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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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어기지 않고 복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해결해 드립니다!

누군가 슬쩍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본다면,

'복수하고 싶으십니까?'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ㅋㅎㅎ

세상풍파 겪으며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단박에 'yes' 라고 하지 않을까? 각자 크건작건 복수의 사연 하나쯤 이갈며 품고 사는게 인생 아닐까!

여기 '복수 주식회사'가 있다. 그런데 그냥 복수가 아니고 '달콤한 복수' 란다. 그래, 복수야 하는 입장에선 달콤할 수 있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이 '달콤한 복수'는 법을 준수하고 폭력적이지 않다. 기발하면서 신랄하고 신랄하면서 유쾌하다. 완벽한 짜임새라던가 앞뒤 딱 맞아떨어지는 서사에 감탄하게 되는 서술방식은 아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예상보다 자주 웃으며 읽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이야기는 히틀러에서 출발한다.

옛날 옛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 이름은 아돌프였는데, 결국에는 다른 이유들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젊은 아돌프는 진정한 예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조금은 사진 같은, 하지만 흑백이 아닌 컬러 사진 같아야 했다. 그는 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한 프랑스인의 말을 인용하여 <아름다움은 진실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훨씬 후에, 그리 젊지 않은 나이가 된 아돌프는 <올바른 세계관>이라는 미명하에 책과 예술, 심지어는 사람들을 불태웠다. 결국 세상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커다란 전쟁이 일어났다. 아돌프는 패배했고 세상에서 사라져싿. 하지만 그의 세계관은 여전히 숨어저 움직이고 있다. (p. 7) -프롤로그-

그 세계관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소년이 있었다. 네오나치즘적 사고관이 뚜렷한 이 소년은 자라서 갤러리에 취직하게 되는데 이유는 단 하나 그 갤러리와 가문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서였다. 갤러리에 막 취업했을때 기어다니는 아기였던 옌뉘는 자라서 스무살 차이나는 이 남자 빅토르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옌뉘의 아버지가 사망하자마자 빅토르는 옌뉘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옌뉘는 스물셋의 나이에 맨몸으로 쫓겨난 이혼녀가 되었다.

그가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노트북 덕분이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그는 세계 곳곳의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실제 이름과는 다른 이름을 가졌고, 가짜 나이와 성을 사용했다. 케빈은 오히려 그게 좋았다. 그는 <Lonely planet>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외로움이 느껴지는 이 시적인 이름은 엄마가 언젠가는 이 나라를 한번 방문할 거라는 약속과 함께 주었던 프랑스 여행안내책자에서 따온 거였다. 그는 프랑스 대신에 볼모라에 갈 운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Lonely planet47 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세상에는 <외로운 행성>이 벌써 마흔여섯 명이나 있는 모양이었다. (p. 56)

주석에서 <Lonely planet 은 외로운 행성이라는 뜻이고,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총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p. 57)> 라는 문장을 보며 문득 학창 시절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의 채팅명이 Lonely planet 였는데, 그 친구는 그 닉네임을 어떻게 정하게 된 걸까... 혹시 여행 가이드 북의 이름이었던 것을 알았을까... 문득 그 친구와 처음으로 채팅하며 신기해하던 때가 생각난다. 여하튼, 케빈은 빅토르와 창녀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다. 에이즈로 죽어가던 엄마가 케빈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빅토르에게 케빈을 데려갔고 맡겼다. 빅토르는 자신을 후견인이라며 소년을 원룸에 지내게 했고 열여덟살이 되자마자 케냐로 데려갔다. 사자밥이 되라고.

아까시나무 아래에서 치유사에게 발견된 날부터, 케빈은 양부와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5년을 보냈다. 아들은 뛰어난 습득 능력으로 아버지와 그의 동생, 그러니까 케빈에게 사바나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 준 명성 높은 마사이 전사 우후루 음바티안으로부터 끊임없이 칭찬을 받았다. (p. 67)

케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들로 받아들여졌고 마사이 전사로 교육받았으나 마지막 관문인 할례의식전 스웨덴으로 도망쳤다. 그림 두 점을 배낭에 넣고서 본인이 살았던 원룸의 문을 열었는데 낯선 여자가 살고 있었다. ' "난 여기에 살아요" 옌뉘가 대답했다. "아마 나도 그럴걸요?" (p. 69)' 동갑인 두 남녀 사이에는 빅토르 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얘기하다보니 그림 이라는 공통화제가 있었다. 하지만 둘은 가진 것이 없었고 그건 모두 빅토르 때문이었다. 그때 어떤 간판을 보게 된다. 그 간판엔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라고 써있었다.

이르마는 그리고 또 그렸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흑인 남자와 흑인 여자를 다양한 색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p. 98) 이번에는 고국으로 향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아직 아돌프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표현주의자일 뿐 아니라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과 가깝게 지냈다. 또 스스로도 유대인이었다. 여기에 공산주의만 추가하면 결점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p. 99)

101p에 그림이 나온다. 소설책에 왠 그림? 이르마 스턴(1894~1966) 이라는 실존 작가의 그림이다. 이르마의 그림을 둘러싼 사건은 분명 허구이지만 이르마가 실존 화가였다는 점에서 묘한 긴장감을 준다. 진짜 그림을 보고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진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갤러리를 배경으로 하고 온갖 그림이야기가 나오는 이 소설에 대해 그래서 작가는 이 책을 '미술에 대한 내 사랑의 고백(p. 511)' 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이 이론은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당신의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줘야 한다는 마태의 증언에 근거한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기서 우리는 <오른뺨>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해석하자면, 우리는 다만 왼손잡이들만을 용서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서 남의 뺨을 때리고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란다. 오른손을 가지고서 누군가의 오른뺨을 갈기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어요? (p. 122)

소설의 줄거리에서 빠져도 상관없을 그런 대화속 그런 대사였지만 마태복음 관련 책에서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구절이 개인적으로 유독 인상깊게 남았다. 내가 이 대화에 끼어들어 있었다면 만면에 웃음짓고 힌트를 줬을 것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줘야 한다>라는 문장해석에 있어서 고려해봐야 할 것은 바로 '손등'이라고. 뭐, 소설의 진행과는 상관없다. 다시 소설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제 알아야 할 인물은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CEO 후고다.

최악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광고맨의 두뇌가 재깍재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콘셉트로서의 복수. 비즈니즈 모델로서의 복수. 후고는 마멀레이드와 감자 칩과 긁는 복권을 실제 이상의 가치로 포장할 줄 아는 마법사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팔아먹을 수 있다면, 복수를 가지고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재택근무를 하면서. (p. 125)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던 후고는 조금 슬럼프에 빠져들려 하던 때였다. 그때 기발한 사업이 떠오른 것이다. 후고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사업은 처음부터 비교적 그럭저럭 잘 굴러갔다. 하지만 일이 바빠질수록 점점 생각이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작업의 합법성과 형평성뿐 아니라 자신의 효율성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창의적인 파트너를 영입하여 인력을 보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쉽고, 저렴하고, 즉각적인 방법은 전화를 받고, 이메일에 응답하고, 작업의 우선순위에 대해 조언을 줄 수 있는 보조원을 두는 것이었다. (p. 156) 바로 이때,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p. 157)'

[ 난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겼어요] 그녀는 결론지었다. [ 내 어린 시절, 내 유산, 내 인생,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그렇다면 수임료는 어떻게 내겠다는 거지? 이 사람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게 있었다. 아니면 옆에 있는 청년에게 돈이 있나?

[ 그렇다면 당신은 어때요?] 그는 케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미술품 거래인은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도 가져갔나요?]

[ 난 아버지를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케빈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젠 엄마도 없고요, 에이즈로 돌아가겼거든요. 하지만 내 전 후견인-그게 누군지 짐작하시겠죠-이 날 케냐로 데려가 사자들 앞에 떨궈 놓고 갔어요] (p. 158)

난데없이 들이닥친 젊은 남녀중 여자는 빅토르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하고 남자는 빅토르에 의해 사지에 떨어졌으나 살아돌아왔다며 마사이전사로서의 재능밖에 가진것이 없다고 한다. 후고는 당연히 수임료 없이 '복수'를 진행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너무나 현실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케빈이 돈대신 그림을 주겠다며 그림 한점을 내민다. 케빈이 자신의 양아버지인 마사이전사이자 치유사인 음바티안이 그린 그림이라면서 내놓은 것은 이르마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 세사람은 지금 이 그림이 가짜라고 알고 있다. 자 이제 어떻게 될까? 복수하게 될까? 아닐까? 하게 된다면 어떤 복수일까?

지금까지 올레는 자신이 타바카나 은돈요 너머까지 여행하기에는 너무 늙었거나 너무 매인 게 많다고 느껴 왔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짧은 비>가 내릴 때나 가능했다. 이제 그는 그곳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발바닥에 용수철을 단 듯이 활기가 넘쳤다. (중략) 그는 소 네 마리를 끌어내어 나로크로 몰고 갔다. 그것을 여행비로 쓸 요량이었다. (p. 218)

[ 난 여기 지폐가 몇 장 있소. 우리 추장은 현찰로 소를 더 선호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여러 가지 일을 하기에는 그게 좀 불편할 것 같아. 지금 내가 가진 게 얼마나 되며, 이걸로 끝까지 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소? 만일 충분치 않다면, 마지막 코스는 좀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p. 226)

케빈의 도망 이후 상심에 빠져있던 마사이 치유사 소 올레 음바티안 은 케빈의 편지를 받고 스웨덴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소 네 마리를 끌고 길을 나서서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을 좀 태워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스웨덴 이라는 곳은 자동차로 갈수가 없는 곳이란다. 여권도 있어야 하고 비행기도 타야 한단다. 그러나 음바티안은 스웨덴에 도착했다! 빨간색과 검은색 체크무늬의 홑겹 의상과 맨발로 신은 샌들 차림으로 영하 15도인 스웨덴 스톡홀름의 공항에!

당신은 <양산을 쓴 여자>와 <시냇가의 소년>을 빅토르 알데르헤임에게 팔았지만, 그 일을 바로잡을 뜻은 없어요.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이 맞나요?

난 그렇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어 본 적이 없다오.

그리고 과거에서 온 그 사진들과 편지들이 여전히 당신 소유인 것 맞나요?

그건 도둑질이었어! 내게 곤봉과 개미집을 주시오. 둘 다 주면 더욱 좋고. 그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리다. (p. 348)

마사이족 전사이자 치유사인 소 올레 음바티안 의 대화는 매번 그야말로 기상천외했다. 옌뉘와 케빈이 원하는 복수에는 이 사고뭉치이자 유일한 증인인 음바티안이 반드시 필요했다. 점점 더 늪에 빠지는 듯한 이 복수전은 기가막히게 빵빵 터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알고 있었다. 그 신화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자기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이 케빈이라는 친구가 오이디푸스처럼 자기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p. 451)

한참 재밌게 읽고 있는데 뜻밖의 고대그리스신화 등장에 살짝 놀랐다. 서양문학에선 문득문득 고대스리스신화가 등장하곤 한다. 참으로 질긴 뿌리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어가는 이쯤에서야, 작가가 대놓고 알려준 이 신화를 읽고나서야, 이 소설의 줄거리속에 분명 이 오이디푸스 신화가 스며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wow 치밀하지 않은줄 알았는데 이 소설, 이 작가, 은근 치밀했던 건가~ ㅎㅎ

달콤한 주식회사는 새롭게 출발하여 다시 돈을 벌 수 있었다.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서울에 사는 부유한 과부가 그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먼저 그녀는 자신이 상류층 여자이며, 서울에서 가장 인기 많은 요양원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그녀의 1.5킬로그램짜리 포메라니안이 다른 원생들이 무서워하는 관계로 더 이상 시설에 머물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따라서 과부는 후고가 한국 돈으로 2천5백만원어치에 상당하는 공포를 원장에게 안겨주기를 바란다는 거였다. 물론 개는 그 일을 무료로 해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에는 조금도 재능이 없단다. (p. 462)

갑작스레 등장한 서울 이라는 지명에 설핏 놀랐다. 스웨덴 작가가 하고많은 도시들중에 왜 서울을 굳이 집어넣었을까 궁금하여 기사를 좀 찾아봤다. 작가는 2019년에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는 작가의 첫 작품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도 흥행몰이를 했고 그렇게 행사차 방문했던 당시 기억이 좋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재기발랄하게 진행되는 복수전은 독자의 예상을 계속 뒤엎으며 펼쳐지고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가 <달콤한 건강 주식회사>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이 유쾌상쾌통쾌하게 진행된다. 그 사이사이 발견하는 미술적 대화는 보너스이자 작가의 미술에 대한 애정이다. 코로나로 우울한 시대라는데 이렇게 유쾌함을 안겨주는 소설이라니! '다수 성공 사례 보유, 책에서 확인하세요!' 라는 홍보문구는 그저 홍보문구가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잼으로 하는 복수라는 직접적 의미에서도 모두의 꿈을 이뤄주지만 복수는 복수라는 간접적 의미에서도 아주 적절하게 '달콤한' 그런 '복수' 였다. 그 달콤함이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면 어서 이 소설의 책장을 펼쳐보기를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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