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오리진 -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존 그리빈.메리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리스토텔레스부터 DNA까지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추적하다

'오리진'은 기원을 뜻한다. '00에 관한 오리진' 이라고 하면 어떤 '기원'을 추적한 내용을 예상하면 된다. '진화의 오리진'이라고 해서 인류진화에 대한 유구한 세월을 탐구한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진화론' 자체의 생성과 발달에 대한 책이었다. 다시말하자면, '진화론'의 '기원'에 대한 책이다.

목적이 '진화론' 이라고 심플하게 정리되듯이 차례도 심플하다. 고대/중세/현대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분은 단어그대로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긴 힘들다. 고대/중세/현대 순서로 서술되긴 하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윈의 진화론' 이 등장한 시대를 전후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서 단어 자체의 시간적 개념보다는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이 고대 이고 등장한 시기가 중세이고 인정된 이후의 시대가 현대 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 싶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인 '고대'에서는 지질학적 배경이,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한 '중세'시기엔 진화 자체의 의미가, 다윈의 진화론이 널리 인정된 '현대' 시기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DNA연구가 주 내용을 이룬다. 무엇보다 '다윈의 진화론'에 얼킨 고정관념을 차근차근 확인하고 수정하며 보완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진화 이론에 관한 다윈의 위대한 책이 출간된 1859년 무렵, 진화는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져 있었고 이미 수십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논의해오고 있었다. 다윈의 특별한 공로는 진화의 매커니즘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 매커니즘은 바로 자연선택이다. (p. 9) 1859년에 이르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생각은 때가 무르익어 있었고, 다윈과 월리스가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오래지 않아 생각해 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월리스의 친구 헨리 베이츠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다가 상황이 바뀐 걸까? 그리고 진화의 기원 이야기에서 왜 월리스가 아니라 다윈이 주인공이 되었을까? 이게 바로 이 책이 풀어나갈 이야기이다. (p. 10)

저자는 첫장부터 '다윈의 속설을 깨부수다' 라며 '진화론' 하면 '다윈' 하고 떠오르는 고정관념에 대해 돌멩이를 던진다. 역사에 길이남을 발명과 발견은 결과론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모든 발명과 발견엔 다 그 이전의 선배들의 노력과 실패와 확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절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알게되는 것은 없다. 이런저런 상황이 무르익게 되어 나온 발명과 발견은 다 나올만해서 나온 것이다. 다윈이 아니었더라도 그 시기의 누군가가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윈의 업적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아무리 무르익었어도 본인의 노력과 연구가 없었다면 새로운 이론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이 책은 사실 진화 자체의 기원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진화라는 관념의 기원에 관한 책인데, 그렇다고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그다지 입에 착 붙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p. 12)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진화에 관해 생각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사람을 모두 설명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중 주요 인물들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다윈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p. 13)

'진화론' 하면 '다윈' 이지만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그리 많은 내용을 할애하지 않는다. 다윈 보다는 그 주변의 인물 혹은 그 이전 과 이후 의 인물들과 연구들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인식할수 있도록 배경설명을 주로 한다. '다윈의 진화론'의 기원을 풀어낸 책이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나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을 시작으로 고대부터 있었던 진화론적 생각들은 아낙시만드로스 - 에피쿠로스 - 루크레티우스 등 에게서 그 기본개념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슬람 학자들에게서도 '자연 속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또 살아 있는 종 간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한 사람들(p. 25)' 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가 사회의 주요 사상이 되면서 '진화'에 대한 생각은 불경시 되었다. 그러다 '지질학'적 증거들로 인해 다시 서서히 새로운 생각들이 차근차근 토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화석과 토층이라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진화'의 개념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윈도 생물학자가 되기 전에 '지질학자'로 출발했었다.

로버트 훅, 칼 폰 린네, 존 레이, 샤를 보네, 모페르튀이, 디드로, 몬보도, 뷔퐁, 푸리에, 베누아 드 마예 등의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때론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이러한 연구들이 쌓여갔기에 다윈의 이론적 토대가 세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 또한 당대의 진화론적 연구들에 동의하며 자신의 연구에서도 진화론적 결과를 도출해냈었다. 이 모든 '진화'적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지구의 나이'에 관련된 연구들이 밑바탕이 되었다. '찰스 다윈은 라이엘의 지질학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p. 97)' 비글호의 탐험결과는(지진으로 인한 변화 및 바닷가에서 관찰한 융기의 증거들 등등) '젊은 지질학자' 다윈을 학계에 등장시켰다. 진화론은 한참후에 등장하게 된다.

라마르크, 퀴비에, 후커, 라이엘, 헉슬리 등 '다윈의 진화론'에 지분이 있는 쟁쟁한 학자들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월리스'다. 월리스와 다윈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적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다윈에 비해 가려져있는 '월리스'에 대해 저자는 자세하게 그의 활동을 풀어낸다. 다윈이 월리스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쳤다거나 월리스가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등의 소문은 소문일뿐 진실과는 좀 달랐다. 둘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했으며 솔직하게 소통했다. 다윈은 월리스를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돕기위해 신경쓰기도 했고 월리스는 죽을때까지 다윈보다 더 적극적인 다윈주의자로 살았다.

'현대'로 구분된 3부의 내용은 앞선 내용들에 비해 맥락이 갑자기 뚝 끊기는 느낌인데 멘델의 유전법칙을 시작으로 DNA연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여하튼, '진화라는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유전자가 염색체 사이에서 재배치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며, 이로써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한 변이가 늘어나면서 진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둘 중 어느 것도 다윈과 월리스의 업적을 훼손하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두 사람이 발견한 바로 그 방식으로 변이를 바탕으로 작동한다.(p. 299) 그러나 다윈도 월리스도 (또 19세기의 누구도) 자연선택의 바탕이 되는 변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며 오늘날 최고로 인기 있는 연구 주제가 됐다.(p. 300)' 며 다윈의 진화론과 현재의 DNA연구를 연결지어볼 뿐이다.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 여기서 받아들일 부분은 진화의 과학적 이해는 21세기의 20년대에 들어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윈과 월리스는 자연선택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복잡한 생물체들은 단백질의 표현 방식을 후성유전적으로 제어하는 유연성 덕분에 재난에 대처할 여지를 얻는 셈이다. (p. 311)

완전체적인 창조에서 '진화'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탄생한 진화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진화 이야기는 막 시작됐을 뿐인 것 같다.(p. 312)' 왜냐하면 '진화'가 과학적 상식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진화'라는 개념을 인정하고 난 후의 진화이야기는 더더욱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이 '진화의 오리진'이었다면 앞으로의 연구들이 진정한 '진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