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하면 '다윈' 이지만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그리 많은 내용을 할애하지 않는다. 다윈 보다는 그 주변의 인물 혹은 그 이전 과 이후 의 인물들과 연구들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인식할수 있도록 배경설명을 주로 한다. '다윈의 진화론'의 기원을 풀어낸 책이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나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을 시작으로 고대부터 있었던 진화론적 생각들은 아낙시만드로스 - 에피쿠로스 - 루크레티우스 등 에게서 그 기본개념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슬람 학자들에게서도 '자연 속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또 살아 있는 종 간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한 사람들(p. 25)' 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가 사회의 주요 사상이 되면서 '진화'에 대한 생각은 불경시 되었다. 그러다 '지질학'적 증거들로 인해 다시 서서히 새로운 생각들이 차근차근 토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화석과 토층이라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진화'의 개념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윈도 생물학자가 되기 전에 '지질학자'로 출발했었다.
로버트 훅, 칼 폰 린네, 존 레이, 샤를 보네, 모페르튀이, 디드로, 몬보도, 뷔퐁, 푸리에, 베누아 드 마예 등의 학자들의 연구 내용은 때론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이러한 연구들이 쌓여갔기에 다윈의 이론적 토대가 세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 또한 당대의 진화론적 연구들에 동의하며 자신의 연구에서도 진화론적 결과를 도출해냈었다. 이 모든 '진화'적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지구의 나이'에 관련된 연구들이 밑바탕이 되었다. '찰스 다윈은 라이엘의 지질학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p. 97)' 비글호의 탐험결과는(지진으로 인한 변화 및 바닷가에서 관찰한 융기의 증거들 등등) '젊은 지질학자' 다윈을 학계에 등장시켰다. 진화론은 한참후에 등장하게 된다.
라마르크, 퀴비에, 후커, 라이엘, 헉슬리 등 '다윈의 진화론'에 지분이 있는 쟁쟁한 학자들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월리스'다. 월리스와 다윈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적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다윈에 비해 가려져있는 '월리스'에 대해 저자는 자세하게 그의 활동을 풀어낸다. 다윈이 월리스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쳤다거나 월리스가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등의 소문은 소문일뿐 진실과는 좀 달랐다. 둘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했으며 솔직하게 소통했다. 다윈은 월리스를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돕기위해 신경쓰기도 했고 월리스는 죽을때까지 다윈보다 더 적극적인 다윈주의자로 살았다.
'현대'로 구분된 3부의 내용은 앞선 내용들에 비해 맥락이 갑자기 뚝 끊기는 느낌인데 멘델의 유전법칙을 시작으로 DNA연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여하튼, '진화라는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유전자가 염색체 사이에서 재배치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며, 이로써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한 변이가 늘어나면서 진화를 일으키는 두 가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둘 중 어느 것도 다윈과 월리스의 업적을 훼손하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두 사람이 발견한 바로 그 방식으로 변이를 바탕으로 작동한다.(p. 299) 그러나 다윈도 월리스도 (또 19세기의 누구도) 자연선택의 바탕이 되는 변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며 오늘날 최고로 인기 있는 연구 주제가 됐다.(p. 300)' 며 다윈의 진화론과 현재의 DNA연구를 연결지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