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 인류의 역사에 스며든 수학적 통찰의 힘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4
김민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과 인문학의 아름다운 컬래버레이션

역사·과학·문화를 만난 수학 이야기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수학을 이렇게 에세이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싶어서 감탄하며 읽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역사가 깃들인 수학이라니! 수학사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수학을 수학적 통찰을 살펴볼 수 있다니!! 흥미로운 주제였다.

저자는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첫번째 이유로 '역사와 문학의 틀 속에서 수학을 논함으로써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p. 7)' 를 꼽는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대단한 수학자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학자다. 그런데 그의 글은 굉장히 친숙하고 대중적이다. 교수입네 학자입네 하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저자들의 글들은 막상 읽고보면 얄팍할때도 많다. 그러나 김민형 저자의 글은 달랐다. 이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역사와 수학의 중간즈음 어딘가에서 융합하고 있는 이 책은 시간순서라서 읽기 편했다.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까지 굵직한 수학자들이나 당대의 혁신적인 수학이론을 간략하게 풀어냄으로써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수학과 밀접하게 발달되어 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는 역사도 수학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수학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일지라도 '이 책의 목적이 수학을 흥미롭게 느끼도록 하는 데에 있(p. 17)'다는 저자의 바람은 전달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평면상의 점의 정보를 수의 순서쌍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좌표 개념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일상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된다. 가령 남북으로 뻗은 도로를 애비뉴, 동서로 뻗은 도로를 스트리트로 부르는 미국의 뉴욕이 좌표계처럼 계획된 대표적인 도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약속을 할 때 '7번 애비뉴 30번 스트리트에서 만나'자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즉 좌표 (7, 30)으로 꼭 집어 정확하게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이다. (p.40)

미국관련 책을 읽다보면 거리 이름이 애비뉴 였다가 스트리트였다가 해서 왜그런가 했더니, 애비뉴와 스트리트가 저런 의미였구나~! 저자는 이렇듯 일상과 수학을 잘 접목시키며 이야기를 전개시키곤 한다. 이러한 좌표형면상의 기하학에 대해서라면 피타고라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학을 아무리 싫어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수학정리인 것처럼 수학에서 피타고라스의 중요성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플라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럽 철학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되었다' 라고 주장했다. 화이트헤드의 이러한 주장은 피타고라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과학전통은 피타고라스에 대한 인련의 각주로 구성되어 있다' 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p. 26)' 라는 저자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납득되어진다.

역사이건 수학이건 인문학이건 굳이 어느 분야라고 정리하지 않더라도 이 책속에 나오는 깨알정보들을 알아나가는 과정은 재밌으면서도 유익했다. 아르키메데스의 여러 발명품 중 그 작동여부가 분명한 것중 하나는 나사screw 라는 것,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 제목은 '평행 전기' 로서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그리스인과 로마인 사이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비슷한 의도로 집필된 책이라는 것 등등...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도와주는 내용을 발견했을땐 더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나 키케로 등은 어째서 그의 순수성을 강조했을까?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오늘날의 수학자들 가운데도 아르키메데스의 순수성을 그대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르키메데스가 죽고 수백년이 지난 뒤에 쓰인 플루타르코스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러한 믿음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정작 아르키메데스 자신은 스스로 그와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없고, 수학적 사고의 순수성에 대해 강하게 생각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키케로나 플루타르코스 같은 사람들은 아르키메데스가 이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결국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하나의 일환으로 고대 인물의 왜곡된 형상을 재발명했다고 볼 수 있다. (p 74) 키케로나 플루타르코스의 '플라톤주의적인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의 후속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 전통의 위조에 가깝다. (p. 75)

간단히 얘기하자만 순수한 이론으로서의 수학을 우대하고 기술적 응용면에서의 수학을 덜 우대하는 것이 (아르키메데스를 예시로 들었던) 플루타르코스나 키케로 때부터 이미 있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하지만 저자도 말하듯이 수학을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연구하든 발명이나 공학적으로 이용하든 여기서 우열이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아르키메데스는 그렇게 여겼다. '플라톤주의의 영향은 많은 면에서 순수 과학과 응용 수학 간의 과도한 분열을 초래했다. (p. 76)' 저자는 이러한 분열이 오늘날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고대의 대표적인 수학자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를 살펴보면서 순수학문과 응용학문간의 분열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는 결론이라니, 그야말로 역사를 품은 수학 혹은 수학을 품은 역사라 할만 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러한 수학과 역사의 융합적 서술을 각 시대별로 짧지만 확실하게 이어나간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기원전 1700년경에는 이미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대 수학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p. 87) 피타고라스학파의 이야기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무리수의 발견은 제논의 역설과 유사하게 자연을 대수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심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당시 수 체계에 대혼란과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해석이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리스 수학은 수 체계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수학의 발전을 저해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이 대수학의 위기는 수세기에 걸쳐 에우독소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뉴턴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러면서 수학적인 이론을 기하학적으로 개발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p. 89)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은 대개 숫자로 이루어진 무엇 이다. 즉 대수학이다. 하지만 뉴턴의 그 유명한 <프린키피아>도 거의 모든 것을 기하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고대부터 과학혁명 이후시기까지도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수학을 기하학적으로 풀어내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수체계는 18세기에나 정리된 것이라니, 그나마 이런 수체계 정립에 이슬람 수학자들이 큰 공헌을 했지만 그랬기에 더욱 기피되어 온 것이라니... 연산에 불가능한 로마숫자 대신 아라비아숫자를 도입하고 나서야 유럽의 수학과 과학이 놀라운 비약을 이루었는데 좀더 빨리 받아들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슬람 문명에서 습득한 대수학보다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사용한 기하학을 강조하는 것이 당시 문화의 조류에 잘 부합했을 것이고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기하학적으로 기술한 이유를 그러한 조류에서 찾을 수도 있다. (p. 132)' 는 것은 수학과 역사를 접목시켰을 때 얼마나 새로운 상호작용을 발견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어서 의미깊었다.

17세기 혁명의 한 축인 베이컨은 경험론자의 선구자로 스콜라 철학을 비판하고, 관찰과 실험에 기초를 둔 귀납법을 확립했다. 이러한 베이컨주의는 경험주의의 토대가 되었는데, 베이컨주의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치의 이성론과 더불어 근대 과학적 방법론의 철학적 근간을 이루었다. (p. 150)

시인이자 평론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옥타비오 파스는 소르후아나를 '에밀리 디킨슨과 월트 휘트먼의 등장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했다. (p. 167)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따라 원자론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사람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이자 시인 루크레티우스다. (p. 191)

저자의 수학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수학과 시인을 연결하고 과학과 시인을 연결한다.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 주인공은 기브스라는 수리물리학자의 전기를 쓴 루카이저 라는 시인이다. '나는 '현대판 루크레티우스'로 해석해본 이 전기가 엄밀한 과학적 전개만 가지고는 전할 수 없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계속 타진하는 중이다. (p. 239)' 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그러니까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이 현재진행형이 다음엔 또 어떤 책으로 수학적 흥미를 돋워줄지 기대하며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