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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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유독 가혹하다 느껴질 때 읽는 10편의 인생 단편!

대문호 톨스토이가 평생 구하다가 발견한 "내가 사는 이유"

 

톨스토이의 단편집인 이 책은 '사람은 무엇으로 하는가' 라는 제목 자체가 울림을 주는 단편을 필두로 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짧은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그냥 동화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책 속의 단편들은 기존의 어린이 동화로 나온 것들도 여럿이다. 교훈적인 내용을 당시의 무지한 농민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도록 쓴 것이기에 동화형식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종교적이지만 톨스토이가 러시아정교에서 파문당할만큼 당대의 종교와는 차별성 있는 종교관을 가졌기에 주류 종교에서는 조금 비껴나있기도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제화공 세묜은 추워지는 날씨에 변변한 겨울외투조차 없다. 받아야 할 외상값을 수금하여 외투를 사고자 나선 길에 외상값은 받지도 못하고 교회옆에 쓰러진 젊은 남자를 구조하여 집에 데려오게 된다. 아내인 마뜨료나는 새외투를 사오기는 커녕 식객과 함께 온것에 대해 남편에게 화를 퍼붓는다. 하지만, "마뜨료나, 자네 속에는 하나님이 없는가?" (p. 20) 라는 남편의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져 집에 남은 마지막 빵으로 저녁을 차린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모를 젊은 남자 미하일라는 세묜에게 제화기술을 배워 세묜보다 더 뛰어난 제화공이 됨으로써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어가며 몇년동안 가족처럼 지낸다. 그러다 미하일라가 세번째 미소를 짓던날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한다.

"저는 징벌을 받은 중이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제게서 빛이 나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세 마디를 깨달았기 때문에 세 번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 번에 걸쳐 깨달았습니다. 한 번은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불쌍히 여겼을 때 깨달았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미소를 지었던 겁니다. 부자가 장화를 주문했을 때 저는 다른 말씀을 깨달아서 두 번째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소녀들을 보았을 때,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을 깨닫고는 세 번째로 미소를 지은 겁니다." (p. 35)

미하일라는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리라. 그것을 알게 되거든, 하늘로 올라오너라' (p. 40) 라는 말씀을 듣고 맨몸으로 인간세상에 떨어진 천사였다. 그리고 세묜 가족과 여러 해 동안 함께 살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며 세가지의 깨달음을 모두 얻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한 도시에 제화공 마르띤 아브제이치가 살았다. 그는 창문이 하나만 있는 헛간 지하방에 살았는데, 창은 거리로 나 있어서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마르띤은 그 장화로 사람을 알아보았다. (중략) 아브제이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자기 영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p. 43)

마르띤은 넉넉하진 않아도 가족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던 성실한 제화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불행이 연속으로 닥쳤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세상을 일찍 떠났다. 마르띤은 신에게 불만스러웠다. 방황하던 어느날 순례자와 대화를 하게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p. 44) 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지' 라고 순례자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건 어떤 건가?'(p. 45) 그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에 마르띤을 매일 성경을 읽게 되고 어느날 '마르띤, 내일 거리를 보라. 내가 오리라'(p. 47) 하는 음성을 듣는다. 다음날 창밖을 유심히 보던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노인, 굶주리고 갈곳없는 아기엄마, 사과를 훔치려던 소년과 사과파는 노파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구원자를 대접했음을 깨닫게 된다.

『두 노인』

"친구! 살면서 죄를 짓는 것 말고는 속상할 일이 하나도 없네. 영혼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

"그것도 그렇군. 그래도 집 안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맘으 불편하네"

"우리 영혼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더 나쁜 거라네. 약속했으니 함께 가세나! 정말로 함께 가세나!" (p. 63)

 

두 노인은 한동네 사는 친구다. 예루살렘으로 기도하러 가는 것이 소원이던 두 사람은 드디어 길을 나서기로 한다. 한 사람은 부유한 농부이나 집안 모든 일을 자신이 주도하지 않으면 걱정되는 예핌이고 한 사람은 가난한 농부이지만 가족을 믿고 마음이 늘 편안한 옐리세이 였다. 각자의 처지껏 떠날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난 두 노인은 중간에 헤어지게 된다. 예핌은 친구를 기다며 찾으며 예루살렘 순례를 마쳤으나 옐리세이는 잠시 물마시러 들른 농가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차마 떠날 수 없어 도와주다보니 여비가 떨어져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옐리세이의 뒷모습을 예핌은 예루살렘 순례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으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보면 친구는 없었다.

그들은 그의 말과 행동을, 그러니까 그가 어디에 앉았는지 어디서 잤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앞다투어 전했다. 밤이 되자, 주인 농부가 말을 타고 와서 역시 마찬가지로 엘리세이에 대해 자기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죄 가운데 죽었을 겁니다. (중략) 이전에는 짐승처럼 살던 우리를 그분이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이들은 예핌을 잘 먹이고, 잘 마시게 한 후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자신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p. 87)

예루살렘에서 온갖 성지를 둘러보며 그리스도가 말과 행동을, 어디에 앉았고 어디서 잤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를, 누구에게 무슨말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고 듣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농가에서 예핌은 후한 대접을 받으며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 가족들은 떠나기전보다 더 자신을 원망하며 불평하고 있었고 엘리세이는 떠나기전보다 더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엘리세이를 보며 예핌은 말한다.

"발만 갔다 온 건지, 영혼도 다녀온 건지, 아니면 다른 누가 갔다 온 건지..." (p. 90)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

얘야, 너는 아무것도보지 못하고 있어. 원한이 네 눈을 감겨버렸어. 다른 사람의 죄는 눈앞에 있어 잘 보이는데, 네 죄는 등 뒤에 있어 못 보는 거야. 너는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는데, 혼자만 잘못을 저질렀다면 싸움이 나진 않았겠지.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거냐? 싸움은 둘 사이에 나는 거야. 상대방 잘못은 보이는데, 자기 잘못은 보지 못하는구나. 그 사람 혼자만 나쁜 짓을 하고, 너는 착하게 굴었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p. 101)

사이좋은 이웃사촌이었던 이반네와 가브릴로네는 사소한 일로 다툼이 생기자 큰 불화로 번져 몇년간 서로를 비난하며 앙숙이 되어버렸다. 그런 두 집안을 보며 이반의 아버지는 이반을 타이르지만 이반은 아버지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러다 큰 화재가 발생하고 아버지가 다시한번 유언으로 남긴 말을 되새기며 두 집안은 마침내 화해하게 된다.

『촛불』

반짝이는데 꼭 불빛 같은 거에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오 꼬뻬이까짜리 양초가 버팀목에 붙어서 타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그자는 새 옷을 입고 걸어 다니며 땅을 일구면서 부활찬송을 부르는 겁니다. 몸을 돌리고 흔들어대는데도 양초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흔들어대고 곤봉을 바꿔 끼우고 쟁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데도 여전히 양초는 꺼지지 않는 겁니다. (p. 125)

이번에 지주가 새로 보낸 관리인은 너무나 악독한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일을 시키고 트집을 잡아 매질을 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부려먹으면서 권력을 휘둘렀다. 마을 사람들은 죽이고 싶을 만큼 관리인이 원망스러웠으나 한사람 미하일로 만이 마을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다독인다. 관리인이 마을사람들을 감시하러 보냈던 촌장은 오직 미하일로 만이 관리인을 욕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그의 양초 이야기를 한다. 관리인은 '그자가 나를 이겼어! 이제 내 차례가 된거야!' '난 이제 끝났어. 그자가 나를 이긴거야' 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날이 최후의 날이 되었다.

『대자』(代子)

주께서 내게 아이를 줬다오. 아이는 어릴 때는 기쁨이요, 나이 먹어서는 위로요, 죽은 후에는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는 존재지요. 그런데 제가 가난한 탓에 우리 마을에서는 대부를 해주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군요. 그래서 다른 마을로 대부를 찾으러 갑니다. (p. 131)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탄생했을때 농부는 마을에서 대자를 구하지 못해 떠난 길에서 나그네를 만났는데 사정을 들은 나그네가 대부가 되어주겠다 한다. 대자가 열살이 되었을때 대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집이 어딘지 누구인지 물었으나 아버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여 대자는 대부를 찾아 길을 떠났다. 길에서 만난 나그네는 자신이 대부라고 하며 집을 알려준다. 대부의 집에서 지내게 된 대자는 대부가 열지 말라는 명을 어기고 어떤 방문을 열게 되고 그 방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고 그로인해 벌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녜게 이제 30년의 세월을 주마. 세상에 가서 강도의 죗값을 치르렴. 만일 죗값을 치르지 못하면, 네가 그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제가 그 사람의 죗값을 어떻게 치르지요?

세상에 네가 가져다준 만큼 악을 없앤다면 너와 강도의 죗값을 모두 치른 셈이다.

어떻게 세상에서 악을 없애지요? (p. 140)

 

대자는 마을을 지나며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해결해 주며 은수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으나 세 개의 숯에서 싹이 날때까지 입으로 물을 퍼날르라는 말만 남기고 은수자는 세상을 떠난다. 대자는 은수자의 집에서 고행인듯 수행인듯 살면서 강도를 만나고 그와의 인연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의 마음에 불이 일자,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불이 일었던 것이다. 대자는 이제 죄를 갚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뻤다.'(p. 153)

『바보 이반』

아주 옛날 옛적, 한 왕국에 어떤 부자 농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자 농부에게는 아들 셋, 그러니까 군인 세묜과 배불뚝이 따라스, 바보 이반이 있었고, 농아인 딸 말리니야를 슬하에 두었다. 군인인 세묜은 황제를 섬기기 위해 전쟁에 나가고, 베불뚝이 따라스는 장사를 하러 도시에 있는 상인에게 갔으며, 바보 이반은 누이와 집에 남아 등이 굽도록 땅을 일구고 있었다. (p. 157)

톨스토이가 동화처럼 쓴 단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마도 <바보 이반> 아 아닐까. 간추려진 동화로 읽었던 <바보 이반>과 원전 그대로 읽는 <바보 이반> 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바보이긴 하지만 멍청이는 아니었다고나 할까. 우직하고 뚝심있고 삶의 태도에 대해 올곧은 믿음이 있는 이반은 한 나라의 황제가 되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 변하지 않음이 이반의 나라에 퍼져서 모두가 이반처럼 살게 되었다. 모든 것을 망치려던 마귀조차 어쩌지 못할만큼 이반의 나라는 바보이반 다운 나라가 되었고 '돌아온 탕아'같은 그의 형들까지 모두 품어주었다.

"그렇게 하세요, 여기 사세요, 우리나라에는 모든 게 풍족해요" 다만 그의 왕국에서는 지켜야 할 풍습이 하나 있었다. 손에 굳은 살이 있는 사람은 식탁에 앉고, 없는 사람은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p. 191)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도시에 사는 언니와 시골에 사는 동생이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자기 자랑 남편 자랑을 한다. 자매의 대화를 들은 동생 남편 빠홈은 아내의 말에 동의하며 생각한다.

"저 말이 정말 맞는 말이네. 우리 형제는 어릴 때부터 이 땅을 파먹고 살아가느라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이 아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지. 한 가지 서러운 게 있다면, 땅이 적다는 거야! 땅만 충분하다면 나는 그 누구도, 악마도 두렵지 않아!" (p. 196)

땅만 있다면 악마도 남편을 유혹하지 못할 거라고 자랑했던 농부 아내의 말을 들은 악마는 '좋았어, 한번 겨뤄보자. 네게 땅을 많이 주마. 내가 땅으로 너를 취하겠어' 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 것인가?

악마의 계획인 줄은 꿈에도 모른채 농부는 조금씩 조끔씩 땅을 넓히기 시작한다. 이땅이면 될 줄알았는데 살다보니 저땅도 필요해지고 저땅을 얻고자 노력하는 중에 유목민의 땅을 엄청 싼값에 얻었다는 상인의 말을 듣고 그 마을을 찾아간다.

이게 무슨 측량이지요? 하루에? 그럼 몇 데샤티나가 되는 건가요?

그런 건 우리가 헤아릴 줄 모르네. 하루동안 다닌 땅이 손님 것이니, 그 가격이 천 루블 이라네

하루 동안 다닌 땅이라면 꽤 넓을 텐데요

모두 손님 거라네! 다만 한가지 약속을 하세. 만일 자네가 출발한 그 장소로 하루 안에 되돌아오지 못한다면, 손님 돈은 사라지는 거네 (p. 206)

 

유목민의 마을 촌장이 말한 땅값은 그야말로 헐값이었다. 그리고 측량법도 이상했다. 하지만 농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땅도, 땅을 살 수 있는 조건도. 농부는 아침일찍 일어나 촌장과 마을사람들을 깨워 땅을 측량하기 시작했다. 아침일찍부터 쉬지도 않고 걸었다. 걷고 뒤돌아보면서 그땅이 다 자신의 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걷다보면 여기도 저기도 좋은 땅이 널려 있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있었고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돌아온 그가 결국 차지하게 된 땅은 2미터 가량의 무덤자리 뿐이었다.

『노동과 죽음과 질병』 은 단 3페이지짜리 작품으로 인간의 삶의 태도에 대한 전설을 통해 인간에게 노동과 죽음과 질병이 필요해진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었으니 그 벌이 왜 내려지게 되었고 그 벌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세 가지 질문』 도 5페이지의 짧은 단편이지만 이야기로 풀어지다 보니 교훈조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느날 황제는 만일 그가 모든 일을 언제 시작할지, 또 어떤 사람과 일하고, 어떤 사람과 일하면 안 될지, 더 중요하게는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지를 항상 알 수 있다면 어떤 일에도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23)

현명하다고 할만한 모든 사람에게 물었으나 모두가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황제는 지혜롭다고 소문이 자자한 은수자에게 묻기로 결심했다. 평민만 만난다는 은수자를 만나기 위해 변복을 하고 은수자를 찾아가 세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은수자는 바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답을 기다리며 그를 돕다 보니 하루를 훌쩍 넘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들은 대답은,

기억하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시간에만 우리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네.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네. 우리는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도록 보냄을 받았기 때문이라네. (p. 227)

'지금, 여기' 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훈은 동양적 가르침과 비슷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지금, 여기' 라는 깨달음을 넘어 '선'을 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더욱 강조한다. 이 책속에 실린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다. '네 이웃에게 선을 행하라'

톨스토이는 네 개의 복음서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복음서>를 꾸미는데, 종교를 윤리학 체계로 만드는 과정에서 기독교 교리와 의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삼위일체론, 계시, 성모수태 및 그리스도의 부활, 기적 등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신약에서 우주론과 존재론을 삭제하고, 기적이 묘사된 모든 부분을 삭제한다. 또한 은총과 성령의 가르침은 인간 본성의 선한 것을 뿌리째 뒤흔드는 비도덕적 교리라고 비난하고 그 자체를 거부한다. 결국 그는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만다. (중략) 그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추출한 이 기독교적 윤리관을 평범한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구현하기 위해 작품의 색깔을 바꾼다. 더 쉽고 더 단순하고 더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체로 민중인 독자도 이해할 수 있는 동화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에 번역된 1881년 부터 1886년 사이에 쓰인 동화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윤리관과 무저항주의를 그대로 담은 작품들이다. 이 동화들에는 복음서 구절이 제사(題詞)로 제시되고 있다. (p. 233)

톨스토이는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윤리관은 내가 알고 있던 기독교적 윤리관과 조금은 달랐다. 러시아정교에서 파문당했다고는 하지만 원론적으로 보자면, 최근 읽었던 '마태복음' 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초기 예수의 혁명적 삶의 철학과 톨스토이의 종교관은 연결되어 보였다. 특정종교를 떠나 삶의 철학으로 보이는 톨스토이의 윤리관은 어찌어찌하면 니체의 철학과도 연결이 될 것 같아 보였다. 톨스토이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게 된 계기를 이 책에서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동화를 읽으면서 철학을 생각하게 되다니 내가 이상한건가 톨스토이가 잘 쓴건가 ㅎㅎㅎ

현대지성의 클래식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이 책에서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충실한 <해제> 다. 작품과 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긴 하나 톨스토이가 워낙 대문호이다보니 좀더 이해하고 싶어져서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았다. 모순적이지만 그 모순을 알기에 괴로워했던 지식인으로서의 톨스토이가 그의 고뇌가 보였다. 가볍게 읽고자 했던 이 얇은 책 한권이 톨스토이가 가졌던 인생의 고민을 느끼게 해주다니... 동화로 읽자면 쉬운 교훈으로 기억될 것이고 동화가 아닌 것으로 읽자면 삶의 진리를 담은 묵직함으로 기억될 책이었다.

톨스토이는 복음서 속 예수의 말씀을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행동강령으로 정리하여 이야기 안에 구현했다. 당대 혁명운동과 폭력성과 편협성을 보면서 진정한 변화는 개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됨을 역설했고, 영혼의 거듭남과 부활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인생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내가 사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묵직한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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