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야기 - 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안인희 지음 / 지식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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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36가지 중세 이야기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겨하다보니 이런저런 책을 꽤많이 읽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전읽기로 연결됐었더랬다. 고전을 읽으려다보니 서양의 역사를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인문학 책들을 읽게 됐고 그러다보니 고대문명-고대그리스-고대로마 관련 책들을 다수 읽게 됐다. 그렇게 서양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책들로 또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중인데 '중세'관련 책을 읽어야 할 시점인 요즘, 마치 내맘을 읽은 것처럼 딱 필요한 '중세' 이야기 책이 나와서 반가웠다.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해~! 하는 느낌이 팍!! ㅎㅎ

문화사는 언뜻 소프트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분야다. 인문학의 각 영역을 어느 정도 총괄하는 지식과 안목이 없이는 주제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역사책에서도 자주 만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게 가장 흥미롭고 소프트한 역사의 이야기는 보통의 역사책에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좋은 역사책도 이 부분은 그냥 건드리다 말고 지나가곤 했다. (p. 8~90 -들어가며 中-

인문학자이자 도이치어권 번역자라는 저자는 서양의 다양한 인문학 책들과 문학작품을 읽고 번역하고 강의도 해오며 자신의 성향에 맞는 중세책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사'적으로 중세를 살펴보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긴 하지만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는 학자의 책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이지만, 역사서들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은 꽤 다양하다. 사건중심, 사람중심, 정치중심, 경제중심 등등 어느 방향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풀이되는 이야기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통사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 책들은 대개 벽돌책이라 사실 시작하기가 쉽진 않다. 읽는 재미로 따지자면 아마도 '문화사'적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책의 구성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476~1000 의 중세 초기, 1000~13000 의 중세 전성기, 1300~1492 의 중세 말기, 이렇게 3부 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세는 서로마의 멸망부터 동로마의 멸망까지 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서양사책들에서 서로마의 멸망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하고 동로마만 존속했던 시대를 '중세 암흑기'라 지칭하며 무시하곤 하는데, 저자는 '암흑기'라는 표현에 반대입장을 취한다. 최근 읽었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도 있어서 나또한 저자의 기본 입장에 공감하며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의 핵심은 책뒤표지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중세란?

유럽 대륙 전체가 역사의 무대로 펼쳐진 "진정한 유럽 역사의 시작"

이교 신들과의 싸움, 기독교 내분, 교황과 황제, 교황과 교황의 싸움이 벌어진 "종교 전쟁의 시대"

종교적 전설과 기적, 기사들의 모험을 둘러싼 "환상의 시대"

인간중심, 이성중심 사유로 돌아오는 합리화 과정 "르네상스"

지중해 중심 사유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토대로 세계로 나아간 중세의 끝 "제국주의의 출발 지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세가 암흑기가 아니라 '진정한 유럽 역사의 시작' 이라는 점이다. 시간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건너뛰며가는 것이 아니다.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바다처럼 쉬지않고 출렁이는 것이 시간이고 역사이기에, 중세라고 불리는 시간들도 결코 고대와 근대 사이의 구멍난 시간일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세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시각은 굉장히 바람직해 보인다.

중세초기 부분에서는 일단 고대부터 시작한다. 중세로 접어들기 전 앞선 시대에 대한 간략한 개요가 있으니 중세시대로 연결되는데 있어 흐름적으로 자연스러워져서 좋았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바로 이 중세 시대를 다룬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시대가 가고 암흑기처럼 보이기도 한 시대였다. 하지만 중세는 1,000년이나 계속되는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대에 온갖 재미있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중세 암흑시대'라는 말로는 절대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시대였다. 지중해 세계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유럽'이 등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p. 31)

라는 중세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중세가 없었다면 근대도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세를 '암흑기'리고 부르던 것을 지금도 그렇게 부를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을 사는 이는 늘 어제의 시절에서 과오를 찾기 마련이므로 르네상스 인들에게는 앞선 시대가 암흑기였을지 몰라도, 지금 세계사를 보는 데 있어 중세를 여전히 '암흑기'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대의 모든 부흥은 중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의 유럽국가들이 대부분 중세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중세는 세계사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이렇게 종족과 문화와 종교와 언어가 계속(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뒤섞이므로 문활르 말할 때 '민족 문화'란 말은 별 의미가 없다. 대체 '민족'이란 게 뭐냐는 의문도 있다. 혈통이나 민족만으로 문화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이 되었다. 따라서 최근 연구자들은 주로 언어를 기준으로 문화를 가르고 있다. '프랑스문화'란 '프랑스어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p. 45)

1부인 중세초기 에서는 연대기적 역사서술로 가장 역사책 처럼 읽히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역사서술에서는 지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사이사이 적절한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유럽의 역사는 그야말로 섞이고섞이고 또 섞이는 혼란의 혼합사다.

중세에는 교황이 세속의 영토를 지녔고, 황제나 왕도 자기 영토에 속하는 교구의 성직자를 임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권한이 겹치는 부분에서 황제와 교황 사이의 다툼은 피할 길이 없었다. (p. 155)

2부인 중세전성기 에서의 핵심은 '종교' 다. 지금의 유럽대륙이라 일컬어지는 곳은 로마제국시대의 서로마지역에 해당하므로 동로마는 차치하고 서로마지역에서 난립하는 신흥세력들의 권력다툼 속에 '교황'의 존재는 다양한 역사적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엄연히 콘스탄니노플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쪽지역의 황제옹립과 콘스탄티노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한 로마교황의 권력은 서로마역사의 다양한 변주를 이끌고 이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다. 이때문에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중세문학은 그 어느때보다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저자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이 '문학사적'인 중세이야기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두 가지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나침반을 이용해서 먼 바다에서 오랜 기간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나침반은 11세기 중국에서 맨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후 아랍을 거쳐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이어서 유럽에서 더욱 개선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제노바 상인들이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p. 325)

3부 중세말기 에서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연 배경이 서술된다. 페스트로 인구가 줄고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과 콘스탄니노플의 함락등 여전히 유럽대륙엔 전운이 가득했지만, 무역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갔고 그덕에 생겨난 경제적 윤택함은 르네상스를 경제적 필요성은 신대륙탐험을 주도했다. 이제 유럽은 유럽대륙을 벗어나 지구전체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근대의 시작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적절한 시각적 자료와 술술 읽히는 이야기체는 중세를 역사가 아닌 이야기로 접근하게 해줌으로써 쉽고 재밌게 중세를 경험하게 해준다. 역사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도 아니고 문화사라고 하기보단 (부분적)문학사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중세역사를 시작하는 막막함을 가볍게 해준 이 책을 읽고나니 한결 마음편하게 중세의 또다른 책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읽기의 목표는 하나의 작품을 소진하는 데 있지 않고, 또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촉발하는 데 있다' 라는 문장을 인상깊게 봤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중세역사 읽기의 마중물로 제역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쉽고 재밌는 역사이야기책은 늘 두팔벌려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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