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모든 걸 다 잘해야 하는 여자와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남자의 탄생

 

 

All the Rage 라는 원제는 모든 분노 라고 번역된다. Rage 는 분노 중에서도 격렬한 분노 라고 한다. 저자가 그토록 거센 분노를 일으켰던 이유는?

육아 때문이다.

이 책은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의 입장에서 저자의 경험담과 연구가 결합된 육아전투기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성차별에 대한 논의는 여성과 남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인정 차이를 주로 쟁점으로 삼았다면, 이 책은 부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 대해 모성신화에 가려졌던 아빠들의 무책임을 다루고 있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슈퍼엄마들에게 이루어지는 성차별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육아라는 달콤함을 은근히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가정내의 성차별 문제는 달리보면 아빠들이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차별로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둘 다 똑같이 일하는데, 왜 집에서는 평등한 관계를 맺지 못할까?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p. 14)

이 책은 일관되게 맞벌이 부부의 여성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전업주부 입장에서 판단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지만, 맞벌이 하는 저자의 고민에서 출발한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죠" 뉴옥주립대학교의 사회학자이자 가정 내 노동 분담을 연구하는 베로니카 티치너가 전화로 이런 말을 했다. "일터가 변하지 않았잖아요. 아직도 직장은 모든 직원들이 집에 돌봐주는 아내가 있다고 가정하죠. 모두가 이상적인 일꾼 역할을 해야 하고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거죠. 만약 어느 한 집이 이런 균형을 못 잡아서 힘들어진다면 그건 개인 문제에요. 모든 가정이 똑같은 문제를 가진다면? 그건 사회문제고요" (p. 28)

성차별은 크게 보면 분명 구조적인 문제다. 산업사회의 발달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장인 아빠와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라는 기본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하지만 성평등 교육을 받아온 젊은 세대에게 더이상 이런 기본틀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소설이 히트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이기만 한 것일까?

"페미니즘 운동이 여전히 미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개인 영역'을 들여다 보는 일이 정치권을 비난하는 일보다 훨씬 위협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개인 영역을 자세히 관찰한다. (p. 32)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개선시켜야 할 부분이 많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고 마냥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 개인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 지금의 여자들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 보다는 좋은 세상을 누리고 있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소유로 간주되며 법적인 권리가 전혀 없었는데, 이게 아주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1980년에야 미국 통계국은 공식적으로 모든 남편을 '집안의 가장' 이라 부르는 것을 중단했다. (p. 36, 37)

모니크와 주변 친구들은 내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성 평등이라는 미사여구를 들으며 자랐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우리는 교육에서 남녀평등을 보장하는 수정 법안 제9조를 쟁취했고 대학원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미사여구는 딱 여기에서 멈추었고, 이런 명백하고 당연한 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현재 모니크는 변호사이지만, 모니크의 남편은 주양육자가 아니다. (p. 47)

2017년 OECD 보고서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성 평등 문제로 가정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불공평한 무임 노동 분담을 꼽았다. (p. 50)

역사가 기록된 이후로 일괄적으로 여성은 늘 남성의 재산이었다.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 이념과 교육은 성평등 개념에 발 맞추었으나 현실적용은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 간극에서 당황하는 것은 대부분 갓 아이를 낳은 직장여성들이다. 그동안 평등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생각은 무너진다. 궤적이 길더라도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는 격언을 믿어도 될까?

낮게 책정된 초과근무 수당은 여성이 진지학 전문 직업 세계에 뛰어들무렵 정규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대 인상적인 것은 이상적인 직원이라는 정의가 여성이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단일 요소, 즉 시간에 의해 바뀌었다는 사실이죠. (p. 69)

자녀가 없는 여성은 자녀가 있는 여성에 비해 면접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2.1배 더 높았다. 반대로 자녀가 있는 남성에게는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면접기회가 조금 더 주어졌다. (p. 70)

사회적 상황은 성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수 있다. (p. 75) 부모가 된 부부는 평등을 예상했지만 불평등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관계에서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국 덜 평등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p. 76)

여성이 직업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임금체계에도 변화가 왔다. 직장은 여전히 성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아이가 있는 여성직원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아이 문제는 직장여성 전담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가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회다. 아직은. 그렇게 아빠들은 남성들은 가정내의 불평등 문제에 둔감해진다. 다들 그렇게 살잖아~라면서.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헌신적인 수컷은 포유류가 아니라, 젖을 먹이거나 새끼를 품지 않는 물고기와 조류이다. 이어서 양서류와 곤충이 2위를 차지하지만, 인간은 이런 동물과는 결혼할 일이 없다. (p. 109)

수렵과 채집을 통해 인간은 진화 역사의 약 90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을 존속해왔다. (p. 113)

"핵심만 얘기할게요. 인간 행동 중에서 타고난 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으로 형성되죠. 성별 노동 분담이 '선천적'이라는 주장은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편리한 방편이에요" (p. 122)

저자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주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타고나지 않았다' 라고.

포유류라는 어감이 주는 포근함따위 포유류에게 얼마나 없던지;;; 진화의 역사 대부분은 지금의 성차별적 인식과 분명 다른 방식이었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인간의 역사는 진화의 시간을 따져봤을때 그리 길지 않다. 그렇다면 오랜세월 유지되어온 인간만의 본능은 무엇일까? 정말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평등 본질주의적 관점은 (남자는 이런 역할에 맞게 타고났고, 여자는 저런 역할에 맞게 타고났다는) 남녀의 본질적 본능에 대한 믿음에 (성차별은 옳지 않다는) 평등의 가치를 결합시켰다. (p. 165)

"젠더 시스템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개인의 저항이라는 도전이 이 시스템에 매일 매일 장기적이고 꾸준히 쌓이는 경우에만 허물어진다" (p. 177)

남녀의 역할이 구분된 채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등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저자는 고정적 성역할에 대해 다양한 의문을 제기한다. '학습'을 통한 습득에 다양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라도 저항을 시작해 볼것을 권한다.

소위 도덕적 모성은 엄마로서 여성에게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지만, 정치적 또는 경제적 권위는 주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다. 이는 또한 자녀 중심 규범이어서 여자들에게 자녀를 먼저 생각하고 가정에 머무르라고 강요한다. 도덕적 모성은 실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엄마라는 직업에 윤리적 의무를 부여했고, 이 의무는 이후에도 아주 미미하게 약해졌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똑같은 의무가 권장되지 않았다. (p. 195)

이른바 여성희생숭배는 부득이하게 냉전 중에 강화되었다. 당시 페미니즘의 목표를 헐뜯던 서구의 사회집단은 반공 정신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 (p. 210)

공교롭게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가던 시기는 냉전시대였다. 평등을 요구하는 주장은 수시로 빨갱이로 치부되며 묵살되곤 했다. 여성이 직장을 다니고 싶으면 가사도 육아도 알아서 잘 전담해야 했다. 여성의 지위향상과 육아정책들의 요구는 당시 받아들여질 수 없는채 지금까지 그대로 굳어져 온 셈이다. 남성들의 가치는 사회적 성과로 평가받았고 여성들의 가치에서 사회적 성과는 개인적 욕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력을 싸게 이용하면서 끊임없이 '좋은 엄마' 이미지를 주입시켰다. 저자는 암묵적 동의로 여성들이 침해받아왔다고 말한다.

엄마의 역할을 찬양하고 떠벌리면서 실제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전파하는 문화에서 사는 여자가 느긋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여자들은 더 이상 일을 한다고 매도당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이 다 보도록 애들 앞에 바짝 엎드린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우리와 동참하자고 손짓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열심히 아빠 노릇을 하는 데 는 전혀 관심이 없다. (p. 248)

성별 일탈 중립화란, 사람들이 남녀 성별과 관련된 비전형적인 행위를 상쇄하기 위해 성별과 관련된 전형적 행동을 과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p. 260)

엄마가 가장 잘 안다는 통념은 계급을 막론하고 부모를 지배하는 철학이지만, 가정 내 성 평등이 뿌리내리려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p. 266)

"어떤 사람들은 이론적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해야 한다고 믿을지 몰라도, 여전히 엄마는 자녀의 인생에서 아빠가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많은 믿음이 동반된다. 가령 엄마에게는 육아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자들은 양육이 자기들 책임이라고 믿는다. 근본적으로 양육을 배우자와 나누는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 269)

종종거리는 엄마, 느긋한 아빠 이 모습은 사실 맞벌이 부부 가정이 아니어도 많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성평등을 배웠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불러일으키는 인지부조화를 상쇄시키기 위해 전형적인 태도를 고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혼자 알아서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공동육아는 말이 좋지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충돌거리를 만들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양육자에 성별은 따로 없다며 육아에서 아빠들이 얻어갈 것들이 많음을 강조한다.

페미니즘의 과업은 좀 더 평등한 남성성을 발전시키는 데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아빠라는 정체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남자들을 격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p. 309)

아버지 역할을 상대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보지 않는 태도는 온갖 불행을 낳는다. 해법은 아마도 교육일 것이다. (p. 316)

저자는 남자들이 '진짜 사나이' 에서 '좋은 남자' 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그래야 '행복한 아빠'가 되는 길이 열린다. 행복은 사회적 성공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식에 관한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관점은 아이 낳는 일을 혜택이 아닌 희생으로 본다. 동물로서 우리 여자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출산이고 우리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이라면,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여자에게 주어진 진화적 이점이기도 하다. 여자가 생식의 수단을 통제하는 것이다. (p. 328)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볼 때 여자는 좀 더 남자처럼 되었고, 남자는 좀 더 남자처럼 되었으며 대신 더 여자처럼 되지는 않았고, 여자는 여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p. 341)

저자는 그동안의 다양한 연구분야에서 암컷 유기체를 집중 조명하는 연구가 대체로 무시되고 관심을 받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한다.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의 연구에서도 암컷생쥐가 아닌 수컷생쥐를 이용해 실험해왔다는 사실에서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이 남성화 하는 것이 성평등이라면 온 세상에 남성만 넘쳐날 것이다. 그러면 우스갯소리로 애는 누가 낳는가?

이제는 적응을 멈출 때가 왔다. 진부한 잘못된 인식과 편안히 사느니 차라리 명백한 진실을 안고 불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우리의 불만을 부인한 결과 변화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모든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기 시작해야 저항이 생기고 불평등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을 종식시킬 수 있다. (p. 365)

미국인이 저자인 책을 읽다보면 종종 놀라게 되는 것이 미국사회가 너무나 보수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때론 조선사회보다 더 억압적인 사회로 보일 정도였다. 서양여자들이라고 다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아니었구나 싶고;;; 여하튼, 저자가 이런 책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남편을 잘 만난 덕이 컸다. 대화로 서로의 문제를 풀어가며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성평등 문제 관련해서 사회구조적 변화도 필요하고 교육도 필요하고 각자의 가정에서 개인적 저항도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들에 수긍이 가는 면들이 많긴 했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닌 경우의 가정내 불평등을 어떻게 설명할지 질문들이 남기도 한다. 무엇보다 표지 비닐봉지는 왜 인가;;; 내용상 아기띠나 유모차에 가방들이 주렁주렁 달린 뒷모습 같은 것들이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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