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월드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7
엄정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과학과 사변으로 무장한 첨단 스페이스 오페라의 개막!

 

SF 소설 시리즈가 있다는 건 볼때마다 참 반가운 일이다. GF시리즈에서 만나는 새로운 SF소설들은 늘 내게 국내 SF작가들에게 눈을 뜨는 시간을 선사해주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그러했다. 이번엔 하드SF 다.

방금 '인간'이라고 말했지만, 지구에 번성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아득히 오래 전 멸종했으니까. 앞으로 내가 인간이나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나와 동등한 존재, 즉 은하 연방에 소속되거나 그에 준하는 고등 지성체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호칭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연방은 출신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은하계의 지성체를 평등하게 받아들였다. 신분은 오직 두 가지로 나뉠 뿐이다. 나와 같이 각 행성에서 생명체로 태어난 후 연방에 소속된 <내추럴>과 연방에서 직접 만들어낸 인공지능. 능력은 인공지능이 뛰어난 경우가 많아도 생물로 살았던 경험과 풍부한 감각을 가진 내추럴을 연방에서는 소중한 자원으로 여겼다. 그래서 신분차는 없어도 내추럴이 지휘를 맡고 인공지능이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부여받는다. (p. 13)

'싱귤래리티'를 다룬 SF소설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주로 다뤘던 소재는 지구생태계의 파괴와 인간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육체는 버리되 지능만 업로드할 수 있게 된 세상을 상상하며 그 과정에서 고민될 법한 생각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미 그 세상이 도래한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지구 뿐만이 아니라 은하 전체적으로 지능이 업로드 되어 연맹을 이루고 있고 인공지능 또한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세상, 작은 우주선 임라나 호에 탑승한 두명은 한명은 내추럴 이자 선장이고 한명은 인공지능이자 부관이다. 은하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측량, 탐사, 세금추심 등 허드렛일을 하던 이들의 우주행로 앞에 묘한 물체가 포착된다. 언뜻 봤을때 생명체들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그 파편 들속에서 온전한 신체를 유지한 생명체가 있었다.

유기생명체가 정보의식체로 재탄생하려면 두뇌를 스캔하여 담긴 정보를 홀로그램 데이터 포맷으로 만들고 저장장치에 담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말했듯 두뇌를 잘라내야 함은 물론 강력한 전자파에 노출되어 뇌기능이 정지되므로 시술은 한 번밖에 못한다. 실패할 경우 원본의 기억은 영원히 소실된다. 복구는 불가능. (p. 33)

정보의식체가 된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 기억과 정신을 옮겨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정보를 가진 복사본을 새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유기체의 기준에서 볼 때는 본래 육체와 정신까지도-정신 혹은 영혼이라는 개념이 실존한다면- 완전히 파괴되고 사망한다. 따라서 동일한 기억이라는 정보량을 가진 정보의식체를 생전의 자신과 동일한 본인이라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정보의식체 자신의 의지뿐이다. (p. 35)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말한다는 싱귤래리티 의 문제는 그렇게 인간의 육신이 없는 지능만 남은 존재가 여전히 인간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미 모두가 다 정보의식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특이점이 던질법한 문제점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하드SF 라더니 소소한 개인적 고민들은 은하적 범주로의 확장속에 별로 고민되지 않고 넘어간다.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SF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이질감을 이 소설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국내작가의 작품이라서 문화적 이질감이 없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정도의 스페이스 오페라 라면 앞으로도 계속 관심이 갈 것 같다.

새로이 발견한 지성체 종족의 유일무이한 생존자. 그의 고향별을 찾아서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조사하는 임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납세자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니 정부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 셋은 다함게 임라나를 타고 처음 유옌을 발견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여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 네모나고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유옌의 고향별을 찾는 우리의 모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p. 52)

온전히 살릴 방법이 없었기에 두뇌를 스캔하여 업로드한 새로운 생명체는 파충류과의 외형을 띤 외계종족이었다. 긴 이름을 줄여 유옌이라 부르기로 한 그 생명체는 자신의 고향별이 네모나고 평평하다고 했고 태양은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들의 종족을 만든 신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인구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 중 자신은 실종된 것이라고 했다. 은하 내부의 정보를 찾아봐도 알 수 없는 이 생명체와 그의 고향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임라나호는 세명으로 늘어난 탑승객을 태우고 모험을 떠나게 된다.

목격하고 있는 물체는 쉽게 말하자면.....

네모난 별이었다.

보면서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p. 74)

이곳은 그야말로 거대한 어항이라 할 수 있으니까. 네모낳고 폐쇄된 공간 안에 땅과 물을 적당히 넣어놓고 동식물의 씨앗을 뿌린 다음 내버려두면 오랜 세월 후에 만들어져 있을 법한 세상의 모습이다. (p. 92)

정말로 네모난 별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은 아니었다. 태양이라 여겨지는 행성을 둘러싼 거대한 레일이 있고 그 레일 위를 거대한 '네모난 별'이 달리고 있었다. 이 곳을 '레일 월드'라고 부르기로 한다.

귀하의 요청은 반려한다. 연방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향후의 추이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것이다. 귀하는 앞서 지시한 내용대로 임무를 계속 수행하라.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면 다시 보고하라. 별도의 지침이 없는 한 귀하는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문명권과 접촉하도록 하라. (p. 152)

레일월드에는 크게 세 부족이 살고 있었다. 각자 다른 정체를 지닌 이 세 부족앞에 나타난 유옌은 오래전 있었다는 우주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조상님이었다. 그 조상님이 외계인과 함께 고향에 왔는데, 이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막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한 연방에서 온 답변은 이 행성에 개입을 반대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점이 느껴진다. 이 행성에는 분명 연방이 감추고자 하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이다. 임라나호의 선장과 부관은 연방을 불신하게 되고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한다.

"무엇때문이죠?

우리와 대화를 나눈 외계인이 아닌 당신이 왜 굳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지요?" (p. 225)

연방국가체와 연합국가체와 독재군주제가 있는 레일월드에 생겨난 종교는 두 종류였다. 그중 한 교파의 대표를 만났을때 그는 자신들이 외계에서 메세지를 받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별이 더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을만큼 파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조상들이 했던 데로 전쟁이 곧 벌어질 것도 알고 있지만 또다른 방법이 있음을 믿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외계에서 온 존재들에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총재님이야 너그러운 분이시니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우리 입장에서 당신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알기나 해? 당신들은 제대로 된 종교단체도 아니야. 신도 모집도 안 하고 헌금도 안 받고 율법 강요도 없고 성지순례도 안 하고... 심지어 교당도 안 짓고 전 세계에 흩어진 신도가 각자 모여서 자발적으로 활동한다니, 이게 무슨 종교야? 순 점조직이지 (p. 271)

또다른 종교에서는 외계인의 존재가 몹시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러니 우여곡절끝에 성사된 대표단 회의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일 월드를 파악하고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의 문화를 알아갈수록 의문은 커져간다. 은하연방체의 기술과 다른 것이 보이지만 정작 이곳의 생명체들은 그것에 대해 모른다. 한 교파가 받았다던 메시지가 은하연방에서 보내진 것이 아님은 갈수록 확연해 보이고, 은하연방에 보고를 올릴 수록 뭔가 감추려는 태도도 뚜렷해 보였다. 이 레일월드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 누가? 왜? 무엇보다 이상한건 왜 파괴되도록 그대로 두려는 것인가?

집정관이라는 호칭부터 씨족과 가문과 자신의 이름까지 길게 이어지는 작명법부터 투표방식등 고대로마의 체제를 본뜻 정체를 우주공간에서 재현한 것도 흥미로웠고 광신도 종교집단의 태도로 비틀어 보여주는 모습들도 재미있게 읽혔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성격표현과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케 하는 것도 의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웠던 것은 '전쟁'의 목적과 '생명존중'의 가치에 대한 확인이었다. 이렇듯 소설 한편으로 우주적 범주에서 개인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SF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짐이 아닐까 ㅎㅎ

책의 말미에 작가의 후기에서 다양한 작품들에서 오마주했음을 밝힌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 라는 예전 애니메이션 언급에서는 잠시 추억에 빠져들게 되기도 했다. 그랬지.. 그런 티비만화영화가 있었는데... 그 애니에 나왔던 주인공을 닮은 친구가 있어서 원키 라고 별명을 부르기도 했었는데... 그때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2020년이 지금이었네;;;

작가가 말하길, 소설안에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패러디한 부분을 한군데 넣었다고 알아봐주는 독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느 장면일꼬... 혹시 텬동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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