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책세상 세계문학 5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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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조지 오웰의 작품은 엄청나게 유명해서인지 안 읽었는데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기에 더 그런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렇게 대충 아는 것과 온전히 작품을 읽는 것은 천지차이의 깨달음을 준다. 유명한 문학 작품들이라 해도 나는 그닥 관심없는 작품들이 종종 있었는데 몇달전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새로 나온 번역도 좋았지만 작품 뒤에 실린 독후감이 참 좋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독후감은 백민석 소설가가 썼는데 '위대한'이라는 수식어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던 그동안의 내 비호감을 변화시켜 주었다. 이번 <동물농장>은 장강면 소설가가 쓴 독후감이 실려 있었는데 역시 현실비판적 공감도를 높여주는 촌철살인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동지 여러분, 오늘날 우리 동물들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우며 덧없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최소한의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몸에 남아 있는 힘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죽어라 강제 노동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주인이 더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휴식은 무엇인지 아는 동물은 이 잉글랜드 땅에 단 한 마리도 없을 겁니다. 이 땅에서 자유로운 동물은 하나도 없다, 이말입니다. 동물의 삶, 그것은 비참한 노예의 삶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우리의 운명이며 자연의 섭리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너무나 척박해서 우리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p. 13)

동지 여러분! 오늘 밤 내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인간과 맞서 싸우는 것, 즉 반란입니다! (중략) 동지 여러분, 남은 생애 동안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십시오! 무엇보다 오늘 내가 말한 것을 여러분 후손에게도 전달하십시오! 미래 세대들이 승리를 얻을 때까지 투쟁을 이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동지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의 굳은 결의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논리에 유혹당해서도 안 됩니다. (중략) 우리 동물들끼리 단결해야 합니다. 투쟁을 위해 투철한 동지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우리의 적이고, 동물은 모두 우리의 동지입니다. (p. 16)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해 인간과 맞서 싸우되 절대로 그들을 닮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승리를 쟁취한 뒤에도 인간이 저질러온 악행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p. 17)

매너 농장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농장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었고 농장주는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질뿐 동물들에 대한 애정도 배려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이든 돼지 한마리가 동물들을 모아놓고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들려준다. 동물들은 그 연설을 듣고 각성해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소설의 앞부분에서 대놓고 설명해놓은 이상사회를 뒤로 가면서 슬금슬금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괴시키는 것을 읽다보면 작가의 탁월한 표현에 저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죽은 돼지 영감의 가르침을 다듬어서 '동물주의'라는 사고체계를 만들어낸 동물들은 비밀모임을 갖기 시작하고 서로서로 교육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배고픔에 지쳐있는데 채찍질까지 당하자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농장을 장악하게 된다. 매너농장이라는 간판은 내리고 '동물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건 후 영리한 돼지들의 지휘에 따라 동물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농장을 운영해간다. 합의하에 만들어낸 7대강령에 대해 보다 쉽게 각인시키기 위해 하나의 금언으로 압축하는데, 그것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였다. 하지만 너무나 똑똑한 돼지들은 점차 교묘하게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귀한 우유와 사과는 돼지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동물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돼지들의 지배에 점점 예속되어 가는 중이었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 돼지들은 힘든 두뇌 노동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의 전반적인 경영과 관리 업무를 모두 우리가 맡고 있다, 이겁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동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건 다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p. 43)

그러다 동물농장 사회는 전복됐다. 사나운 개들을 앞세운 돼지 한마리가 모든 권력을 강제적으로 장악해버렸다. 동물들은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노동하고 점점 더 많이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인간지배 아래 있던 때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돼지들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은 수년 전 인간 타도를 목표로 뭉쳤을 때 모든 동물이 꿈꾸던 미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고, 메이저 영감이 맨 처음 반란을 언급했던 그날 밤, 동물들이 기대했던 것은 공포와 살육으로 얼룩진 미래가 아니었다. 클로버가 머릿속에 그렸던 미래는 굶주림과 채찍질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동물이 평등하며,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였다. 메이저 영감이 연설하던 날 밤, 클로버가 앞다리를 구부려서 어미잃은 새끼오리들을 보호했던 것처럼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야말로 클로버가 꿈꾸는 동물농장의 참모습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영 딴판이었다. 동물들은 사나운 개가 사방에서 으르렁대며 어슬렁거리는 바람에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데다 동룓르이 자아비판을 한 뒤 잔인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p. 92)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동물들은 여전히 돼지들이 시키는데로 죽어라 노동했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어느새 지도자격 돼지였던 나폴레옹은 모든 성공과 행운의 주인공으로서 온갖 대단한 칭호의 수식어를 이름앞에 붙이도록 했다. 동물농장은 '공화국'으로 선포되었고 대통령 후보자는 단 한마리의 돼지 뿐이었으므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하늘너머 세상엔 '슈가캔디 마운틴'이 있어서 영원히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까마위 모세의 말을 예전엔 다 무시했지만 이제 동물들은 모두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돼지들은 쫓아냈던 모세를 농장에 살게 했다.

농장은 전에 비해 훨씬 부유해졌지만, 동물들의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돼지와 개들은 예외였다. (p. 131) 동물들의 삶은 하루하루 힘겨웠다. 동물들이 바라는 것이 모두 충족되지는 않았다. 충족되기는 커녕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동물들은 자신들이 다른 농장의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p. 134)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동물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버텼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성과가 동물농장의 존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압축적인 표현이 바로 변해버린 강령이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 좋다!" (p. 136)

돼지들이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다!

한때 이웃 농장에서는 이곳 동물 농장의 훌륭한 경영주에게 적대 감정, 아니 정확히 말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품었던 게 사실입니다. (p. 138) 하지만 이제 그런 의구심이 말끔히 해소된 겁니다! 오늘 나와 내 동료들이 이곳을 방문해 직접 농장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본 결과,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략) 이 농장의 하급 동물들은 전국의 그 어떤 동물들보다 많이 일하면서도 먹이는 더 적게 받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 농장 운영 방식입니까? (p. 139) 돼지 여러분에게 골치아픈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는 하층민들이 있지요! 푸하하! (p. 140)

앞에서 한 돼지 영감이 했던 연설을 상기해 보라. 지금의 농장 상황이 더더욱 소름끼치게 느껴질 것이다. 인간처럼 굴고 인간과 어울리는 돼지들의 모습을 창밖에 보던 농장 동물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의 얼굴에서 인간의 얼굴로, 다시 돼지의 얼굴로, 또다시 인간의 얼굴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동물들은 어느 것이 인간의 얼굴이고, 어느 것이 돼지의 얼굴인지 끝내 구별하지 못했다. (p. 143)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길다.

왜냐하면 저 상황은 80여년전 조지 오웰이 쓴 저 문장은 여전히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오웰은 사회 정의에 민감한 작가로서 진실을 증언하고 사실을 기록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그는 '폭로하고 싶은 거짓이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진실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거짓과 진실은 악과 선, 억압과 자유, 굴종과 저항을 대신하는 말이었다. (p 147) 조지 오웰이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첫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발표한 1933년부터 마지막 작품인 <1984)를 출간한 1949년까지 17년이다. 이 기간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 전체가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피를 흘리던 비극의 시기로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소련 스탈린의 스탈린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등 전체주의의 양상이 극에 달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공포와 광기에 휩싸였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말살되고 곳곳에서 끔찍한 살상이 자행되었다. 오웰은 작품을 통해 그런 잔인무도한 시대에 저항하고, 폭력성을 낱낱이 고발했다. 그는 특히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다. (p. 150~151) <1984>에서도 그렇지만 <동물농장>을 보면 작가 오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주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일조차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망각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하고, 사회 정의나 윤리적 원칙이 제자리걸음 치게 한다. 오웰은 사람들에게 바로 그런 사실을 환기하려고 <동물농장>을 쓰지 않았나 싶다. 오웰은 말한다. '그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라고. (p. 154~155) -작품해설 中-

전체주의... 망각... 역사의 반복... 뼈때리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전체주의가 과연 저 냉전시대에만 있었을까? 망각하던 대중들이 지금은 과연 자각하는 시민들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시대를 역행하는 역사의 반복이 지금 이 시대에도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독후감을 쓴 소설가의 문장이 내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 했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그 선량하고 이상적인, 동시에 얄팍하고 선정적인 구호가 회의를 중단시키고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막는다. 모든 구호가 그런 위험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사회, 각론이 부실한 사회, 대신 맹목적인 열성 지지자와 그럴싸한 구호와 선정적인 음모론이 넘치는 사회를 진심으로 염려한다. 그런 사회는 전체주의를 향한 내리막길에 있다. 여기서 지금의 한국 현실을 떠올리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리라. 오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예언자다. (p. 166~167) - 장강명(소설가) 독후감 中 -

지금 한국 현실에서 읽어야 할 단 하나의 소설을 골라야 한다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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