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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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MEMORIS

기억은 기록을 통해 살아날 수 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희망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 삶의 자취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

EBS 채널을 즐겨 보던 때가 있었는데... 상업적 광고가 없어서 좋았고 '지식채널 e' 라는 짧은 프로그램이 무척 좋았었다. 인상적인 문구와 사진, 짧은 시간속에 전달되는 긴 생각... 반짝하는 벨소리 같던 e 소리가 나면 티비를 끄려다가도 멈추고 화면을 바라보곤 했다. 지식채널e 를 알리던 그 소리... 긴 다큐가 아니어도 짧으나마 굵직하게 전해져오던 지식채널의 메시지들이 책이 되어 나왔다. 주제가 다양했기에 한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기억' 이다. 혹은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하는 내내 아우슈비츠의 폭력과 고통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당연한 분노와 증오조차 함부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오로지 야만에 맞서는 품위로 일관했고,

'가장 믿을 만한 홀로코스트의 증언자' 가 되었다. (p. 19)

"기억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증언자의 기억뿐이 아니다. 증언자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p. 24)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고 기록은 누군가의 기억의 산물이다. 모든 기억이 기록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기록이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억해야 할 시간들이 있고 기록해야 할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어렵게 털어놓은 기억을 그렇게 소중해야 할 기록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죽을 각오로 진실을 쫓으며 청년은 여든의 노작가가 되었다. 암과 싸우며 손에 펜을 쥘 힘마저 잃었다. 그러나 테이프로 칭칭 감아 묶고서라도 쓴다. 아직 '사명'을 마치지 못했다. (p. 35)

가혹한 노동의 대가로 겨우 받았을 최저임금의 전부일지도 몰랐다. 차마 잊을 수도, 꺼내어 쓸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었다. 조선인의 마음이 새겨준 평생의 사명이었다.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리라. 기록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 36)

그의 묘비에는 생전의 당부대로 이런 문장이 새겨졌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p. 38)

독립된 기록도 따로 뚝 떼어진 기억도 불가능하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다른 곳과 이어진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고 그들의 잘못은 모두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런 깨달음을 애써 생각하려는 이가 많지 않을 뿐이다.

오늘날 르포는 평온한 일상에 감춰진 사회의 민낯을 예리하게 발견하는 온갖 기록들이다. '나'를 '우리'로 확장하는 시선을 지녔다면, 누구라도 시대의 증언자다. (p. 45)

뒷조사가 아니라 르포, 함정이 아니라 르포,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르포, 우리는 아니 나는 시대의 증언자는 못될지언정 관찰자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선택 + 무시 + 강조 = 프레임 (p. 66)

언론참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일어나 왔다. 공식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번 비슷하게. 책 속에 질문이 씌여 있다. "감시자가 되시겠습니까?" (p. 66)

영어 사전에도 일반명사 'dazibao'로 올라 있다. 한국에서는 저항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 화장실에 반정부 낙서만 써도 문제가 되던 유신 시대를 지나 언론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대자보는 속보 전달부터 선전운동까지 두루 담당하는 유일무이한 매체였다. (p. 87)

클릭이 전부인 게으른 손가락 행동은 더 큰 현실 앞에서 무지하거나 무력해지기도 한다. 현실 행동으로 이어졌다 해도 단번의 클릭으로 성취를 이루어내기는 힘들다. (p. 90) 해시태그 행동은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을까? 판단하기는 이르다. SNS 해시태그가 등장한 지 10여년, 해시태그 행동주의는 이제 시작이다. (p. 91)

대자보가 일반명사로 영어사전에 올라 있는 줄은 몰랐다. 대자보가 벽을 빼곡하게 덮던 때가 있었다. 지금 대학가의 벽에는 무엇이 붙어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요즘 시대는 어떻게 목소리를 모을 수 있을까?

"모든 역사는 제멋대로다. 역사학자들이 완벽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인 역사서를 저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p. 99)

역사를 즐겨 읽는 나는 위 문장의 의미가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그래서 역사를 읽어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역사를 읽어야 하는 건데... 한권의 책 한방향의 책이 아니라 여러권 여러방향 을 두루 읽어야 그나마 제멋대로인 역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건데... 지금 역사를 읽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특무대(1950~1960) - 방첩대(1960~1968) - 보안사(1968~1991) - 기무사(1991~2018) - 안보지원사

개명이 범죄 전과를 은폐하거나 법령상 제한을 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질 때 법원은 이를 불허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잦은 개명도 불가하다. 개인의 경우 그렇다. 공적 영역에서는 바로 그 이유로 개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잦은 개명에서 정당을 따를 곳은 없다. (p. 146)

은폐와 희석, 이미지와 홍보라는 속셈이 만든 허울 좋은 이름들, 언제 또 바뀔지 모를 이름들이 역사를 어지럽게 스칠 때, 초래할 혼선과 행정비용 때문에 시도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개명도 있다. 엄밀히는 본명 찾기다. 1914년 일제가 시행한 폐합 정리, 일명 창지개명으로 고유한 이름을 잃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행정구역명들이다. 추정치로만 전국50퍼센트다. (p. 149)

일제가 남긴 잔재는 여전히 이나라의 생활 곳곳에서 수시로 발견된다. 너무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할뿐... 자신들의 집단 이름을 바꾸고 명패를 바꾸고 명함을 바꾸는데 수십수백억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그돈으로 정말 바꿔야 할 이름들을 바꿨더라면...

기록의 역사적 가치는 영구 보존해 후대에 전승할 필요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며, 기록물의 역사적 가치는 현재와 미래에 이용 가능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p. 188)

기록 과 기록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겨진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한데... 얼마나 보고 있는가?

2012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종이책 절판 선언이 '사건'이었던 이유는 위키백과에 추월당한 정보량과 갱신 속도가 아니다. 막강한 지성과 불특정 다수, 익명의 아마추어들이 경쟁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서였다. 이른바 집단지성의 힘이다. (p. 229)

모든 집단지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 속도가 느려질수록 소수의 영향력이 커지는 지식의 독점화가 점점 심해지며, 이것이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에 취약한 구조를 낳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p. 230)

위키백과가 인류에게 선물한 위대한 지식은 참여하기를 멈추지않는 집단지성만이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이다. (p. 231)

개인의 기억부터 한 시대의 한 국가의 기록까지 굵직한 사건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다양하게 'HOMO MEMORIS'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요즈음 이렇게 간결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줄 수 있는 감각적인 책들이라도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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