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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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초인의 사상적 뿌리이자,

미국의 개척·독립정신의 초석이 된 불멸의 에세이 3편을

꼼꼼한 해제와 가독성 높은 완역으로 만나다

니체는 알았어도 랄프 왈도 에머슨은 몰랐다.

헨리 소로는 알았어도 랄프 왈도 에머슨은 몰랐다.

그런데 니체의 초월주의에 영향을 끼치고 헨리 소로의 스승이었으며 오바마, 간디, 마이클 잭슨에게까지 영감을 준 사람이 랄프 왈도 에머슨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대표적 에세이가 [자기 신뢰] 라고 한다. 안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고전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새번역, 완역본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인 원전 완역과 새번역 그리고 무엇보다 꼼꼼한 해제가 처음 접하는 작가와 사상을 담은 책도 읽을 수 있게 이번에도 역시나 큰 도움을 주었다. 잘 모르는 작가와 사상이었던만큼 뒷부분의 해제 먼저 읽고 본문을 읽었다.

에머슨의 사상은 초월주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에세이가 [자기 신뢰]이다. 그리고 그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신성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에세이 [운명]은 에머슨의 저서 [인생과 처세]에 첫번째로 실려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유출 혹은 진화의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은 한없이 향상하는 쪽으로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이 해제에서는 먼저 저자의 생애를 살펴보고, 저작의 배경을 여러 측면에서 일별한 후에, 책에 실린 세 편의 에세이를 해설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p. 150)

책은 비교적 얇은 편이고 세 편의 에세이를 다 합해도 150페이지가 안 되기 때문에 손에 잡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의 에세이 분량을 넘어서는 해제가 없었다면 흰것은 종이요 검은것은 글자다 라고 하고 넘어갈 뻔 했다. 저자에 대해 알고 저작에서 표현하는 개념들을 해제를 통해 숙지하고 나서 읽어도 본문은 읽는 내내 더디게 넘어갔다.

에머슨은 목사였으나 기존의 교회의식에 반발하여 교회와 결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평생 굉장히 종교적이고 영적인 사람이었다. 목사를 그만두고 전문적인 강연자로 활동하며 본인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을 낸 저자의 직업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자기계발강사' 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그어떤 종교인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신성을 이야기했고 그어떤 사상가보다 현실을 꿰뚫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굉장히 낙관주의자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에머슨은 칼라일보다 훨씬 더 계몽되고 폭넓고 유연하고, 또 더욱 심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칼라일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늘 감사하고 또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를 언제나 발견해낸다. (p. 153)' 고 말했다한다. 에머슨은 19세기 사람이다. 당시의 미국상황을 알아야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에머슨은 미국의 '정신적 독립'을 중요하게 역설했다.

초월이라는 용어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물의 8대범주를 초월하는 사물의 성질을 가리켰다. 그후 칸트가 이 범주 중에서 체험의 구성 요소에 속하지만, 감각과 지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요소에 초월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뚜렷한 의미가 확정되었다. (중략) 그후 셸링이 이 용어의 의미를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 독일 관념론으로 확정했다. (p. 162) 이러한 독일 관념론은 다시 콜리지를 통해 영국 낭만주의에 수입되었고 이어 에머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중략) 초월주의는 이처럼 다양한 개념을 적극 수용했으나 그 개략적인 윤곽은 일원론으로 귀결된다. 일원론은 세상과 신이 하나이며, 신이 세상 안에도 깃든 만큼 인간 내부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이렇게 볼때 초월주의는 체계적인 철학도 순수한 종교도 아닌, 동서고금 철인들의 뛰어난 지혜를 한데 모아놓은 절충적 사상이었다. (p. 163)

초월주의가 일원론과 연결되는줄은 전혀 몰랐었다. 플라톤 책을 읽으며 '일자'에 대한 개념을 처음 알게 됐었는데 이렇게 에머슨의 에세이에서 그 일자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피노자와 니체와 소로 는 알았어도 왜 에머슨은 여태 몰랐는지 의아해질 정도였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철학자나 사상가로 분류될 정도는 아니어서 그랬을까? 에머슨이 에세이 수준에서 머물면서 논리적인 체계로 장대한 철학을 정립하진 못했더라도, 고대철학에서의 '일자' 와 스피노자의 '전일성'과 '에머슨의 '오버소울' 과 니체의 '초인'은 일맥상통하게 다가왔다.

영혼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하여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 더 나아가 물질주의에 갇혀 있는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이 책에서 소개한 세 편의 에세이 [자기 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의 일관된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에세이는 원래 소제목이 없었으나 가독성과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옮긴이가 임의로 붙인 것임을 밝힌다. (p. 204)

에머슨의 에세이는 어떤면에선 개혁적인 성향의 목사가 연설하는 설교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만큼 종교적인 사랑을 핵심가치로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라는 책을 통해 알게된 '이반 일리치'를 생각나게 했다. 급진적 사상가였으나 카톨릭 사제였던 이반 일리치와 에머슨은 '공공을 위한 사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내겐 비슷한 성향의 종교지도자로 느껴졌다.

'에머슨은 이 월든 호수 근처에 땅을 좀 가지고 있었다. 이 땅을 소로가 무상으로 빌려 오두막을 짓고 1년 반 동안 숲속 생활을 하며 기록한 것이 [월든]이라는 장편 에세이다. 에머슨의 자연관을 소로가 [월든]에서 구체화한 셈이다. (p. 181)' 라는 문장을 읽으며 에머슨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적어도 소로 만큼은 에머슨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지식인이구나 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로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스승처럼 여겼던 에머슨의 사상에 대해 좀더 정리한 책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덕분에 유명해지지 않았던가...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 14) 우리는 자기 생각을 절반도 옳게 드러내지 못하고,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성한 생각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긴다. 하지만 부끄러워 하지 말라. 그 신성한 생각은 자기 형편에 알맞고 확실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충실하게 밖으로 표현해야 마땅하다. (p. 15) 유일하게 옳은 것은 내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 기질에 어긋나는 것은 뭐든 잘못이었다. (p. 19)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p. 22) 진실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진실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p. 39)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왜 자기 신뢰를 언급하는가? 자기 영혼이 우뚝 서 있는 한, 말로 하는 힘이 아니라 실제로 활동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p. 41)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근본 원리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p. 62)

에머슨은 '이탈리아, 잉글랜드, 이집트로 여행을 가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미신이 교양 있는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자기 문화가 없어 이런 일이 생긴다. (p. 53) 모든 사람이 사회가 진보했다고 자랑하지만, 진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p. 57)' 고 말하며 스스로가 볼수없는 것에 대한 허망한 상상을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사회는 하나의 파도이다. 파도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파도를 만들어내는 물은 전진하지 않는다. (p. 59)' 라며 파도에 휩쓸리기 보다 파도를 일으키는 근본원인과 파도의 물적구성인 물 자체를 관찰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신뢰'를 얻을때 스스로가 충만해질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을 읽다보니 [시크릿] 이라는 미국식 자기계발서가 왜 탄생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다만, [시크릿] 과 [자기 신뢰]의 차이는 개인적 성공과 만인의 행복 이라는 목표지점이 다르다고나 할까.

[자기 신뢰]라는 에세이는 이 책에서 가장 쉽게 읽히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에세이였다. 이 짧은 에세이가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던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에세이인 [운명] 은 운명론적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개혁하는 인간] 은 스스로를 개혁함으로써 공공에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는데, [자기 신뢰]만큼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으나 에머슨의 개혁적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에머슨은 심도깊은 연구를 한 사상가라기 보다는 활발한 강연자로 활동해서 그런지 세편의 에세이 모두 비교적 가볍게 읽혔다. 그러나 이 짧고 쉬운 언어들이 당대의 엄청난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들자면 엄청나게 무거워질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아직 스피노자도 니체도 소로도 잘 알지 못하기에 앞으로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이들의 책이 올라가 있다. 그리고 에머슨의 에세이를 읽음으로써 나중에 범신론적 철학서들을 읽을때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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