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심리학으로 말하다 3
게리 W. 우드 지음, 한혜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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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심리학으로 말하다]는 '심리학으로 말하다' 시리즈의 한 편으로, 일상적인 이해, 대중심리학, 학술 저서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저술된 비판적 입문서이다. (p. 8) 이 책에서 젠더라는 개념에 숨겨진 중요한 가정들을 다루고, 몇 가지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며,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많은 탐구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p. 9)

이 책은 '심리학으로 말하다' 시리즈의 3번째 책이라고 한다. 음모론을 시작으로 신뢰, 젠더, 섹스, 다이어트, 패션, 학교폭력, 일터, 퍼포먼스, 은퇴, 셀러브리티, 음악, 애도, 중독, 운전 이렇게 15가지 주제가 번역 혹은 번역될 예정인 듯 하다. 책 사이즈가 작고 얇은 편인데다 '입문서' 라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심리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리학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성姓과 젠더는 정체성의 근본 구성단위로서 우리의 관점을 형성하고, 이러한 관점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는 사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의 일부인 우리 자신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p. 14) '젠더'는 생물학적 성을 사회문화적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생물학적 특징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 구별이며, '남성적'과 '여성적'은 젠더에 따른 구별이다. (p. 15)

세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각자가 지닌 가치관, 세계관 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한 개인들의 소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는 것이 아마도 '심리' 아닐까. 그런데 '심리'는 타고나는 부분과 자라면서 변화및발달 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젠더' 구분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저자는 성별이 보는 사람의 생각에 달린 것이라고 말한다.

'X정자'는 XX(여자), 'Y정자'는 XY(남자)를 만들어낸다. Y 염색체의 일부 유전자는 X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자가 더 유전병에 걸리기 쉽다. 여자의 경우에는 비정형 유전자를 양쪽 부모 모두에게서 물려받아야만 X 염색체 두 개가 모두 영향을 받아 질병에 걸리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영향을 받게 되는 X염색체가 한 개밖에 없다. 따라서 염색체 측면에서 본다면 '남자'는 더 취약한 성이며, 이는 전통적인 남성중심적 관점과 상충한다. (P. 29) 배아는 자연스럽게 여성 생식계통으로 발달한다. 생물학적 작용에 의해 남자를 만들라는 지시가 없는한 여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음경은 음핵이 확대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P. 31) 생물학적 성을 비교해보면, 호르몬은 유형보다는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며, 남성과 여성이 분비하는 호르몬의 숫자와 범위는 사실상 동일하다. (P. 32)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뚜렷이 구분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로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는 생물학적 구분이 되지 않는 성의 탄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 심리학에서 여자는 남자에 비해 결핍과 부족의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염색체측면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취약하고 성기구분에 있어 남성의 성기가 여성에게 없는 것이 아니며 호르몬에 있어서도 구성에는 차이가 없었다. 호르몬에 성적 구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두 성으로의 구분보다는 개개인별 호르몬의 정도가 다 다르다는 다양성으로 성의 구분을 확장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정치가 가시적인 전문 용어 싸움처럼 되어버렸다. 모든 정체성과 성 소수자 단체를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인 용어나, 더 중요하게는, 모두가 동의하는 용어는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P. 50)

이 책도 초반에 '젠더'란 무엇인가로 시작했듯이 어떤 분야이든 가장 기초는 '정의'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용어 합의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트랜스젠더, 입소젠더, 에이젠더, 젠더퀴어, 시스젠더... 그 어떤 용어도 아직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지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성의 다양성은 더 많은 측면에서 확인되어지고 있는 듯 하다. 아직 용어도 없는데 가짓수는 자꾸 늘어가는 형편이랄까. 나와 다른 성에 대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정불변의 구성체가 아닌 '불분명한 근사치'와 모호함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젠더는 명확하지 않은 발판을 토대로 하므로 다양한 변이와 해석이 가능하다.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명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젠더가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개념에서,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P. 63)

세상은 이분법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객관식이 4지선다에서 5지선다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늘어가다가 모든 문제가 다 주관식으로 풀어야할 상황이 되버린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떤 조사를 할때 남성인지 여성인지 의 두가지 선택란에서 골라 체크를 하곤 한다. 심리학 책들도 많은 경우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뚜렷이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중 심리학 서적들은 젠더 역할 고정관념을 확고하게 고수한다. (P. 78) 우선 지나치게 단순화딘 '두 개의 두뇌'라는 용어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의 두뇌는 한 개이고, 일부 특수화딘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반구와 좌반구는 광범위하게 상호 교류한다.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최근 연구에서는 엄격하게 편향된 두뇌 유형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연구 결과는 머리기사에 실리지 않았다. 젠더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대중 미디어에서 최신 이론과 연구는 고정관념에 부합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는'것에 미려 무시된다. (P. 79) 증거를 바탕으로 '성별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는 종종 '정치적 올바름이 도를 지나쳤다'라는 명목으로 조소당하고 일축된다. (P. 80)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들이다. 남자는 이럴때 이렇고, 여자는 저럴때 저렇고. 이런 식의 분석은 두 성의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양분법의 기준이 될만한 근거들은 찾을 수 없었다. 염색체에서도 호르몬에서도 뇌연구에서도 확실하게 존재하리라고 믿었던 차이점 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동안의 고정관념들을 고수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 뇌에만 있는 기능이 있고 여자 뇌에만 있는 기능이 있다면 성적 이형화 개념이 성립한다. 연구팀은 남성성-여성성의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일관되게 나타나는 뇌의 특징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인간의 뇌는 남성 뇌와 여성 뇌의 뚜렷한 두 개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뇌의 대부분은 독자저긴 기능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구성된다. 거침없는 비평가로 잘 알려진 인지 신경과학자 지나리폰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접근법을 '신경학계의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P. 102) 연구결과들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한다. 남자와 여자는 차이점보다 유사성이 더 많다. 게다가 그 차이점은 질적인 것이 아닌 양적인 것에 있는 경우가 더 많다. (P. 111)

생물학적으로 가장 뚜렷하게 남성과 여성이 구분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생물학적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은 누구에게 왜 필요했던 것일까 라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남성의 관점에서 이해되며 그런 점에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중략) 젠더 역할 고정관념과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권력 구조 관계의 체계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P. 127) 젠더 고정관념이 세상을 구조화하는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중략) 모두 아울러 짧게 고찰한 결과들은 우리가 이분법 체계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필연성만으로는 젠더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들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요인을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P. 138)

뚜렷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눈 체계는 결국 상하로 나누기 위함이었다. 누군가는 위에 있고 누군가는 아래 있어야 했다. 수직적 관계에서는 뚜렷한 구분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직체계에 의문을 제기하자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인간이다 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그동안 모두 똑같은 인간은 아니어왔고 지금도 그러하기에 여기저기서 사회적 문제들이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중이다. 수평적 관계는 사실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인류는 다신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들에는 흥미로운 자취가 남아 있다. 성서의 창조론 이야기에서 하나님God은 '엘로힘Elohim'이라는 단어에서 번역된 것인데 이 단어는 사실 남성 명사의 복수형이다. '엘로힘'은 문자 그대로 '신들gods'을 뜻하며, 신들, 여신들, 그리고 여타 신성시되는 존재를 포함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는 인간 창조에 관해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략) 이 이야기는 원래 인간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양성이거나 간성이었다는 점을 내포한다. (p. 149) 첫째, 아담은 인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붉은 땅'을 뜻한다. 둘째, '쎌라tsela'라는 단어는 이 부분에서만 '갈비뼈'로 번역이 되었다. 성경에서는 '쎌라'라는 동일한 단어가 40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한쪽 면'으로 번역이 되었다. 따라서 갈비뼈가 아니라 '한쪽 면'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신들은 최초의 인간을 절반으로 나누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로써 더 평등주의적인 창조 신화가 만들어진다. (p. 150)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오역이라는 것은 수메르신화를 읽을때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은 단어를 딱 한곳에서만 다르게 번역했다는 것을 읽고나니 그 저의가 짐작이 되어 다시금 마음이 어두워진다. 본래의 뜻 그 의미 그대로만 전해졌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오역.. 왜곡이란 참...

하지만 '만약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면, 우리가 새로운 남자, 새로운 여자, 새로운 관계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젠더가 미치는 더 큰 영향들은 무엇일까? (p. 161)

점점 더 기존의 상식들이 흔들리고 점점 더 다양성이 다변화되는 가운데 용어조차 아직 정립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정리가 필요하긴 한 것일까? 연구가 생각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우리는 젠더라는 이야기에 맞춰 태어난다. 젠더는 '그냥 원래 그런 거야' 라는 이야기이다. 젠더는 상향식이면서 하향식이다. 생물학의 사회적 해석이며 가치의 사회적 표현, 즉 '자연계의 질서'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 남성중심주의, 권력 이 모두가 제한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작용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도전은 조롱을 당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불길하게 들리겠지만,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p. 171) 새로운 젠더 심리학은 개인적, 사회적, 심리적 편견을 배제한 젠더화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해 인간의 특성과 특징을 재평가하고, 계층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관점을 넘어설 다른 방안을 고찰할 것이다. (p. 183)

기존에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비정상인 것이었다며 원래의 태초의 정상적인 것들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일리는 있지만 너무 포괄적이라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과연 가능할것인가...

이분법의 부정적 측면은, 세상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다르지만 평등한 관점'은 지나친 포부일까? 우리는 현실적으로 낡은 체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새로운 체계,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떨까?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젠더 체계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대중 심리학적 자기 계발서는 젠더 체계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면 우리는 삶의 부조리를 비웃으며 현 상황을 고수해야 할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제로섬 게임에 갇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젠더 역할 고정관념의 포로인가? (p. 187) 젠더는 되는 것이자 속하는 것이다.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이면서 사회와의 관계이다. 따라서 젠더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재평가하고 재협상하고 재천명해야 하며,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 (p. 188)

'심리학으로 말하다 - 젠더' 라는 책 제목을 봤을땐 그저 여성과 남성의 심리를 각각 이해할 수 있는 팁을 주는 그런 심리학대중서 겠거니 예상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의 책이었다. 이분법적 구분 자체를 문제시삼는 것으로 시작하는 책이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어떤 뚜렷한 지침이나 안내는 없는 책이었다. 유일한 해법 제시격인 결말 역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결국 질문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이 책이 과연 그동안 쌓아져 온 남녀구분적 심리학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질문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라.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p. 190)

축하인지 아닐지는 읽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이 마지막 문장이 좀 후덜덜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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