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 - 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
신의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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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는 바이러스와 우리를 지키는 면역의 과학

'서가명강' 시리즈 책을 몇 권 읽어본적 있는데 만족스러운 시리즈였다. 그 자매브랜드로 '인생명강' 시리즈가 나왔다고 해서 일단 믿고 보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은 인생명강 시리즈의 1권이다.

코로나19 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어느 누가 알았을까... 예상하지 못했던만큼 전염병과 면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진 시대이기에 이 책이 주는 메세지는 더욱 깊은 울림을 줄 것 같다. 책을 시작하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벌써부터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을 만났다.

나를 지켜 너를 구하는 일, 내가 당신의 백신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면역의 의미다. (p. 9)

코로나사태 이후 거리감이 노골적으로 벌어질수록 개인화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편견이었음을 책의 초반부터 깨닫는다. 저자가 말하는 '면역'은 함께사는 사회의 정의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나를 지켜 너를 구하는 일, 내가 당신의 백신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면역의 의미다' 캬~! 명언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바이러스·백신·면역 이렇게 세 가지 키워드를 다룬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큰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러스란 무엇인지, 이런 바이러스에 대항해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백신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되짚어봤다. 그리고 면역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각거리 또한 제시했다. (p. 13)

그 어느때보다 제대로 된 '면역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인 이때에 잘 나와준 책이다.

'신종'이라 분류하는 정확한 기준이 무엇일까? 어쩌면 그런 기준은 없는지도 모른다. 신종이라는 말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사 안에서 신종 바이러스를 구분하는 기점이 된 시기가 있다. 대략 1970년대 초반 이후로, 그때부터 발생한 바이러스들을 신종 바이러스 라고 부르게 되었다. (p. 53)

신종 바이러스가 최신의 바이러스가 아닌 의학사적으로 50여년전 부터의 바이러스를 지칭하게 된 것은 '과거의 의학은 과학과는 거리가 있었다.(p. 53)' 라는 저자의 말에서 시사되는 바가 컸다. 의학사의 기간은 오래되었으나 과학의 발달이 의학과 만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질병X'라고 하는 굉장히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가 언젠가 출현할 것이라는 논의가 오고 가기는 했었다. 실제로 2018년 2월 세계보건기구가 향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질병으로 발표한 목록에 질병X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래의 일이니 이름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 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 질병을 질병 X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첫 번째 질병X가 되었다. (p. 71)

질병X 라는 단어가 있었구나... 과학계에서 대두되자마자 거의 바로 코로나19가 터진 셈이니...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은 이번에도 역시나 들어맞은 것인지도... 인간의 오만과 자만이 쌓일 수록 예상되는 후폭풍이 분명 있었으나 무시한 인간에게 닥친 재난을 과연 누구탓을 하겠는가...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인 것을...

특이성과 기억 현상은 항체와 T세포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다. 즉 몸속에서 일어나는 면역반응에는 크게 항체 반응과 T세포 반응이 있으며, 이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에는 특이성과 기억 현상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유발하도록 우리가 인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백신이다. 항체와 T세포의 특이성과 기억 현상 덕분에 우리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 99)

서가명강 시리즈가 그랬듯이 인생명강 시리즈도 엄선된 필진이 주는 신뢰감이 남다르다. 저자는 바이러스 및 면역반응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이다.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이 쉽게 쓰는 책을 참 좋아한다. 대중서이면서 어렵게 읽히는 책은 저자가 아무리 많이 알고있는 사람일지라도 결국은 저자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본문 여기저기 등장하는 전문적인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읽을만 했다. 그런점에서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무척 기대가 된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나의 환경이고, 나 또한 상대방의 환경이다. 그러므로 나의 면역은 타인의 면역과 연결된다. (p. 108)

쉽게 읽히는 점도 좋았지만 구성도 괜찮았다. 길지않은 챕터는 생소한 학문적 내용을 읽는데 지치지 않게 했고 새로운 장을 시작할때마다 등장하는 '명문장'은 울림이 컸으며 매글의 마지막 페이지에 저자가 남긴 '질문'도 의미있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면역'이 나의 건강적 문제가 아니라 좀더 확대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미 백신이 개발된 상황에서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백신을 개발하기 그리 어려운 바이러스였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려온 백신이기 때문에 착시 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개발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효과가 90퍼센트 이상인 백신을 개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이다. (p. 121~122)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커진 불안감 때문에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저자는 백신의 사전 준비 정도와 결과를 전하면서 좀더 믿어줄 것을 당부한다. '백신 거부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중략) 최근 한국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쓸데없이 백신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회적 소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칙에 입각한 사실 보도를 해야 할 것이다. (p. 131)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이 과학적·합리적 사고로 무장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의 풍토가 조성되어야 비로소 현명한 개인들이 서로의 안전한 환경이 되어주는 사회적 차원으로서의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p. 132)' 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사회적 건강은 결국 사회적 구성원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개개인들이 좀더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카더라 에 휩쓸리지 말고 이런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팩트 아니겠는가.

면역학은 면역세포들이 나와 남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면서 그 기초가 세워지게 되었다. 어쩌면 나와 남을 구분하는 데 익숙한 인간의 본성이 이런 면역학의 기초 성립에 일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면역학이 조금 더 발전하면서 나와 남의 구분이라는 명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되었다. (p. 158) 면역학 발전의 초기 단계에만 하더라도 면역반응에 관한 연구는 어떻게 나와 남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나와 남보다는 무해한 것과 유해한 것의 패러다임에 따라 면역 현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p. 170)

이 책을 읽으며 '면역'의 정의를 가장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위와 같은 저자의 관점이었다. 코로나19는 나와 남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각 나라의 국적을 더욱 강하게 구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면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해한가와 유해한가 이다. 내부인과 외부인이라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사회에서의 이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을 읽으며 그러한 구분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면역학에는 필요 이상의 과다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인간이 앓고 있는 수많은 질병 중 면역학적인 원리나 기전과 상관없는 질병에까지 면역학적 해석의 틀을 갖다 대는 것이다.(p. 210)' 라는 저자의 설명에 새삼 나의 무지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면역력'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상인지;;; '면역과 건강은 결코 일차원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p. 210)' 를 꼭 기억해두어야 겠다.

면역반응의 기본 원리에는 몸속 생리를 넘어 인류가 역사를 지속할 수 있는 삶의 기본 원리가 담겨 있다. (p. 227)

질병과 면역에 대한 과학책인줄 알았더니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삶의 기본 원리'까지 되새겨주는 책이었다. 과학책이다 인문학책이다 구분할 거 뭐 있겠는가, 그저 삶의 교훈을 준 것만으로 '가치 있다' 로 여기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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