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세계 - 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김지윤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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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모녀의 세계

"진정한 자기애는 엄마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지윤 소장의 강의영상을 본적이 있다.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과 쉽게 풀어내는 공감높은 에피소드들이 가볍고 재밌으면서도 은근 정곡을 찌르는 내용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자기계발 강사치고 본인의 짠한 사연풀이를 안 하는 사람이 없지만 김지윤 강사는 그런 도입부가 없어서 더 좋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밝고 당차보이던 그녀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13년,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p. 12)' 라고 고백했다. 이 책의 첫번째 연재글 속 이 문장이 내눈을 강타했다.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쁜 년, 미친 년, 불효막심한 년' 이라는 첫번째 에피소드 제목에서부터 나는 위안받았다. '그렇게 상담실을 탈출한 뒤, 나와서 조금 걸었다. 어지러웠지만 면죄부를 받은 심정이었다. 그래, 일단 나쁜 년은 아닌 걸로. 그냥 마음 아픈 년인 걸로. (p. 17)' 에서 저자가 받은 면죄부를 나또한 받은 기분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상당히 상처받은, 평범하지 않은 엄마를 가진 딸이었으며, 그렇게 아이를 낳고 나 자신도 엄마가 되는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도 많은 문제와 마주하고 이를 극복해나가야만 했다. 딸에서 엄마가 되기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어려움을 극복한 만큼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p. 6)

저자는 자신의 모녀 관계 및 그동안 자신이 보아온 다양한 모녀관계에 대해 그 특수성과 그로 인한 험난함을 풀어낸다. 애증과 조율과 독립이라는 세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지만 읽어보니 모녀와 (나의)엄마와 (엄마인)나 이렇게 세 파트로 구분되어지는 내용들이었다. 결론부터 정리해서 말하자면 힘든 모녀 관계의 원인을 따져보고 (나의)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서 (엄마가 된)나는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해 나오는 과정이랄까. 그러니까 이 책은 '모녀의 세계' 라기 보다는 '엄마의 세계'다. 나의 엄마에 대해 그리고 엄마가 된 나에 대한 이야기.

부부의 세계만큼이나 복잡한 관계가 또 있으니 바로 모녀의 세계다. 고부간의 갈등은 그간 수많은 아침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에서 진행된 스파르타식 교육 덕분에 어느 정도 공론화가 되었다. 하지만 모녀 관계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모녀의 세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많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엄마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비단 당신과 당신 엄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p. 23)

부부관계, 고부관계, 부모와 자녀사이, 시댁갈등 및 맞벌이가 늘면서 장서갈등까지 가족이라는 좁은 테두라 안에서 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관계에서의 갈등과 충돌이 드러나고 얘기되면서도 유독 모녀사이에서의 문제는 그동안 문제화되지 않았다. 친정엄마 라는 단어에 내포된 따듯하고 포용적인 이미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친구같은 딸이라는 표현에 감춰진 폭력에 대해서 이제 꺼내놓을때가 된 것일까. '매일 떠오르는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이 딸의 곁에 머무는 엄마... 아, 딸은 정말이지 태양을 피하고 싶다. (p. 25)' 에 웃프게 혹은 아프게 공감하는 딸들이여 이제라도 독립하라!

저자는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엄마'라고 부를 때 느끼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나의 엄마는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불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를 잘 모른다. (p. 57)' 라고 하면서도 '엄마의 투병을 함께하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예견된 죽음과 갑작스러운 죽음, 둘 중 무엇이 더 나을까, 무엇이 덜 슬플까, 무엇이 더 슬플까.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어떤 형태라 하더라도 둘 다 가늠할 수 없는 절대 적인 슬픔일 테니까. (p. 79)' 라면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이해하여 받아들이게 된 자신의 모녀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모녀관계에 대한 토대를 닦아주려 주려 한다.

장녀로서의 희생, 왜곡된 남성관, 아바타같은 딸... 등등 '평범하지 않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은 자신이 엄마가 되고나서야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어 이든 (보통의 엄마같은) 엄마다운 엄마가 되겠어 이든 내가 보살핌 받아야 했던 시기에 받지 못한 것은 내가 보살핌을 해주어야 하는 대상이 생겼을때 비로소 서로 상호보완적 이해가 가능해지게 된달까. 그렇게 내 아이를 키우는 '그 시간은 내가 나를 양육하는 시간 (p. 143)' 이 될 수 있고 그제서야 '나'는 엄마라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

지극히 사적인 관계일 수 있는 모녀관계 나아가 가족관계는 사실 굉장히 사회문화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는 관계이다. '내가 이 병에 대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화병이 파리나 뉴욕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한국 고유의 국지적인 토속병이라는 사실이었다. (p. 213)' 그러니까 한국사람이라고 다 화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나고자란 한국사람이 화병에 걸린다는 말이다. 왜? '한 인간이 성장하고 처한 거대한 배경이자 맥락인 사회적·문화적 특수성을 배제할 수 없(p. 213)'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병은 주로 여성이 잘 걸린다. '화병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민족의 딸이자 엄마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p. 213)' 모녀관계의 이해에 있어서도 화병의 맥락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병을 대물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엄마와 그냥 툭하면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엄마는 각각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정당한 분노는 불의를 마르게 하지만 습관적인 화풀잉는 사랑을 마르게 한다는 것, 잊지 말고 기억하자. (p. 220)

모녀갈등에 대한 책도 찾아보면 꽤 찾을 수 있긴 하다. 몇 권 읽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유독 책임감이 강한 유형의 딸들은 왠만한 갈등은 참고 살며 아바타처럼 이용당하다가 화병을 이어받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딸들이 자식을 낳았을 때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맞이한다. 내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은 즉각적으로 나를 강타하면서 다른 방향에서의 책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제야 내아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라는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엄마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부족한 존재이기도 하다. (p. 260)' 는 사실을 내 엄마에 대한 용서로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내 아이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아이의 엄마로 자리잡고 내 엄마로부터 독립하면서 '나'를 스스로 양육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스스로 잘 양육한 저자의 경험담이자 아직 스스로 양육하기 보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는 많은 딸들에 대한 응원기이다. 모녀의 관계는 '출산과 육아' 라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주는 유대관계로 인해 다른 가족관계보다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다. 그 얼키고설킨 실타래를 싹둑 잘라버리기 보다는 (자르라고 해도 사실 싹둑 잘라내지 못할 딸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기에) 한올한올 풀어가다보면 마침내 자신의 손에 동그랗고 예쁘게 말린 실뭉치가 쥐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짧은 책 한권으로 모녀의 세계를 단박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녀의 세계도 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녀관계에서 힘듦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저자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넘치는 '감정 독립 처방전' 인 이 책을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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