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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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

사만타 슈웨브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

띠지에 훈장처럼 써있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작 이라는 것도, 셜리잭슨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2021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무비로 공개될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것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스르르 잊혀져 있다. 이 화려한 이력보다 훨씬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레이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었다.

그리고요? 아주머니는 왜 아무 말도 없죠?

이 이야기에 매여 있으니까. 나는 이야기를 완벽하게 볼 수 있지만 때로는 진전시키기가 어려워. 간호사들이 놓는 주사 때문일까?

아니요.

하지만 난 몇 시간 뒤면 죽을 거야. (p. 14)

소설은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나' 아만다는 니나 라는 딸의 엄마 이고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그 옆에서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하고 있는 소년은 '다비드'라는 9살 이웃 소년이다. 나는 왜 죽어가고 있는가? 니나는 어디에 있는가? 다비드는 누구인가? 다비드가 말하는 '벌레'는 무엇인가?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p. 27)

작가는 아르헨티나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이고, 이 소설의 원제는 스페인어로 'DISTANCIA DE RESCATE' 즉 '구조 거리' 다.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데 열이 펄펄 끓더라고요. 몸이 불덩어리엿어요, 아만다. 그때 우리 다비드의 눈앞에는 분명히 천국이 어른거리고 있었을 거예요. (p. 37)

영어판 제목이 '피버 드림'이었다고 한다. '열이 나는 꿈'

'피버 드림' 은 '구조 거리'보다 훨씬 은유적이다. 어쩌면 개인적 심리적 '구조 거리' 보다 사회적 공공적 '증상'을 표현함으로써 더 소설의 메세지를 잘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구조 거리'라는 원제가 더 와닿았다. 구조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 구조하지 못한 순간...

여하튼,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아만다의 몸도 불덩어리다. 다비드는 세살때 그 일을 겪었다. 다비드와 아만다는 아만다가 이렇게 되기 직전의 상황을 세세하게 재구성한다. 한장면한장면 아주 섬세하게 기억해내려 애쓰지만 그어떤 구체적인 장면도 이 상황을 설명해주진 못한다. 소설적 은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다비드. 칠흑같은 어둠만 있고 너는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리고 있잖니. 나는 이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조차 모르겠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맞아요. 아만다 아주머니. 저는 응급병동 병실에 있는 아주머니 침대 가장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돼요. (p. 46)

'정확한 순간' 이때는 다비드의 표현에 의하면,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말한다. 다비드는 이 '정확한 순간'을 찾기 위해 아만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들으며 아만다의 시간을 꼼꼼하게 되짚어가는 중이다. 이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아만다에게도, 다비드에게도.

그 실은 존재하지만 느슨해서 우리에게 때때로 약간의 독립성을 허용해줘. 그런데 구조 거리가 정말 중요하니?

아주 중요해요. (p. 49)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아만다가 말하는 '구조 거리'도 비슷한 개념이 바탕이 되어 있다. 니나와 아만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니나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듯한 예감이 들때면 아만다의 몸에 그 실이 팽팽하게 죄어온다. 하지만 때론 그 팽팽함을 자각하지 못하여 '구조 거리'를 놓치고 만다. 아만다는 자신이 그랬을까봐 두렵다.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디있는 걸까? 아만다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그 아이의 몸에 네 영혼이 일부 있니?

그건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얘기죠. 아주머니도, 저도 이럴 시간 없어요. 우리는 벌레를, 벌레와 아주 비슷한 것을, 그리고 벌레가 처음 아주머니 몸에 닿는 정확한 순간을 찾는 중이라고요. (p. 56)

다비드가 세살때 다비드의 엄마 카를라는 두려움에 떨며 녹색집으로 갔다. 제발 다비드가 죽지 않기를 바라며. 의사도 병원도 변변치 않은 시골동네에서 녹색집의 여자는 유일하게 민간처방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만다와 니나가 휴가차 내려온 시골마을엔 사실은 엄청난 비밀이 은밀하게 녹아있었다.

밖에서는 남자들이 드럼통을 내리고 있어. 드럼통이 커서 한 손으로 하나씩 잡고 옮기는 데 애를 먹고 있어. 엄청나게 많아. 트럭이 온통 드럼통 천지야.

바로 이거예요.

드럼통 하나가 헛간 입구에 따로 놓여 있어

이게 바로 중요한 일이에요

이게 중요한 일이라고?

네 (p. 84)

아만다는 다비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혼미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다비드가 어린 소년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의 한계가 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시간속에서 아만다가 니나를 걱정할때마다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졸아들어간다. 스릴러적 사건이 없음에도 굉장히 스릴러적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무슨 일이니? 나는 니나에게 물어.

축축해요. 니나가 살짝 화난 투로 말해. (p. 86)

이슬이야, 걷다보면 마를 거야

바로 이거예요. 이게 바로 그 순간이에요. (p. 87)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무슨 일 말이니, 다비드? 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벌레요. (p. 88)

구조 거리... 아만다는 위험신호를 감지했었다. 카를라가 자신의 아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나서 떠나려고 했었다. 휴가고 뭐고 평온했던 이동네가 갑자기 이상스레 느껴졌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엄마, 손이 너무 따가워요. 니나가 제 손을 보여주더니 내 옆에 앉아. 그러고 날 안아.

나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한 손에 한번씩 입을 맞춰. 아이는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내게 보여줘. 카를라는 과자를 한봉지 꺼내와서 니나의 손바닥 위에 한움큼 놓아.

이게 다 낫게 해줄 거야. 카를라가 말해. (p. 111)

마을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채 그냥 그러려니 살고 있었다. 이방인인 아만다 모녀가 휴가를 내려오기 전에도 분명 마을엔 이상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는 거예요, 아만다. 우리는 시골에 살고 밭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쓰러지고, 회복하더라도 이상이 생기는 일은 흔하죠. 당신도 그런 사람들을 길에서 보고요. 그런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알게 되면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놀랄 거예요. (p. 95)

그냥 일어나는 일... 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음을... 시골에서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일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벚꽃이 만개 하고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의 요즘, 어딘가에선 '침묵의 봄' 여전히 현재진행형 같아서...

'뿌린만큼 거둔다'는 말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 작품, <피버 드림> 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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