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설영환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의식 관련 학자 이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 와 융 을 말할 것이다. 학설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이름은 일단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그나마 프로이트 관련해서는 대중서가 꽤 있는 것 같은데 융 에 대해서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기에 이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더랬다.

융은 난해하기로 중평이 난 그의 이론을 일반 교양인들의 이해를 위하여 풀어 설명하기로 하고 세심한 정성을 기울이며 작업에 착수했다. 출판인들의 청탁을 받고, 융은 이 책이 임상이나 학술상의 연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반 교양인의 이해를 위하여 엮어진다는 조건으로 청탁을 수락했다. 또 융 자신의 단독 저술이 아니라 그의 후진 학자들과의 공동 저술로 책이 엮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 융 자신이 네 사람의 공동 저자를 선발했다. 융의 말년은 바로 이 책에 바쳐졌다. 1961년 6월 융이 서거했을 때 융의 원고는 마무리되었고, 공저자들의 원고는 초고 상태에서 융 자신의 마지막 정성 어린 감수와 승인을 받아둔 상태였다. (p. 5~7 발췌)

융은 자신의 연구를 일반대중화할 의도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TV 인터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타계 10일전에 집필을 끝냈었다고 하니 이 책의 초판은 1961년도 인 셈이다. 학술서는 부담스러워 손도 못댈것 같아서 대중서를 선택한 것인데 읽으면서 갸우뚱해지는 것이 5~60년대의 대중들과 내가 달라서일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게되곤 했다.

어떤 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인간의 지각은 곧 정확성의 한계에 도달하고, 이 한계는 의식적인 지식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p. 18)

우리는 물질 그 자체의 궁극적 성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구체적 사물은 항상 어떤 측면에서 미지의 것임이 당연하고, 한편 우리의 경험 자체마저도 무수히 불가해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이 미지성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p. 19)

인간은 문명시대에 도달하기까지 무한히 장구한 세월 동안 부단한 노고를 통해 의식을 서서히 확립해 왔다. 그러나 이 진화는 아직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인간 정신의 대부분은 아직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의식 및 그 내용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p. 20)

진화라고 했을 때 대부분 육체적인 진화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기다가 걷다가 허리가 펴지고 머리가 커지고 하는 것 등이 진화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 도 진화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지능 과 의식 은 좀 다르게 다가온다. 지능의 발달이라고 했을때도 진화의 측면에서 아~!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의식 에 대해서는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의 의식도 진화해 왔고 여전히 진화중이라는 의견에 고개끄덕여 진다.

프로이트는 꿈을 자유연상 과정의 출발점으로서 특히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은 무의식이 수면 중에 산출한 풍부한 공상에 대한 해석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며, 부적절한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p. 25) 나는 꿈 자체에 대한 연상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했다. 즉, 꿈은 무의식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특별한 것을 표현한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꿈에 대한 나의 태도의 이러한 변화에는 방법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즉, 새로운 기법은 꿈의 다양한, 보다 광범한 측면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되었다. (p. 27) 나는 명백하게 눈에 띄는 부분인, 꿈의 소재만을 해석에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꿈은 그 자신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자유 연상'의 방법은 꿈의 소재로부터 지그재그 선을 그리면서 점점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우리의 사고를 유인해 간다. (p. 29)

프로이트 와 융은 무의식 이나 꿈 관련해서 쌍둥이처럼 엮어진 이름 한쌍으로 여겨지지만 이 두 학자는 나중에 다른 학설로 갈라선 것으로 알고 있다. 융은 프로이트와 자신의 학설이 왜 갈라서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프로이트의 학설을 비판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프로이트는 꿈을 현실을 반추하는 상징으로만 보기 때문에 상징적 요소들에 집중하는 반면 융은 꿈 자체를 분석함으로써 현실과의 의미와 함께 꿈 자체의 의미도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여하튼 꿈은 상징의 집합이긴 한듯.

'망각' 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또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새로운 인상이나 관념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경험 모두가 의식 영역 속에 빽빽이 들어서서 우리의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혼란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의식의 내용이 무의식 속으로 소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내용이 무의식으로부터 분출되는 일이 있다. (p. 41)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고된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것을 잊어버리며 산다. 기억했던 것을 잊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스쳐셔 의식하지 못했던 순간들도 망각의 데이터속에는 쌓여있게 되기도 한다. 삶에 망각이 필요하다는 것은 무의식 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기도 하다.

우리가 듣거나 경험하는 것들은 모두 잠재적으로 되기-즉,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기-때문이다. 우리가 의식 속에 보존시키고 의지에 의해 재생시킬 수 있는 것들조차 무의식 이라는 바탕색을 띠게 되며, 관념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 바탕색으로 채색된다. 실제로 우리의 의식적인 인상은 심리적으로 중요한 무의식의 의미 요소를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이 잠재적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그것이 일반적인 의미를 확장시키고 혼란시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심적 바탕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p. 44)

융의 학설을 잘 모르지만 어렵다고하는 이유가 워낙 개개인별 사례 해석이 다르다보니 일반화하기 어려워서인 것 같다. 누구든 00에 대한 꿈을 꾸면 00는**다 라고 해석되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져도 누군가에겐 00는** 이고 누군가에겐 00는@@라고 한다면 어렵기 마련이다. 여하튼, 무의식이 꿈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개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가 된다. 그래서 또 어렵게 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심리적 바탕색은 다 다르므로.

꿈의 일반적 기능은 미묘한 방법으로 마음 전체의 평형성을 바로잡을 만한 꿈의 재료를 산출함으로써, 심리적인 평형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p. 53)

우리가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건은 종종 무의식에 의해 감지된다. 무의식은 그 정보를 꿈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p. 55)

기호는 항상 그것이 대표하고 있는 개념 이하의 것이지만, 상징은 그 명백하고 직접적인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상징은 그 자연에서 무작위한 산물이다. 꿈은 상징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의 주된 원천이다. 그러나 상징은 모든 종류의 마음의 표현에서 생겨난다. 상징적인 사고나 감정, 상징적인 행동이나 장면이 존재한다. (p. 61)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꿈이 심리적 평형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문장이 신선했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가 불안할때 오히려 꿈은 더 자주 더 많이 꾸게 되지 않던가? 그것이 내 스스로가 심리회복을 위한 무의식적 기능이 작동해서 그런거였다니.. 역시 인체는 신비롭다.

기호와 상징의 구분도 아하~! 싶었다. 일상생활에 무수한 기호들을 사용하지만 기호 자체로 존재하는 것과 기호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들이 있다. 상징은 인간의 상상력을 동반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므로 어쩌면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 혹은 능력 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프로이트와의 다툼을 통해서, 인간 및 그 마음에 대한 일반적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우리들이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실제의 생생한 인간에 대해,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개인이야말로, 바로 유일한 현실이다. 그 개인으로부터 동떨어진 인류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몰입하면 할수록, 우리가 실패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현재와 같은 사회적인 동란이나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있어서는, 개인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일들이 개인의 정신적 혹은 도덕적 자질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시각에 서서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인간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한다. 때문에 신화나 상징에 대한 이해가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p. 67)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이론으로 퉁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현대적인 시각이라고 느껴졌다. 지금의 정신의학은 융의 이론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런 개별적 특성 때문에 환자와 의사가 정신상담을 할때도 각각의 성향 차이로 인해 다른 효과가 생겨날 수 있다. 상담도 결국 두명의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두사람은 결코 한사람이 될 수 없는 거니까. 당연하게도. 그러니 정신의학상담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물학자가 비교해부학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이 심리학자도 '심리에 관한 비교해부학'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한다면, 실제 면에서는 심리학자는 꿈과 기타의 무의식적인 활동의 산물에 관한 충분한 경험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신화에 대해서도 지식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욕 없이는 중요한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p. 85)

꿈으로부터 알 수 있는 바로는, 무의식의 사고는 본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논리적인 분석은 의식의 특권이다. 결국 우리들은 이성과 지식에 의해 선택한다. 그런데 무의식은 주로 본능적인 경향, 그것에 상응하는 사고형태-결국 원형에 의해 표상되는 경향에 이끌린다고 생각된다. (p. 99)

꿈이나 상징의 해석은 지성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치환하여 상상력이 없는 머리 속에 밀어넣을 수는 없다. 꿈을 꾼 사람의 개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해석자 측의 자기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p. 117)

AI 시대가 되면 없어질 직업군 중에 의사도 있었다. 지금도 세밀한 수술은 로봇이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의사 분야 중에서도 정신의학과는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빅데이터를 돌려도 일반화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과 연관된 상담은 결국 인간밖에 못할 테니까. 심리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 그리고 정신의학관련 연구자들의 건투를 빈다.

불교도는 무의식적인 공상을 무용한 환상으로서 제거시켜 버리고, 그리스도교도들은 교회외 그 '성서'를 자신과 자신의 무의식 속에 끼워넣고 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람은 자신의 의식이 곧 마음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 70년 이상 걸쳐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과학적 개념이며, 무엇인가 중요한 심리학적 연구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무지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p. 135)

융의 생존시대에는 그러한 무지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떠한지??

나는 자연의 상징에 관한 연구로 반세기 이상을 보내왔다. 그리고 꿈과 그 상징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고 무의미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차라리 반대로 꿈은 그 상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p. 137) 프로이트의 생각은 사람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에 대한 경멸을 확고하게 해버렸다. 프로이트 이전에 있어서 마음은 단지 간과되고 무시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 그것은 도덕적인 거부로 사장되어 버렸다. 이와같은 근대적인 관점은 분명히 일방적이고 부당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무의식은 인간의 성질의 모든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집단적ㅇ니 면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상징에 관한 연구는 큰일이며 아직 달성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어서 그 단서를 마련한 초기의 결과는 희망적인 것이며 그러한 것들은 현재의 인류에게 아직까지 해결될 수 없었던 많은 의문에 대해 해결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p. 138)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성적 의미와 대부분 연결시킴으로써 후대로 갈수록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들은적이 있다. 초기 성과는 분명 위대한 업적이지만 고치고 수정되어야 그또한 과학의 성질이므로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융이 강조하는 개인별 무의의 중요성은 알겠다. 다만 중요하구나~ 를 알았다는 것에서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뒤에 이어지는 융 학파 4명의 내용은 각각 다른 주제들에 대한 내용이고 다양한 사례 중심으로 풀고 있긴 한데 그 사례들이 대부분 다른 사람이 꾼 꿈이다 보니 꿈이란 것의 특성상 온통 모호하고 비정상적인 상징들이라서 내용에 몰입되지가 않았다.

가장 기대가 컸던 '고대 신화와 현대인' 의 경우 몇몇의 신화들을 예로 영웅, 미녀와 야수, 초월 등에 대한 상징을 분석하지만 어려운 풀이대비 솔직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영웅신화에서의 성장과 미녀와 야수신화에서의 교육과 초월신화 에서의 목적도달을 위한 노력 등 신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느낄 수 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이니시에이션은 본질적으로 순종의 의식으로 시작해서 억압의 시기를 거쳐서 다음에 해방의 의식으로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개인이라도 그 인격의 모순된 요소를 화해시킬 수가 있다. 즉, 진실로 그를 인간으로 만들고, 진실로 그를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평형에 이르는 것이다. (p. 216)

이 책의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용어설명이나 해제 부록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본문을 읽으며 궁금해진 것들을 찾아볼 그 어떤 자료도 덧붙여져 있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이니시에이션이 뭔지 모른다.

융은 대단히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그 꿈을 연구함으로써, 모든 꿈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꿈을 꾼 당사자의 삶에 관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꿈은 심리적 요인의 하나의 커다란 조직의 전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또 대체로 꿈이 하나의 배열이나 양식에 따르는 것 같다는 걸 알았다. 융은 그 양식을 '개성화 과정' 이라고 한다. (p. 219)

지금 읽으면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꿈에 대한 분석입장이 당시에는 차별성이 있었나 보다. 1961년에 나온 책이니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에 따른 격차가 있을 것...

현대 미술을 교회에서 받아들인 것은 교회 측의 관대한 것 이상의 뜻이 있다. 현대 미술이 그리스도교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p. 337)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상반성의 합작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지, 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예술가는 무의식 중에 적개심을 야기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표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심리학자가 그것들을 나타내면 반발을 일으킨다. 이것은 미술보다도 문학에서 더욱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이다. 심리학자가 평하면 사람들은 도전당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특히 이 세기에 있어서는 개인을 초월한 영역에 속한다. 그래도 좀더 전체성이 있고, 따라서 좀더 인간적인 표현의 양식에 대한 암시가 우리 시대에 이르러 눈에 띄게 된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p. 338)

'시각예술에 있어서의 상징성' 도 기대했던 장 이었는데 가장 내용이 짧았고 구체적 작품을 예로 들어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서 미술에서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미술사 책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듯... 여하튼, 지금은 저 글을 쓸때보다 심리학자에 대한 반발심이 누그러진 것 같은데... 학자들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겠다.

'개인분석에 있어서의 상징' 에서는 특정인의 꿈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내용전개를 해주고 있는데 그러한 개인분석을 읽으며 이내용을 어떤 이론으로 이해해야 하는 건지 사례로 이해해야 하는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잘 공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정신의 자기 조정의 기능이 (과도한 합리적 해석이나 분석에 의해 방해되지 않을 때) 정신의 발달과정까지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p. 402)

라는 결론은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은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마무리였다고 할 수 있달까.

우리는 무의식적인 것들이나 원형-정신의 역동적인 핵-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원형들이 개인에게 있어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여 그 사람의 정감이나 윤리관이나 정신적 관념을 제한하고, 타인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운명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p. 404) 만일 독자들이 무의식에 대한 연구나 무의식의 동화의 문제에 관하여 보다 더 탐구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일었다면-그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에 의해서 시작되는데-이 입문서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리라. (p. 420)

호기심을 일으키고자 하는 입문서였구나... 융의 학설에 대한 대중적 안내서인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책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긴 했다. 이 책을 다 읽고났음에도 융의 학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다른 책을 더 읽어봐야 겠구나 하는 필요성을 느꼈으니 ^^;;;

ps.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아쉬움은 오타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었던듯... 그리고 책의 본문이 끝나자마자 정말 바로 끝. 뭐랄까... 책구성상의 안정감이랄까 미적요소랄까 싶은 그 어떤 페이지도 없이 바로 속지로 끝나는 편집이 좀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