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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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 너머의 세계로 떠난, 선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

끝없는 인간의 호기심과 열망이 만들어낸 놀랍고도 위대한 탐험의 역사!

인간은 진화의 최종산물이기 이전에 탐험의 종족이다. 인간은 지적생명체이기 이전에 떠돌이이고 방랑자이다. 영장류 중에서 아니 전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는 종족이 또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유일한 생명체가 아마도 인간이 아닐까 싶다. 그랬기에 아프리카대륙에서 태어난 호모사피엔스는 전 지구에 퍼져 살게 되었다. 탐험은 곧 생존본능이었다. 인간에게 있는 이 탐험에 대한 욕망이 지금의 인간을 있게 했다.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탐험'에 대한 책이다.

모든 탐험은 결국 미래에 대한 투자다. 인간이 우주 진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대부분 미래 세대가 누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한계를 넘겠다고 마음먹을 때마다 항상 그랬다. 왜 지구 밖으로 탐험을 떠나야 하느냐고 묻는 것은 인류의 조상에게 왜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를 떠나야 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별달리 부족한 게 없는데도 왜 떠나야 하는 걸까? 그것은 언덕 너머에 새로운 먹을거리가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p. 9) 이 책은 탐험이 어떻게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발견과 모험, 부와 정복, 편견과 관용의 이야기다. (p. 10)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선사시대 인류의 이동과 중세 대항해시대를 거쳐 지구의 오지탐험이 어떻게 우주탐험으로까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인간의 대장정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다룬 1부와 2부가 재미있었지만, 저자가 역점을 둔 것은 우주탐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을 담은 3부와 4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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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탐험에 대해 모든 발견 모든 시간을 다룬다기 보다는 큰 획을 그은 몇 가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탐험 역사에게 가장 놀라운 업적은 아마도 하와이와 이스터 섬, 뉴질랜드를 연결하는 '폴리네시아 삼각지대'에 정착한 일일 것이다.(p. 35)' 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언제부턴가 외딴섬이나 밀림지역에서 헐벗은 차림으로 살고 있는 수렵채집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점은 '야만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이 이루어낸 탐험의 업적은 그야말로 엄청난 지혜와 기술이 뒷받침된것이었다. 나침반이나 총칼 없이는 어떤 탐험도 시작하지 못하는 우리네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더 무지해 보일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페니키아, 고대이집트, 고대그리스인들의 지리적 탐험은 상식으로 알려진 수준 이상의 엄청난 정보들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이 얼마나 세계를 넓게 돌아다니고 알았는지 읽는 과정은 정말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보통 '대항해 시대'라고 하면 유럽인이 배를 타고 해상 무역이 발달하지 않은 낙후된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유럽인이 갔던 곳에는 이미 잘 짜인 해상 무역망이 존재했으며, 유럽인의 모험도 실제로는 더 큰 대포로 무장한 채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정복하러 갔던 것이다. (p. 138)

고대 중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과 서로 지구반대편에서 세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나라고 생각했으며, 인구와 경제력 측면에서 로마와 거의 대등했다. (중략) 결국 멸망한 로마와 달리 중국의 고대 문명은 본질적으로 언어와 문화, 유산이 거의 온전히 유지된 채 왕조에서 왕조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p. 145)

부유한 중곡과 대조적으로, 당시 유럽은 여전히 흑사병의 참화에서 회복중인 보잘것없는 변방이었고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유럽은 끊임없이 서로 다투는 수백 개의 작고 호전적인 나라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다. (p. 157)

커다란 돛을 펼친 웅장한 범선이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것처럼 우리는 생각해왔지만 알고 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 인도의 교역망은 이미 세계적이었고 중국의 물자는 풍부했다. 서양인들은 건너건너오는 인도와 중국의 물품들을 보며 선망했고 인도와 중국을 찾아나섰지만 볼품없는 배들로 천신만고끝에 힘들게 찾아간 인도와 중국에서 서양인들이 내민 물품은 너무나 형편없고 보잘것 없어 무시당했다. 서양인들에게는 교역으로 내놓을만한 변변한 물품이 없었다. 그러니 인도와 중국이 가진 것들을 무력으로라도 빼앗아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대포와 학살과 정복이었다. 평화로운 교역은 시작부터 불가능했다. 말이좋아 대항해시대 이지 결국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약탈전의 시작이었다. 이는 십자군전쟁때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포악한 약탈자가 콜럼버스 였다.

콜럼버스를 후원하기 위해 왕궁이 보석을 팔았다는 유명한 일화와는 달리, 두 국왕이 한 일은 팔로스 데라 프론테라는 작은 항구에 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였다. 항구 마을의 빚을 탕감해주는 대신 콜럼버스에게 선박과 선원을 제공하게 했던 것이다. 팔로스에서 콜롬버스에게 제공한 세 척의 배는 과연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p. 194)

콜럼버스는 이때 다시한번 카리브해의 신기한 물건을 들고 스페인 왕궁에 갔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훨씬 더 냉랭했다. 몇년 동안 찾아다녔는데도 아직 그곳이 아시아라는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p. 200) 한편 행정가로서 콜럼버스의 무능은 점점 더 심해졌다. (중략) 특사는 콜럼버스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고문과 폭력을 사용하고 엄청난 숫자의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중략) 콜롬버스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이 아시아 대륙이라고 믿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p. 201) 노예제는 콜럼버스가 처음 만들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의 일부였다. (p. 202)

한때 콜럼버스가 위인전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며 대항해시대의 대표적 위인으로 추앙받았었다. 하지만 최근 역사에서는 그에대한 재평가가 진행중인 듯 하다. 다른 역사서에서도 콜럼버스의 항해와 탐험은 여러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당하고 있는것을 읽은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또한 콜럼버스의 탐욕과 무능을 읽으며 그때 그장소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 콜럼버스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보게된다. 여하튼, 이 문제많은 대항해시대는 유럽을 일으켜세우고 다른대륙을 짓누르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가게 된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은 이제 극지방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시피했다.

유럽이 중국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리적 여건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영토는 같은 방향으로 두 개의 거대한 강이 흐르는 광활한 평원인 반면, 유럽은 해안선이 엄청나게 길고 수많은 만과 포구, 해협이 있는 들쭉날쭉한 반도다. 유럽의 강은 사방으로 흐르면서 40여 개의 지역해와 만난다. 유럽의 수로와 산맥, 삼림은 대륙을 자연스럽게 여러 지역으로 나누며, 그로 인해 무역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된다. 중국은 하나로 통일된 대제국이었지만 유럽은 서로 끊임없이 충돌하는 작은 국가들의 집합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고, 그러한 경쟁이 기술이나 경제 발전을 촉진했다. 수많은 발명품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유럽의 각국은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그 발명품들을 더욱 완벽하게 다듬었다. 중국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었던 탓에 혁신에 따른 보상이 없었지으므로 수백년간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저마다 끝없이 노력해야 했다. (p. 226)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으며 지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정말 깊이깊이 깨달았었다. 유럽과 중국의 발전사에 대한 대비점또한 '지리'의 효과는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방이 뚫렸으나 지중해라는 닫힌 바다안에서 유럽은 작은 도시국가들의 각축전이 끊임없이 벌어졌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결국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쪽은 거대한 중국 한쪽은 거대한 태평양이라는 환경이 전부였던 한반도는 그런 자극들에서 수천년간 비껴나있었기에 다른 역사를 만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은 역사의 우열을 가리지 말고 자연스런 흐름에서 이해해야 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탐험은 이제 단순히 세상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세상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이 탐험의 의미가 된 것이다. (p. 251)

인간은 극지방에 깃발을 꽂았고 하늘을 비행하며 온 지구를 날아다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이 가지못한 곳은 '우주' 뿐이었기에 우주탐험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현재적인 가치생산이 없는 우주탐험은 아무나 쉽게 할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시작이후부터 내내 다양한 한계에 부딪혀오고 있는 중이다.

NASA는 예산이 80퍼센트가 깎이는 바람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원래 계획은 달에 영구적인 기지를 건설하고, 지구 궤도는 도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우주선으로 소행성과 금성을 근접 통과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을 제작하고, 화성을 탐사하는 등의 임무를 계속진행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모든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1990년 이전에 탐사선을 화성에 착륙시키려는 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처한 NASA는 여러 계획 중에서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결국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 사업이 선택되었다. (중략) 전 세계적으로 우주개발의 목표는 국제우주정거장에 국한되었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다른 천체를 탐험하는 임무는 무인 우주선이나 미래 세대의 탐험가들에게도 넘어갔다. (p. 298)

'탐험의 역사'를 술술 설명하는 것을 보며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사실 저자는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 업체인 스페이스X의 총괄 관리자다. 저자의 전문분야는 역사가 아니라 우주라는 얘기다. 따라서 과거의 '탐험'이야기들은 어찌보면 인간의 탐험에 대한 욕망을 설명해내는 과정이고 궁극적으로 이 욕망을 펼쳐내고 싶은 분야는 '우주탐험'이라고 볼수 있다. 우주탐험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 저자의 전문적인 식견들이 마구 쏟아진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은 과거보다 크지 않으면서도 결코 적지 않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류의 영역을 넓히고 같은 목적으로 인류를 통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밖으로 넓히는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런 사명을 외면하고 탐험을 포기하게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는 언제나 방랑자들이 있을 것이다. (p. 394)

'탐험의 역사에서 인류가 배운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때 놀라운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에 갇혀 있는, 흥미롭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생물종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은 의지로 불가능에 도전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고 후손을 낳은 탐험가들의 후예다.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다.p. 397)' 라며 저자는 우주탐험에 대한 인류의 의지를 북돋우려 애쓰고 있다. 대중의 우주탐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정치적 필요성도 줄어들면서 우주탐험은 그야말로 '예산'이라는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에 저자의 부추김은 때론 안타깝기까지 하다. 저자의 이 절절한 우주탐험 필요성을 읽으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가 생각났다. 수십년전의 칼 세이건도 '예산'장벽에 대해 절절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한 우주에 대한 열망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었더랬다. 그때의 순수함과 지금의 필요성이 합쳐져 '우주탐험'의 시대가 제대로 열리길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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