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책세상 세계문학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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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젊은 목소리로 말해지는 가혹한 어른들의 삶이자 세계의 이야기다. 지금 읽어도 조금도 감각이 낡게 느껴지지 않으며, 이번 번역은 요즘 나온 젊은 작가의 신작 소설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세계명작소설들은 참 많다. 유명한 작품들도 있고 그닥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도 있지만 <위대한 개츠비> 정도면 굉장히 유명한 작품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내가 공감하지 못한다해도 세계명작이 되는데 아무 지장은 없지만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다 명작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읽게 된 이유는 백민석 소설가의 독후감이 실려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백민석 소설가의 소설을 읽진 못했지만 최근에 그가 쓴 미학에세이를 읽고나서 다른 분야에 대한 그의 시각에 무척 공감했었기에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을 독후감을 통해서나마 깨닫게 되려나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의외로 독후감을 읽기전에 소설 자체에 빠져들어 읽었으니 독후감 때문이 아니라도 망작이 명작으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의 제목을 정할 때,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쓰레기 계곡의 백만장자들',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높이 뛰어오르는 연인',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 등 몇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피츠제럴드가 인용한 시는 사실 인용문이 아니라 자작시인데 그 시의 제목 '위대한 개츠비' 에 붙어 있는 주석에 따르면 소설의 제목을 짓기까지 이런 후보들이 있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알수 있었고 흥미로웠다. 트리말키오가 뭔가 검색해보니 '서기 1세기 고대 로마의 작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소설 『사티리콘(Satiricon)』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이 책은 방탕한 한 로마의 젊은이가 보여주는 허세와 방랑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자소설이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트리말키오는 자신의 친구와 아첨꾼들을 초대해 초호화 연회와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식사를 베풀며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그는 벼락부자가 되어 가짜 미식가 행세를 하던 당시 일부 로마인들의 도를 넘은 허영과 경박함을 보여 주는 풍자적인 인물이 되었다.' 라고 나오는 것이나 쓰레기, 백만장자, 황금모자 등등의 표현들로 봤을때 이 소설은 애초에 제목부터 내용을 뻔히 드러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되는 순간 명작으로 남을 운명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한 가지 충고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점을 꼭 명심하도록 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p. 13)

닉 캐러웨이 라는 인물의 회상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은 제3자의 관찰자적 시점이기때문에 서사의 주요 주인공들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읽어 알 수 없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의 소설은 늘 조금은 이해가 어렵기 마련인 것 같다. 제3자의 시선을 읽고있는 나는 제4자 정도 되기 때문에 도저히 주인공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닉은 자신의 아버지가 알려준 교훈을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 교훈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충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한 개츠비만은 예외다. 내가 대놓고 경멸해 마지않은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보여준 개츠비. 한 인간의 성격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몸짓으로 잘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무언가 대단한 면이 있었다. (중략) 결국 개츠비가 옳았다. 인간의 덧없는 슬픔과 짧은 희열에 내가 잠시나마 흥미를 잃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개츠비를 먹이로 삼은 것들, 그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p. 14~ 15)

고개 끄덕여지는 충고로 시작한 이 소설은 바로 뒷장에서 그 충고를 정면 부정한다. 적어도 개츠비 한 사람만큼은 예외적 경우라고.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닉에게만큼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자수성가한 개츠비, 그 성공만 보자면 개츠비는 위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성공의 목적과 과정과 말로를 보자면 내게는 여전히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으니 개츠비의 '유명한 무명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파티가 열리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주인부터 찾아 나섰다. 두어 사람에게 주인의 소재를 묻자 그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p. 70)

거의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저택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작 파티의 주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러쿵저러쿵 수근거리길 멈추지 않는다. '개츠비가 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낭만적은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증거였다. (p. 74)' 하지만 낭만적인 추측 치고는 살인자라느니 범법자라느니 소문들은 흉악했다. 닉 또한 초대장을 받고 참석했으나 '내게는 좀 별난 파티입니다. 아직 집주인도 만나지 못했어요' "내가 개츠비인데요' (p. 79)' 에서 알 수 있듯이 얼굴을 마주하고도 개츠비를 알아보지 못했다. 초대를 받던 받지 않았던 수많은 손님들도 '개츠비 쪽으로 쓰러지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중략) 누구도 개츠비의 어깨에는 머리를 얹지 않았다. 여럿이 모여 노래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개츠비와 노래하는 무리도 없었다. (p. 83)' 닉은 개츠비와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주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날 닉은 개츠비의 손님들 명단을 적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이름들은 개츠비의 환대를 받고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알쏭달쏭한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뚜렷한 인상을 줄 것이다. (p. 97)' 라며 풀어놓은 손님들의 면면은 개츠비가 대체 왜 이 사람들에게 이런 파티를 열어주는지 더욱 알수 없게 한다. 그러면서 닉에게도 개츠비는 '그저 이웃의 호화로운 호텔 주인 정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p. 101)' 그러다 개츠비가 닉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보다시피 나는 주로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지내는데, 내게 일어난 슬픈 일들을 잊으려고 이곳저곳 떠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p. 105)' 라며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또한 직접이 아니라 조던 이라는 (닉과 자주 만나는) 여성을 통해 건넨다. 그러니까 개츠비 라는 인물은 부의 성공을 이룩했는지는 몰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줄은 몰랐던 인물인 것이다. 개츠비는 부유했으나 외로웠다. 하지만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했다.

너무나 소박하고 겸손한 부탁이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5년이나 기다려서 대저택을 구입하고는 우연히 날아드는 부나방때에게 별빛을 보도록 한 것이 고작 어느 날 오후 잘 모르는 이웃에게 '초대받아 건너가기' 위해서였다는 말인가. (p. 123)

개츠비는 서툴다. 재산을 모으는 데는 능력자였는지 모르지만 사회적 관계에서의 처세술에는 능했지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사람'을 만드는 것에는 초짜중의 초짜였다. 여하튼 닉을 통해 드디어 오매불망 데이지를 만난 개츠비.

개츠비의 감정은 분명히 두 번째 단계를 지나서 이제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모르다가 방금 기뻐하는 단계를 지나서 지금은 데이지가 눈앞에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에 넋을 잃은 것 같았다. 개츠비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 순간만을 생각하고 이 순간만을 꿈꾸어왔다. 말하자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게 이를 악물고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반작용으로 너무 많이 감아놓은 시계태엽처럼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p. 143)

어렸을때 테엽을 감아 사용하는 커다란 벽시계가 있었다. 열쇠모양의 키를 꼽아 태엽을 끝까지 돌리려면 아주 빡빡해지는 느낌이 들때까지 돌려야 한다. 그렇게 많이 감아놓으면 천천히 풀렸던가... 오르골은 태엽을 많이 감아놓으면 처음엔 빠르게 소리를 내다가 점점 느려지는데 시계는 어땠더라.... 결국 시간은 같은 속도인데 태엽은 달랐던가... 아주아주 더 느렸던가...

자그마치 5년에 가까운 세월! 눈앞에서 데이지를 보면서도 개츠비에게는 그날 오후도 그동안 꾸어왔던 꿈에 비하면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데이지의 잘못이라기보다 개츠비가 오랫동안 집요하게 품어온 환상때문이리라. 그 환상의 힘은 데이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초월했다. 개츠비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그 환상 속에 뛰어들어 줄곧 그것을 부풀리고 주변에 떠도는 온갖 빛나는 깃털을 남김없이 사용해서 화려하게 장식했다. 아무리 열정이 대단하고 순수하다고 해도 한 남자의 영혼 속 깊이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에는 견줄 수 없으리라. (p. 148~149)

'제임스 개츠, 이것이 개츠비의 진짜 이름, 아니면 적어도 법률상의 이름이었다. (중략) 사실을 말하자면, 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에 사는 제이 개츠비는 자신의 상상력이 빚은 이상적인 모습에서 탄생한 인물이었다. (p. 151) 그는 신의 아들이었다. 이 말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아버지의 일', 즉 방대하고 세속적이며 겉만 번지르르한 아름다움을 위해 전력을 쏟아야 했다. 그래서 개츠비는 열일곱살 소션이 지어낼 법한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을 꾸며내고, 최선을 다해서 그 이미지에 충실했다. (p. 152)' 나는 기독교적 비유나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 작가가 '신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일'을 '세속적이며 겉만 번지르르한 아름다움' 이라고 표현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제임스 개츠가 제이 개츠비로 변모한 순간, 데이지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그의 환상은 시작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바라는 건 딱 한가지였다. 톰에게 가서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p. 169)' 개츠비에게 자신의 환상은 순결무구 그 자체여야 했다. 그래서 부를 쌓고도 직접적으로 데이지에게 가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낸 이상은 '아뇨, 난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어요! (p. 170)' 라고 외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 현실을 자각할 수록 개츠비의 꿈은 환상임이 분명해질 따름이었다. '오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맥없이 스러진 개츠비의 꿈만이 홀로 싸움을 계속했다. 이제 더는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불행하지만 끝내 절망하지 않은 채 방 저편의 사라진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p. 208)' 5년 동안 홀로 기다렸지만 만나고 나서도 홀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개츠비는. '어느 틈엔가 그 자신이 온마음으로 취하려고 한 것이 다름 아닌 성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228)' 성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개츠비의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썩어 빠진 족속이에요"

나는 잔디밭 너머로 계속 소리쳤다.

"그 빌어먹을 인간들 몽땅 합쳐놓아도 당신이 훨씬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기쁘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츠비를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었던 만큼 그때 그 말이 그에게 해준 유일한 칭찬이 아니었나 싶다. (p. 234 ~ 235)

개츠비의 짧은 생애는 비극적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수백 명이나 그 집에 드나들었는데 말이야. 더럽게 불쌍한 사람이군" (p. 264)' 개츠비의 화려한 저택 쾌락이 넘치던 파티 들끓던 손님들 그리고 생애 유일한 사랑... 그 모두가 결국은 다 허상이었다. 개츠비는 여름내내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수영장에 혼자 에어매트를 낑낑대고 끌고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풀장에 둥둥 떠다녔다. 자신의 삶이 둥둥 떠다녔듯이.

개츠비는 그 녹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황홀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서 아련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두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해맑게 갠 아침에...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떠밀리고 떠밀려가면서도 계속 전진할 것이다. (p. 271)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거야' 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엔딩처럼 마무리된 마지막 문장들이 이질적으로 남는다. 이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문장 '하지만 개츠비는 알지 못했다. 그 꿈이 이미 자기의 등 뒤로, 저 도시 너머의 광막한 어둠 속으로, 밤의 장막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합중국의 어두운 벌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p. 271)' 이 더 마지막문장 다웠다. 여하튼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 는 분명 과거에 읽은 것과 달랐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다시 읽었기 때문인지 새번역이기 때문인지 하여튼 이번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명작이었다.

명작이 다 그러하듯 이 작품도 출판 당시에는 그닥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1940년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난 때만 해도 그의 명성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가 쓴 작품은 대부분 절판되었고, 그의 이름도 점점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뒤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 덕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위대한 개츠비>를 진중문고로 15만부나 구매했다. 그 바람에 <위대한 개츠비>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피츠제럴드는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21세기에도 매년 30만부씩 팔리는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했으며, 피츠제럴드는 윌리엄 포크너와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p. 278~279)' 미군은 왜 이 소설을 대량 구매했을까? 군인 출신 청년의 자수성가 스토리로 이해했던 것일까? 목숨이 오가는 전장 속에서 군인들에게 세상 현실은 더 전쟁터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여하튼 개츠비라는 인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결국 개츠비는 위대하다기보다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톰의 계략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 그의 최후를 생각하면 측은 마음 지울 길 없다. 어쩌면 피츠제럴드도 개츠비가 가엾다 못해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여준 것은 아닐까 싶다. (p. 283)' 라는 백민석 소설가의 작품해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읽은 나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소설에서의 전문가인 작가가 개츠비를 위대한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는데 하물며 나같은 일개 평범한 독자가 개츠비의 위대함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ㅎㅎㅎ

한때 이 소설의 신드롬에 편승해 개츠비스크란 말이 유행했다. 일부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데, 대체로 꿈과 이상을 좇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꿈과 이상을 좇되 결과적으로는 개츠비처럼 측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하면 좋겠다. (p. 283)

내가 처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는 그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며 '위대한' 이란 표현에 강한 반발감이 일었었다. 하지만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그 허망함에 '위대한'이란 표현조차 짠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피츠제럴드의 작품들 가운데 진심으로 슬프고 삶의 피곤함에 절어 질척거리는 유일한 작품은 그의 진짜 인생을 회고하는 자전 에세이들이다. (p. 299)' 라며 피츠제럴드의 에세이를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삶이 피곤에 쩔어 있는데 굳이 백여년전 소설가의 질척거리는 삶까지 읽어보고 싶진 않다. 나는 그저 개츠비의 헛된 꿈을 측은하고 여기고 개츠비 못지 않게 허상을 좇으며 살았던 것 같은 피츠제럴드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위대한 작가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자 한다면 다른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명작에 대한 평론가의 난해한 해설보다 백민석 소설가의 진솔한 해설과 독후감이 깔끔하게 책을 덮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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