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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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숫자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라는 제목을 보면서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어떻게' 였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알려주는 포인트는 '어떻게' 라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변화시켰다' 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Numbers and the Making of us' 라는 원제를 오랫동안 쳐다보게 됐다. '숫자 그리고 우리의 형성'이라는 원제는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숫자'와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먼저 말하자면, '숫자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인류 문화의 역사 전체에서 대부분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숫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량을 언어와 상징적 기호로 표현하는 숫자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조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에서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그러한 변화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p. 17)

저자는 언어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인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이다. 따라서 숫자에 대해서도 언어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 저자에 의하면 '숫자라는 인지적 도구는 언어적 도구에 포함된 하위 도구 이다.' (p. 29 참고) 그리고 인류의 수에 대한 타고난 감각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천적인 한계는 숫자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뛰어넘을 수 있다. (p. 32)' 저자는 숫자가 인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뜻 당연하게 보이는 이 두가지를 학문적으로 심층 분석하고 증명한다.

전 세계의 주요한 숫자 표기법은 공통점을 보인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10배수, 또는 5배수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해부학적 동기는 명확하다. 우리 신체에서 규칙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수량은 숫자를 만드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은 3장에서 살표보는 바와 같이 구어 숫자는 물론, 표기 숫자의 기초가 된다. 우리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이처럼 최소한 수천 년 동안 숫자를 구조화하는데 광범위한 역할을 하였다. (p. 66) 특히 손가락과 손이 유용했다. (중략) 문자 탄생의 서광이 비치던 시기에 등장한 숫자는 표기문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p. 67)

문자가 먼저였을지 수량표기 기호가 먼저 였을지 명확하게 확인할 순 없지만 일정한 규칙으로 막대기를 그어 표시하고 손가락을 표기하는 것은 구석기유적에서부터 이미 발견된다. 인류가 수에 대한 개념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표시하는 방법을 나중에 문자로 만들어낸 것일까? 라는 생각에 대해 저자는 인류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세계 언어의 숫자단어에서 보이는 손가락 중심의 특징만으로도 숫자가 원래 존재하던 개념이고 여기에 이름이 붙여진 것일 뿐이라는 믿음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p. 86)' 라고 말하며 수의 개념은 타고나는 것보다는 인류가 발전시킨 발명에 가깝다는 주장을 증명해보인다. 이렇게 동물과 구분되는 인류만의 확장된 수의 개념을 발전시킨 주요 원인으로 숫자라는 표시방법의 발명을 꼽는다.

세계 언어의 문법은 1, 2, 3을 정확히 구별하며, 그밖에 수량은 대략 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경향이 등장한 배경으로는 신경생물학적 근거를 생각해볼 수 있다. (p. 106) 언어의 문법은 수를 강조하며, 더 큰 막연한 수량에서 작고 정확한 수량을 구별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법벅 수는 우리 뇌 구조의 기능적 측면을 반영한다. 즉, 우리의 뇌가 본래 타고난 기능은 더 작은 수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p. 123) 강력한 수체계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이점에 관하여 나는 우선 그러한 체계의 채택을 문화 또는 언어의 '진화'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p. 244)

저자는 언어의 분석과 다양한 실험분석을 통해 숫자라는 개념과 인류의 수개념에 대한 차분한 증명을 전개한다. 때로는 설명으로 때로는 반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읽으며 이 책은 굉장히 과학적 방식으로 서술되었구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일종의 대중적 논문같달까... 여하튼, '수 개념은 문화와 언어의 전승을 통해 습득 또는 학습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만일 수 개념이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기초적인 수리 개념은 인간의 두뇌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정신활동의 소산이 된다. (p. 139)' 라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내용으로 보이는데 이 주장을 위해 저자는 아마존 부족의 예시를 두루 활용한다. 아마존 부족의 예시를 설명하며 저자가 보인 태도가 바람직해 인상적이었다. '그들 문화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속 어딘가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분명 이들에게도 숫자라는 놀라운 인지적 도구의 차용으로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은 숫자의 도움 없이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주변의 생태계에 탁월하게 적응해왔다. (p. 155)' 즉, 저자는 과거의 기록이 완전하지 않기에(사라진 기록들이 오히려 더 많을 수 있다) 남아있는 기록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조심하며 따라서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아마존 부족이 있다고 해서 그 부족이 미개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원시부족 연구에 있어 그들을 미개하다고 보는 관점과 그들만의 문화적 필연성을 존중하는 관점은 분명 다른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논의가 적어도 인류의 역사와 우리의 현재 삶 속에서 숫자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고자 했던 더 큰 목표는 어느정도 부합하였을 것이다. (중략) 숫자는 인간의 수리적 사고의 정밀성을 한 차원 높여준다. 이러한 발전은 자연스러운 뇌의 발달로 인한 산물이 아니다. 셈법을 비롯한 기타 관련 기술을 이어온 특정한 문화에서 발전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전통과 기술은 궁극적으로 숫자단어에 의존한다. (p. 181) 숫자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숫자는 수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숫자는 단지 우리의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경험을 형성해왔다. (p. 231)

저자는 주로 과거의 유적과 유물과 원시부족과 동물을 통해 숫자의 형성이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진지 기원적 설명을 하지만 우리가 알수 없는 멀고먼 과거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수체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숫자의 영향은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최근 학자들은 위계적 정부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주요 위계적 종교의 발전은 그러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든 결과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것은 복잡한 수 체계의 혁신으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지구의 기원과 지구에 사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수 체계의 발전이 신의 개념을 창조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러한 발전이 신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은 더 큰 규모의 인구집단에서 새로운 유신론적인 종교 전통이 인과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더 큰 인구집단에서 유신론이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p. 268)

수개념이 인류의 지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서부터 타고난 어림수 개념과 숫자라는 도구를 사용했을 때의 차이점을 비롯해 언어적 인류학적 수개념에 대한 비교등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았지만 이러한 수체계의 발전이 종교까지 연결될줄은 몰랐다. 저자는 '신과 사제 계급으로 조직된 종교적 믿음은 큰 집단을 이뤄 모인 사람들이 도덕과 이타심을 통해 서로 협력하는 데 필요한 매개체였다. 농경의 중심지와 이와 관련한 도시화의 도래 이후 문화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부족과 같은 더 작은 크기의 집단에서보다 비친족을 포함한 많은 구성원은 공유하는 신뢰에 의존해야 했다. 이와 달리, 소규모 부족 집단에 속하며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친족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서는 조직적인 노력 없이도 신뢰와 협력을 위한 자연스러운 동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p. 268)' 라며 '상징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책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는데, 소규모 집단에서의 직관으로 해결되던 것들이 대규모 집단에서는 실체 없는 다양한 '상징'적 매개체들이 필요하다는 개연성을 새삼 돌이켜보게 했다. 숫자라는 기호는 사실 실체가 없다. 볼수없고 만질수 없는 그런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수량의 상징적 통합인 숫자가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수량은 자연에 존재하며, 매미의 재생산 주기, 거미의 다리수, 음력주기처럼 규칙적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적인 수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숫자는 인간이 창조하기 전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주장은 영아들과 숫자가 없는 문화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실험 결과로 뒷받침된다. 우리가 살펴보았뜻이, 이 모든 증거는 명확한 결론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수량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수량을 어림짐작할 수 있고, 작은 수량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으로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수량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수량을 수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모든 수량을 정밀한 방법으로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숫자, 즉 특정 수량을 표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호의 발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 276)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예시로 검증하며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읽다보면 흡사 어떤 보고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 장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은 읽으면서 설득되는 가장 명확한 서술방식이지만 묘하게 불분명하게 다가오는 본문들은 아마도 숫자가 이미너무 익숙한 것이라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과정은 일면 쓸데없어보이는 작업일수도 있다. 하지만 몸집을 불려가던 숫자의 단위가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 소수점아래로 쪼개져가는 시대로 변화된 것을 보면서 우리의 수체계는 아직도 변화무쌍한 무언가를 품고있기에 그 기원적 발상에서부터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작업은 분명 의미있는 작업일 것도 같았다. 숫자는 인류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숫자가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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