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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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nimals and Plants Communicate with Each Other

고요한 숲 속에 울려 퍼지는 자연의 오케스트라

살아 있음에 대한 기쁨과 놀라움을 아로새기다

'숲' 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우리는 어떤 분위기를 예상할까? 대부분은 평화롭고 고요하고 상쾌한 그런 힐링의 장소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숲은 고요하지 않아야 한다' 고 이 책을 감수한 최재천 교수는 말한다. 해외의 숲생물을 연구하다가 국내의 숲을 찾아갔을때 '우리 숲이 너무 고요해서 싫다'며 숲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의사소통이 우리의 숲에는 부재함을 아쉬워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알려주는 '숲'은 몹시 시끄럽다. ㅎㅎ

나는 행동생물학자가 되기로 했다! 동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전부 알고 싶었다. 특히 고양이가 흥미로웠고 그래서 이 신비로운 동물의 의사소통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인생이 다 그렇듯, 일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p. 18)

첫 번째 연구대상으로 삼고 싶었던 고양이의 의사소통이었으나 저자가 처음 연구하게 된 생물은 뜻밖에도 '물고기'였다.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던 물고기의 행동연구는 의외로 하면 할수록 새롭고 매력적임음을 저자는 깨달았다. 예를들어 번식방법을 보면, 대부분의 물고기는 체외수정을 한다.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그 위로 헤엄쳐 지나면 끝! (p. 19)' 성생활이고 뭐고 서로간의 소통이 그닥 필요해 보이지 않는 수정방법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번식하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대서양 몰리나 감부시아 모기물고기처럼 새끼를 낳는 물고기들은 체내수정을 한다. 체내수정을 하려면 수컷의 정자가 어떻게든 암컷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난자와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수정을 하려면, 당연히 암수 사이에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수컷과 암컷의 '대화'가 그렇게 어려운 도전과제가 아니더라도, 떼지어 사는 물고기들은 자동으로 거대한 통신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수컷과 암컷 단둘이 아무 방해 없이 오롯이 소통하기가 힘들다. (p. 19) 나의 석사 논문은 바로 이런 '삼각관계 소통'에 관심을 두었다. 예를 들어, 나는 수컷이 다른 구경꾼 수컷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행동실험을 했다. 그들은 구경꾼과 상관없이, 점찍은 암컷을 계속 공략할까 아니면 구애 전략을 바꿀까? (p. 20)

책 제목이 '숲은 고요하지 않다' 인데 왠 물고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동물행동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풀어내자니 물고기가 먼저 등장한 것 뿐이다. 뒤이어 바로 도시의 공원에 사는 토끼가 등장한다.

야생토끼는 아주 특별한 소통방식을 가졌다. 그들은 같은 화장실을 쓰며 똥과 오줌으로 소통한다. 이런 화장실을 '공중변소'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런 '공중변소'는 집단생활을 하는 여러 포유동물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야생토끼는 프랑크푸르트 한복판에서 아주 편안해 보였고, 그 모습이 나의 흥미를 더욱 끌었다. (p. 21) 도대체 왜 야생토끼가 독일의 금융대도시로 왔을까? 사계절 내내 풍성하게 차려지는 식탁, 도시의 따뜻한 기온 혹은 울창한 빌딩 숲의 넉넉한 은신처 때문일까? 연구를 통해 나는 동물의 의사소통 행동이 도시에서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p. 22)

저자는 주변의 모든 생물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땅속물속부터 숲을 지나 하늘까지 거의 모든 생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탐구한다. 그러다보니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Nature is never silent'. 사실 이 책은 숲속 생물이야기 보다는 자연속 모든 생물의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라기 보다는 자연은 조용한 적이 없다 라고나 할까.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어떻게 정보가 교환되는가? 에 대해 발신 과 수신 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2부에서 '누가' '누구와' '왜' 정보를 교환하는가? 에서 단세포 생물부터 다세포 생물까지 다양한 생물들의 정보교환에 대해 탐구한 다음, 3부에서 모든게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라며 숲에 생명들이 풍성하게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아마도 이 3부에서의 내용이 동물이 숲을 떠났을 때의 교훈이 이 책을 강력 추천한 최재천 교수의 마음을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식물, 동물, 미생물을 넘나들며 워낙 다양한 생명체들이 등장하다보니 한번에 다 알아챌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는 신기한 내용들은 아~! 감탄하게 되기도 했다. 예를들어, '애기장대' 라는 풀은 애벌레가 애기장대의 잎을 갉아 먹는 소리를 녹음한 것을 들려주면 화학 방어 물질의 양을 높이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식물이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귀가 없는데도 소리를 듣고 움직이지 않는데도 방어하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식물의 의사소통 방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물은 더 다채롭고 미생물은 더욱 놀랍다. 일부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 미생물 곤충 균류 등 모든 생물은 전부다 나름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많은 사례에서 생명체들이 성공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던 것은 발신자가 수신자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망은 철저히 생활환경의 영향 속에 발달 한다. (중략) 그런데 생활환경이 바뀌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활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계속 발달하는 능력이야말로 생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능력은 당연히 정보 교환에서도 발휘된다. (p. 258) 세상은 데이터로 가득한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데이터다. (중략) 한 생명체가 어떤 수신자에게 능동적으로 데이터를 보내려면, 데이터를 운송 가능한 소포로, 그러니까 신호로 만들어야 한다. 이 신호는 '생활환경'이라는 채널을 통해 수신자에게 데이터를 전달한다. 수신자가 이 소포를 '열면', 그러니까 수용체로 신호를 감지하면 데이터는 정보가 된다. (p. 278)

정보와 네트워크 그리고 의사소통은 인간사회에만 적용되는 단어로 착각해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더 오랜 세월 더 변화무쌍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소통해왔던 것은 인간 이전에 자연 그 자연속 생물들이었다. 그들의 신호를 무시하고 그들의 의사소통에 신경쓰지 않으며 그들의 정보를 고려하지 않은채 인간끼리만 소통해 와 놓고선 힐링이네 뭐네 하며 숲을 찾았던 건 아닐까? 그렇게 고요한 숲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숲의 고요함이 좋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선 숲의 고요함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지연의 언어'를 존중하고 통찰할 수 있다면 자연과 더불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어렴풋이 였다. 이제라도 우리는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p. 289)' 라는 것을. '인간 역시 생명체이고, 그래서 이 행성의 거대한 전체의 일부임을 (p. 289)' 일부로서 전체인양 착각해선 안된다는 것을. 그러니 다음에 숲에 간다면 한번쯤 귀기울여 들어볼 일이다. 숲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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