리적? 도덕적? 이런 것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을 텐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것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이 철학자는 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특히 인간의 행복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한다. 이러한 철학자의 사상이 왜 '윤리학'으로 전해졌는지 의아해질텐데 저자는 어원적 의미와 당대의 사상적 변화를 토대로 핵심만 쏙쏙 골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주관의 만족감이나 즐거운 감정으로 이해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주관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의 행복은 객관적이다. 행복의 그리스어 어원은 '에우다이모니아'이다. 여기서 '에우'는 '좋은'을 의미하고, '다이모니아'는 '신적 존재, 수호신'을 의미해서, 어원상 행복은 '좋은 수호신의 보살핌, 신이 내린 행운'이 된다. 어원상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주관의 만족감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 37) 그리스어, 영어, 한자어 모두 하나의 단어가 '착한' 과 '좋은'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 셈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는데, 그가 사용한 '아가톳'를 '착하다'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윤리학 책은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책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이성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p. 38)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행복의 윤리학이자 '덕'윤리학이다. 행복으로 시작하지만, 저술의 대부분은 '덕'을 해설하는 데 할애된다. (p. 39)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며,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행복론은 객관주의적 행복론을 표방한다. (p. 41)

그리스어 '아가토스' 영어의 'good' 한자어 '善' 은 모두 '착한' 과 '좋은' 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윤리학' 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착한' 이라는 뜻이겠거니 여기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에 역점을 두었다.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을 그렇게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을 우리는 도덕적이라거나 윤리적이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적 쾌락주의도 초월적 탈세속주의도 집단적 공리주의도 사회적 윤리원칙도 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것들이다. 어느 하나만 콕 집어 맞다 라고 혹은 틀리다 라고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윤리'는 다른 차원의 답변을 시도하는 것으로 현대에 와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 얇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왜 그런지 수긍할 수 있었다.

저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는데 필수적인 개념들을 설명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하는 단어를 지금 현대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번역됐다고는 말할 수 없기에, 그가 그당시 왜 그단어를 사용했는지를 알고 읽어야 그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고 얇은 책이 알려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개념들은 무척 유용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아직 읽지 않았음에도 어렴풋이 그의 사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하게 읽혔다. 책의 뒷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도 알려주니 이또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참고서라 할만 하다. 그 중에서도 <성격의 유형들, 테오프라스토스, 쌤앤파커스, 2019> 라는 책과 <세 통의 편지(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2), 에피쿠로스, 나남, 2021> 그리고 <덕과 지식, 그리고 행복, 윌리엄 J 프라이어, 서광사, 2010> 이라는 책은 언젠가 꼭 읽어리라 다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나 그의 사상이 궁금했던 사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관심이 있지만 시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마 한결 가뿐해진 기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같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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