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 인문학 편 - 고전·철학·예술 차이나는 클라스 7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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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지식과 지혜를 찾아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명의 뿌리를 탐구하다

방송을 잘 안보다 보니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직접 본적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회자되는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궁금하곤 했다. 그러다 이 시리즈의 일곱번째라는 이 책을 만났다. 양정무 김헌 등의 익숙한 필진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그리스 신전, 신화 등 평소 관심있던 주제들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든 지식] 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세의 문화, 그리스 신전의 건축, 지리의 힘 을 다루고,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예술과 문학] 에서는 미술하는 인간, 신화의 권력, 단테의 신곡, 괴테의 작품세계를 다룬다. 그러니까 유럽 역사와 인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기초적 주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글을 보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이것은 모두 매미소리다'라고 한 부분이 있거든요. (p. 19)

플라톤은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한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p. 23)

큰 틀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생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 2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종교적 신, 인격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질서의 정점에 있는 최고의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p. 33)

서양고전과 철학, 역사 책을 읽으며 플라톤 저작들을 몇 권 읽었었다. 플라톤 저작을 읽을 땐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이더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설명을 읽고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엄청 대단해 보인다. 이데아론을 매미소리라고 치부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품어준 플라톤이 대인배이긴 했겠으나 다방면의 업적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야말로 천재라 할 만했다. 뒤의 내용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소환되고 하는 걸보니 점점 더 이 고대인물에게 관심이 간다.

19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 사상가와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자랑하기 위해 앞선 시대를 모조리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를 한마리도 둥클레 에포케(Dunkle Epoche), 즉 암흑의 시대, 암흑기라고 정의해버리죠. 일본 역사학자들이 이 말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한국 역시 중세를 암흑기로 알게 된 것입니다. (p. 53)

식민사관이라고 할거까지 없겠지만 세계사 지식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판단에 의해 세워진 세계사의 기준들이나 명칭들에 대해서.. '중세 천 년의 빛과 그림자' 라는 주제는 동일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중세를 대표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가 분명 암흑기적 요소가 많긴 하지만 그 시대에도 분명 다양한 발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슬람권에서의 발달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표현이, '흔히 동양에서는 '자 왈' 이라고 하면 응등 공자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서구 세계에서는 1255년 이후부터 책에 '철학자가 말하기를' 이라고 적혀 있으면 자연히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p. 83)' 였다. wow 여윽시 아리스토텔레스!

서양은 문명의 변혁기가 되면 항상 발전의 모델을 정합니다. 그게 서양 문명의 기본 속성이에요. 이상적인 모델을 정하고 모델의 좋은 점을 잘 찾아서 그것을 토대로 문명을 발전시켜가는 것이죠. 마침 그리스 영토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시점과 유럽의 문명 변혁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지 거예요. (p. 94)

이슬람 세력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땅이 유럽으로 회복되면서 귀족자제들의 '그랜드 투어'는 그리스지역까지 확대되었고 이에 '건축적 숭고미를 폐허로부터 찾은 것 (p. 101)' 이 그리스신전을 급부상하게 만든 요소였다. 그렇게 유럽의 모든 도시엔 그리스 신전화한 건물이 서게 되었는데 로마주의의 대표자 조반니 피라네시와 그리스주의의 대표자 빈켈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성화를 그리기 위한 벽이 중요했던 로마시대 건축물이 벽을 중요시 했다는 것과 기둥중심의 그리스건축물과의 대조도 재미있었다.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지도는 영국식 지도입니다. 특히 제임스 쿡 이후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와 아주 유사하죠. 즉 영국이 가장 강성했던 19세기에 만든 지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중략) 사실 굉장히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 특히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담겨 있는 지도이기 때문이죠. (p. 158, 159) 우리가 그동안 영국식 지도에 주로 의존해 세계를 바라봤던 게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사회전체가 서구 중심주의의 오염된 지리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왜곡된 지도를 사용해 온 것에 대해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p. 162) 실제로 6대주 라는 개념은 유럽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지식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어 별도의 대륙으로 보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p. 163)

그렇다. 지도에서 대륙을 나누어야 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그동안 왜 문제 삼지 않았을까... 우리가 서양인도 아닌데 말이다. 실제 크기는 영국과 한반도가 거의 비슷하다는데 우리는 왜 우리땅을 항상 작게만 여기는 것일까... 지리에 대한 지식은 힘이고 권력이 맞는 것 같다. 저자가 절절히 토로한 지리교육 부재의 아쉬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리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기뻤는데, 1154년의 알 이드리시의 세계 지도에 신라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1402년 태종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포르투갈의 항해자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이 1488년 이라는데 조선시대의 지도가 더 먼저 그곳을 알고있었다니~! 그런데 이 지도가 우리에게 없을 뿐더러 연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니... 이런... '어쩌면 한국 학계와 사회는 그동안 영국이 주입한 왜곡된 지리적 상상력의 식민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p. 167)' 라는 문장이 안타깝게 공감된다....

초기 인류에게 그림은 일종의 언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되면 공동체적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모사피엔스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고, 후대에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p. 191)

미술과 생존을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네안데르탈인의 벽화를 처음 봤는데 호모사피엔스의 그림과 비교하며 일종의 '언어'로서의 역할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예전에 다른 책에서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성대구조가 달라 언어의 구사능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집단사회에선 예나 지금이나 '소통'이 중요한 것을... 여하튼, 선사시대의 주먹도끼의 미학적 요소와 라스코 동굴벽화의 실제적 모습은 무척 인상깊었다.

한마디로 신화는 권력유지의 수단이자 권력 쟁취의 도구였죠. (p. 216)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지켜나가기 위해 똑같은 신화를 활용했다는 겁니다. 바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포함된 트로이아 전쟁 신화입니다. (p. 220)

신화 속 이야기가 이미 역사 속에서 벌어진 걸 알고 있기에 '아, 모든 게 신의 뜻대로 실현된 것이구나' 라고 착각하게 되죠. 이런 것이 문학의 마법적 속성인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까지도 이뤄질 거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죠. (p. 258)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과 아우구스투스황제의 권력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소크라테스의 범그리스주의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연결되고 그의 태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된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등장하니, 이 책의 주인공을 뽑으라면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신화와 역사를 교묘히 연결지은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감탄하면서도 좀 씁쓸하다.

단테가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기도 해요. 그래서 작품의 원제가 <시인>이었어요. 로댕은 단테를 흠모해서 <신곡>을 탐독했고 작품을 창작할 때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p. 263)

단테의 초상화를 남긴 보티첼리, 평생 단테를 연구하고 강의에 일명 '단테 학자'라 불린 보카치오도 있죠. 심지어 괴케는 '<신곡>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미했을 정도에요. (p. 264)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라 코메디아 디 단테 알리깅리', 즉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라는 의미예요. (중략) 단테는 '코메디아'라는 단어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희극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특별한 희미를 넣었어요. 단테가 쓴 편지글을 보면 '코메디아는 비참함에서 시작하지만, 행복으로 열매를 맺는 글' '나는 슬픈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진 그런 작품을 쓰겠다. 그래서 코메디아라고 부르겠다' 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중략) 코메디아라는 용어에 그런 뜻을 담은 겁니다. (p. 275)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단테의 <신곡>은 그의 망명 생활기간동안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단테가 계속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못봤을지도 ㅎㅎ 그러나저라나 <신곡>이라는 제목도 19세기 중반 일본작가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때 일본작가가 단테의 희극 내지는 단테의 코메디 라고 이름붙이지 않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하는 웃픈 생각을 하면서도 원제의 의미가 얼마나 제대로 알려져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씁쓸해진다. 여하튼 이 작품이 가장 신기하게 다가온 점은 내용보다도 '운율과 강제를 통해 노래처럼 읽히는 글로 썼다. (p. 276)' 는 것이었다. '방금 말한 운율 운용의 규칙이 <신곡>의 1만 4233행 전체에서 같은 형식으로 반복됩니다. 그뿐 아니라 1만 4233행 전체의 각 행을 11음절로 맞추기도 했어요. (p. 277)'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긴 작품을 노래로 외우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고;;; 피렌체어로 읽을 수 없는 나로서는 느낄 수 없겠지만 여하튼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호메로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만약 읽게 된다면 '연옥'에 좀더 관심이 갈것 같다. 그동안 없던 '연옥'개념을 만들어내면서 현실에서의 실용성(혹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을 얼마나 잘 종교화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괴테의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 320)

이전까지는 이성, 집안, 국가의 중대사가 중심이었다면, 괴테의 시대부터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작품의 세계로 끌어들인 거예요. (p. 322)

괴테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배경지식을 얻은 것도 참 좋았는데 '괴테는 이 책(파우스트)이 출판되길 원치 않는 상태로 죽었어요. 그런데 그의 뜻과 달리 계속 출판됐고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과 다양한 해석을 해볼수도 있었네요. (p. 336)' 라는 내용을 읽으며 괴테의 생각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우구스투스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했던 <아이네이스>도 작가 본인은 출판을 원치 않았다던가... 허난설헌도 자신의 수많은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했던가...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지 않고 싶어한 작가들의 생각도 갑자기 궁금해지고...

여하튼, 아주 모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문학 분야들에 대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던 책이었다. 이 시리즈의 '클라스' 가 좀 남다른것 같긴 하다. '차이나는 클라스' 인정~! ㅎㅎ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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