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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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 이 책은 3부작의 1편이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었다는 영화를 보기 전이지만 책이 나오기 전의 가제본으로 읽은 책이지만 가제본 표지를 크게 덮고 있는 남자 배우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뛰어넘는 또 한 번의 위험한 로맨스' 라는 홍보문구에서 대충 짐작을 하긴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정도일 줄이야' 를 연이어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벌써 5년째다. 죽었다가 살아난 거나 다름없다며 의사가 기적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의 꿈을 5년째 꾸고 있다. (p. 6)

마시모는 시칠리아를 기반으로 한 이탈리아 마피아의 가주이자 차세대 두목이다. 그리스조각 같은 완벽한 신체와 외모 그리고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이 남자에겐 당연히 여자도 많다. 하지만 총격사건 이후 한 여자의 꿈을 반복해서 꾸는 동안 그 여자를 그린 초상화를 집안 곳곳에 걸어둘 만큼 그녀에게 집착하게 된다.

원하는 건 뭐든 할 시간이 있는데,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니. 이제껏 호텔 업계라는 시궁창엥서 너무 오랫동안 굴러서 그런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세일즈 매니저 자리에 오르자마자 나는 돌연 일을 그만두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싹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스물아홉살에 번아웃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어쩌겠나. 이미 와버린걸. (p. 20)

라우라는 폴란드 작은 마을 출신이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빠르게 성공한 호텔리어였다. 하지만 번아웃으로 일을 쉬는 동안 애인과 그리고 친구 커플과 함께 이탈리아로 휴가여행을 떠나게 된다. 공항에서 마주친 검은 양복의 남자들 그리고 짙게 썬탠한 차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 라우라의 인생은 하룻밤 사이 격변을 맞게 된다.

밤공기는 더웠고, 난 취했다. 생일이 끝나가고 있는 지금, 어쩐지 모든 게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인도가 끝나는 곳에 이르자,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걸 깨닫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망할, 난 형편없는 길치다. (p. 48)

스물아홉번째 생일날이었는데, 애인은 신경쓰지도 않은채 자기일만 했고 친구커플도 무심했다. 라우라는 화가 난 나머지 일행과 함께 있던 호텔을 무작정 뛰어나와 거리를 헤매다 길을 잃고 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바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거야. 나도 공항에서 널 보기 전까지는 실제로 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자, 벽난로 위에 있는 그림을 봐" 난 남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렸다. 어떤 여자의 초상화였다. 저건, 내 얼굴이잖아. (p. 57)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마시모가 찾아 헤매던 여자는 바로 라우라 였다. 현재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여자 라우라. 마시모는 라우라에게 제안을 한다.

"라우라, 넌 틀림없이 내 거라는 뜻이야"

"난 누구의 것도 아니야!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당신은 날 가질 수 없어! 사람을 납치해놓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야!"

"알아.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주려고. 나와 사랑에 빠질 기회를. 네 의지대로 내 곁에 머물고 싶어 할 기회를 주지. 강요하지 않을 거야" (p. 58)

라우라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당이 안 된다. 하지만 라우라의 성격은 만만치 않았기에 마시모에게 맞부딛혀 보지만 마시모가 내민 사진들을 보고 힘이 풀려 버린다.

"폴란드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발 날 집에 보내줘요"

"안타깝게도 앞으로 365일 동안은 그럴 수 없어. 1년간 날 위해 희생해줘야겠어. 네가 나를 사랑하도록 온 힘을 다해 뭐든 할 거야. 만약 네 다음 생일까지도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보내줄게. 오해하지 마. 이건 제안이 아니야. 넌 거부할 수 없어. 이건 통보야.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알려주는 것뿐이야. 물론 난 널 건드리지 않을 거야. 네가 원치 않는 일은 안 해. 네 의사에 반하는 일을 시키지도 않을 거고. 혹시 무서워할까 봐 말하자면, 널 강간하지 않을 거라고. 넌 내 천사니까. 너를 이 세상 누구보다 존중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는 내 목숨만큼 소중하니까." (p. 63, 64)

궁전같은 저택에서 모든 것을 가진 남자가 게다가 외모 또한 멋지기까지 한 남자가 자신을 납치해놓고는 1년간 옆에 있어야 한다고 통보한다. 다만, 그 시간 동안은 목숨만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에 빠지게 될 것임을 자신한다는 것이 납치를 납치가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는 스릴러적 로맨스 상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저택 마당에서 배신한 조직원을 총 한방으로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마피아 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남자였다. 완벽한 내 이상형이었다. 검은 눈동자와 짙은 색 머리카락, 커다랗고 도톰한 입술, 내 뺨을 섬세하게 간지럽히는 밝은 색 수염까지. 몸매는 또 어떤가. 지금 내 엉덩이를 감싼 그의 길고 늘씬한 다리, 강한 근육질 팔, 몸에 딱 달라붙은 민소매 셔츠 너머로 보이는 넓은 가슴. (p. 73)

이 남자는 정말이지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온화한 야만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표현이 딱 맞는다. 위험하고, 거침없고, 반항을 용납하지 않지만 동시에 너무나 자상하고 섬세한 남자. 이 모든 점이 혼합된 이 남자는 무섭지만 매혹적이고, 그래서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p. 85)

라우라가 처한 상황은 분명 무섭고 공포스럽지만 라우라의 내면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섭고 공포스럽기엔 이 남자가 너무 매력적이다. 마시모 곁에 있게 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라우라는 이미 마시모라는 남자에게 흔들린다. 하이틴로맨스의 19금 버전 같은 이 소설의 가벼움은 라우라의 변신에도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그때 커다란 깨달음이 다가왔다. 이 상황과 싸울 게 뭐 있어? 뭐하러 도망쳐? 바르샤바에 가봤자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 잃을 것 역시 아무것도 없어. 내가 이제껏 가졌던 건 죄다 사라졌잖아. 지금 남은 선택지는 이 모험이 펼쳐지게 놔두는 것뿐이야. 이제 현실을 받아들일 때가 왔어, 라우라. 난 이렇게 생각하고서 일어섰다. (p. 97)

번아웃 상태였다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열정적인 라우라에게 번아웃으로 인한 퇴직이라는 설정은 365일간의 납치에 좀더 편한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한 포석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운명적 커플이었고 무엇보다 '성적' 결합에 있어서 그러했다. 이 소설의 포인트이자 주요 내용들은 두 사람의 속궁합 확인기라고나 할까.

앞으로 내 삶은 절대 평범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겠지. 말하자면 중간중간 포르노 장면이 곁들여진 마피아 영화 같은 삶이 될 것이다. (p. 341)

라우라의 표현처럼 이 소설은 중간중간 포르노가 곁들여진 마피아 영화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에선 어디에 더 방점을 두었을지 모르겠지만 원작 소설로 보자면 앞쪽에 더 치중한 작품인듯.

"와우, 썅, 네가 해준 이야기 무슨 스릴러 소설 같아. 그것도 19금 딱지 붙은 스릴러" (p. 353)

스릴러적으로 표현하려 애쓴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그렇기엔 19금 딱지가 너무 크게 붙은 이 소설은 욕설과 포르노와 자극적 로맨스가 결합된 킬링타임용 으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3부작 인줄 모르고 읽었던지라 한권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꽤 두툼한 소설을 읽고 났음에도 결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커플의 로맨스가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펼쳐질지는 다음 권에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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