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읽는 말 - 4가지 상징으로 풀어내는 대화의 심리학
로런스 앨리슨 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누구나 네 가지 방식으로 대화한다

대립의 티라노사우루스, 순응의 쥐, 통제의 사자, 협력의 원숭이

당신은 그리고 상대는 어떤 동물처럼 소통하는가

 

 

 

범죄심리학자 부부가 미국 정보기관의 의뢰로 완성한, 상대를 읽어내고 움직이는 심리 대화법이라니 궁금했다. 관계를 잘 맺는 것은 결국 대화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런저런 처세술 책들이 많긴 하지만 범죄를 밝혀내는 심리대화법 만큼 믿을만한 기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게 할만한 대화법이라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갈등정도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갖게 했다.

라포르는 자주 쓰면서도 정의하기 힘든 용어다. (중략) 성공적인 대인관계의 바탕에는 대부분 라포르가 있다. (p. 11) 재차 강조하지만, 고문은 필요악이 아니라 완벽한 무용지물임을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p. 15)

저자들은 라포르가 타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고 말한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와 관타나모 수용소 캠프 엑스레이의 고문사건으로 인해 '고강도 신문 기법' 같은 혹독한 기법은 거센 비난에 처했다. 효과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고문은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고 그렇게 핵심에 자리잡게 된 것이 '라포르' 형성이었다. 미국정보기관 에서는 저자들이 그동안 연구해온 라포르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라포르 형성에서 중요한 두 가지 측면을 다룬다. 1부에서는 솔직함, 공감, 자율성, 복기 등 라포르 전략의 네 가지 기본 원칙(HEAR 대화 원칙)을 소개한다. HEAR 대화 원칙은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키우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다. 2부에서는 의사소통 유형 네 가지를 다룬다. 우리는 각각의 의사소통 유형을 이를 상징하는 각 동물에 대입해 설명한다. (p. 17)

저자들은 라포르의 다양한 활용 범위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범죄에서의 신문기술로서 뿐만 아니라 더 넓혀서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이 책에서 그 활용법을 정리하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지고 다양한 사례와 함께 각 장마다 뒷부분에 핵심요약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술술 읽히면서도 깔끔한 책이었다.

라포르 전략이란 당신이 자리를 뜨자마자 사라지는 겉만 멀쩡한 단기성 속임수가 아니다. 상대방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렇다고 테러리스트와 친구가 되란 뜻은 아니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와 상관없이 존중, 존엄, 동정을 보일 때 진정한 라포르가 형성된다. (p. 20)

라포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종종 있었지만 자주 만나고 마음을 터놓고 그렇게 쌓인 친분 관계를 통해 범죄자의 신뢰를 얻은 후 자백을 받아내는 기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라포르가 형성된다고 해서 그것이 친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관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친밀한 사이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상에서 적용하려면 범죄자와의 사이에서 형성되는 라포르 보다는 친밀한 라포르가 형성되는 경우가 대다수 이긴 하지만 여하튼 좀 달랐다.

누군가와 라포르를 형성하는 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라포르는 정직과 공감에 기반한 의미 있는 관계를 뜻한다. 제대로 라포르를 형성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그게 아무리 끔찍한 일이더라도 말이다. (p. 34)

'당신 말에 집중하고 있어요!' 중요한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 이었다.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집중해서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신뢰감 있는 태도로 보여주기만 해도 상대가 범죄자이든 사이나쁜 친구이든 간에 그 태도만으로도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라포르는 다음 네 가지 핵심 기초 위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이를 HEAR 대화 원칙 이라고 부른다.

HEAR 대화 원칙

솔직함 Honesty 의도나 느낌을 객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공감 Empathy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를 이해한다.

자율성 Autonomy 상대방의 자유 의지와 선택을 보장한다.

복기 Reflection 대화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중요하고 유의미하고 전략적인 요소를 확인하고 되짚는다. (p. 49~50)

사실 나는 이 책의 실전전략인 2부의 4가지 동물로 표현한 대화법보다 기초원리라고 할 수 있는 1부의 4가지 원칙들이 더 유용하게 다가왔다. 저자들은 상황이 얼마나 적대적이건 불편하건 상관없이 이 4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키기만 하면 아무리 어그러지고 부정적인 관계일지라도 강하고 긍정적인 관계처럼 동일하게 이 원칙이 작동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말 뜻 그대로가 아닌 좀더 융통성 있는 활용법들을 추천한다. 솔직하지만 예의없지 않게 공감하지만 동정하지 않게 자율성을 주면서도 내권리를 인정받고 복기하는 것이 단순동어반복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공감은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과 별개다. 이건 공감이 아니다. 우리가 논의한 것처럼,진심어린 공감을 보이려면 상대방과 그 사람이 신경쓰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상대가 이슬람 국가 테러리스트든, 무장 강도든, 성범죄자든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의 동기, 가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게 꼭 그것들에 동의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판단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야 한다. (p. 85)

솔직함, 공감, 자율성, 복기 라는 4가지 원칙은 사실 경청의 기본토대다. 집중해서 듣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 이 기본적인 태도가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기에 일상에서도 수시로 관계트러블이 생기곤 한다. 무조건 수용도 아니고 무조건 거부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공감하는 것도 완전히 반대하는 것도 아닌 적절함, 이런 태도는 굉장히 오랜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들은 좀더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타인을 4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파악해봄으로써 적절한 응용법을 적용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른바 애니멀 서클이다.

이 도식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일종의 공식으로 활용하면 특정한 의사소통방식을 빠르게 떠올릴 수 있다. 모든 대인 관계는 대략 수직적 '권력' 과 수평적 '친밀감'에 기반한 규칙을 따른다. 사자의 지배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을 순종적인 쥐처럼 행동하도록 부추긴다. (중략) 이와 달리 순종적인 쥐의 행동은 지배적인 사자의 행동을 부추긴다. (p. 149) 수평축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의사소통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p. 150) 비슷하게,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강력하게, 원숭이 행동을 부른다. 협조적이고 다정하며 친근한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서 본능적으로 같은 행동을 끌어낸다. (중략) 인간은 관계를 맺을 때 대부분 이 네 가지 의사소통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한다. 상호작용을 이끌거나(사자) 따른다(쥐). 협조하거나(원숭이) 갈등을 겪는다(티라노사우르스). (중략) 권력의 역학을 파악하고 나면 서클 모델을 활용해서 상대가 원하는 당신의 서클상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p. 151)

어떤 상대냐에 따라서 적절한 나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전활용서에 가깝다. 148p. 에 있는 '인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애니멀 서클 모델' 은 간단하면서도 그럴 법 하다. 수직축 위에는 통제-사자 아래에는 순응-쥐 수평축에는 갈등-티라노사우르스 와 협력-원숭이 이렇게 십자 모양의 위아래 좌우로 간략하게 그려진 이 도표들을 보면서 상대방이 정확하게 이 4가지 타입으로 구분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4가지 유형의 사이 어딘가 있으면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또한 그때그때 적절하고 융통성있게 대응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타입에 대처 가능한가? 그또한 그렇지 않다. 그러니 일단 나의 상징적 동물을 파악해보는 것이 필요할텐데 171p. 에 '나의 서클'을 해석할 수 있는 설문과 점수에 따른 해석이 있으니 한번 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내가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내가 할수있는 '정도'를 파악한다는 건 늘 필요한 법이다.

'이게 내 방식이야. 상대방이 알아서 대처해야 할 거야' 하고 마음먹어 버리면, 인간관계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셈이 된다. 기술을 더 확장할 수록 이점도 더 많아진다. 대인 유연성은 정서지능과 공감력과도 관련이 있다. (p. 304)

저자들은 4가지 동물타입별 사례들을 풀어놓으면서 이 네가지 동물 유형을 자유자재로 쓰려면 유능성, 민감성, 융통성 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가정을 통해 실전연습을 해볼 것을 제안한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사실 대화가 안될래야 안될수가 없다. 중요한건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으로 우리는 모두에게 뭔가를 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하건 기존 관계를 더 깊이 하려고 하건, 이 책이 당신이 라포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 책으로 우리는 대인 기술의 기준을 세우고, 우리 모두가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혹은 -현실과 가상 모두의 - 공동체 안에서 이 원칙을 지키길 바란다. (p. 332) 애니멀 서클을 이해하면 나쁜 행동을 피하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긍정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p. 333) 이 모든 걸 항상, 그리고 상호작용을 하는 모든 경우에 기억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중략) 그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예전 버릇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계속 노력하면 거기에 맞는 보상을 얻을 뿐만 아니라 실천도 더 쉬워지고 덜 수고스러울 것이다. 명심하라. 당신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함께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p. 336)

아는만큼 행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야 일단 알아놓기라도 하는게 좋다는 건 아니까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내며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저자들의 기법은 응용하자고 들면 거의 모든 대화에 응용할 수도 있고, 읽고 넘기자면 그렇고그런 대화법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대화법을 잘 활용하면 '이 세상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그건 분명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누구나 다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나의 대화법이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한번 시도해볼법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