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평생을 물리 교육에 투신하신 노학자의 아름다운 물리 에세이이자 첫 시집.

물리를 공부하면 이렇게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모양이다" - 김상욱

 

 

김상욱 교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과학자의 글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일단 추천사를 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추천사 문장 그대로 딱 그런 책이었다.

글마다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다 읽고 저자의 '감사의 말' 부분을 보니 타매체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었다. 칼럼모음집은 아무래도 칼럼마다 앞내용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소설연재 같지 않고 매 칼럼마다 독립적인 글이다 보니 같은 주제라면 항상 사전안내가 필요하고 그 사전안내는 비슷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은 문학책인가 싶을 정도로 편안하게 읽히는 물리학자가 쓴 물리적인 에세이이자 시집이었다.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정신작용의 결과이다. 사실 눈은 단지 보는 도구일 뿐, 정말로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시력이 좋다고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조금 알면 조금 보이고 많이 알면 많이 보인다.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보인다. 우리가 과학자들만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감동을 그대로 체험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그들의 감동이 어떤 것인지, 그 일부만이라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p. 8, 9)

과학자들이 왜 그렇게 어려운 주제를 그토록 오랜 기간 연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내용이 뭔지 방법이 뭔지 모르더라도 그 마음과 그 감동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글을 읽고나면. 과학은 생각보다 참.. 아름다운 학문이다. ㅎ

인류의 문명은 별을 보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도 별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어디 과학뿐이랴. 어쩌면 모든 철학도 별을 보면서 생겼고, 종교도 별을 보면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렇듯 별은 저 멀리서 빛나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과 연결되어 있다. (p. 19)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이 모두 탐구하기 위함은 아니다.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충동 때문이기도 하다. 별을 보는 것, 그것은 또 다른 방랑이다. (p. 25)

그런것 같다. 인류의 문명은 별을 보면서 시작된 것 같다. 인간에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가장 자극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만질 수 없고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반짝이는 멀고먼 별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별을 본다는 것 자체가 참 시적이지 않은가. 별을 따라 이별저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이 과학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별을 연구하는 과학도 어찌보면 참 시적인 분야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매 글마다 말미에 시 한편씩을 지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시집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달은 지금의 달이 아니다. 1.3초 전의 달이다. 우리가 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다. 태양계의 가장자리라고 하는 오르트 구름대는 1년 전의 모습,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로시마 센타우리는 4년 전의 모습, 북극성은 400년 전의 모습, 안드로메다 은하는 230만년 전의 모습이다. 그렇다. 망원경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과거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어떤 별은 1000년 전, 어떤 별은 1만년 전, 어떤 별은 수억 년 전의 별이다.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것은 우주의 역사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p. 28)

우리가 현재 라고 하는 지금 이순간도 엄밀히 말하면 지금 이순간이 아니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지금이라던 시간은 지나갔다. 우리는 그저 과거를 보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시간이란 참 철학적이다. 별에게 있어서의 시간은 더 광활해진다. 우리가 보는 저 별은 지금의 별이 아니다. 우리는 늘 과거의 별을 보고 있다. 그러니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과학은 참 철학적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역시 별은 참 시적이다.

우주탐험? 우주 탐험의 종착점은 우주가 아니다. 그 종착점은 바로 지구다. 인간에게 우주 탐험은 바로 지구 탐험이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p. 52)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우주탐험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의 문장을 읽고서야 알았다. 우주탐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저 먼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 같은 걸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우주탐험을 하고 싶은 이유는 우주에 나가봐야 지구의 소중함을 더욱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진 것은 잃어봐야 머문 곳은 떠나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법이다.

1974년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천문대를 통해서 우리도 외계인에게 전파를 발사했다. 약2만5천광년 떨어진 헤르쿨레스 자리 구상성단의 M13을 향해서. 하지만 그 회신을 우리가 받으려면 무려 5만 년을 기다려야 한다! 5만년 뒤에 받을 편지를, 그것도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 편지를, 받는다고 해도 해독할 가능성도 별로 없는 편지를 보내는 과학자들! 이 과학자들의 마음이, 받지도 못할 편지를 애인에게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같을까?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이 왜 시인들이나 할 법한 일을 하고 있을까? (p. 78)

기다림... 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 이렇게 보면 과학자들의 마음은 참 로맨틱한 것 같기도. ㅎㅎ

우주로 갈 것도 없이 지구에 있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외계인과 평화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인류 역사상 한 민족이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다른 민족들을 어떻게 했던가? 같은 음식을 먹고, 서로 섹스도 할 수 있고 공통의 자손을 퍼트릴 수도 있는 사이인 다른 민족간에도 잔인한 인종청소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유사성이 전혀 없는 외계인과 평화롭게 만날 것이라고? 서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가 죽이든지 죽임을 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뿐이다. 협상이나 타협은 존재할 수 없다. (p. 82)

이렇게 충격적일수가 ㅎ 하지만 맞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를 외계인은 지구인보다 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허황된 기대 아닐까? 하지만 이 구절만으로 우주탐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생각만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평화적이고 아름다운 내용들인지라 다 읽고 나면 저자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느껴지는 것이 있다. 여하튼 저 속시원한 표현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도둑은 제발 저려야 할 것. ㅎㅎ

엔트로피를 정의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쉽게 말하면 무질서한 정도를 말한다. 가지런한 상태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고 어지러운 상태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이다. 자연현상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변한다. 모든 변화는 비평형상태에서 평형상태로 가는 과정이다. 자연에서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인간의 활동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인류의 문명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 결과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라' 고 할때, 물리학자는 '엔트로피를 줄여라' 라고 말한다. (p. 140~144 발췌)

물리학자의 책이다 보니 이런저런 과학적인 내용들도 많이 나온다. 상식으로 재미있게 알아둘 것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엔트로피 부분은 좀 어려웠다. 여하튼 우주적인 차원에서 봤을때 엔트로피의 흐름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저자는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가 / 평생에 하는 일이 모두 헛수고였음을 / 부질없는 인간들이여' 라고 읊는다.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 말고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새로운 물질이 더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아는 물질은 겨우 5퍼센트 정도이고, 25퍼센트는 암흑물질, 70퍼센트는 암흑에너지라고 한다.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많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많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우주는 거의 대부분 보이지 않는 물질로 되어 있고 아주 조금 보이는 물질이 있다. (p. 149)

물리학에서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완전히 흡수하는 물체를 흑체라고 부른다. 가장 좋은 흑체는 텅 빈 공간이다. 그런데 이 구멍이 언제가 까많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물체는 온도가 있다. 온도가 높으면 빛을 내게 되어 있다. 태양은 아주 좋은 흑체다. 왜냐하면 태양에 빛을 보내면 빛을 완전히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p. 291, 292 )

인간이 알아낸 것보다 알아내지 못한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퍼센트라니...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흑체... 보이지 않는 것 알아낼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어둠으로 이름 붙였다. 미지의 것은 대부분 어둡게 상상하곤 한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양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선과 악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일 뿐이듯이, 입자와 파동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적인 관념이다. 세상에는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듯이 자연에는 입자도 없고 파동도 없다. 인간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그냥 인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빛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그냥 빛은 빛일 뿐이다. (p. 157)

선과 악이든 빛과 어둠이든 입자와 파동이든 다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간이 이름붙인 것을 뿐이다. 인간의 이해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서 굳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이름에 넣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분법적인 마인드를 버리면 세상을 좀더 편안하게 받아들일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내 가 아니라 그냥 우리로...

철학에서 가장 큰 난제가 무(無)라면, 수학의 난제는 영(0)이고 과학에서 가장 큰 난제는 진공이다. 무, 영, 공 은 같은 근원을 갖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노자가 한 유명한 말,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듯이 무를 무라고 하면 벌써 무가 아니다. '없는 것이 있다'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p. 214)

미시세계를 연구하여 끝없이 작아지는 세계를 연구하는 것도 거시세계를 연구하여 끝없이 커지는 세계를 연구하는 것도 그렇게 0으로 수렴되던 무한으로 확장되던 과학은 어느새 철학적 난제와 닿아 있는 것 같다. 우주라는 공간 자체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이기는 하다.

299792458 , 이 숫자는 아마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될 것이다. 이 우주에 이보다 더 확고하고 불변인 숫자는 없다. 왜냐하면 이 값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빛은 우주에서 참으로 특별한 존재다. 태초에 가장 먼저 창조된 것이 빛이다. [창세기]1장에 나오는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의 바로 그 빛이 만물의 표준이 된 것이다. (p. 230)

과학은 온갖 기준 단위들이 꼭 필요한 학문이다. 그래서 세계 공용으로 만들어놓은 표준원기 들이 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물질은 가감되기 마련이다. 이때 변하지 않을 기준이 될 만한 것으로 빛의 속력이 제안되었다. 진공 속에서 빛의 속력은 어떤 관찰자가 보더라도 같다고 한다. 영구불변한 표준이 될만 것은 빛의 속력이 가장 좋겠다고 1960년 국제도량혈 협회 과학자들이 정했고 초속 299792458 미터 가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299792458 ! 외워둬야지! ㅎㅎ

시간여행,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과거로 가서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고, 미래로 가서 내 모든 꿈을 실현하고, 이렇게 된다면 인생은 또 얼마나 가벼운 것이 될까? 언제나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인생, 가볍다 못해 아주 무의미해져 버리지나 않을까? (p. 259)

그리스신화를 읽다보면 불멸의 신과 필멸의 인간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자꾸 비교하며 생각해 보게된다. 종교적 숭배를 받는 신의 가벼움과 신의 조종을 받는 인간의 진중함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질 때도 있었다. 시간여행에 대한 저자의 표현을 읽으며 불멸이기에 가벼울 수 있고 필멸이기에 진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이라는 판타지를 인간은 늘 꿈꾸어 왔지만 나는 별로 그 여행이 하고 싶지 않다.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던건데, 소중한 사람들과 다른 시간대를 산다는 것은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현대 과학이라고 하면 상대론, 양자론, 진화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세 이론은 지동설과 뉴턴의 고전역학 이래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과학 이론이다. 상대론은 절대적인 시공간을 부정한 이론이고, 양자론은 결정론적인 우주관을 부정한 이론이고, 진화론은 모든 생명을 신이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부정한 이론이다. 모든 위대한 사상은 언제나 강한 반대에 부딪히고 온갖 오해를 받기 마련이다. (p. 273)

상대성 이론이 주장하는 바는 진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누가 보아도 언제나 진리라는 것이다.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보이는 현상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이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p. 275) 상대성 이론의 상대성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오히려 절대성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가깝다. 변하지 않는 무엇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허무할까? 불확실성과 가치 혼란의 시대에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상대성 이론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p. 276)

불확정성의 원리와 상대성의 원리는 과학을 무용하게 느껴지게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욱 탐구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무엇을 발견하던 확정할 수 없고 무엇을 보든 상대적일 수 있다는 막연함에 일반인인 나로서는 맞붙을 엄두가 나지 않는데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탐구하고 또 탐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용기있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진리는 늘 엄청난 진통 속에 발견되는 모양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로 이루어진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물리학이다. 이렇게 말하면 화학이나 천문학은 무엇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화학도 원자나 분자와 같은 물질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물리학이다. 천체들도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천문학도 본질적으로 물리학이다. 그러면 생물학도 물리학이냐,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생물도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물리학이다. 물질을 다루는 물리학은 본질적으로 양자론과 일반 상대론이다. 모든 자연과학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생물학의 진화론은 양자론이나 상대론과는 전혀 다른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양자론, 상대론, 진화론 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이론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p. 317)

모든 과학은 결국 물리학이었다. 물라학자다운 자신감으로 봐야 하나 정말 과학이 그런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학교다닐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에서 물리가 가장 어려웠는데 이렇게 과학이 전부다 물리 라는 것을 알았으면 그나마 덜 어렵게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인간이 보고 느끼고 알수 있는 세상은 결국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그러한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물리학이니 어쩌면 물리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 모두에게 꼭 필요한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물리학이 저자의 글처럼 시적으로 전달되고 배울 수 있다면 용기내여 볼텐데... ^^

과학책을 읽다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가 정말 자주 언급된다. 책 속에 다양한 시가 있었지만 과학과 재미가 동시에 느껴지면서 이 시 한편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은 다 표현되었다 싶었기에 시 전문을 옮겨보는 것으로 책에 대한 소감을 마무리해본다. 우주를 만져보지 못하더라도 물리학을 조금은 만져볼 수 있게 해주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고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 있소

문을 열면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 있소

문을 1000번 열면 500번은 죽어 있고 500번은 살아 있소

499번 죽어 있고 501번 살아 있기도 하오

그 반대일 때도 있소

수학자는 재미있다 하오

물리학자는 아름답다 하오

사람들은 웃긴다 하오

철학자는 그냥 웃어요

슈뢰딩거 선생,

시방 날 가지고 뭐 하는 겁니까?

미안하네, 고양이 양반

개로 하려고 했는데

그건 너무 개 같아서~

(p. 179 ~ 180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