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무슨 말을 뱉기도 전에 저 사람이 당선되겠구나, 하고 알았다. 겉멋 든 자가 구비한 악덕의 일습, 속이 시커먼 위선자, 음흉한 기회주의자의 전형. 과연 에드아르 세즈윅은 친근함과 오만, 전문적 식견과 무시를 적절히 섞은 요즘 시대의 수완으로 우리 건물의 대표가 되었다. (p. 218)
2000년대와 그에 발맞춘 세상은 이제 에두아르 세즈윅의 차지였다. (p. 219)
불행은 대체로 하나의 건물이나 공동체 속에 시기를 두고 자리를 잡는다. 몇달을 각 층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한 집 한 집 밑밥 까는 작업을 하고, 약한 자들을 먼저 쓰러뜨리고 희망을 품은 자들을 망가뜨린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거리와 동네를 바꿔서는 집요한 장인정신으로 일을 밀어붙인다. 우리 콘도에서는 대략 일년 남짓 걸렸다. (p. 230)
"폴, 그런 장례식까지 챙기라고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 게 아닙니다. 업무 일과의 절반을 입주자들의 개인적인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보내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 업무는 각 가구의 문 앞까지만이에요. 입주자의 건강 문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자기네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세요. 입주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건 당신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p. 238, 239)
콘도는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고 일종의 불신이 전반적으로 자리잡았다. 입주자 대표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조금씩 주입한 그 분위기는 모든 층으로 퍼졌다. 차츰 모두가 다른 사람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p. 247)
2000년대 초에는 누가 더 인심이 각박해질 수 있는지, 누가 더 쪼잔해질수 있는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주옥같은 일화들이 차고 넘쳤다. (p. 248)
우리는 이제 건물이 아니라 제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종의 전제 공국에서 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입주자 모두가 이 조무래기 군주의 변덕스러운 비위를 기꺼이 맞춰줬다는 것이다. (p.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