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시간 - 바다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들, 바다가 결정지을 우리의 미래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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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들,

바다가 결정지을 우리의 미래

Histoires de la Mer 라는 프랑스어 원제를 번역시켜보니 '바다의 이야기' 라고 나온다. 이 책은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긴 하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라기 보다는 바다를 중심에 놓고 풀어내는 역사서이자 바다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현실분석서이자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바다의 역할을 알려주는 제안서 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들이 바다가 묵묵이 보내온 '바다의 시간'들이기도 하다.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저자는 130억년 전부터의 바다의 기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바다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 바다에서 생명의 출발이 있었고 바다에서 역사적 전환점들이 있어왔다. 땅위에 사는 우리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문명이 땅에서 이루어졌다고 여기기 쉽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바다에서 변혁되었다고 풀어낸다. 우리는 땅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바다위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산 사람, 죽은 사람, 그리고 바다로 다니는 사람" - 아리스토텔레스- (p. 43)

기원전 9500년에 이르러 지구의 그 어떤 곳보다도 먼저 중동 지역에서 거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그곳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동생활을 접은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사람들이보통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어떤 한 바다 가까이에 정착했다. 이들은 우선 요르단 계곡에 자리를 잡고(오늘날의 사해 가장자리에) 예리코를 건설했다. 이것이 인류 역사 최최의 도시이며, 이 최초의 도시는 항구도시였다. (중략) 이렇게 볼 때 정착생활과 농경이 발전한 것은 모두 바다를 통해서였다. (p. 49)

'바다의 민족들'에게는 메소포타미아인이나 이집트인과 달리 바다를 통제하는 제해권이야말로 생존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땅에서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민족들은 삶에 잉여적인 물품들만 수입했다. (p. 55)

아리스토텔레스가 저런 말을 했던가? 하긴 고대의 역사를 보면 누군지 모를 침략자들은 다 바다에서 왔다. 미케네 문명에도 크레타 문명에도 이집트 문명에도 바다사람들은 위협적이었고 문명을 종식시킬만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었다. 땅에는 흔적이 남을지라도 바다에는 흔적이 남을수 없어서인지 바다사람들의 역사는 사실상 추적해 올라가기가 불가능에 가깝기에 더 궁금하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익숙한 문명지라고 생각했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바다중심적으로 보는 것은 의외로 그럴법하고 신선한 관점의 전환이었다. 이런저런 역사서를 읽으며 유목민족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나곤 했었는데 바다민족들까지 합해지고 나니 문명의 발생과 발달은 늘 결핍과 이동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새삼 진하게 다가왔다. 역사가 정착지 중심으로 발생하고 발달하기 이전에 그 기원을 따져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어 보였다. 저자는 말한다. '로마제국은 바다에서 흥했고, 바다에서 망했다. (p. 81)' 라고. 로마제국 관련 역사서를 읽다보면 지도를 펼쳐놓고 이도시 저도시 짚어가며 땅과 도시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바다에서 흥하고 망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ㅎㅎ

18세기 말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한때 개척자들의 것이 되었던 바다는 이제 다시 닫혀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에너지원(석탄과 석유)과 새로운 추진 방식(외차와 스크루)을 사용하는 선박들이 기존의 운송 방식을 전복하고, 산업화, 경쟁, 분업을 촉진했으며, 사람과 사상, 공산품과 원재료와 농산물의 대규모 이동을 이끌었다. 이제 바다는 이미 여러 세기 이전부터 그러했듯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점점 더 확산되며, 점점 더 위협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존재를 감내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가 도약했다. (p. 125)

역사가 현재로 가까이 올수록 전쟁은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그 전쟁들을 저자는 익숙한듯 새롭게 그리고 간략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모든 것은 바다에서 결정되었다. (p. 147)' 라고 정리한다. 따지고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십자군전쟁도 미국독립전쟁도 세계대전도 모두 그 치열한 육지전 뒤에 깔린 바다의 역할들이 있었다.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바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저자의 논리는 쉽게 읽히면서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인 현재에도 여전히 바다는 중요한 운송로이자 패권쟁탈지 였다.

결국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와 군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바다를 지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세계 지정학에 중장기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p. 178)

또한 어제와 오늘의 독재국가들이 해양 강대국이 되기를 주저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사 그들에게 기회가 없었다 해도 그러하다. 독재국가들은 바다에서 잃게 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p. 208)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주름잡고 대영제국이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활개치고 미국이 태평양을 손아귀에 넣었던 시절엔 세계 패권국이 곧 바다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현대시대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이권 다툼 속에 각자 다른 권력을 가진 나라들이 속속 올라서고 있다. 그중엔 한국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해양강대국과 민주국가의 연결성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삶의 터전인 프랑스가 바다와의 관계가 적었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역사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중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넨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한국, 일본이 이러한 변화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적어도 이들 나라의 해안 지역은 그러할 것이다. (중략) 의심할 바 없이 모든 바다에서, 모든 공간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능가하고 경제적인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나라는 한동안 없을 것이다. (p. 226)

저자는 유럽대륙의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대륙지향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당분간 바다의 패권국은 과거처럼 하나의 국가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당분간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그 당분간의 미래가 얼마나 가까울지멀지 결정할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임을 저자는 빠트리지 않는다. 그밖에도 다양한 바다 관련 변화요인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바다의 지정학적 미래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는 조언도 덧붙인다. 무엇보다도 바다의 미래를 위해 인류가 알아야 하고 노력해야 할 것들을 설명하는 부분(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만한 책의 뒷 내용들)을 읽다보면 저자의 걱정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기나긴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내면서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한 문장이다.

바다를 보호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p. 283)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바다를 다르게 보고, 바다를 더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들기를 바란다. 이제는 소비자의 태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엥게 이끌리는 협력자의 태도로 바다를 대해야 한다. 여전히 지각없는 약탈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해 배를 몰고 가는 뱃사공의 자세로 바다를 존중하고, 바다에 경탄해야겠다. (p. 301)' 라고 책을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바다가 하는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간과해오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환경보호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배를 몰고 가는 뱃사공'의 시선으로 바다에 대해 좀더 숙고해 볼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제 바다를 지배하는 약탈자가 아닌 다른 역할을 세계가 나누어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 바다는 어떤 곳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면 저자의 통찰을 참고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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