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사라진 해적왕은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을까?

역사상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 에브리 선장을 찾아서

대영제국이 탄생하기 전에 영국의 국가적 입장을 바꾼 한명의 해적이 있었다. 그 한명의 해적이 대영제국 시대의 방아쇠를 당겼고 그 해적은 '인류 모두의 적'으로 공표되었다. 그는 바로 해적왕 헨리 에브리 선장이다. 이 책은 에브리 선장의 추적기 이다.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 된 한 남자의 해적질이 어떻게 대영제국의 역사적 방향을 바꾸었을까? 그 짧다면 짧을 에피소드가 저자에 의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p. 34)

때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였다. 농민계층은 무너진지 오래였고 먹고살기 위해서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무역선이 활발해질수록 인력이 부족했고 강제징집이라는 수단이 동원될 정도로 뱃사람의 수요는 급증했으며 배를 타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해적들도 늘어갔다. 이 해적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해적의 황금시대가 출판문화 탄생기와 겹치면서 더욱 그런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그렇게 에브리 선장은 신화적 인물 비스무레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17세기 영국은 바버리 해적들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규탄했지만, 위선적인 비난이었다. 세계에서 극악하기로 유명한 해적들 중에는 잉글랜드인이 적지 않았고, 영국 왕의 비호를 받으며 해적질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영국 법은 해적선과 사략선 구분의 의도적인 허점을 통해 이런 모순을 지워버리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 행위에서 사략선은 해적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사략선도 마을을 약탈했고 보물을 탈취했으며, 선박을 나포해 선원들을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선원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략선은 정부의 허가를 얻어 그런 짓을 한다는 게 달랐다. (p. 66)

영국 왕실의 비호를 받던 해적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사략선 이라는 단어는 처음 본 듯 하다. 사략선은 저자의 말마따나 그 행위에 있어서 해적선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다만 '주로 다른 국적의 선박을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타국 선박 나포 면허장' 이라는 형태'의 허가를 받은 것이 사략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해적선은 무작위적으로 약탈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어야 겠지만 해적들 또한 자국의 배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면 이 허가는 그저 형식적인 것일 뿐이었다.

사략행위는 1500년대에 극성이었다. (중략) 타국 선박 나포 면허장으로 해적질이라는 오명을 지워낸 때문에 사략은 명망 있는 계급에게도 유망한 직업이 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프랜시스 드레이크 였다. (중략) 여러 모험을 통해 많은 재물과 명성을 얻었다. 특히 엘리자베스1세로부터는 기사 작위를 받았고, 데번셔의 버클랜드수도원을 구입해 살기도 했다. (p. 68) 이 모든 역사에 비춰 보면, 헨리 에브리는 영국 해군의 일원으로 플리머스를 떠날 때 해적을 뚜렷이 다른 두 유형으로 구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인간의 품위를 무시한 까닭에 인류 모두의 적으로 여겨지던 잔인한 바버리 해적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드레이크를 비롯해 성공한 사략선 선장들처럼 근사한 인물들이다. (p. 69)

당시 영국인들의 인식도 헨리 에브리의 생각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해적 신화는 사람들에게 홈팀을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헨리 에브리의 가장 큰 업적?!은 인도의 배를 약탈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문화권과 인도를 비교했을때 인도가 더 부유했다고 한다.)

계급 이동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던 그 시대에는, 보물을 찾아 바다로 나가는 것이 신분 상승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길이었다. 고향 땅에서의 제한된 선택지를 고려하면, 질병과 조난과 굶주림이라는 위험은 그런 잠재적 보상을 얻기 위해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원정해운이 아코루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금전적 보상이라는 장점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p. 110) 그때 찰스2세호의 일등항해사는 마음속에 새로운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p. 111)

처음부터 해적인 사람보다는 해군이든 무역선이든 뱃사람으로 출발해서 해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헨리 에브리도 어느 무역선의 일등항해사 였다. 하지만 그가 탄 배가 서류상의 문제로 몇달동안 스페인에 억류되면서 그를 비롯한 선원들의 마음은 불안해졌다. 서인도제도의 보물을 찾아 오게 되리라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찰스2세호는 팬시호가 되었다.

해적은 거의 언제나 국민국가의 법에 구애받지 않으며 살았고, 폭력이 더해진 무정부주의적인 행동에 걸맞는 평판을 얻었다. 하지만 바다를 주 무대로 살아가는 해적 공동체 내에서는 금전 거래를 비롯해 그들의 행동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관례를 만들어 충실히 지켰다. 대부분의 해적 행위는 '합의 조항'을 확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쉽게 말하면, 합의 조항은 선장과 사관과 일반 선원 간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규정하는 규칙이었다. (p. 128) 해적들은 바다에서 모험적인 삶을 추구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었을 뿐만 아니라, 육지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는 가치를 실천하는 포퓰리스트이기도 했다. (p. 136)

간단하게 말하자면 해적문화는 굉장히 평등주의적이었다. 획득한 재물은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잘만하면 한번의 약탈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일종의 도박이자 대항해시대의 로또복권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겠다 싶다. 당시에 해적은 굉장히 유혹적인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 위험한 선택을 하느냐마느냐는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고 헨리 에브리는 해적선의 선장이 되기에 충분한 야심만만한 뱃사람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인도보물선 이었다.

무굴제국이 진짜 분노한 이유는 건스웨이호의 여성 승객에게 가해진 만행에 있었다. (p. 223) "무함마드의 눈에 왕실 순례선 포획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모독이었다" (p. 231)

인도보물선은 메카순례를 다녀오던 배였고 인도왕실의 여성들도 탑승해 있었다. 당시 인도 무굴제국은 이슬람 종교를 믿는 왕의 지배아래 있었다. 왕은 분노했고 인도내에 있던 동인도회사에 불똥이 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동인도회사는 존재론적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이번 위기에서 영국 측 핵심 관계자들 (에브리, 애니슬리와 게어, 런던의 동인도회사 경영진, 심지어 윌리엄3세조차)은 각자의 역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몰랐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자의 역할이 그때까지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각자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제도적 기관들을 규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줬을 수 있다. 해적과 기업과 국가라는 뚜렷이 구분되는 세 범주가 있었지만, 각 범주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행동이 야기한 세계적인 위기는 결국 이런 근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 239)

헨리 에브리는 전혀 몰랐겠지만 그가 한 약탈로 인해 국제정세가 바뀌었다. 무굴제국의 선택과 동인도회사의 선택 그리고 영국정부의 선택은 서로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였다. 우여곡절끝에 재판이 시작되었으나 체포된 선원들 몇몇 과 헨리 에브리에게 배심원들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역전의 기회는 누구에게 주어졌을까? ^^

이 책은 역사책이기도 하고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다.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역사적 전환점과 연결시키는 대목들은 흥미로우면서도 정말 그럴까 싶기도 했다. 여하튼, 사소하다면 사소할수도 있었을 에피소드로 풍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며, 이렇듯 역사를 미스터리하게 읽는 재미를 선사해준 것에 감사의 마음또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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