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거야' 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엔딩처럼 마무리된 마지막 문장들이 이질적으로 남는다. 이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문장 '하지만 개츠비는 알지 못했다. 그 꿈이 이미 자기의 등 뒤로, 저 도시 너머의 광막한 어둠 속으로, 밤의 장막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합중국의 어두운 벌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p. 271)' 이 더 마지막문장 다웠다. 여하튼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 는 분명 과거에 읽은 것과 달랐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다시 읽었기 때문인지 새번역이기 때문인지 하여튼 이번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명작이었다.
명작이 다 그러하듯 이 작품도 출판 당시에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1940년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난 때만 해도 그의 명성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가 쓴 작품은 대부분 절판되었고, 그의 이름도 점점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뒤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 덕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위대한 개츠비>를 진중문고로 15만부나 구매했다. 그 바람에 <위대한 개츠비>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피츠제럴드는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21세기에도 매년 30만부씩 팔리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했으며, 피츠제럴드는 윌리엄 포크너와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p. 278~279)' 미군은 왜 이 소설을 대량 구매했을까? 군인 출신 청년의 자수성가 스토리로 이해했던 것일까? 목숨이 오가는 전장 속에서 군인들에게 세상 현실은 더 전쟁터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여하튼 개츠비라는 인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결국 개츠비는 위대하다기보다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톰의 계략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 그의 최후를 생각하면 측은 마음 지울 길 없다. 어쩌면 피츠제럴드도 개츠비가 가엾다 못해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여준 것은 아닐까 싶다. (p. 283)' 라는 백민석 소설가의 작품해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읽은 나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소설에서의 전문가인 작가가 개츠비를 위대한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는데 하물며 나같은 일개 평범한 독자가 개츠비의 위대함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