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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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의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태운 문학에의 열정, 종이와 붓이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명주실을 뽑아내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써내려갔던 그의 시는 영혼의 부르짖음이었다. - 작가의 말 中 -

허초희 라는 이름도 난설헌 이라는 호도 마음에 드는 단어들이었다. 단어에서 느껴지는 인물의 이미지가 이렇게 선명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라는 작품을 직접 읽기 전에 '시어'의 느낌이 온전히 전해지는 그런 이름같았달까... 조선시대의 '여류00'라는 수식어를 달만한 인물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말고는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하지만 두 인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큰 대조를 이룬다. 왜일까?

허난설헌에 대한 삶을 소설로 읽은것이 이 책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 읽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리커버 에디션'이라는 홍보문구를 흘려 읽고 순정만화 같은 표지에 홀려 집어든 소설을 읽다보니 드는 기시감... 뭐지? 싶어 그제야 검색해보니 아차차 '난설헌' 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는 한 명뿐이었다. 읽었던 책을 제목이라도 메모에 남겨놓는 편이라 찾아보니 2013년에 읽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은 것이 실수였으려나;;; 같은 작품을 두번 읽게 되다니;;; 왠만해선 같은 책을 두번 읽지 않는 편인데 어쩌다보니 두번 읽게 된 소설... 이것도 인연이려나~

언뜻언뜻 줄거리와 분위기만 떠오를뿐 9년만에 다시 읽는 작품의 문체는 새롭게 다가왔다. 전에도 이랬던가 싶고 ^^;;;

다시 읽는 것을 알고 읽어서 그런지 이번엔 작품의 주요 서사 보다는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 스토리에 포옥 빠졌었던것 같은데 이번엔 그렇게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이 내가 변해서일까 기억의 문제일까 세월의 간극때문일까...

같은 또래들보다 몇 배나 트였고 조숙하다고 해도 시집가는 새색시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일터다. 초희가 초조해하는 심정을 우실은 십분 이해했다. 안동 김씨 집안은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문가다. 그러나 시댁의 높은 지체나 문벌보다 결혼의 당사자인 신랑 김성립에 대한 이런저런 헛소문에 신경을 안 끄려야 한 쓸 수가 없다. 게다가 초희의 시어머니 될 송씨가 워낙에 앙칼져 종년들 벌주기로 간장독에 구겨 박는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우실은 공연한 입질이겠거니 애써 밀쳐냈다. (p. 72)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만 조심하고 또 조신하면 되지 않겠니" (p. 73)

난설헌의 허씨 집안은 당대의 문장가 집안이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딸에게도 책을 읽히고 시를 짓게 하는 것을 즐기는 가풍이었다. 그렇게 고이 기른 딸을 열다섯에 시집보낸 집안은 당대의 명문가 안동김씨 일족이라는 것 말고는 볼게 없는 집이었다. 가세도 허씨집안 보다 못했고 남편감은 몇년째 과거에 떨어지면서도 기방출입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인물인데다가 시어머니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더욱 박했다. 그런 집안과 남편감이 딸에게 정녕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딸의 지적 능력을 제대로 인정했다면 (당시 조선사회가 여성으로서의 활동이 어려운 시대였다 했을지라도) 사람대 사람으로 딸의 인생을 엮어주었어야 옳았다. 집안대 집안으로 딸을 옭아맬 것이 아니라. 하지만 결국 난설헌의 아버지는 딸을 집안의 여자로서만 소유물로서만 여겼던 셈이다. 소설에서는 내내 시어머니 송씨와 남편 김성립에 대해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애초에 그런집에 시집을 보낸 아비 허엽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 않은지. 딸의 숨통을 트이게 키워놓고는 갑자기 목줄을 걸어 그 목줄을 사나운 주인에게 건네준 것이니 그 목줄이 어찌 숨통을 조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천재란 필연적으로 자신이 속한 시대와 불화하기 십상이라, 이걸 명심함이 좋을 듯 하이 (p. 226)

허난설헌에게 한 대사는 아니지만 허초희에게도 해당하는 대사였다. 허엽의 첫째부인 자손 말고 둘째부인의 자손인 허봉, 허초희, 허균 삼남매는 셋다 그 시대의 천재라 여겨질만한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셋다 비운의 명으로 스러졌다. 특히나 억압받던 여성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던 허초희의의 삶은 더욱 극적인 비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난설헌은 허초희 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신사임당의 이름이 '인선'이라는 설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없다고 한다. 이름도 없이 호 라도 전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여성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렸을때 호적등본인가 하는 서류에서 할머니 성명란에 '한氏'라고만 기재되어 있어 성씨말고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봤었는데 집안 어른 중 누구도 대답하지 못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결혼전에 불리던 호칭이 명칭이 이름이 있었을텐데 왜 아무도 모르는 건가;;; 족보에도 그저 '한씨' 였다...

작품 뒤에는 '혼불문학상 심사평'이 있다. 이 소설은 혼불문학상 1회 수상작이다. 그런데 그 수상년도는 2011년 이고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도 2011년 버전이다. 리커버 판에 굳이 예전의 혼불문학상에서 떨어진 작품들과 비교한 심사평을 그대로 실었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수상에 대한 작가의 소회가 아닌 리커버판에 대한 새로운 '작가의 말'을 실을 수는 없었는지 아쉽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소설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끊어지는 맥이 도드라져 보이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서술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설헌'은 소설적으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분명 픽션이지만 마치 역사처럼 읽히는 이 소설이 주는 처연하고 처연하고 또 처연한 난설헌의 삶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슴저려하며 읽어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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