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에서 콜로세움까지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라는 제목의 이 책은 '건축을 '전쟁의 증언자'로 보자는 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 (p. 5)' 라고 저자가 설명하고 있지만, 건축이 기억하는 전쟁사라기 보다는 전쟁에 관련된 건축물의 뒷이야기 라고 하는 것이 내용을 좀더 제대로 설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국방일보>에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연재물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p. 6)' 라는 서문의 문장에서 알수 있듯이 내용은 각각 독립적이자 단편적이고, 콜로세움부터 에펠탑까지가 아니라 '에펠탑에서 콜로세움까지' 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연대기적 전쟁사 책은 아니다.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나라별로 한 챕터씩 구분되어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라는 5개국을 선정한 이유는 세계 4대 박물관이 있는 국가들과 유럽전쟁사의 시작인 로마제국(이탈리아)와 끝인 독일을 포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러시아의 예르미타시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는 언급이 박물관 얘기할때마다 나온다. 그리고 저자가 프랑스에서 학업의 기반을 닦아서인지 프랑스가 가장 먼저 언급되면서 비중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
전쟁의 상흔이 건축물에 남은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가 파리를 파괴하라고 했을때 거부하고 파리를 지킴으로써 에펠탑을 보존한 독일장군 콜티츠의 일화와 나폴레옹 1세가 세운 에투알개선문, 나폴레옹1세의 전리품들을 전시한 루브르박물관, 퇴역군인들을 위해 지어진 앵발리드가 나폴레옹묘를 안장한 성당으로 유명해진것, 나폴레옹1세 치욕의 현장 랑부예성 등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1세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독일군에게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과 패배를 상징하는 마지노선.
프랑스의 건축물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 독일이 뒤를 잇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으로 보인다. 그리고 독일의 건축물 이야기는 세계1차, 2차 대전에 집중된다. 베를린전승기념탑을 무색하게 하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파괴된 부분을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이 책에서 몇 안되는) 건축물이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콜비츠의 '피에타'를 전시함으로써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게 하는 노이에 바헤 추모기념관, 평화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전쟁의 파괴를 새긴 하이델베르크성 과 드레스덴 성모교회 등 독일편에 등장한 건축물들은 이 책의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메세지를 전해 주고 있지 않나 싶다.
런던탑, 웨스트민스터사원, 윈저성, 칼라일성, 도버성, 에든버러성, 대영박물관 등 영국의 건축물들은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오래전 역사적 전쟁에피소드를 풀어내는 매개체로서 소개되는 것 같아서 관광지를 순회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했다.
사실 유럽의 전쟁사에서 가장 유구한 곳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에 인데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개선문, 티투스개선문, 산마르코대성당, 몬테카시노수도원 으로는 그 유구함을 느낄 수 없어서 좀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크렘린궁전, 예르미타시박물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로 간략하게 훑어본 러시아 전쟁사 보다는 그나마 나았다고 해야 하려나.
결과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물들에는 전쟁의 기억이 직접적으로 남아있는 곳보다는 상징적으로 남아있다고 할만한 곳들이 더 많아 보였다. 건축이 전쟁을 기억했다기 보다는 건축을 통해 전쟁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들이었달까. 또한 오래전 역사적 전쟁들 보다는 근현대의 전쟁이야기 들이 많고 맥락적 연결성이 없어서 '전쟁사'로 읽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관광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유명한 외국유적지들에 대한 설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가볍고 간략하게 또한 쉽고 다양하게 읽기 편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