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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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우리 시대의 공적 지식인

도정일이 던지는 '뜨거운 실천이성'의 인문 에세이

이 책의 특징은 표지와 띠지 문구에 거의 다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하며 후마니타스칼리지 설립, '책읽는 사회문화재단' 설립,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및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등을 주도해온 저자의 '실천이성'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다시말해 '만인의 인문학'이었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에 주목한다. 산다는 것의 예술은 예술을 하면서 사는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시학의 눈으로 인간을 보고 삶을 말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인생살이 자체의 예술, 혹은 삶이 가진 예술적·시적 차원을 중히 여기는 일이다. 테크네의 존재이기보다는 '아르스(예술)'의 존재일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p. 15)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만인의 시학' '만인의 인문학'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 묶어 놓은 일종의 칼럼집이다. 책의 뒤에 보면 '수록 원고 발표 지면 및 연도' 가 정리되어 있는데, 주제별로 묶느라 그랬는지 글쓴 순서는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른 시기에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일 경우 글의 주제가 비슷하면 반복되는 내용이 있기 마련이고, 때론 왜 이런 주제의 글을 썼는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필요할 수도 있는지라, 그저 묶어놓기만 한 구성에서 끊어지는 맥락은 어쩔수 없다 하겠다.

저자에게 인문학의 핵심은 아마도 '독서'와 '미학적 삶'인듯 하다. '읽기의 목표는 하나의 작품을 소진하는 데 있지 않고, 또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촉발하는 데 있다.(p. 14)'는 저자의 책읽는 방식에 공감하면서도 삶이 그렇게 예술적이기만 할순 없는건데 싶어서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헤라클레이토스, 아레테, 테크네 등의 고대그리스 단어들을 접할때마다 인문학 책은 왜 항상 고대그리스를 소환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강좌라던가 고전읽기 같은 경우도 늘 고대그리스에서 출발하곤 한다. 저자는 '테크네의 존재이기보다는 'ars'(예술)의 존재일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p. 30)'며 인문학의 시학을 펼친다. '시학'자체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시키는 단어이기는 하다. 도대체 인문학은 왜 고대그리스적이어야 하는가...

인간과 세계의 상상적 연결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뮈토스(신화)'는 고전철학 시대에는 세계에 대한 합리적·이성적 설명으로서 '로고스'와 충돌하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과학'에 밀려난다. 근대는 신화가 빛을 잃었던 시대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방식이 근원적으로 신화적이라 여기는 점,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 짓기가 근본적으로 상상적이라는 점, 역사 자체가 '뮈토스'의 범주라는 점 등이 인식되면서 신화는 현대에 들어와 비상한 학문적·대중적 관심 영역이 된다. (중략) 그것은 인간세계의 제도, 풍습, 관행, 가치, 사회적 위계구조, 현상질서 등을 정당화하고 현실모순을 상상적으로 해소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p. 95) 현대는 인간의 어느 시대 못지않게 이데올로기로 뒤덮이고 이데올로기로 지탱되는 '신화의 시대'이다. 신화의 작동은 살아있다. (p. 96)

신화의 작동이 살아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여전히 인문학 책에 즐겨 담기는 소재가 고대의 신화 들인 것을 보면... '공상과학소설장르를 품격있는 소설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 미국작가 어슐러 르 귄(p. 104)' 의 판타지도 신화적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저자의 언급을 보며 가장 미래적인 소설이라 불리는 판타지 SF 소설에서 고대신화가 얼마나 자주 이용되는지 문득 생각해본다. 이데올로기는 그렇다쳐도 소설에서 '신화의 작동'이 살아있음은 분명하다.

브루노 프레이의 진단은 '돈보다 민주주의가 행복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동체를 함께 일구고, 운명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자율성'이다. (중략) 로버트 퍼트넘은 '웰빙'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적 덕목, 연결망, 공동체의 안전 같은 무형의 '사회자본'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이런 주장과 경제학자들의 진단 사이에는 상당한 친연성이 있다. (p. 161)

서양은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한 텍스트인 기독교 경전에다 2000년 넘게 유지되고 부단히 생산되어 온 각종의 세속적 텍스트(고전)들을 갖고 있다. (p. 175) 우리는 말하자면 텍스트가 없는 사회에 속한다. 한 사회가 반드시 강한 텍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텍스트는 변화의 개입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닫힌 사회를 가져올 수 있고 배타성, 독선, 진리 독점주의로 인한 폭력의 근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양적 근대화는 모든 신성한 텍스트들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세속적 고전들에서도 그 진리성을 박탈하는 이른바 '탈신성화와 해체'의 충동을 갖고 있다. 이 근대적 충동이 보편화되면서 세계의 여러 전통적 텍스트사회들은 텍스트 없는 사회로 이행하고, '텍스트 없음'이 오히려 근대화를 성취한 열린 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근대화의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강한 텍스트들이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는 반면, 그 근대화를 제대로 성취하지도 못한 나라들(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실종되고 그로 인한 가치 혼란과 정신적 고통은 또 그것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 176) 어떤 점에서, 전통적 텍스트 사회들을 와해시키고 '열린 사회'론의 이데올로기적 동원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쪽은 서양이다. (p. 177)

민주주의의 태동을 고대그리스사회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도시국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잘한 도시국가들은 지금처럼 대형국가체제로 통합되지 못했다. 그 민주주의가 지금의 거대국가에 맞는 민주주의라고 할순 없을 것이다. 텍스트! 중요하다. 하지만 그 텍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성화화 탈신성화 양쪽 모두에게 이용되어 왔다. 결국 핵심은 민주주의건 고전이건 간에 '서양중심주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인문학은 서양인문학을 논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고대그리스를 소환하곤 하는 것인가 보다.

텍스트를 가진 사회가 되기 위해선 우선 텍스트의 선정, 선정을 위한 토론, 현대적 읽기를 안내할 방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p. 178)

심심하면 인문학 열풍이 불곤 하는 것 같다. 그때마다 아쉽곤 했다. 인문학에 우리것 남의것 굳이 따질 필요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쪽으로만 편중되는 것은 좀... 우리에게 고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국경선은 세계2차대전 이후 정해진 것이고 한 곳에서 5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온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우리의 인문학을 찾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저자에 의하면 '후마니타스'라는 말은 로마 시대의 키케로가 '문명을 만드는 인간'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인간이 문명을 만든다는 것은 굉징히 인간중심주의적이다. 인간이 문명도 만들고 다른 것도 만들고 그렇게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수 있는 것 처럼 시대는 변화해 왔다. 인문학이란 어쩌면 이러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안경'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나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인문학의 질문은 이제 어쩌면 탈인간중심주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적 안경'을 쓰고도 인문학을 제대로 못 읽겠는데 때로는 그 안경을 벗고 다른 관점으로도 봐야하니 여전히 인문학은 어려운 것 같다. 이 어려운 인문학을 자연스러운 흐름을 잡아 한권의 완결된 책으로 새로 써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만인을 위한위한 인문학 이라는 커다란 얼개에 숭숭 뚫린 구멍을 메꾸려면 또다른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할것 같다. 하긴 뭐 한권으로 인문학을 어찌 다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인문학도 인간도 평생 공부해야할 숙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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