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SF #2
정세랑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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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지금 이곳 너머를 말하는 장르이지만

SF라는 장르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현재성이 갖는 가능성을 깊이 고민하여

오늘날 한국 SF를 가능한 한 모든 방향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표지 뒷면 내용-

 

 

SF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국내 SF작가들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었구나를 알았다. 외국작가들의 SF소설에 빠져서 그 작가들의 상상력을 선망하면서 간혹 읽을 기회가 있었던 국내 SF작가들의 소설 몇 편들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쳤던 것이 어쩌면 그런 나의 무지가 저지른 오해였을 수도 있겠다. 우리의 SF는 아직 이라는 그런 오해?!

국내 유일의 SF 무크지 라는 타이틀을 보면서 정작 나의 눈길을 잡았던 것은 정세랑 이라는 이름 석자 였다. 최근 읽었던 '피프티피플' 소설에서 작가에게 홀딱 반해있던 터라 이런 작가가 편집위원인 잡지라면 믿고볼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트로 글에서 역시나 그런 믿음을 다질 수 있었다.

읽으면서 보니 이 책은 무척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한 장점들이 모두 SF로 연결되어 있었다. SF잡지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다양한 시도들이 책이 아니라 '잡지'라서 가능했겠구나 싶어서 '오늘의 SF'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다양한 글자크기의 변형, 흑뱅의 조화 같은 편집틀의 신선함부터 소설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에세이, 작가론, 인터뷰, 칼럼, 리뷰 등 국내 SF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글까지 모두 '미래적' SF 의 '지금'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 뜻깊었다.

꽉 찼지만 한 손에 쥐이는 이 잡지가 아직 오지 않은 더 나은 날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배율 적절한 망원경이면 좋겠다. (p. 9)

인트로글 속 정세랑의 이 한 문장 만으로도 '오늘의 SF'의 가치는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보지만, 이 무크지를 처음 읽어본 나의 느낌들을 기념하며 사족이겠으나 그래도 조금 남겨놓아 보려 한다.

에세이 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전삼혜의 '위치스 딜리버리'와 함께하는 분당산책을 쓴 전혜진의 글은 북리뷰인듯 아닌듯 SF소설에서 현실공간이 줄 수 있는 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었고, 'SF를 쓴다는 것, SF작가로 산다는 것'을 쓴 박문영의 글은 수줍고 소심하지만 SF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들이 SF가 아니어도 소설가로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작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틱 코너에서는 '듀나론-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의 이야기' 라는 작가 듀나에 대한 작가론이 펼쳐지는데 글의 제목이 정말 적절하다 싶었다. '듀나' 라는 작가명은 나도 수차례 들어봤기에 유명작가는 맞는 것 같은데 정작 듀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듀나론' 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모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 전체를 다시 읽는 데 꼬박 몇 달을 소요했어야 할만큼 듀나의 작품은 많았다. 지금까지 27년간 발표된 작품이 120편이니 앞으로 더 발표될 작품들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작가이긴 한것 같다. 이름만 듣다가 이렇게 작가론까지 읽었는데 이제는 나도 듀나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봐야 하는 것이 맞는데... 현실적 시간의 제약이;;; 이 마음의 부채감을 어서 떨쳐낼 수 있기를!

인터뷰는 앞 뒤 로 두 편이 실렸는데 이다혜 기자가 만난 민규동 감독과 최지혜 편집자가 만난 김창규 작가의 대화이다. 민규동 감독이 늘 SF영화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던 모르던 이다혜 기자의 인터뷰는 늘 맛깔나게 읽히는 재미와 톡쏘는 촌철살인 멘트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김창규 작가의 작품들은 (미안하게도) 내가 몰랐던지라 읽어야할 책 목록을 더 두툼하게 채워놓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해본다.

이 책의 가운데 부분 두툼하게 검정종이로 인쇄된 부분들이 내가 고대하던 SF단편 들이 차지하는 곳이다. 검정바탕에 흰 글씨들이 SF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면서 생각보다 눈도 편안해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정소연 작가의 '수진' 은 여섯명의 수진을 만나게 되는 미정의 삶이 로봇 이라는 SF적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만큼 삶의 현실감들이 돋보였다.

문이소 작가의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은 가능할 것 같은 아니 가능해졌으면 싶은 SF적 장례문화를 제시함으로써 '상상이 현실로 된 순간'들을 다룬 책을 생각나게 했다. SF소설에서 등장한 기술들을 과학이 연구했을때 그 시너지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알고나면 놀랄 것들이 그동안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을 것이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속 기술이 어서 개발됐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고호관 작가의 '0에서 9까지' 는 인트로글에서 정세랑 작가의 소개를 보며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SF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박장대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의지가 있다고 해도 뇌도 모종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거라 패턴을 보여야 하거든요? 선배는 안 그래요. 선배는 보통 사람과 달리 뇌에 그런 알고리즘이 없나 봐요. 선배는 무슨 짓을 해도 진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어쩌면 진정한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일지도 몰라요. 진정한 자유인" (p. 98)

다시 생각해봐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나름 비애가 있긴 하지만... 무겁게 읽히지 않아 더욱 좋았다. 앞선 웃음들이 읽는이에 따라 소소했다면 아마도 누구나 마지막 멘트에 가서는 그야말로 한번 크게 웃게 될 것이다.

"간단합니다. 0과 1 중에서 아무렇게나 하나를 골라서 계속 입력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p. 115)

김혜진 작가의 '프레퍼' 는 단편소설이 줄 수 있는 서사의 매력을 잘 전달해준 작품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본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세지까지도.

손지상 작가의 '인터디펜던트 바로크' 와 배명훈 작가의 '임시조종사' 는 그야말로 실험적인 작품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작품들이었다. 한번 읽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나름의 독특한 뭔가 있어보이긴 하기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다시 읽게 될지 어쩔지는;;; 이 또한 무크지 라는 잡지의 매력이 아닐까. 골라 읽는 재미! ^^

황모과 작가의 '스위트 솔티' 는 SF가 미래사회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자연파괴나 우주이주 같은 미래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난민' 이라는 현실적 주체들이 중심이 된 서사가 결코 미래적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름과 언어의 다양성이 주는 자아의 개념에 대한 생각꺼리들은 SF소설을 읽으면서 지금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바다위에서 태어난 내게 사람들은 늘 출신을 물었다.

나는 배 위에서 태어났고 엄마와도 세 살 때 헤어졌으므로 출신은 바다거품나라도 어디도 아니고 바로 이 배라고.

엄마가 배 위에서 몸을 풀었고 나는 진주 라는 뜻의 '무티아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p. 173)

그녀가 나를 솔티라고 부르며 불평했다. 솔티라는 말 속에 바다 냄새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창고에 드나들면서 린다는 솔티라는 호칭 앞에 스위트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위트 솔티. 그게 나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p. 188)

 

한민족의 등장과 부산이라는 현실공간이 한국을 연상케하면서 SF와 현실이 섞인 묘한 재미를 주고 있었는데 그런 현실감과 연결된 고향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되묻게 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내게 남기는 메세지였다.

고향이 어디든 우리는 떠나온 존재였다. 언제든, 결국엔 떠나야 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삶을 이어 붙여야 한다. (p. 197)

다양한 단편 소설들에 이어진 '칼럼' 도 다들 너무 괜찮은 글들이었다. 특히나 '한국 SF의 또 하나의 줄기, 순정만화' 라는 글은 그야말로 공감 백퍼!

한국의 SF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어 1960년데 한낙원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창작되었으며, 최초의 SF 작가 단체인 'SF작가클럽'이 1969년에 결성된 것만 보더라도 한국 SF의 역사가 짧다는 이야기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p. 275)

PC통신 이라는 신물물이 등장한 시대부터 아마 본격적인 문학변동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만 보더라도 1988 과 1994 시리즈의 햇수는 불과 6년이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문화의 격차는 굉장히 크다. 그 중심에 PC통신이 있었다. SF라는 장르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 순정만화 작가들에게도 SF에 대한 역량과 열망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강경옥의 '별빛속에'(1987~1990)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p. 276)

'별빛속에'의 성공 이후 작가들의 열망과 시장성을 확인한 출판계의 수요, 그리고 순정만화 전문 잡지안 '르네상스'의 창간(1988)이 맞물리며, 한국 순정만화계에서는 SF걸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신일숙의 '1999년생' , 김진의 '푸른 포에닉스' , 김혜린의 '아라크노아' , 황미나의 '레드문' 등 순정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들이 줄지어 SF장편을 발표했다.

한국SF 순정만화에서는 역사와 왕권, 국가의 운명이나 반역, 전쟁과 같은 선 굵은 고전 영웅 서사의 형태로 변주되었다. 이들은 SF는 남성의 이야기라는 당대의 편견을 넘어, 적극적으로 여성 주인공들을 선 굵은 영웅의 운명으로 밀어 넣었다. (p. 277)

만화 평론에서 한국 순정만화 SF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 시기, 이 작가들에 국한해서다. 마치 일부 거장만이 순정만화 속에 SF를 담아냈으며,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는 듯이.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순정만화는 당시 대학강서 주목받던 여성학,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여성들이 창작하고 여성들이 향유하는 매체로서 그 깊이를 더해 간다. (p. 278)

순정만화는 여성의 장르로서 만화계 내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평단에서는 순정만화의 성취를 종종 무시했고, 출판사들은 여성작가와 남성작가의 원고료를 차별했다. 순정만화계에서 꾸준히 다양한 소재와 형태를 갖춘 SF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SF는 남성의 장르'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던 일부 팬들은 '순정만화치고는' , 'SF의 탈을 쓴' 같은 경멸적인 수식어와 함께 '진정한 SF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순정만화는 SF를 통해서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먼저 주목했다. (p. 279)

일단, 이 칼럼을 쓴 전혜진 작가에게 박수를!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이던지 ㅎㅎ 최근 순정만화 컬러링북을 통해 추억에 빠져있던 내게 다시한번 순정만화의 가치를 상기시켜준 글이었다. 강경옥의 '별빛속에' 는 내 책장 한켠에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순정만화 소장본세트 중 하나다. 르네상스 뿐만 아니라 댕기, 화이트 까지 만화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 강경옥을 비롯한 신일숙, 김진, 김혜린, 황미나 등의 작품들을 얼마나 즐겨 읽었던가. 만화방에 가면 으례 순정만화코너가 여성전용자리 인것처렴 여겨지곤 했다. 수많은 무협지들과 챔프만화들 속에서 작게나마 마련되있던 순정만화코너가 어찌나 좋았던지 지금도 가끔 만화카페에 가게되면 순정만화 코너를 찾아보곤 한다. 여하튼, 나를 SF의 세계로 입문시켜준 것은 순정만화였다.

SF소설을 즐기는 이라면 한번쯤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스타워즈' 시리즈를 생각나게 하는 'SF와 과학기술 그리고 우주개발' 이라는 유만선의 칼럼 과 'SF와 여성의 몸, 모호함을 선명하게 그려내다' 라는 이은희의 칼럼도 인상적이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글은 전혜진의 칼럼이었다. ㅎㅎ

도대체 아이를 낳아 기를 일이 없는 로봇들이 여성형이라는 이유로 자록한 허리와 넓은 골반을 가진 형태로 디자인될 이유가 무엇이며, 볼링공처럼 커다란 가슴을 매달고 있을 이유는 또 무엇일까. 많은 SF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남성형 로봇들이 꽤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는 것과는 달리, 여성형 로봇들은 둥글고 부풀어 오른 가슴과 엉덩이의 로봇들을 굳이 성적이형을 닮도록 따로따로 디자인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자원 낭비에 가까움에도, 굳이 여성형에게만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남성형 로봇에게서 남성 신체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인 외부 성기는 굳이 감추어 평평하게 만들면서 여성 신체의 특징을 한껏 적나라하게 드러낸 여성형 로봇의 몸을 만들고, 로봇이라는 이유로 더욱 거리낌없이 그 융기들을 드러내게 한다.

이제는 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별의 한 부류로만 바라볼 때, 얼마만큼 인격을 거세하고 존재 가치를 유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덧씌워진 지나친 생식주의적 관점은 나아가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적인 행동을 모두 불결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시키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여성의 몸 역시도 그와 비슷하게 가치 없는 것으로 대우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게 한다. (p. 294)

이 무크지를 읽기전 가장 기대했던 코너는 단편소설들이었지만,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고 읽고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칼럼의 글들이었다. SF분야는 그야말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상의 세계를 다루기에 현실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던 것들을 고칠수 있는 세계이자 미래에서 있었으면 싶은 것들을 이루어내는 세계이다. 따라서 어쩌면 가장 지금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이 SF소설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여성형 신체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구나 싶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슐러 르 귄 의 '어둠의 왼손' 에서 처럼 무성의 존재를 로봇 형태로 생산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은 결국 권력때문이었던 것일까...

가장 마지막 코너인 '리뷰'는 5편의 신작SF에 대한 서평들인데, 책을 읽고 서평쓰기를 즐겨하는 내게 전문적인 '북리뷰'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리고 역시나 찾아온 깨달음, 내가 갈길이 멀구나;;;

비정기적 무크지 이기에 '오늘의 SF' #3 이 언제 나올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무크지를 차례 한장만 봐도 한코너만 읽어도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게 될 것 같다. 소설을 읽는 재미뿐만이 아니라 SF의 다양한 모든 면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을 통해 잡지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이 무크지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행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열렬히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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