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헤어웨어 이야기 - 신화에서 대중문화까지
원종훈.김영휴 지음 / 아마존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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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에서 헤어웨어까지, 욕망의 역사를 훑어본다

역사의 재미는 이런저런 풍속과 문화의 이야기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다. 머리카락의 역사라니 있을 법한 주제라는 생각에 구미가 당겼다. 그런데 헤어웨어? 언어의미적으로 볼때 가발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정확히 뭘까;;;

헤어웨어는 신어이다. Hair+Wear=머리카락을 입다 의미로 볼 때 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낯설고 생경한 말이다. 헤어웨어는 21세기 초반에 씨크릿우먼이라는 기업이 최초로 만든 용어이다. 현대에 들어와 가발이 부족한 머리숱을 감추기 위해 쓰는 용도로 선호되었다면, 헤어웨어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해 입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p. 28)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은 '씨크릿우먼'이라는 외사의 대표이고 이 책의 부제는 '씨크릿우먼 헤어웨어 창립20주년 기념작품' 이다. 저자와 부제를 보건대 한 회사의 역사와 너무 밀접한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수도 있지만 책의 내용에서 '헤어웨어'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저자의 말마따나 '머리카락은 가늘고 긴 세계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류의 각양각색 문화가 채색되어 있다. (p. 31)' 라는 생각은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하나의 주제가 될 법했고 가발관련 회사의 대표가 이렇게 자신의 아이템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찾아봤다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고 보여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들만한 책이었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처름으로 가발을 애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가발 탄생의 배경에는 이집트의 기후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집트는 덥고 건조한 아열대기후에 속한 탓에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이 많았다. 이러한 기후를 이기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발을 착용했다. 이후 이집트 문명이 발달하면서, 가발은 차츰 부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바뀌었다. 다시말해, 지리환경에 영향을 받은 발명품에서 문화적인 의미를 띠는 대상으로 변모해 간 셈이다. 또한 지중해 문명권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에서도 가발을 즐겨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p. 25)

이집트인들의 그 머리모양새가 가발이었구나~ 그런데 가발쓰면 덥지 않나?? 하지만 뒤에서 다시 언급되는 이집트인들의 가발문화를 보면 그들에게 가발은 일종의 모자였던 것 같다. 역사의 시작은 신화이기 마련, 이집트 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등 다양한 신화 속에서 때로는 익숙하고 때로는 신선한 머리카락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루살카는 오늘늘 중부유럽과 러시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슬라브 신화 속 여인이다. 루살카와 거의 흡사한 이미지의 여인으로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세이렌이 있다. 그러나 루살카는 기괴하고 저주스런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는다. 달콤함으로, 유혹의 그림자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p. 49)

켈트족에게 머리는 가장 신성한 신체부위였다. 부연하면, 중세 시대 웨일즈에서는 상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행위를 개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가장 큰 경멸과 죄악으로 여겼다. (p. 53)

헤라가 이리스를 보내 디도가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리스는 단검을 들어 디도의 긴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냈다. 그제야 디도의 영혼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유로워졌다. (p. 75)

메가라의 통치자는 니소스 왕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이 스킬라였다. 니소스는 미노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스킬라는 짝사랑 앞에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 (중략) 니소스 왕의 머리카락은 온통 백발인데 정수리 부위에만 보랏빛 머리카락 몇 올이 자라 있었다. (p. 84)

포세이돈은 손자의 머리에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황금머리카락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프테렐라오스의 딸 코마이토가 적군 테베의 장수 암피트리온에게 사랑에 빠진 나머지 아버지를 배신한다. (p. 102)

압샬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서, 길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지닌 출중한 외모의 인물이었으리라. (p. 103) 도주하던 중, 긴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뒤어이며 허공에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p. 104)

신화 속에서 머리카락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은근히 많았다. 이러한 머리카락에 대한 관심이 아마도 가발의 역사또한 일찍부터 시작하게 한건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의 신화가 인간의 가발로 발전되었을때 가발은 미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가발은 사치스러운 물품이었고, 그러다 악마의 물품이 되버렸다. 다종다양한 문화가 기독교문화로 수렴되어가던 로마제국에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내린 후에도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지속적으로 금지령을 내렸던 것이 가발 이었다.

초판본에 따르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잡고 탑 꼭대기로 올라온 남자들은 왕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후에 다시 출간된 라푼젤 이야기는 순화되어 왕자만 등장한다. (p. 115)

클로비스1세는 사자의 갈기 같은 긴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이는 메로빙거 왕조의 전통이었다. (p. 137) 왕의 긴 머리는 곧 왕의 권위와 권력을 의미했다. (p. 138)

시프의 머리카락은 온몸을 휘감을 정도로 길고, 황금빛이 눈부시게 감돌았을 것이다. 시프의 머리카락은 여신임을 증명하는 상징물인 셈이다. 또 하나의 의미가 숨어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추수를 앞둔 잘 여문 곡식이 자라는 황금 들판을 상징한다. 그래서 시프가 풍요와 수확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p. 143)

삭발례를 하면 정수리의 머리 모양은 원형과 십자가를 띤다. 십자가는 '신과 기독교, 그 자체'를 상징한다. (중략) 원형의 머리모양은 '그리스도가 스스로 죽음을 향하던 최후의 순간에 쓴 가시관'이었다. (p. 153)

유럽의 중세 여성들은 일평생 머리를 길러야 했다. (p. 162) 애냉의 기본형인 뽀족한 모양은 고딕 건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세인들은 교회에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은 뾰족한 첨탑을 설치하여,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신의 영광을 숭배하고 영원한 생명을 기원했다. 이런 의식이 애냉에게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에냉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을 기원했고, 저 높은 하늘을 향한 간구와 영원을 기원했던 것이다. (p. 166)

대부분의 설화와 동화의 원작은 잔혹하기 마련인데 머리카락의 대명사적 동화인 라푼젤 또한 그러했다. 로마제국 시대까지 유행했던 가발문화는 프랑크왕국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본인의 머리카락의 길이로 상징이 바뀌었나 보다. 북유럽 여신 시프는 긴 머리카락을 자랑했고 프랑크 왕국의 왕들또한 사자갈기 같은 긴 머리를 자랑했다. 하지만 중세여인들의 긴 머리카락은 감추어져야 했으니 고깔 모양의 모자같은 에냉으로라도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지금 보면 좀 우습기도 한 수도사들의 둥글게 다듬은 헤어스타일까지도 저런 종교적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머리카락은 늘 어떤 식으로든 상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줄리엣과 데스데모나를 이탈리아 태생으로 설정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중세인들이 금발머리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멈추지 않았던 반면, 적갈색 머리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시선으로 대했다. 금기시하는 분위기마저 강했다. 적갈색 머리에서 강력한 냄새가 풍겨서 강렬한 내부열기로 가득한 존재하고 생각했고,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적갈색 머리를 악의 의미로 보기까지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여성의 오염된 월경의 피가 뒤엉킨 것으로 연상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두 여인의 금발머리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망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풍속이었다. (p. 173)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과 오델로의 데스데모나 가 금발이었구나;;; 사실 그리스로마인들은 금발이 아니었다. 그래서 포로로 잡아온 북방사람들의 금발로 가발을 만들어 쓰곤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금발에 대한 숭상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다 켈트족이 유럽사회의 권력을 차지하면서 금발이 곧 권력자의 머리색이 되었던 걸까 거기에 종교적 의미까지 더하고 황금에 대한 욕망까지 더하고 하면서 금발에 대한 판타지를 점점 더 키워나갔던 것일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늘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더 큰 욕망을 가지는건지;;;

한때 루이14세는 가발 금지를 지시한 적이 있었다. 국왕으로 즉위한 뒤에 가발금지령을 내려 루이13세 때부터 궁중에서 유행하던 가발착용을 금지했다. 그는 숱이 많은 자기 머리를 좋아했고 가발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중략) 루이14세의 머리에는 지루성 낭포라는 혹이 있었다. 머릿속 혹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항상 가발을 착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략) 루이14세는 침실 옆에 가발 전용 방까지 두었는데, 때와 장소에 맞춰 다양한 색깔의 가발을 애용했다. (중략) 국왕의 애용 덕분에 헤어패션의 유행이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 일었다. (p. 189)

그렇게 유럽 귀족사회에서의 가발은 이런저런 변천사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 의미에 대해 읽어도 나는 여전히 영국 법정에서의 가발이 우스워보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시작했으나 정작 프랑스에서는 사라지고 영국에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가발뿐만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귀족문화를 고수하는 영국사회가 다시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동서양 미인의 조건은 머리 모양에 있었다. 최대한 화려하고, 관능적으로 풍만하고, 가급적 높이 치솟은 상태로 치장하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은 가늘로 긴 머리카락을 어떻게 꾸미는지가 중요했다. 18세기 조선, 일본 에도시대, 프랑스 절대왕정, 그때를 살던 미인들은 자신들의 머리카락에 온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는 데는 화가들보다 못지않는 솜씨를 지녔다. (p. 217)

가발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서양이야기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책속에는 고구려 벽화에서 발견되는 헤어스타일부터 조선시대 가채까지 그리고 몽골식이나 일본식 헤어스타일 까지 동양의 머리카락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동양과 서양은 따로따로 역사를 만들어온 것 같지만 한걸음 떨어져 보면 비슷비슷해 보인다. 18세기에 이르러 더욱 비슷해진 문화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가발을 쓰던 가채를 쓰던 헤어스타일은 점점 더 크고 풍성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현대에 이르면 대중문화로서 더욱 다양한 상징과 스타일을 선보이게 된다. '앤디워홀의 은발머리가 가발이라는 사실, 앤디 워홀은 20대부터 탈모가 심해져 자연스럽게 은발머리가발을 착용했고, 은발머리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과감히 살렸다. (p. 252)' 처럼 흥미로운 스타의 헤어스타일 이야기부터 '가수는 입과 뇌와 눈빛과 몸짓과 의상으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그 노래를 완성한다. (p. 255)' 처럼 헤어스타일에 따른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설과 영화속 캐릭터와 인형의 머리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헤어웨어가 보편적인 패션의 장르로 정착될 것이다. 생물학적인 머리카락에서, 사람의 손길로 치장된 머리 모양과 헤어스타일로, 그리고 옷의 형태로 한 차원 더 진화한다는 의미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와 속성으로 또다시 변신할 것이다. (p. 303)' 라며 헤어웨어에 대한 호기심을 남기며 책을 마무리한다. 머리카락과 가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분석 같은 전문적인 해석은 없었지만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집한 저자의 노력엔 박수쳐줄만 하다. 별생각없이 잡지처럼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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