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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왜? - 반일과 혐한의 평행선에서, 일본인 서울 특파원의 한일관계 리포트
사와다 가쓰미 지음, 정태섭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평점 :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아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 사와다 기자의 치우침 없는 한일관계 진단과 한일 양 사회의 인식 차이 분석
한일관계는 참 어렵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고 하지만 알면 알수록 그냥 멀고 먼 나라 일본이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 반일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그럴때마다 혐한의 일본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갈등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분야에 있어서 일본인이 저자인 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한일관계에 대한 책은 일본인의 시각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치우침 없이 쓴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려운 건데... 이 책은 얼마나 객관적으로 썼을지 궁금했다.
일단, 저자의 이력은 한국에서의 시간이 꽤 길고 다양하게 있었으므로 기본 소양은 믿을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첫 장을 열었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은 일본인에게 한국의 현재를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에게 보이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도는 더욱 높아 보였다. 일본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일본인이 일아야 할 한국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자기가 아는 한국의 이미지에 근거해 혐한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70년대나 1980년대에 한국 주재원을 지냈거나 한국을 상대로 일한 경험을 가지고 한국을 안다고 믿는 사람조차 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한국에 관한 지식을 업데이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한국 이미지와 맞지 않는 최근의 한국에 대해 화를 낸다. 30년전, 40년전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21세기 대한민국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한국 독자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정말로 일본에서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말할 때에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p. 7)
집필할 때 상정한 독자는 혐한 시위 같은 헤이트스피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의 대일 자세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자신이 혐한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 불편한 심정은 갖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현재 일본 사회에서 다수일 것이다. (p. 11)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많아 보인다. 일본 내에 혐한 감정이 주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일본인들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시작부터 의아할 따름이었다. 자기들이 한짓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지? 싶은 한국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태도다. 그런 일본 본토의 왜곡된 인식을 일본기자가 알려주는 내용들은 대체로 고개 끄덕이며 읽게 되면서도 가끔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또한 일본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것이 '반일시위'라면 일본에 대한 분노의 표적이 되는 물리적인 대상이 꼭 필요할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그 무엇'앞에서 시위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것은 거기에 없었다. (p. 18)
이 책은 많은 일본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점을 설명하고, 한일관계에 둘러싼 의문에 답하고자 한다. (p. 23)
소녀상 옆에서 해온 수요집회는 꽤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활동이다. 하지만 이제 그 소녀상 앞에 일본대사관은 없다. 철거되고 펜스가 쳐져 있을뿐 다른 건물에 입주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집회는 여전히 그 텅빈 공간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그 모습 자체가 일본인의 사고방식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상징성' 에 대한 양 국의 사고방식은 이처럼 당연시 보아오던 활동들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인식의 치이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주로 다루는 내용은 일본 시각에서 보면 상궤를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 '반일', 정곡을 찌르는 점도 있지만 자료의 일방적인 해석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눈에 띈다. (p. 37)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결국 문재인 정권에 의해 구석으로 몰린 보수 세력, 그중에서도 현실정치에서 대항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한 약소 그룹의 반격이다. (p. 39) 일본에서의 경이적인 매출은 '한국인에 의한 반일 비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 많음을 방증한다. (p. 40)
한일 양국에서 각각 다른 의미로 나름 충격적이었던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 대해 저자가 알려주는 내용은 중립적으로 보이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책이 양 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 대한 무지가 현실에 드러난 셈이 아닐까.
적폐 청산은 일본과 관련된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폐 청산의 움직임을 추동한 것은 한국에서 최초로 탄핵재판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는 고양감이었다. (p. 58) 전제가 되는 인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권력을 사물화(私物화)한 세력이 나라를 멸망시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케 했는데 그 세력은 식민지배에 협력하는 '친일파'가 되어서 이권을 탐식했고, 일본의 패전으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독재세력이 되었다. 그러한 세력을 제대로 청산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다. (p. 59)
일본인의 시각으로 보는 한국의 현대화과정은 신선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서술되는 구나 싶고...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사회변화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으로 서술할 뿐이다. 랑케식 역사서술이랄까. 양반사회가 없었고 민주화혁명이 없었던 일본의 사회적 인식은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인식에 있어서 일본인의 랑케식 이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을까.
일본이 우격다짐으로 한국을 제압하려는 것이라는 것은 청와대나 정부부처들,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p. 81) 나도 '우격다짐' 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이 '우격다짐'론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험한 엇갈림이 있다. 나를 포함한 일본의 전문가들은 '총리 관저는 한국의 국력을 잘못 보고 있다. 한국이 약소국이었던 옛날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간단하게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라며 걱정했다. 즉 한국측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에 따라잡힐까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감각과는 좀 다르다. (p. 82)
책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인데 일본의 기성세대들은 한국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난하고 못살때 자신들이 도와줘야만 했던 나라일 뿐이다. 그런 한국이 자신들과 감히 대등하게 굴려고 하는 것올 보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양쪽 다 일종의 자뻑이다.
실제로는 진보적인 일본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국회의원조차 '많은 지지자가 한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라고 하는 것이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혐한을 주도하는 아베 정권만 없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관측은 한국측의 희망에 불과하다. (p. 87) 'NO아베'를 부르짖는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의 '한국 피로'라는 현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베를 비판하는 일본인들이 아베 정권의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고 믿는다. (p. 88) 더욱이 골치아픈 것은 한국과 일본의 법에 대한 의식 차이가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법률이나 약속을 지키는 것' 이 중시되는데 한국에서는 '법률이나 약속이 옳은지 아닌지'를 중시한다. 옳지 않다면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p. 89)
'한국 피로'란 일본 관련 이슈마다 식민지배 문제를 제기하고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에 대해 일본인인 느끼는 피로감을 이르는 용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피로감을 쌓여서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데... 그들은 독일인들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그저 지켜야 하는 것일뿐인 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나와 같은 궁금증 자체가 생각나지 않는 것일까.
일본인들이 정대협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왔음을 깨달았다. (p. 98)
일본내에서는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정대협의 활동들이 의외로 한국 국내에서는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을 여러번 보면서 느꼈다는 저자의 깨달음에 순간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지켜드려야 할 존재를 우리는 잘 지켜드리고 있는가...
1970년을 보면, 한국의 무역상대국으로서의 비중은 일본이 37%, 미국이 34.8%로 합치면 70%가 넘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에는 30%가 되었고, 2004년에는 20%대, 2011년에는 마침내 10%대가 되었다. 2018년에 일본은 7.5%, 미국은 11.5%로 합쳐서 19%다. (p. 132)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경제성장을 알게 해주려고 설명한 수치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읽는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는 수치였다. 다행이다....
일본 중장년 세대 중에는 3차 한류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p. 184) 그러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느끼는 것은 최근의 한국에 대한 '용서하기 어렵다' '건방지다' 라는 감정이다. 그 밑바닥에는 일본이 적어도 국교정상화 이후에는 한국에 대해 배려를 해왔고, 한국 경제 발전을 도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렇게 쌓아올린 한일관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건방지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p. 185)
생소하다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자신들이 도와줬으니까 감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한국의 반일정서가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시각을 보면서 그들의 역사인식은 무엇인가 라는 의구심이 자꾸만 쌓여가지만 이 책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책이지 역사서가 아니기에 역사문제에 대한 가치판단은 언급되지 않는다.
남자는 정년퇴직 후 우연힌 혐한적인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그 후 그 블로그를 운영하는 인물을 '보수우익의 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신자'로서 블로그의 지시대로 징계청구 보내기를 계속했다. '나름대로의 정의감과 일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고양감도 있었다.' 남성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많았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거래처 등이 65세를 넘어서 (일을 그만두었더니)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사회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외감도 있었다. 그러나 (블로그에 따르는 행동을 함으로써) 아직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고 새로이 자기승인을 받은 듯한 느낌에 그만 선을 넘은 것 같다' 고 회고했다. (p. 190)
장년층의 사회활동이 어떻게 극우익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사회와 너무나 똑같음에 놀랐다. 기성세대의 사회참여 방향성에 대한 문제는 인구문제와 노령화와 연결되어 있다. 양국의 과거문제를 떠나서 장년층과 노년층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한 이런 활동은 계속되지 않을까...
성공이든 실패든 가까운 이웃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자기 이익이 된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이용할 수 있다는 한일 양국의 '공통이익'은 크다고 할 수 있다. (p. 217)
지리적 위치 때문에라도 일본은 영원히 이웃나라다. 요즘은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세상이기에 하물며 이웃나라라고 해서 뭔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일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꼬여있는 관계때문에 왜곡된 인식이 더욱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제대로 알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는 '올바름'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논리 구축을 의미하는 '논리 개발'이 무엇보다도 우선시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습관이 없는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숨이 막히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p. 228)
나름 한국생활을 오래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전문가라는 저자조차도 여전히 한국의 문화는 다 이해되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일반 일본국민들은 어떻겠는가? 우리의 시각과 우리의 사고방식만 고수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시각과 사고방식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이렇게나 다르구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어봄직한 책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왜 그렇게까지 반일정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유지되는 한 한계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그들은 왜 독일처럼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