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1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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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두 개의 세계를 무대로,

소년 잭 소여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박진감있게 그려낸 다크 판타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작가 스티븐 킹이 다른 작가와 협업하여 집필한 작품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저자인 피터 스트라우브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스티븐 킹이 선택한 작가라면 믿고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명의 작가가 함께 쓴 작품이라서인지 그동안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과는 같은 듯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잭 소여 라는 열두살이 소년이 황량한 바닷가에 서있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소년의 엄마는 한때 유명한 배우였으나 지금은 말기암 환자인 것을 숨기고 머물던 집도 다 팔아치운 채 외진 호텔로 도망치듯 내려와 아들과 단둘이 지내고 있다. 소년은 갑작스레 무너진 일상과 인적드문 비수기의 쓸쓸한 휴양지에서 홀로 이 상황에 적응하려 애쓰는 중이다.

또다시 예전에 느꼈던 무엇인가에 지시당하고 조종당하는 듯한 불편한 기분이 잭을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기다린 줄이 끈질기게 엄마와 잭을 바닷가 이 버려진 곳까지 끌고 온 것은 아닐까? 그들은 잭이 이곳에 있기를 바랐다.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p. 26)

잭은 갑작스레 이곳에 온 이후 내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엄마는 호텔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고 침실에 머물며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안색이 나빠졌지만 어디가 아픈지조차 잭은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이제 나가서 놀렴. 잭은 평소와 달리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오, 그래요, 엄마, 아주 잘했어요. 참 잘나셨어요. 이제 나가서 놀라고요? 누구랑요? 엄마,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왜 여기 있냐고요? 얼마나 아픈 거고요? 어째서 나한테 토미 아저씨 얘끼를안 하는 거지요? 모건 아저씨는 무슨 짓을 꾸미는 거예요? 도대체... 질문, 끝없이 떠오르는 질문. 하지만 다 부질없었다. 아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스피디 할아버지마저 없었더라면... (p. 29)

답답하지만 속앓이만 할뿐 차마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던 잭은 호텔옆 유원지에서 일하는 스피디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났다. 어렸을때 돌아가신 아빠 대신 후견인을 맡아 주었던 토미아저씨 마저 얼마전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빠의 동업자인 모건 아저씨는 전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모건 아저씨를 피해 도피한 것처럼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의 일은 복잡해 보였다. 그럴때 만난 스피디 할아버지는 첫만남부터 포근하게 잭을 품어주었다. 하지만 스피디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스피디 할아버지는 잭이 혼란스러워 하는 백일몽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잭이 그저 꿈이라고 여겼던 환상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다.

"테러토리. 공기조차 부잣집 창고에 모셔 둔 최상급 와인 향기가 나. 보슬비도 내리지. 테러토리는 바로 그런 곳이란다, 얘야" (p. 68)

스피디 할아버지는 잭을 처음 봤을때부터 '방랑자 잭' 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가 해주는 말들이 조금 이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잭은 마침내 기억하게 되었다. 예닐곱살 무렵 납치당할 뻔 했던 사건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가 스피디 할아버지 였다는 것을. 잭은 깨달았다. 스피디 할아버지는 자신이 모르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잭은 스피디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실컷 울어아. 마음이 풀릴테니. 가끔씩은 울 필요가 있단다. 내가 알지. 할아버지는 우리 방랑자 잭이 얼마나 멀리 왔고,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지쳤는지 잘 알고 있단다. 그러니 속이 후련해질때까지 울려무나." (p. 88)

"어쩌면, 어쩌면 넌 엄마룰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구나. 엄마와... 엄마를 닮은 한 여성을 위해 온 것 같아."

"누구를 구한다고요?"

"여왕이야. 이름은 로라 델루시안이고 테러토리의 여왕이란다" (p. 89)

잭은 스피디 할아버지의 말을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건넨 물약을 마시고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하고 난 이후에는 단숨에 그 세계와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기억이었음을 알게 되고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조금씩 완성된 세계의 모습으로 잭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잭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 말만 잘 들어라, 방랑자 잭.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 슬로트라는 작자가 이곳에 올거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면 더더구나 시간이 없구나. 그자는 너희 엄마가 죽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이 없거든. 게다가 그의 트위너는 로라 여왕이 죽기를 바라고 있단다"

"트위너요?"

"이쪽 세계 사람들도 테러토리에 트위너를 두고 있단다. 많이는 아니야. 저쪽 세계는 사람 수가 아주 적거든. 여기 10만 명당 한 명 꼴이지. 하지만 트위너들은 이쪽저쪽으로 손쉽게 오갈 수 있단다" (P. 95)

"이 여왕이... 우리 엄마의... 트위너인가요?

"그래, 그런 것 같구나"

"아빠도... 트위너가 있었나요?"

"물론 있었지. 좋은 사람이었어"

"아빠가 이쪽 세계에서 돌아가셨을 때 저쪽 세계의 트위너도 죽었나요?"

"그랬단다. 동시에 죽은 건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었지"

"저도 트위너가 있나요? 테러토리에?"

"너한테는 없단다. 얘야. 너는 너밖에 없단다. 너는 특별한 존재니까" (p. 96)

"잭, 네가 테러토리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단다. 네가 꼭 가져와야 할 게 있거든. 그것은 강력하고 전지전능한 것이란다" (p. 113)

"왜죠? 그렇게 불쾌한 곳이라면 왜 거길 가야 하냐고요"

"왜냐하면 그곳에 부적이 있기 때문이지. 또 다른 알람브라 호텔 어딘가에 있을 거란다" (p. 116)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너는 여정을 시작할 만큼은 알고 있단다. 부적을 찾게 될 거다, 잭. 그것이 너를 끌어당길 테니까" (p. 117)

또 다른 세계 라는 테러토리, 같은 모습을 한 트위너, 이 새로운 세상과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세계를 오가며 자신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빠는 두 세계를 오가며 어떤 일을 한 것인지 등등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에 이해안가는 것 투성이였지만, 죽음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엄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잭은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이 당분간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엄마는 어렴풋이 잭이 떠나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편이 때때로 자신이 모르는 그 어딘가에 다녀왔던 것처럼.

"자, 떠돌이 잭, 키가 너무 커서 네가 문으로 들어올 때 네 아빠인 줄 알았지 뭐냐. 가끔씩 네가 겨우 열두살 이라는 걸 잊곤 한단다" (p. 127)

"저를 보고 떠돌이 잭이라고 부르셨네요"

"아빠가 그렇게 부르셨잖니. 네가 오전 내내 나가서 안 들어오기에 문득 그 생각이 났단다"

"아빠도 저를 떠돌이 잭이라고 부르셨나요?"

"아마도 그럴걸... 아니, 확실히 그렇게 불렀어, 네가 아주 어릴 때. 방랑자 잭 이라고. 그래, 그렇게 불렀단다. 방랑자 잭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잔디바을 기어다닐 때 였지. 아주 재미있었어." (p. 128)

"저는 가야만 해요, 정말이에요" (p. 129)

"방랑자 잭이라,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나..." (p. 134)

잭의 엄마는 불안했지만 잭의 여행을 허락했다. 어쩌면 마지막 희망같은 것을 품은 것일수도 있다. 두사람 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수 없었지만, 잭 소여는 '방랑자 잭' 이었다.

잭이 다른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떠나게 되기까지의 내용이 <1부 잭 소여, 서둘러 떠나다> 이고, <2부 시련의 길>에서부터 본격적인 잭의 여행이 펼쳐진다. 1부의 내용은 특유의 속도감과 펼쳐놓는 흥미요소들과 흡입력이 스티븐 킹이 대부분 쓴것이 아닐까 싶은 부분으로 여겨졌다. 개인적은 기분으론 2부의 내용은 1부와 조금 다른 문체가 느껴졌는데 아마도 2부부터가 공동저작이거나 피터 스트라우브 가 중점적으로 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2부 부터는 이세계와 저세계를 오가며 현실보다 판타지적인 요소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테러토리의 여왕, 로라 델루시안의 아들은 생후 6주 만에 요람에서 숨을 거두었다.

필과 릴리 소여의 아들은 생후 6주에 요람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그리고 모건 슬로트는 그 현장에 있었다. (p. 190)

잭의 아버지 동업자인 모건과 그의 트위너는 이세계에서든 저세계에서든 잭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다. 잭은 부적을 찾아 가야 하고 모건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잭을 추격한다. 이 과정에서 잭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기억해내고 모건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었다.

"이쪽 세계의 물리학이 그들에겐 마법인 셈이지, 그렇지? 우린 과학 대신 마법을 이용하는 농업군주제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 말이야" (p. 334)

"자자,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의 이익은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 쪽 사람들에게 이익을 널리 나누어 주는 것은 어떻겠나? 내 생각엔 우리가 저쪽 세계와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의 에너지와 그들의 에너지를 합치면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필." (p. 335)

"모건, 그러니까 저쪽 세계를 너무 많이 좌우하려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도 테러토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 늘 영향을 받고 있네. 좀 더 놀라운 얘기를 알려 줄까?"

"말해 보게"

"다른 세계는 저쪽 세계만이 아니네" (p. 339)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1권에서는 밝혀지지 않지만 잭의 아버지 필은 두 세계를 오가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동업자이자 친구인 모건에게 두세계를 넘나드는 방법을 알려주게 되었고 두사람은 두 세계를 오가며 사업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은 두 세계의 안정을 위해 적정한 선을 유지하려 했고 모건은 최대한 많은 이익을 위해 두 세계의 안정따위 관심이 없었다. 숨기고 있던 모건의 야욕은 필의 죽음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때 잭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잭은 고달픈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것을. 이쪽의 죽음과 저쪽의 죽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건들은 두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점점 더 두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잭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현실에 때론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러다 늑대인간 '울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잭의 아빠 필을 좋은 사람이라고 모건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잭은 친구를 얻은 듯 기뻤으나 급작스레 모건의 트위너가 나타나 목숨을 위협하고 둘은 함께 이세상으로 건너오게 된다. 울프가 늑대로 변하는 보름달이 뜬 사흘간 잭은 울프의 가축이 되어 헛간에 갇혀 있게 된다. 모건과 그의 트위너의 위협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거리를 좁혀 오고 잭은 울프와 서쪽으로 계속 여행을 해야만 한다. 잭의 여행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잭의 여행은 2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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