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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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여성 FBI 요원에서 일급 수배자가 된 제인 호크,

인류의 뇌를 통제하려는 소시오패스 집단에 맞서 사투를 벌이다.

"잡히지 마라, 주사를 맞으면 죽음보다 더한 짓을 당할지도..."

딘 쿤츠 라는 거장을 뒤늦게나마 알게해주었던 책 <사일런트 코너>를 읽은지 벌써 2년이 지났다니 참... 새삼스럽다. ㅎㅎ '제인 호크'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었던 <사일런트 코너> 는 스티븐 호킹과 미국 스릴러 소설 양대산맥을 이룬다는 딘 쿤츠에 눈뜨게 해주었던 작품이었다. 최근 세번째 책 <구부러진 계단> 이 나온 것을 알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두번째 책 <위스퍼링 룸>을 얼마전 읽었더랬다. 시리즈 라는 것은 연재물과는 달라서 연속적인 것은 아니라 앞 권의 내용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시리즈 한권한권 차근차근 다 읽어가고 싶었다. <구부러진 계단>에선 제인 호크가 또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까~

"뉴스에는 진실이 없군요. 그렇죠? 당신에 대해서도,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는 거짓말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어요"

"항상 진실은 있어요, 세라. 기만의 바다 아래 기다리고 있을 뿐." (p. 47)

제인이 세라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시작하는 시리즈 세번째 책 <구부러진 계단> 은 앞선 두 권 과는 좀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첫번째 책에서 느꼈던 치밀한 긴박감이 두번째 책에서 유사하게 진행되면서 좀 늘어졌던 것이 세번째 책에서 다시 새롭게 조여드는 기분이랄까... 좀더 다크하고 좀더 암울하게...

제인은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두 가지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한 싸움이었다. 하나는 남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닉은 증거가 시사하듯 자살한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는 다섯 살 외동아들 트래비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닉의 죽음을 수사하다가 정계와 제계 최고위층 내부의 음모를 발견하자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당의 뿌리는 자기들이 얼마나 극한의 위험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국민 속에서 매일같이 퍼져가고 있다. (p. 51)

'그녀는 자신이 수사 중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p. 51)' 죽음을 무릅쓰고 홀로 악당들을 하나하나 완벽하게 처치해나가는 제인의 모습은 분명 영웅스러운 면모가 가득했다. 하지만 시리즈 첫번째 책에서부터 내내 작가는 제인의 독백을 통해 스스로가 영웅이 아니라는것을 자각하고 있음을 평범한 사람들처럼 불안하고 무섭지만 겨우겨우 버티고 있음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아무리 엄청난 거대조직이 아무리 엄청난 권력과 자본을 갖고 있는 자들이 아무리 세상을 쥐고 흔들려고 해도 그들이 무시하는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이겨낼 수 있음을 작가는 증명해보이고 싶은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가 하는 일은 제거할 표적을 선별하는 일뿐이에요. 잘못된 생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지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신중하게 선별해서 제거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유토피아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 이건 유토피아 문제가 아니에요. 오로지 권력 문제요, 절대 권력."

"그냥 제거하다니, 제거. 살인을 대체하는 그럴듯한 말은 항상 있군요"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죠.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의 죽음은 통계다' 문제 있나요?" (p. 70)

시리즈 두번째 책에서 그러했듯이 세번째 책에서 또한 시리즈의 앞선 책들을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내용전개 사이사이 꼼꼼하게 앞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준다. 생각해보니 커다란 하나의 서사지만 몇 권으로 분권되 나온 책은 읽어봤어도 이렇게 시리즈로 된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권으로서의 완성도와 시리즈로서의 완성도를 모두 갖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것도 같다. '나노테크놀로지' 기술로 인간의 뇌를 지배하려는 소시오패스 집단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명 제인 호크 뿐이었지만 시리즈를 더해갈수록 진실을 아는 이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 나노 지니를 병 속에 도로 집어넣지 못하면"

"원자폭탄의 발명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도 없어요. 하지만 인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오늘은 그렇죠"

"다음 순간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죠. 아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 애가 의미 있는 과거를 가질 수 있도록 오늘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뿐이에요" (p. 80)

거대한 음모에 맞서도 있지만 적들을 물리칠 거대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가는 중일뿐. 그런 오늘들이 쌓여 분명 그들이 원하는 내일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지나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일단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수밖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영리해서 돈이나 사회적 지위, 타인의 존경 같은 잘못된 꿈과 욕구를 좇다가 도리어 화를 입는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은 카터 저건처럼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인식하고 교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갈 것이다. 인구의 상당수가 지시받은 대로만 수행할 자세가 되어 있고 타인보다 더 많이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다면, 완벽하게 교정된 문명은 보다 쉽게 안정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반역의 씨앗이 된다. (p. 90)

무언가를 하고 싶고 무언가를 해내고 싶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인간의 삶은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그저 주어진 반복적 루틴을 지켜내며 그저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시리즈는 스릴러 소설이고 이솝우화같은 교훈을 주는 장르는 아니지만 노익장의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인간의 삶에 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었다.

지난 몇 주간, 그녀는 자칭 아르카디언들의 집 몇 군데에 침입해서 매번 현금을 찾아냈다. 집마다 평균 20만 달러였다. 대체로 여러 이름으로 된 위조 여권과 동일 이름으로 발행한 신용카드도 있었다. 자기들이 문화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살해하고 수십만 명을 나노머신 뇌 임플란트로 노예화할 수 있는 용감한 신세계의 정당한 건설자이자 지배자라고 믿는 극도로 오만한 부류이니만큼, 만일의 사태가 닥치면 언제든지 해외로 급히 빠져나가 거액의 재산을 도피시킨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현금과 신분증을 몰래 숨겨놓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갑옷처럼 두른 이기주의 아래, 자존심과 자만심과 경멸 아래, 증오의 신념이라는 썩은 과일 중심에 의혹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다. (p. 177)

만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실패가능성을 대비한다는 것이고 그들이 소수집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모른 다는 것은 그들끼리조차도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직과 그럼 신뢰감으로 어떻게 세상을 그들의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하지만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 때론 세상이 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기에 엄청나보이고 절대 무너뜨릴 수 없을것 같은 자칭 아르카디언들의 무모함을 제인호크와 함께 경멸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전 통제 매커니즘을 주입해 개조한 사람들에게 접속해서 조종할 때는 세뇌에 대한 리처드 콘돈의 유명한 1959년 스릴러 소설 제목에서 따온 '나랑 만주놀이 하지' 라는 명령어를 사용했다. (p. 184) 그런데 제인 호크가 그 접속 명령어를 알아냈다. 그 때문에 개조된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신규로 개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신 통제 매커니즘과 함께 다른 접속 명령어를 설치하고 있었다. 식탁 반대편에서 저건은 쌍둥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라 삼촌은 아이라 삼촌이 아니다." (중략) 1955년 잭 피니 소설 <신체강탈자의 침입> 에 나온 표현이었다. (p. 185)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문학작품들은 왠지 더 호기심이 생겨나게 되곤 한다. 뇌개조를 당한 사람들을 조종하는 명령어의 문장들도 그렇지만, 그들이 제거할 명단을 햄릿리스트 라고 부른다던가 자신들을 아르카디언이라고 부른다던가 하는 표현들도 문학속의 또다른 문학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인용하는 문학작품과 음악들이 조금은 옛스럽다는 점에서 작가의 오래된 연배가 조금 느껴지기도 한다. ㅎ

테러리스트나 미치광이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회적 혼란을 많이 초래해서 대중들이 질서를 외치도록 하자는 것이 테크노 아르카디언들의 전략이었다. 이러다보면 사회 안보를 위한 각종 조치와 개인의 권리 제한이 점차 엄격해져서, 언젠가 뇌 임플란트로 개조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엘리들의 엄정하고 계몽된 지배체제를 긍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p. 234)

각 시리즈마다 항상 두가지 사건이 병행되어 진행된다. 하나는 평범한 사람이 뇌개조를 당해서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는 테러와 하나는 제인 호크와 대표악당과의 대결. 매 시리즈마다 조직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을 제인호크가 처단하지만 그러고 나면 더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또다른 악당이 등장하곤 한다. 이번엔 소설가 남매가 강제로 뇌 개조를 당하여 테러를 준비하고 FBI 고위급 관료인 부스 핸드릭슨이 제인 호크의 상대역이다.

"난 슈넥과 D.J.마이클이 뱀의 두 대가리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죽었는데도 뱀은 살아 있어. 난 너희 아르카디언 배후의 진정한 권력이 누구인지 알아야겠어. 궁극의 옥좌에 앉아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건 그것 말고도 많아" (p. 271)

<사일런트 코너> 에서 나노테크놀로지의 개발자인 슈넥 박사를 제거했다. <위스퍼링 룸>에서 나노테크놀로지의 최대 투자자인 D.J.마이클을 제거했다. 하지만 아르카디언 조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조직이며 얼마나 엄청난 사람들이 뒤에 있는 것일까? <구부러진 계단> 에서는 앞선 두 권과는 달리 독특한 가족사가 등장함으로써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나노테크놀로지의 기원은 과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기묘한 소시오패스 가족에게서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다가오는 어둠은 구부러진 계단이 인도하는 저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이었다. 수평이자 수직으로 이어지는 계단, 앵무조개 같은 나선형 계단, 미로, 한 줄기 빛도 없어서 장님처럼 더듬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복종의 방. (p. 330)

소설가 남매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테러를 일으키고 누구도 그 뒤에 조종세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한다. 아들 트래비스에게 위협이 닥친줄 모르고 제인은 '구부러진 계단'을 찾아간다.

<사일런트 코너> 와 <위스퍼링 룸> 이 비슷한 구조라서 세번째 책도 그랬다면 시리즈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번째 책인 <구부러진 계단> 에서는 새로운 시리즈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확 바뀐 서사에 앞선 두 권보다 훨씬 더 뒷 얘기를 궁금하게 하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역시 대단한 작가다. 그나저나...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는데... 네번째 책은 언제 나오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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