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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 개정판 ㅣ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 7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평점 :
독일어 원전에 의한 새로운 번역!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책 중 하나"
나는 새로운 음식보다 먹던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장소보다 가던 곳을 좋아하고 새로운 옷보다 입던 옷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만큼은 새 책이 좋다. 거기에 새번역이라면 금상첨화다. 고전에 대한 새번역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반갑다. 국내 유일의 프로이트 전집이라는 15권 중 이번에 새번역으로 나온 것은 단 2권, 그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프로이트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크게 정신분석, 무의식, 성적 해석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이것들도 서로 섞여 있는 개념인것 같긴 한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면서 가장 적나라하면서 가장 궁금하지만 실은 가장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욕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최초의 시도들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가 주 본문을 이루며 이 논문을 보충할 수 있는 짧은 논문들이 다수 묶여 있는 책이다. 그리고 왠지 편치않은 마음으로 첫 장을 열게 되는 것이 무색하게 굉장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읽히는 책이라 딱히 거부감도 들지 않았고 나름 고개끄덕여가며 읽게 되는 부분도 많았던 책이었다. 거의 백여년 전의 사고방식이다 보니 그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고 읽으면, 프로이트의 논리적 사고에 감탄하고 (그 시대로서는 흔치않은) 보편적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한 주제에 대한 책이긴 하나 프로이트의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보니 전체적 흐름이라던가 줄거리를 정리할 수는 없고 각 논문별로 요약하는 것도 너무 방대한 일이 될 것 같아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중심으로 한 감상만 조금 남겨놓아 보려 한다.
이 책이 어서 빨리 시대에 뒤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한때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제법 쓸모가 있던 이 책의 새로운 점들을 비롯해 부족한 부분까지 더 훌륭한 연구들이 나와 대체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p. 11)
1909년 제2판 서문에 쓴 저자의 문장이 저자의 연구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비슷한 표현들이 책 속에 붙여진 주석에서 여러 차례 확인되는데 자신의 이론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열린 태도를 평생 유지하며 연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프로이트는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다른 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강력한 논쟁을 서슴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과학적 토론일뿐 상대 학자에 대한 비난 비하 거기에 연결될 자신의 편집 아집 이 아니라서 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초를 세운 정신분석학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반가워하는 애정어린 모습으로 보여질 따름이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논문의 일부 내용, 즉 인간의 모든 성취에서 성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나 성욕의 개념을 확대하려는 시도 같은 것이 오래전부터 정신분석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동기기 되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좀 더 선명한 구호로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정신분석의 <범섹슈얼리티>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정신분석이 <모든 것>을 성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질책까지 서슴지 않았다. (중략) <성>이라는 개념의 확대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어린아이와 이른바 성도착자로 불리는 사람들을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는데, 좀 더 고상한 관점에서 정신분석을 경멸적으로 내려다 보는 사람은 정신분석의 확대된 성이 신성한 플라톤의 에로스와 얼마나 가까운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p. 16, 17 - 제4판 서문 中)
나도 오해를 했었다. 프로이트는 모든 것을 성적으로만 분석한다고. 쥐뿔도 아는 것도 없이 그냥 흘려들은 이야기들로만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알거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존의 선입견들을 상당부분 내려놓고 오해했던 부분들을 상당부분 다시 알게 될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적 에너지를 탐구했고 어린이에게도 그런 에너지가 있으며 성인들 중 신경증 환자의 치료나 당시 성도착자들로 분류되던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모든 것을 성적으로 분석했다기보다는 성적으로 분석했을때 이해가능한 범주를 만들어나가던 학자였다.
건강한 사람치고 정상적인 성 목표 외에 성도착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보편성을 감안하면 성도착이라는 말을 비난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성생활의 영역에서 우리의 심리적 범주 안에 있는 단순한 변형들을 병적인 증상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하면 그 즉시 현재로선 해결할 수 없는 특별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중략)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그들을 확실한 예단을 갖고 정신병자나 다른 종류의 심각한 비정상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우리는 평소엔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조차 모든 본능 중에서도 가장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의 지배를 받는 성생활의 영역에서는 환자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반면에 삶의 다른 영역에서 명확하게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성적으로도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p. 48)
다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무의식적 성도착의 경향은 어디서건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그게 특히 남성 히스테리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p. 54)
내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라는 논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당시 '절대적 성도착자'로 분류된 동성애자에 대해 혐오나 무시와 차별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이해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학자적 노력이었다. 동성애가 성도착증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요즘에서야 그런 분석들이 일면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노력은 읽을수록 보편적 인간애로 다가와서 프로이트에 대한 시니컬한 선입견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그에 비하면 여성에 대한 입장은 아쉬운 부분이 좀 있었지만 백년전 사람인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서술한 내용으로 성도착증의 기원을 만족스럽게 설명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연구로 상기 과제의 해결보다 더 중요한 인식을 얻은 것 같기는 하다. 즉 우리는 지금까지 성 충동과 성적 대상 사이의 관계를 실제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로 상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례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경우 성 충동과 성 대상 사이에 하나의 땜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 충동에 이어 성 대상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믿는 정상인들의 획일적 사고에서는 간과할 위험이 큰 땜질이다. 따라서 우리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성 충동과 성 대상 사이의 단단한 매듭을 조금 느슨하게 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성 충동은 그 대상과 무관할 가능성이 크고 그 기원도 성 대상의 매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p. 33~34)
이 책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프로이트의 논리가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럴 수 있구나 이건 좀 이상한데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소심한 판단을 하는 내게 '획일적 사고'를 벗어나 '단단한 매듭을 조금 느슨하게 풀'게 해주는 프로이트의 논리전개방식은 당시 획기적이었을 사고방식이자 용기있는 학자의 자신감으로 읽혀지곤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여전히 프로이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아이 때는 성 충동이 존재하지 않고 사춘기가 되어서야 일깨워진다는 것이 성 충동에 관한 세간의 통념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순진하면서도 파장이 큰 심각한 오류다. 현재 우리가 성생활의 근본적인 상황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주로 이 오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시기의 성적 현상을 철저히 연구하면 성 충동의 본질적인 특성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그것의 발달 과정이 폭로되고, 그 충동이 여러 원천으로 조립되어 있음이 밝혀질 것이다. (p. 61)
이 책에서의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은 어린아이 시기의 성충동에 대한 분석이다. 첫번째 에세이에서 성도착증(대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분석이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두번째 에세이부터는 여전히 프로이트 연구에 주목해야 할 논리들이 등장한다. 앞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나의 오해에서 말했던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어린아이들을 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시기의 행동들을 성충동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교육과도 연결될 수 밖에 없기에 여전히 그 의미가 있어 보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6세에서 8세 이전의 시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런 기억 상실에 대해 우리는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중략)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잊어버린 바로 그 인상들이 우리의 정신생활에 아주 깊은 흔적을 남겼고 이후의 모든 발달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가정해야 한다. 아니, 다른 심리학 연구들을 그 근거로 그게 사실이라고 확신해도 좋다. (p. 63, 64)
이제 나는 모든 개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치 아득한 선사시대처럼 만들고, 성생활의 단서들을 은폐하는 소아기의 기억상실이, 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린 시기의 성적 발달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데 그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생겨난 우리 기억 속의 공백을 관찰자 한 사람이 메워 줄 수는 없다. 다만 나는 1896년에 이미 성생활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현상의 기원을 탐구하면서 어린아이 시절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이후에도 섹슈얼리티에서 어린아이 시기의 요소를 전면에 배치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p. 65)
항상 고독하게 수행되는 소아기의 성적 탐구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자기 길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이자, 이전에는 완벽한 신뢰를 부여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거리두기를 의미한다. (p. 87)
얼마전 읽은 SF소설이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 유아기의 부분기억상실이 외계인연관설로 펼쳐졌었는데 ㅎㅎ 뜬금없지만 유아기의 부분기억상실이란 현상이 다양한 문학적 상상력과 새로운 과학적 가정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여하튼, 프로이트의 이 '성 에세이'에서 강조한 것은 어린아이 시기의 행동들이 그때 받았던 경험들이 성인시기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시절이 중요하다는 것! 성교육에 있어서도 프로이트는 사춘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모호함과 무지로 감추어진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어떤 신경증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들로 그러한 강조를 힘을 보태고 있다.
사춘기가 되면 소아기의 성생활을 최종적이고 정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주는 변화들이 나타난다. 주로 자기 성애에 빠져 있던 성 충동은 이제 성 대상을 발견한다. 소아기 성 충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서로 분리된 채 각각 유일한 성 목표로서 모종의 쾌락을 추구해 온 개별 충동과 성감대였다. (중략) 정상적인 성생활은 오직 성 대상과 성 목표로 향하는 두 흐름, 즉 애정적 흐름과 관능적 흐름의 정확한 결합을 통해서만 달성되는데, 이는 마치 양쪽에서 터널을 뚫는 것과 같다. (p. 99)
유기체 내에서 새로운 연결과 조합이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자리 잡는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새 질서가 구축되지 않으면 병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성생활의 모든 병적 장애는 발달 억제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p. 100)
성 충동을 다른 충동들과 구분하고, 그로써 리비도 개념을 성 충동의 영역으로만 국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논구한, 성 기능에 특별한 화학 작용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된다. (p. 111)
나는 양성의 영역을 알게 된 뒤로 이 양성적인 속성을 기준점으로 삼게 되었고, 또 양성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남자와 여자에게서 실제로 관찰되는 성적 표현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p. 112)
세번째 에세이 에서는 '사춘기의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 소아기때의 성에너지가 성인시기에 간접적 영향력을 남긴다면 사춘기때의 성에너지는 성인시기에 직접적 영향력을 남긴다고 볼 수 있다. 소아기때보다는 신체적으로 두드러진 변화가 눈에 보이다 보니 관찰과 분석이 더 용이한 때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영역 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이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유추하는 프로이트의 개방성은, 성호르몬이 언제 발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다른 영역과의 관계성도 미루어 짐작한 그의 방대한 지적 호기심이 돋보이게 했다. 무엇보다 양성성에 대한 논리는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었다.
인간성 발달의 싹이 두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 즉 발달 과정이 잠복기로 중단된다는 사실은 특별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이는 고도의 문명을 위해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조건인 동시에 신경증적 경향의 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영장류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인간적 특성의 기원은 인간종의 선사시대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p. 126)
성생활의 장애에 관한 이 연구에서 나오는 결론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조건에 관한 이론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성욕의 본질을 이루는 생물학적 과정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p. 136)
소설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열린결말' 로 끝나는 이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따라서 치유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당대의 교육관과 여성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앞뒤를 연결하는 논리가 탄탄하여 읽다보면 '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하고 저절로 머리끄덕여 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자신이 세운 논리에 대한 열정적인 프로이트의 탐구력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신경증 환자들이 변성적 소질을 타고난 특별한 부류여서 그들의 어린 시절 삶에서 정상인의 모습을 유추해 낼 수는 없다고 반박하는사람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경증 환자도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정상인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없으며, 또 그들의 어린 시절도 나중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과 항상 쉽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신경증이 그 사람들만의 특유한 정신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카를 구스타프 융의 지적처럼 우리 건강한 사람들도 똑같이 겪는 콤플렉스에서 유발된 질병이라는 사실은 우리 정신분석 연구가 일구어낸 가장 값진 성과 중 하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건강한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눈에 띄는 큰 피해 없이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을 아는 반면에 신경증 환자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p. 152~153)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순종 및 사고의 중단과 연결된 의견은 지배적 의식이 되는 반면에 아이들이 계속되는 탐구 노력으로 찾아냈지만 어른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새 증거들에 기반한 다른 의견은 억압받는 <무의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경증의 핵심 콤플렉스가 생겨난다. (p. 156)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신경증의 발병원인이나 치료나 분석이나 그런 중요한 내용들은 차치하고 내가 공감이 갔던 부분은 프로이트가 표현하는 그 대상들에 대한 존중이다. '정신병' 이른바 미쳤다고 표현되는 병들이 그동안 얼마나 비하되어 왔는가?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고 '마음의 감기'라며 정신과 상담이 그리 이상하지 않게 된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당시 무시되던 동성애자나 여성히스테리환자나 아이들의 이상행동에 대해 과학자적인 태도로 객관적으로 동등하게 마주했다. 그리고 그들이 비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가 발기부전이니 처녀성이니 항문성애니 남근선망이니 페티시즘이니 하는 등의 그 어떤 자극적인 연구내용들보다도 나는 더 인상깊게 남았다.
'세편의 에세이'에 이어지는 논문들은 비교적 짧은 것들로 주로 소아기의 성충동 분석이 대부분인데 뒤로 갈수록 해부학이라던가 여성의 성욕 같은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어 가는 것에 비해 내용이 간략하여 아쉬웠다. 1900년 꿈의 해석으로 프로이트 만의 독창석 관점이 제시된 이후 1905년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로 유아기의 성적 본능에 관심을 두었다가 1912년 '토템과 터부'로 정신분석학을 인류학에 적용해보고 1923년 '자아와 이드'로 종전의 이론을 크게 수정한 이후 암투병 중에도 다양한 영역에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을 보여주었던 프로이트의 연구들은 그저 지나간 학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여전한 현재적 유의미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이후의 연구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지금 굳이 읽을 필요성이 있을까 싶었었는데 이 한권을 읽고나니 '프로이트 전집'의 다른 책들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라스트 세션' 이라는 연극에서 노학자로 등장한 프로이트도 참 멋있었는데, 책으로 접한 프로이트의 논리도 무척 매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