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본문이 인물들의 짧은 전기 같은 형식이다 보니 본문의 어느 챕터 못지 않게 긴 분량의 '서론'은 몽골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서론을 읽고 나서야 인물 개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워 진다.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세 엘리트 집단 출신의 개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크로드 일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군 지휘관과 상인과 지식인이다. 그들의 개인적 경험은 13~14세기 몽골 치하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문화 간 접촉과 물리적·사회적 유동성의 양상을 밝혀준다. (p. 31)' 실크로드 하면 상인이 연상되어서인지 이 15인의 비중에서 상인은 가장 적다. 아무래도 실크로드 상인들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15명은 장군 6명, 상인 4명, 지식인 5명 인데 이러한 구분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기록에 남을 정도로 모두 당시의 엘리트 지배계층이었고 모두 정치·경제·문화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글의 짜임은 비슷한 편이다. 해당 인물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의 인물의 가치적 질문을 띄우고 인생을 개괄한 후 결론에서 정리한다. 낯선 이들의 낯선 삶은 몽골제국이라는 낯선 제국을 좀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했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수시로 사용하서도 '실크로드'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무지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실크로드'라는 말은 1860~1870년대에 중국 지도를 만든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남작이 1877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길에 적용했다. 그 이름을, 계획하고 있는 철도에도 적용하려는 생각이었다. 폰 리히트포헨 자신은 '실크로드'라는 포괄적 용어 속에 여러 개의 가능한 길을 포함시켰고, 이에 따라 '실크로드'는 대륙과 해양의 길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되기 전에도 결코 단일한 길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따라서 '실크로드들'이라는 복수형이 보다 적절한 말이다. (p. 41)' 라는 주석을 보며 후대에 이름붙인 비잔티움에 살던 사람들은 사실 자신들은 로마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당시 실크로드를 오갔던 사람들은 그 길을 뭐라고 불렀을까... 아니다. 하나의 길이 아니고 여러 갈래의 길이었던 만큼 통칭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여러 갈래의 실크로드들을 넓히고 새로운 길을 열었던 이들중 선구자는 아마도 정복길에 나선 장군들이었을 것이다.
곽간 장군은 중국인(한족)이었지만 서아시아까지 진출했던 몽골의 장군이었다. 아나톨리아를 정복하고 바그다드까지 갔으며 서방 영토의 몽골군 첫 사령관이었던 초르마칸이었는데 이 사령관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함께 였던 바이주 라는 인물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여성들이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장군이기도 상인이기도 황제이기도 했다. 쿠툴룬은 실존인물이었고 이 몽골 공주의 삶은 유럽이나 중국의 왕실 여성의 삶과 달랐다.
한편, 실크로드는 육로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해상의 실크로드는 비몽골인들이 차지해왔던 만큼 몽골제국은 제국의 확장에 이 해상실크로드 장악이 꼭 필요했다. 이 네트워크를 확장시킨 것이 중국 한족 출신의 장군 양정벽 이었다. 비몽골인 출신의 엘리트들 뿐만 아니라 노예 군인 출신도 있었다. 이들의 군사적 망명은 몽고 치하 유라시아에서 자주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사이프 앗딘 킵착 알만수리 였다. 그의 삶은 술탄국과 몽골을 오가며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 킵착인 장군 툭투카의 삶은 또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시 실크로드 하면 '상인' 이다. 상인들의 삶은 실크로드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가장 구체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상인들은 생애는 교역보다는 몽골제국의 관료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의 출신 역시 다양했는데, 자파르 화자 처럼 중앙아시아에서 교역 활동에 관계있던 사람들이 몽골과의 접촉에 자연스러웠다. 장거리 교역에 종사한 상인들은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유럽에서 동방을 접촉한 사례를 생각했을 때 대부분 마르코 폴로를 떠올리지만 몽골제국에 갔던 최초의 유럽 일반인은 아니었다. '마르코 폴로가 집을 나서기 25년 전이자 니콜로 폴로 및 마페오 폴로가 부를 찾아 동방으로 여행하기 10년 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십자군 황제의 사절 보두앵 드 에노 가 뭉케 카안의 궁정으로 사명을 띠고 출발했다. (p. 249)' 1226년 보두앵 드 에노가 어떤 목적으로 사절로 간건지는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십자군과 몽골 그리고 러시아 및 베네치아 가 흑해 무역을 둘러싸고 있었기에 다양한 배경이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무역에 대한 욕망, '흑해를 통제하려는 이 욕망은 로마니아 제국의 파멸을 초래했다. (p. 264)'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이 뚫린 배경엔 무역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상인들 중 가장 상인다운 모습을 보여준 인물은 아시아를 가로지른 이라크 상인 자말 앗딘 앗티비 였다. 몽골제국의 상인 활동에서도 여성은 빠지지 않았다. 금장 칸국의 황후 타이둘라는 기독교 상인을 후원하기도 했다.
학문적 생산성이 엄청나다고 알려진 라시드 앗딘의 세계사 책인 <역사 모음> 이라는 책은 '세계사의 가장 이른 사례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으며(p. 338), (중략) 인도를 다룬 장에는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에 관한 내용이 더 들어 있다. (p. 339)' 라시드 앗딘의 저서들을 통해 이란의 불교에 대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 라시드 앗딘은 몽골인 후원자들의 문화적 규범과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몽골과 이슬람 세계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몽골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는 천문과학 분야에는 부맹질 이라는 인물이 소개된다.
몽골제국은 광활하고 다양한 실크로드들이 있었던 만큼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지식인으로 성장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이사 켈레메치 는 통역에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사절로 활약했다. 지식인을 다루는 중에도 여성들의 활약은 빠지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파드샤흐 카툰의 생애는 칸국에서 왕실 여성들이 건축·문화·종교에 행했던 후원활동을 알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마지막 인물은 실크로드의 이슬람 학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잘랄 앗딘 알아하위 라는 사람이다. 이 중앙아시아 학자의 25년에 걸친 여행은 동시대인들에게는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의 전기는 현대 역사가들에게 희귀한 자료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