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 올드 사나에서 바그다드까지 18년 5개국 6570일의 사막 일기
손원호 지음 / 부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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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사나에서 바그다드까지, 18년 5개국 6570일의 사막 일기

당신이 몰랐던 아랍, 아랍인 이야기를 만나 보시죠.

'아랍'은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는 단어다. 어떻게 보면 '이슬람' 보다도 더 낯선 단어 같다. 서구식 문명과 미국식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중앙아시아라던가 아랍지역 혹은 이슬람지역으로 통칭되는 곳들은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는 비행길의 중간지일뿐 도착지인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책을 좀 읽다보니 이 지역들에 대해 무수한 질문과 관심이 생겨났다. 이 책은 아랍의 역사를 다룬 책은 아니고 아랍의 '현재'를 알려주는 책이지만, 일단 지금 모습 그대로의 현실감 현재감 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좀더 친근한 접근 아니겠는가?!

저자는 아마도 아랍어를 전공한 것 같다. 이집트에서의 어학연수와 한국석유공사에서의 이라크 생활 등 아랍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가 궁금해졌고 지금은 두바이에서 아랍의 역사에 대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현지어로 소통하며 장시간을 함께 지내온 만큼 저자가 들려주는 아랍인들의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저자가 들려주는 아랍이야기는 크게 5개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집트,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랍 세계를 오랜 기간 경험하고 공부하자 다른 사람에게도 이 사막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뉴스에서 접하는 단편적인 뉴스만으로 아랍 세계를 단정짓고 이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지리적으로 광대할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역사적 깊이로 인해 아랍 세계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아랍인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들이 만들어 온 매혹적인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들을 여행하며 아랍 세계에 빠져들 수 있기를 바란다. (p. 9 -프롤로그 中-)

저자는 아랍지역에서의 정서에 진심으로 매혹된 것 같다. '술도 없이 남자들이 밤새도록 수다를 떠는 풍경은 언제 봐도 낯설다. (p. 18)' 고 느꼈던 저자가 고대이집트에서의 술 문화가 이어진 이집트 맥주회사의 '사카라 맥주'를 즐겨 마시면서 표면적으로만 알던 아랍문화에 풍덩 빠져드는 과정은 사이사이 등장하는 역사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나또한 그 기분에 동화되게 만드는 진정성이 전달됐다.

아랍의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될수록 유럽세계와 기독교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시기에 72명의 유대인 번역자가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일은 유명하다. 이렇게 번역된 구약 성경을 70인 역이라고 부르는데 유럽어판 구약 성경들은 모두 이것을 원전으로 삼고 있다. (p. 47) 예수의 가족이 석 달간 머물렀다는 역사적인 장소였다. 그래서 성 세르기우스 바쿠스 교회는 한국인 순례객들 사이에서 '예수 피난 교회'라고도 불린다. (p. 56)

이집트에 남아있는 기독교인들과 그 문화의 소수성과 예외성이 우리네 인식 속에서 아랍인들의 소수성 및 예외성과 다를바 없는 것 같아서 상식아닌상식이 고착화되기 전에 좀더 제대로 잘 알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기독교지역이었다고는 하나 이슬람화 된 이집트 외에 처음부터 이슬람문화권이었던 아랍지역에서의 이야기들은 더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았다.

아랍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극도의 차별은 오히려 7세기 이슬람 교리를 통해 개선되었다. (p. 80) 지금도 예멘 여성들은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역사를 통해 만들어 온 어두운 문화적 프레임이다. (p. 82) 많은 아랍인이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켜 회의의 방향을 본인 위주로 끌어가려고 고집한다. 사실만 근거로 해서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p. 97) 아랍인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과 음성, 몸짓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아랍에서 수사학인 발라가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p. 101)

아랍, 이슬람, 코란 하면 남녀차별 문제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코란에서 오히려 남녀평등을 이야기 했음에도 예멘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극도의 차별적 억압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고 그런 모습과 상반되는 것 같은 열정적인 아랍인의 표현방법은 체험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또한 '아랍인과 가까워지는 법,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해결의 열쇠는 있다. 이성을 총동원하여 전략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다. 그들과 얼마나 감정적인 유대감을 조성하여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 이것이 키다. (p. 105)' 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마도 이 열쇠를 획득했기에 그토록 깊은 애정을 품고 아랍을 공부하며 살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나 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인 역사 이야기가 나올때면 더욱 눈길이 확 쏠리곤 했는데

무함마드가 신의 특별한 예언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알라의 예증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이야기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연옥-천국 여행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계 이슬람·아랍 언어학자 미겔 아신 팔라시오스는 무함마드의 승천이 단체의 <신곡> 구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p. 141) 요르단 왕가는 아랍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다르시는 국가로 남아 있다. (p. 162) 이란의 사파비 왕조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교를 시아 이슬람으로 공포한 페르시아 왕조면서 현재 이란이 시아 종주국이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p. 221)

무함마드의 '하룻밤의 기적?!' 이나 왕조들의 이야같은 신선한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지금의 아랍국가들의 형성과 갈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무척 유용했다. '현재 중동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사람들은 자꾸 종교와 엮으려고 하는데... 이건 유대-아랍 민족 간의 영토 분쟁이야. 종교 싸움이 아니라고. (p. 149)' 라는 현지인의 말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그들을 모르는가를 가장 직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아랍과 중동 지역들의 갈등을 종교문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은 민족간 영토분쟁이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서구열강들이 뿔려놓은 것이었다.

현재 중동 국가들 대부분의 국경이 직선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직선 안으로 들어온 아랍인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정해진,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국가'란 개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인위적인 국경선으로 인해 같은 민족, 같은 부족이 다른 국가로 갈라졌다. 특히 쿠르드민족의 경우, 본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민족과 문화가 전혀 다른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네 국가에 찢어져 살게 되면서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 되고 말았다. (p. 160) 쿠르드족은 아랍인이 아니라 언어, 문화 자체가 아예 다른 민족이었다. (p. 222)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종파와 민족들로 구성된 모자이크 국가 이라크는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p. 225)

'국가'개념이 없이 민족과 부족단위로 살던 지역에 서구 열강이 도입한 국가라는 틀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문화와 역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쿠르드족과 이라크 라는 나라가 왜 지금까지 그토록 서로 갈등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이 무척 안타깝게 다가왔다. 더구나 지금의 그 처참함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과거의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되면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금할길 없어진다.

알만수르가 2대 칼리파가 되면서 이슬람 세계에는 본격적인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서유럽 기독교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그자 갈 데가 없어진 세속 그리스 및 헬레니즘 학문이 이슬람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p. 271) 왕이 만들어준 무대에서 다재다능한 천재 학자들은 경제적 장애물 없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했다. (중략) 17세기 부터는 이런 사람을 폴리매스 라고 불렀는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학자라면 으레 폴리매스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중세 시대 바그다드에는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폴리매스 학자들이 넘쳐났다. (p. 274)

이라크에 비해서 아랍에미리트 는 무척 현명한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일곱 토후국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각 토후국에는 통치자가 존재하는데 한마디로 해당 토후국의 '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p. 287) 정작 이들에게는 선조들을 기억할 만한 유형 문화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실제로 에미리트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고난의 삶을 통한 인내와 끈기'라는 정서적 유산 뿐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이를 위해 두바이의 통치자 세이크 무함마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무형의 자산을 형상화해 현대 건축물에 반영하는 것이다. (p. 308)

지도를 보면 그닥 크지 않은 땅덩어리를 지녔고 역사적으로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던 아랍에미리트가 연방국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쪼개지고 갈라진 다른 지역들에서도 이런 연방체제를 잘 형성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따지고 보면 유럽의 많은 국가들도 연방국가이거나 연방국가가 아닐지라도 각 주나 도시들이 강한 권한을 지닌 체제들이다. 유럽의 역사를 읽을 때도 느꼈던 건데, 현대를 국가사회라기 보다는 부족사회로 이해할 때 더 많은 것들이 파악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사적인 시간을 즉흥적으로 또 기꺼이 할애하는 유연성이 있다. (p. 319) 한국인들은 대부분 크로노스의 시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p. 321) 반면 카이로스는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중요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질적' 시간이다. 우리가 걸프 아랍 지역에서 만나는 아랍인들은 이러한 주관적인 시간에 익숙하다. 이들의 시간 관념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곗바늘에 얽매이지 않는다. (p. 322)

아랍과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가장 크게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건 '시간' 개념 일 것 같다. 저자는 익숙해져서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시간개념을 맞닥뜨렸을때 무척 당황스러울 것 같다. ^^;;; 여하튼 저자가 들려주는 아랍인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친근하고 생각보다 거부감없이 그들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의 현재가 어떠한지 들여다보는 시간은 무척 의미있었다. 저자만큼 아랍에 황홀경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저자가 18년 동안 5개국의 아랍문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것이 부러워지는 것을 보면 아랍엔 분명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긴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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