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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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없는 것이 반전인 김시선의 영화 생활

취미, 특기, 직업 모두가 영화 보기인 프로 영화 덕후 김시선의

영화와 함께하는 웃픈 일상

 

 

나는 요즘시대 분위기에 맞지 않게 여전히 영상매체와 그닥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빠른 소통의 도구인 SNS도 하지 않는다.

나를 옛날사람이라 칭해도 어쩔 수 없지만 영상이라면 영화나 TV가 다일뿐 그외의 정보매체로서 나는 여전히 눈으로 보는 매체라면 인쇄된 것이 좋고 소통을 한다면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아니 내겐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그런 내가 영화 유투버인 김시선을 알리 없다. '김시선의 영화 생활' 이라는 부제에서 내 눈길이 갔던 것은 '영화' 라는 단어였는데 알고보니 이 책은 '생활'에 방점이 찍힌 책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좋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그 진정성이 차고넘쳐 자연스럽게 읽는이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저자의 영상한번 본적 없는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다니... 역시 책이 좋다. ㅎㅎ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와 믿음은 다음 행동의 근거가 된다. (p. 11)

저자는 영화유투버 1세대 라고 한다. 사실 1세대 였기에 이 정도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성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유투버들의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아닐까 싶다. 유투브를 거의 안 보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무엇이든 1세대는 어쩌면 행운의 세대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성공이 가능했다. 예를들어 인터넷세상의 1세대라 할수있는 PC통신 1세대들은 지금 게임업계의 리더에 포진해있다. 어떤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이돌 1세대를 좋아하던 팬덤문화의 1세대는 그 열정으로 본인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뭐가 되든 되는 때가 있었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든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이 있는 언어뢰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라는데, 내 생각에 그걸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감독은 오직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뿐이다. (p. 16)

영화 유투버의 책이라서 다양한 영화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책일줄 알았다. 보고싶은 영화들을 잔뜩 찾아낼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영화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자의 생활을 담아낸 책이다. 생활속에 녹아들어 있는 장면에서 연결되는 영화들이 나오긴 하지만 영화 자체에 집중하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고 엔딩크레딧이 끝나기전에 일어서버렸던 (엔딩크레딧에 올려진 이름들을 미처 다 읽지 않았던) 미안함을 조금 덜어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천편의 영화를 본 저자가 인생영화로 꼽은 이란 감독의 <체리향기(1997)>라는 영화가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이내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인생영화라는 것은 다분히 그 누군가의 굉장히 개인적인 사연이 엮인 의미가 부여된 영화다. 따라서 저자의 인생영화가 내 인생영화가 될 수는 없다. 큰상을 받고 엄청난 가치부여를 해가며 인생영화가 될법한 영화를 소개하는 글들을 읽고 그런 글들을 따라서 영화를 보고자 하는 것보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영화이야기가 주는 깨달음이 나만의 영화를 찾고 싶은 나만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움트게 했다. 그 어떤 영화소개글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었다.

총551분 동안 이어지는 변화를 하나하나 글로 적는 건 무의미하다. 그저 태어나 살다가 죽어가는 한 노인의 삶을 보듯 영화를 봐야 한다. 앞서 말했듯 러닝타임이 긴 영화들은 기억하는 것보다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것은 '한때는 물건을 가득 실은 열차가 지나간 철로엔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우리 인생사도 그럴까?' 였다. (p. 45)

<철서구>(2003)이란 영화의 러닝타임은 총551분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가장 긴 영화냐 하면 그렇지 않다. 773분짜리 영화도 있었고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긴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긴 영화일수록 스토리보다 느낌이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왠지 알것만 같았다. 저자는 긴영화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변화를 하나하나 글로 적는 건 무의미하다고 했지만 그런 변화를 하나하나 적은 글을 읽는 것도 영화못지 않은 섬세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그런 느낌을 받겠지만 나는 책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더 좋다. 오히려 영상이 뚜렷이 보여주는 것보다 글로 상상해내는 장면들이 더 그런 긴 호흡을 느낌적인 느낌을 전달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힘들고 귀찮아도 써야만 한다. 한 문장이라도 써놔야만 매년 700편씩 쌓이는 영화를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영화를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나에게는 너무나 큰 숙제다. (p. 54)

저자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에어테이블'이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영상매체가 정보전달의 주류가 될지라도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써야 한다. 오히려 영상매체의 전달방법이 변해갈때 '쓰여지는 글' 이라는 수단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지도 모른다. 저자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읽으며 나의 책에 대한 애정을 자꾸 견주게 되곤 했다. 나는 역시 책이었다.

'영화 비평을 하는 최고의 방법은 인터뷰'란 생각이 없었다면, 이놈의 인터뷰는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다음에 누구를 인터뷰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설렌다. (p. 85)

온간 해석들이 넘쳐날 수 있는 영화에 대해서 결국 가장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 사람의 생각을 직접 듣는 방법이 인터뷰다. 감독의 생각이 정답은 아니듯이 관람객의 생각이 오답은 아니다. 그렇게 표현해도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원래의도를 안다는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다. 인터뷰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대면방식이다. 아무리 빠른 소통방식이 등장해도 대면과 대화가 주는 가치는 여전하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분명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성과도 없을 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자책하기도 하고, 어쩌면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나와 가족에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가 믿고 가는 길에 대한 의심이 솟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들다. (p. 105)

그럴때, 그런 힘듦이 찾아왔을 때 다시 힘을 준 것도 역시 사람이었다. 자신처럼 영화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갖고 있는 지인을 보며 초심을 되새기곤 했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또한 그런 관계들을 떠올려본다. 진솔한 에세이는 이렇게 자꾸 나의 에세이를 속으로 쓰게 만드는 것 같다.

"<행복한 라짜로>가 후일 비평가 사이에 걸작이 될 수 있는 영화라면, <교실 안의 야크>는 누군가의 인생 영화가 될 수 있는 영화에요" (p. 138)

저자의 에세이 속에는 영화를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중 영화수입사업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가 마음을 짠하게 했다. 영화를 보고 즐긴다는 것은 감상적으로 생각하면서 영화산업이라는 것은 그저 사업적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다양한 진심들을 읽으면서 애정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곤 했다. 여하튼, 박대표 아저씨 화이팅!

요즘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오간다. 그러나 영화는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빛은 너무 아름답지만, 어둠이 없다면 그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다. 망작이 있어야 걸작도 존재할 수 있다. 망작영화제를 통해 '걸작'이든 '망작'이든 사람들이 모든 영화를 사랑하고 응원했으면 좋겠다. (p. 146)

날마다 운이 좋으면 사실 그렇게 일상이 된 행운은 더이상 행운이 아니다. 어쩌다 한번 찾아왔을 때 행운의 가치는 빛나기 마련이다. 영화가 빛과 어둠의 산물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깜깜한 상영관에서 광고조차 끝나고 모든 불이 꺼지는 그 순간이 가장 설렌다. 곧 다가올 환하게 빛날 영화가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망작의 필요성도 공감 ㅎㅎ

우린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주인공'으로 자란다. 친구들은 나를 중심으로 지나가고, 학교는 나를 중심으로 존재하며, 부모님은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산다. 그렇게 평생을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만, 이른바 '인생의 장애물'이라 불리는 허들에 몇 번씩 부딪히고 나면 어느새 주인공에서 멀어져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나는 조연이었구나... 내가 조연이라니!' 처음엔어색하고 불안하지만, 첫 조연 데뷔를 잘 마치고 나면 그 배역에 익숙해진다. (p. 186) 그러니까 애초에 '영화 속 조연들은 조연이라도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틀렸다. 조연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남의 영화에선 조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내 영화에선 내가 주인공이 되면 된다.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당신은 반드시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p. 188)

그런가? 모두가 주인공으로 살다가 조연인 것을 깨달을때 좌절하는가... 요즘 세대는 확실히 그런것 같다. 하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가져본적 없이 삶을 사는 것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평생을 조연 그것도 아니면 엑스트라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과 주인공인줄 알았다가 조연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중 무엇이 더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껏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그렇게 아쉽거나 좌절스럽진 않다. 나는 내 배역이 무엇이건 충실하고 진심이었다는 자긍심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나는 유투브 플랫폼이 모든 콘텐츠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표현했듯이, 유투브는 그저 도구다. 못을 박으려면 망치가 필요하고, 종이를 자르려면 가위가 필요하다. 유투브는 망치가 될 수도 가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 모서리가 닳으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투브가 아니라, '글'보다 '영상'이라는 언어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 (p. 228)

그럴까? 정말 그럴까? '글'보다 '영상'을 더 편하게 보고즐기는 시대가 되긴 했다. 편한 것을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천편의 영상을 보는 저자도 결국은 글로 기록해야 했다. 영상은 사라져도 글은 남는다. 유투브가 아닌 또다른 혁명적인 영상매체가 등장해도 여전히 글은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 그때에도 책을 읽고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성공한 내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부족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실패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중략)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영화 보는 인간'으로 살고 있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p. 240) 요즘, 영화 보는 삶이 더 행복해졌다. 동시에 그만큼 배워야 할 것도 많아져서 두렵기도 하다. 혹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줄까 봐.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일단 해볼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멈춰 있으면 우연은 생기지 않는다. (p. 242)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포옥 빠져서 읽었던 에세이였다. 영화든 책이든 역시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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