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막부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해지는 압력때문에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반대여론이 들끓자 천황의 입을 빌어 무마시키려 했으나 왠걸 천황이 반대의견을 냈다. 그것은 막부반대세력에게 정당한 구실을 준 셈이 되어버렸다. 오랑캐를 물리치자는 양이세력에게도 막부체제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개혁세력에게도 천황의 칙허거부는 유용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저러나 조선을 자기들의 발판처럼 생각했던 이들이 세력을 키워감에 따라 조선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본의 밥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해 보인다.
옥중에서도 활발한 학문활동을 하던 요시다 쇼인은 초망굴기론을 세워 신분에 관계없이 뜻있는 사람 누구나 일어서서 사회를 바꾸기를 주장한다. 그리고 '몸은 비록 무사시 벌판에 썩어가더라도 남겨놓은 것은 야마토 다마시이(일본혼)' 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된다. 그가 남긴 '일본혼'은 그의 제자세대인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메이지유신이 되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일본사회에 깃들어 있는 듯 하다.
메이지유신의 아이콘은 사카모토 료마 라고 한다. 비록 메이지유신의 성공을 눈으로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주역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 라고 한다. 메이지유신은 사카모토 료마가 이끌어낸 '대정봉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