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글 속 정세랑의 이 한 문장 만으로도 '오늘의 SF'의 가치는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보지만, 이 무크지를 처음 읽어본 나의 느낌들을 기념하며 사족이겠으나 그래도 조금 남겨놓아 보려 한다.
에세이 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전삼혜의 '위치스 딜리버리'와 함께하는 분당산책을 쓴 전혜진의 글은 북리뷰인듯 아닌듯 SF소설에서 현실공간이 줄 수 있는 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주었고, 'SF를 쓴다는 것, SF작가로 산다는 것'을 쓴 박문영의 글은 수줍고 소심하지만 SF소설가로 살아가고 있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들이 SF가 아니어도 소설가로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많은 작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틱 코너에서는 '듀나론-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의 이야기' 라는 작가 듀나에 대한 작가론이 펼쳐지는데 글의 제목이 정말 적절하다 싶었다. '듀나' 라는 작가명은 나도 수차례 들어봤기에 유명작가는 맞는 것 같은데 정작 듀나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듀나론' 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모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 전체를 다시 읽는 데 꼬박 몇 달을 소요했어야 할만큼 듀나의 작품은 많았다. 지금까지 27년간 발표된 작품이 120편이니 앞으로 더 발표될 작품들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작가이긴 한것 같다. 이름만 듣다가 이렇게 작가론까지 읽었는데 이제는 나도 듀나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봐야 하는 것이 맞는데... 현실적 시간의 제약이;;; 이 마음의 부채감을 어서 떨쳐낼 수 있기를!
인터뷰는 앞 뒤 로 두 편이 실렸는데 이다혜 기자가 만난 민규동 감독과 최지혜 편집자가 만난 김창규 작가의 대화이다. 민규동 감독이 늘 SF영화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던 모르던 이다혜 기자의 인터뷰는 늘 맛깔나게 읽히는 재미와 톡쏘는 촌철살인 멘트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김창규 작가의 작품들은 (미안하게도) 내가 몰랐던지라 읽어야할 책 목록을 더 두툼하게 채워놓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해본다.
이 책의 가운데 부분 두툼하게 검정종이로 인쇄된 부분들이 내가 고대하던 SF단편 들이 차지하는 곳이다. 검정바탕에 흰 글씨들이 SF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면서 생각보다 눈도 편안해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정소연 작가의 '수진' 은 여섯명의 수진을 만나게 되는 미정의 삶이 로봇 이라는 SF적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만큼 삶의 현실감들이 돋보였다.
문이소 작가의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은 가능할 것 같은 아니 가능해졌으면 싶은 SF적 장례문화를 제시함으로써 '상상이 현실로 된 순간'들을 다룬 책을 생각나게 했다. SF소설에서 등장한 기술들을 과학이 연구했을때 그 시너지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지만 알고나면 놀랄 것들이 그동안 많았고 앞으로도 더 많을 것이니 개인적으로 이 소설속 기술이 어서 개발됐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고호관 작가의 '0에서 9까지' 는 인트로글에서 정세랑 작가의 소개를 보며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SF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박장대소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