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지구 밖 정착지, 아르테미스에서 벌어지는 인생 대역전기"난 영웅이 아니라, 우주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을 뿐이야"
인류 최초의 지구 밖 정착지, 아르테미스에서 벌어지는 인생 대역전기
"난 영웅이 아니라, 우주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을 뿐이야"
영화 <마션> 을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 인류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스토리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극한 상황임에도 유머러스하게 표현되는 방식이 좋았었다. 기발하다고만 생각했던 장면들이 나름의 과학적 토대가 탄탄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 원작소설 작가의 두번째 작품이라는 <아르테미스>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의 지도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 이런 치밀함이라니! 마음에 든다. ㅎㅎ
나는 달의 첫 번째(그리고 지금까지는 유일한) 도시 아르테미스에 산다. 아르테미스는 '버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구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버블의 절반은 땅속에 묻혀 있어 아르테미스는 옛날 SF 소설에서 묘사했던 달 도시의 모습을 정확히 닮아 있다. 바로 여러 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모습. 단지 월면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p. 17)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아르테미스'는 인간이 정착한 달 도시의 이름이다. 도시 전체라 해도 지름 500미터 정도인 이곳에는 지구와 다른 중력 만큼 지구와 다른 법칙들이 준수된다. 하지만 이곳도 빈부격차는 지구와 비슷하다. '재즈' 라고 불리는 여성이 주인공인데, 재즈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건 연착륙, 즉, 소프트랜디드 그램(soft-landed grams)을 줄인 거예요. S.L.G. 슬럭(Slug)죠. 1 슬러그면 KSC를 통해 지구에서 아르테미스까지 1그램의 화물을 옮길 수 있어요""엄밀히 말하면 화폐는 아니네""여긴 나라가 아니니까 화폐를 가질 수 없지. 슬러그는 KSC에서 발행하는 선불 서비스 신용점수야. 달러나 유로, 엔, 어떤 돈이든 지불하고 그 대가로 아르테미스로 오는 화물의 중량 허가를 받는 거지. 한꺼번에 모두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까 회사에서 각자의 잔액을 기록하고 있고" (p. 31)
"그건 연착륙, 즉, 소프트랜디드 그램(soft-landed grams)을 줄인 거예요. S.L.G. 슬럭(Slug)죠. 1 슬러그면 KSC를 통해 지구에서 아르테미스까지 1그램의 화물을 옮길 수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화폐는 아니네"
"여긴 나라가 아니니까 화폐를 가질 수 없지. 슬러그는 KSC에서 발행하는 선불 서비스 신용점수야. 달러나 유로, 엔, 어떤 돈이든 지불하고 그 대가로 아르테미스로 오는 화물의 중량 허가를 받는 거지. 한꺼번에 모두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까 회사에서 각자의 잔액을 기록하고 있고" (p. 31)
소설을 구성하는 배경요소들은 과학적 지식들 뿐만 아니라 다른 요건들도 탄탄하다. SF 소설의 재미는 '탄탄함' 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초반부터 무척 매력적으로 읽히는 작품이었다. 재즈는 6살때부터 아르테미스에서 살아왔다. 재즈의 아버지는 용접공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재즈는 그 잠재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포터'로 일하고 있다. 일종의 배달원 이다.
피델리스 응구기는 한마디로 아르테미스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케냐의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 국가적 우주산업을 맨땅에서 일구어냈다. 케냐는 우주 기업들에 제공할 단 하나의 유일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적도다. 적도에서 발사되는 우주선은 연료 절약을 위해 지구의 자전이라는 이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p. 59)
재즈는 아르테미스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지구에 가서 살 생각은 1도 없다. 시작은 허술했지만 이제 나름대로 포터로서의 기반을 잡았고 부업으로 하는 '밀수'에서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재즈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중이다. 그런 재즈에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재즈, 난 사업가야. 내가 하는 일이 활용도 낮은 자원을 개발하는 거라고. 그리고 넌 엄청나게 활용이 안 되고 있는 자원이야""넌 뭐든 될 수 있었어. 용접공이 되기 싫다고? 괜찮아.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엔지니어, 정치가, 성공한 사업가, 뭐든. 하지만 넌 포터가 됐지""평가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분석하는 거지. 넌 정말로 똑똑하고 돈을 원해. 나는 정말로 똑똑한 누군가가 필요하고 돈이 있어. 관심있나?" (p. 70)
"재즈, 난 사업가야. 내가 하는 일이 활용도 낮은 자원을 개발하는 거라고. 그리고 넌 엄청나게 활용이 안 되고 있는 자원이야"
"넌 뭐든 될 수 있었어. 용접공이 되기 싫다고? 괜찮아.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엔지니어, 정치가, 성공한 사업가, 뭐든. 하지만 넌 포터가 됐지"
"평가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분석하는 거지. 넌 정말로 똑똑하고 돈을 원해. 나는 정말로 똑똑한 누군가가 필요하고 돈이 있어. 관심있나?" (p. 70)
재즈의 밀수 단골 중에 억만장자가 있었다. 그가 밀수 그 이상의 제안을 했을때 재즈는 거절했다. 하지만
"100만 슬러그를 주지"
"하죠!" (p. 71)
일은 저질러졌고 재즈는 갖고 있는 능력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거의 성공에 다다랐었다.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성공할 뻔 했다. 그런데 재즈에게 이 일을 의뢰한 억만장자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누군가 재즈를 뒤쫓기 시작한다. 이제 소설은 SF에서 스릴러로 넘어간다.
이제 나는 살인자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였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마지막 남은 수확기를 해치운다 해도 100만 슬러그는 절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트론과 내가 계약서를 작성하 것도 아니고. 아무 대가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 셈이었다. (p. 205)
SF 소설로서도 달의 생활 모습과 시스템이 너무나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어서 재미있었는데 중반부터 스릴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더니 또다른 분위기를 맛보게 해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 읽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인물들이 무겁지 않아 좋았다. 마션에서도 그렇고 작가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뭐 어쩔 수 없으니까. 문명을 건설하는 일은 원래 추하단다. 재스민. 하지만 다른 길로 간다면 아예 문명이 사라지겠지" "그럼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죠?""내 알 바 아니지. 하지만 얼른 시작하는 게 좋겠구나" (p. 275)
"뭐 어쩔 수 없으니까. 문명을 건설하는 일은 원래 추하단다. 재스민. 하지만 다른 길로 간다면 아예 문명이 사라지겠지"
"그럼 난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내 알 바 아니지. 하지만 얼른 시작하는 게 좋겠구나" (p. 275)
사람이 사는 곳은 지구가 됐던 달이 됐던 권력과 음모와 돈이 얼키고 설키게 마련인가 보다. 부담스럽지만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의뢰는 알고보니 거대조직과 도시전체의 경제가 엮여 있는 엄청난 계획의 일부였다. 돈도 못받고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 재즈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탄탄한 과학과 정확한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SF에서 살인사건과 폭력조직이라는 스릴러를 지나 인간생명을 존중하는 인류애까지 확장되는 이 소설의 거대한 스케일을 젊고 통통 튀는 매력적인 주인공 단 한명에게 집중하여 해결하는 과정을 읽다보면 무슨 사건이 벌어졌었건간에 일단 저절로 생기발랄해지는 유쾌한 기분이 된다. 그럴법하다는 SF적 상상력도 쫓고쫓기는 스릴러적 쫄깃함도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휴머니즘적 동지애도 모두 한번에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