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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2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평점 :
병든 어머니와 미국 동해안의 휴양지에서 외롭게 지내던 잭 소여는, 우연히 만나게 된 스피디 파커라는 노인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현재의 세상과 다른 또 하나의 세상, '테러토리'라는 곳에 대해서다. 그곳은 마법이 공존하는 곳으로서, 현세 사람들의 트위너가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잭의 어머니 역시 그곳에 트위너가 있었는데, 바로 여왕이었다. 게다가 잭의 어머니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스피디는 잭에게 두 개의 세계를 넘나들며 여왕을 구하는 것만이 잭의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2권 세트 소설은 역시 한번에 몰아서 읽어줘야 제맛이지만, 소설치고 상당한 두께의 1권에 이어 더 두꺼운 2권을 연달아 읽느라 눈이 장시간 혹사당했다;;;
잭과 울프는 히치하이킹을 해가며 서쪽으로의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로 경찰에 잡혀서 어느 종교감호시설에 갇히게 되는데 그곳의 책임자인 가드너 목사는 잭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며 어디서 만났는지 추궁한다. 잭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오스먼드의 트위너라는 것을. 테러토리에서 잔혹하게 채찍질을 하던 그 냉혹한의 트위너는 이세계에서 역시나 잔혹성을 떨치고 있었다. 교묘하게.
"우린 30일이면 너희 두 인간쓰레기를 교화시켜 여기 오기 전까지 얼마나 더럽고 부도덕하며 병들고 형편없는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있어. 정확시 지금부터 시작한다." (p. 43)
잭과 울프가 잡혀들어간 곳은 교화시설이 아니었다. 가드너 목사의 종교적 세뇌아래 갈곳없는 청소년들을 부려먹는 불법착취시설이었다. 감옥보다 더 열악했다. 울프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힘겨워하고 잭도 어떻게든 이곳을 빨리 탈출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가드너 목사는 잭이 누구인지 서서히 눈치채기 시작한다.
" 너 말이야... 옮겨 다니는 재주는 언제 터득한거지?"
"무슨 말슴인지요?"
"언제부터 테러토리에 옮겨 올 수 있었냔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통 모르겠네요"
"검둥이는 어디에 있지?"
"누구요?"
"검둥이 말이야, 검둥이! 파커, 파커스, 이름이 뭐든 말이야! 그자는 어디에 있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p. 137)
잭과 울프에 대한 고문이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잭은 그사이 마법주스가 없어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드너가 작정하고 잭을 실토하게 하려던 그밤 울프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변신하기 시작한다. 피의 밤이 열렸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잭은 서쪽으로 이동하며 일단 친구 리처드를 찾아가기로 한다. 잭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어릴때부터 단짝친구였던 리처드에게 상담하고 기운을 얻고 싶다. 잭은 리처드의 기숙사로 향한다. 하지만 리처드는 잭의 뒤를 쫓고 있는 모건의 아들이다!
"그럼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거구나"
"어쨌든 그동안 힘들게 지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우리 아빠한테 전화도 걸지 않을 거고, 이대로 너를 떠나보내지도 않을 거야. 오늘 밤에는 내 침대에서 자. 헤이우드 사감이 취침 점호를 하러 오면 넌 침대 밑에 숨으면 돼" (p. 229)
리처드를 만난 잭은 그간의 일을 (일단 리처드의 아빠인 모건에 관련해서는 쏙 빼고) 들려주지만 리처드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오후부터 리처드와 학교와 기숙사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모든 학생들이 사라지고 기숙사 마당에 괴이한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며 리처드에게 소리친다.
"슬로트! 네 승객을 내놓으라니까!" (p. 250)
하지만 여전히 리처드는 이건 꿈이라고 자신은 열에 들떠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고 있는거라며 현실부정을 하려 든다.
"시브룩섬은 안돼. 아빠는 어디 있지? 어서 그 벽장에서 나왔으면! 제발, 부탁이야. 시브룩섬 사건 같은 건 싫어. 제바아알...." (p. 254)
리처드와 리처드의 기숙사로 잭의 발길이 향한 것에는 친구의 도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리처드의 학교는 스프링필드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이 장소는 서쪽으로의 여정에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잭은 깨닫는다.
"스프링필드는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미국에서 서너 손가락 안에 꼽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철도 종착역이었어. 여기는 지리적으로 사통팔달하는 곳이었거든. 스피링필드에서 출발해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주요 철도 노선이 있었어. 우리 학교는 앤드루 테이어가 가능성을 알아보았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거야. 그는 철도 수송으로 큰돈을 벌었지. 주로 서부 해안으로 가는 화물 수송에 치중했어. 그는 동부만이 아니라 서부로 향하는 화물 수송이 갖는 잠재력에 주목한 최초의 사람이었어"
"서부해안으로 간다고?" (p. 284, 285)
온갖 학교인물들의 모습을 띤 트위너들이 리처드에게 계속 '승객을 내놓으라'는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잭은 순간 알아챘다. 기차! 기차역! 학교엔 아직 기차시설이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두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다가오자 잭은 리처드를 데리고 테러토리로 넘어간다.
이동이 이루어지고 한쪽이 트위너의 몸으로 들어가면, 그 결과 온화한 빙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p. 297)
잭이 이처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괘씸하게도 그가 단일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애송이가 한 장소에서 순간이동을 하면, 언제나 떠난 장소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반면에 슬로트는 늘 오리스가 있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목적지에서 아주 먼곳에 떨어지곤 했다. (p. 298)
이세계와 저세계에 트위너가 있는 존재들은 서로 오갈 수 있었지만 한 세계에서 두 영혼이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잭은 트위너가 없는 단일한 존재였기 때문에 순간이동에 있어서 유리했다. 잭은 몰랐지만 잭을 쫓는 모건을 알았다.
한편, 테러토리로 넘어간 잭과 리처드는 기차와 기차역을 발견한다. 그리고 기차역을 지키던 앤더슨에게서 기차에 관련된 사연을 듣는다. 기차가 생겨난 배경과 기차가 지나갈 길과 기차가 싣고 있는 정체모를 짐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초토화된 땅'에 관한 설명은 방사능 피폭 증상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러자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서부는 첫 번째 핵실험이 진행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시제품이 탑에 매달렸다가 폭발하자, 주민이 백화점 마네킹들로 구성된 교외 지역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군인들도 핵폭발과 그에 뒤따르는 불기둥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진짜 아메리카 테러토리의 마지막 보루인 유타주와 네바다주로 돌아가 간단하게 지하에서 핵실험을 재개해다. (p. 330)
1권의 1부와 2부 중 1부에서 스티븐 킹의 문체가 강하게 느껴졌다면 2부의 3부와 4부중에선 4부에서 스티븐 킹의 분위기가 흠씬 풍겼다. 결국 이 두꺼운 장편 소설은 스티븐 킹이 열고 피터 스트라우브 가 전개하고 스티븐 킹이 닫는 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4부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초현실들과 핵실험에 대한 경고는 여타 다른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시 스티븐 킹 다웠다. 그의 작품에선 늘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가의 강한 어조가 느껴진다. 멋있다.
블랙호텔이 이번 원정의 종착지라고 이제 잭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은 무력하고 짜증만 부리고 있지만 리처드가 이 원정에서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소여의 아들과 슬로트의 아들. 필립 소텔 왕자의 아들과 오리스의 모건의 아들. 한순간 세계의 전체 상황이 훤히 보이는가 싶더니, 블랙 호텔에서 무엇과 맞닥뜨릴지는 모르지만 리처드가 그것을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p. 358)
솔직히 2권 초반에 가장 이해가 안되던 것이 잭이 왜 리처드를 굳이 찾아가려 하느냐는 점이었다. 아무리 가장 친한 친구일지라도 현재 최대의 적인 모건 슬로트의 아들이 아닌가? 하지만 잭의 운명은 리처드에게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임이 점점 드러난다. 리처드는 잭의 예상과 달리 '테러토리'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부정해왔을 따름이었다.
잭은 막연하게나마 그가 하려는 일이 단순히 엄마를 구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잭은 그보다 더 위대한 일에 뛰어든 것이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 그는 이 모든 역경이 사람을 강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p. 449)
잭은 그동안의 역경을 통해 몸도 생각도 훌쩍 자라있었다. 리처드는 현실부정의 단계를 지났음에도 머리와 달리 몸이 빠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독이라도 퍼지고 있는 것처럼.
"너는 가도 돼, 리치. 나는 괜찮아. 그들도 너는 가게 놔둘 거야, 걱정마.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나랑 상관이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너를 끌어들인 거야"
"아니, 아빠가 나를 끌어들인 거야. 아니면 운명이 나를 끌어들인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신이거나, 아니면 제이슨이거나. 그게 누가되었든, 나를 떼어놓고 갈 생각은 마" (p. 467)
리처드는 바르게 자란 소년이었고 착한 심성의 소년이었다. 무엇보다 잭의 진정한 친구였다. 악의화신 모건 슬로트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리처드는 천사의 화신 같은 아이였다.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리처드가 풀어놓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잭은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전체적인 맥락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아빠는 그걸... 음... '필 소여의 망상' 이라고 불렀어"
잭이 느낀 것은 분노가 아니라 머리가 어찔할 만큼 강렬한 흥분이었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부적이었다. (p. 475)
"어떤 것은 제거할 수 없어. 어떤 사람은 제거할 수 없어. 그것들은 ... 음... 단일한 성질을 가졌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그것들은 부적과 같아. 단일한 성질이라고, 나도 그래. 단일한 존재야. 나도 트위너가 있었지만 그는 죽었어. 난 테러토리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제외한 모든 세계에서 단일한 존재인 거야. 난 알 수 있어. 느낄 수 있다고, 우리 아빠도 알고 있엇어. 그래서 나를 방랑자 잭 이라고 부른 거야. 내가 여기 있을 때 난 저쪽 세계에는 없어. 내가 저쪽 세계에 있을 때 난 이쪽 세계에 없어. 그건 리처드 너도 마찬가지야!" (p. 477)
잭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친구인 리처드와 함께 남은 여정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존재를 더 만나게 될까? 어떤 사건을 더 겪게 될까? 부적의 능력은 대체 무엇일까? 꺼져가는 엄마의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잭은 어쩌다 이런 운명을 타고 나게 된 것일까?
스릴러 소설에 스포는 맥빠지는 행동이므로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ㅎㅎ
4부에서 펼치지는 초현실들은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아마 이 소설 2권을 합쳐 가장 긴박하게 진행되는 장일 것이다. 막판에 휘몰아치는 전개 또한 스티븐 킹 다웠다. 1권이 558페이지 2권이 727페이지 라는 어마무지한 두께의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은 눈이 시려옴에도 멈출 수 없는 스토리적 강한 매력이 있었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이쪽 세계의 존재와 비슷한 저쪽 세계의 트위너가 존재한다는 것, 두 세계를 오간다는 것, 시공간을 넘나드는 차원이동등은 근래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설정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1984년에 나온 작품이다. 앞서나갔던 상상력이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혀질 수 있는 이유일 것이므로 역시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설속에 펼쳐지는 상상의 존재들과 초현실들은 여전히 미래적이었다. 어쩌면 이런 앞서나갔던 선배작가의 상상력 덕분에 지금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 키워졌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잭 소여'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톰 소여 처럼 모험을 통한 소년의 성장은 해피엔딩이란 점에서 역시 스티븐 킹 다웠고 그래서 역시 좋았다. 나는 늘 해피엔딩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