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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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총이다. 당신의 손에 닿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지금 가고 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느 날 게임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이 청계천 공구 상가로 날아든다. 총을 만든다. 쏜다. 그러면 얻는 건 엄청난 보너스. 참가자들에게는 소총의 완벽한 설계도면이 제공된다. 시내 곳곳에서 총이 터지고 사람들은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표지 中)

'대한민국 서울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해볼법한 가정이다.

미국에서 총기난사 관련 사건 뉴스를 들을때마다 총기소지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 총기소지가 자유롭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아래 쓰여진 소설이 의외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소설' 시리즈 인만큼 신선한 발상이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이는 듯 했다. 앞서 자음과모음 의 새소설 시리즈 중 '밤의 행방' 과 '빛의 마녀' 를 읽었었는데 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참신성' 같았다. 좋은 시리즈다.

책 뒤표지에서 대략 알려주고 있듯이 어느날 특정 집단에게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일이 도착한다. 총을 만들고 그 총이 성공적으로 발사 되면 상금을 주겠다며 설계도와 지원비를 제시한다. 청계천에서 잔뼈가 굵은 크리에이터들은 그동안 만들어보지 못했던 것(=총)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그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뒤표지의 문구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가 은근히 제시되어 있다. 총은 터.진.다.

그는 손으로 만지고 때론 부숴버릴 수도 있는 물성 있는 것의 질감에 집착했다. 도면은 태블릿에 저장하지만 책만큼은 이북 대신 종이책을 읽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책은 손으로 만져질 때 완전해지는 물질이었다. 오레오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혀를 통해 전달되는 양각된 오레오 겉면의 문양을 머리로 그려내곤 했다. (p. 47)

이 소설의 초반에 작품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내가 헤깔렸던 부분은 인칭대명사 였다. 지칭하는 대상이 여자건 남자건 3인칭대명사는 '그' 로 통일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 가 아니라. 이또한 그동안의 한국소설에서는 없던 새로운 시도일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익숙하지 않아서 좀 헤깔리긴 했다. 이름이 여자인데 그 라고 하니 남자야 여자야 하며 자꾸 따져보게 되서;;; 하지만 사실 그런 구분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그런 구분을 확실히 해야 자연스럽게 책장이 넘어간다는 것을 느끼며 개인적으로 살짝 나 자신에 대해 당혹스럽기도 했다.

여하튼, 나도 책은 역시 종이책 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저 문장이 좋았다. 그런 연장선으로 과자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오레오를 사먹어봐야 겠다.

그에게는 케이퍼 무비의 동료들처럼 각자의 기술을 지닌 팀원들이 있었다. 일간지 기자 박창식 본인, 술을 잘 마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정원 직원 고민지, 간지나는 임무를 맡아본 적은 없지만 정보기관의 요원이라는 것 자체가 간지났다. 사회복자시 양은아, 6/45 동행 로또에 관한 음모론을 강하게 신봉하는 해커로, 틈나는 대로 농협 서버에 들어가는 게 취미였다. 기계공학과 학부생 임다인, 총 빼고는 뭐든지 만들 수 있었다. 만들려고 마음만 먹으면 총도 만들 수 있지만 총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팀의 이름은 '반드시' 였다. 反-dessus. (p. 67, 68)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이후로 한 팀이 된 이 4명은 제각각의 개성이 범상치는 않은 캐릭터들이다. 4명이 만든 팀이 하고자 하는 일은? 도둑질이다!

"지금 청계천 공구 상가에 총 만들기 대회가 열렸어. 소총 도면이 쫙 깔리고 상금도 걸렸다고. 누가 뿌렸는지 왜 그런 건지는 몰라. 임다인이 귀뜀해줬는데 일단 지켜만 보고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 사건 나고 'M4A1 MANIFESTO'라는 게 올라왔어. 우리 회사 서버에. 들어온 흔적도 없고 나간 흔적도 없어. 우리 회사 사장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놓고 간 거야. 누군가가"

"국정원장 업무 컴퓨터 바탕화면에? 그게 말이 돼?" (p. 72~73)

서울시 강남 한복판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여기서 색다른 점은 총기사고가 총을 발사시킨 본인을 죽게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첫번째 사고에서는 총제작과 관련이 없는 2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한 여자는 죽었고 한 남자는 머리에 파편이 박힌채 살아났다. 그리고 국정원 컴퓨터에 누군가 침입했다.

사장이 뜻하지 않은 메일을 받은 것은 그즈음이었다.

-당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장은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자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찾는 것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p. 110)

총기사고로 아내를 잃은 사장은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불법돈세탁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거대한 돈의 흐름에 '총' 이 관련되어 있었다.

"이건 굉장히 특이한 선언문입니다. 어떤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는 한데... 특정한 누군가의 입장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굳이 분석을 해보자면 이 매니페스토의 화자는 총입니다. 총의 입장에서 쓴 글이에요. 그렇게 보고나니 어쩐지... 사람이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어떤 부분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요. (p. 122)

국정원 요인 고민지는 CIA요원 알렉스를 만난다. 알렉스는 국정원 원장 컴퓨터에 떠있던 의문의 문서 '매니페스토'를 갖고 있었다. 그는 고민지를 도와줄테니 자신의 요구 한가지를 들어달라고 한다.

"일단 이건... 문학이야. 존나 슬퍼. 내가 책이라면 질색하는 거 알지? [앵무새 죽이기] 이후로 읽은 책 한 권도 없다. 문화부 기자 할 때도 보도자료 받은 거 우라까이만 했지. 근데 이건 진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주인공이 총이야. 민지야 딱 생각해봐. 자, 니가 딱, 총이야. 딱총이라는 게 아니고, 딱, 가정을 해보라고. 자 이제, 생각해봐. 내가 총인에 입에서 파바밧 총알이 나가. 나 땜에 다 죽어. 근데 총은 그러기 싫은 거야. 그럼 막, 기분이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 속상하잖아. 그래서 얘는 이걸 쓴 거야. 자기는 총인데 이제 총이 되기 싫대" (p. 129~130)

매니페스토 라는 문건은 능력없는 기자 박창식을 감동시킨다. 그 문서를 쓴 존재는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죽은 이들은 아무도 겨냥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같이 방아쇠를 당긴 자신의 총이 터져버려 죽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도대체 어디서 자꾸만 총이 나타나는 건지. 왜 총알이 앞을 향해 나가지 않는 건지. 터져버리는 총을 왜 자꾸만 쏘아대는 건지. (p. 135~136)

총의 제작이라는 유혹에 빠진 창작쟁이들은 하나둘 총과 함께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사이 퇴원한 머리에 파편이 박힌 남자 오수안은 모든 음식에 대해 미각을 잃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오레오과자를 먹으면 신체에 이상한 반응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반드시들이 들이닥쳤다. 고양이, 백곰, 뱀, 판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정 앞에 서 있었다. 임다인이 직접 사람들의 얼굴에 물감을 바르고 수염을 붙였다. 복면 대신 분장을 하자는 건 박창식의 제안이었다.

"복면 쓰면 왠지 나쁜 짓 하는 것 같잖아"

"그렇다고 좋은 짓은 아니잖아? 삥 뜯으러 가는 건데"

"안녕하세요, 저희는 도둑입니다" (p. 180, 181)

아내가 죽은 배경을 알아내고자 집안 서재에 틀어박혀 온갖 시도를 하던 사장의 집에 '반드시' 일당이 침입한다. 총기사건을 조사하던 중 거대한 자금의 흐름을 알게된 이들은 그 자금출처인 사장의 집에 막대한 돈이 쌓여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은 알고 있었다는 듯 서재문을 열고 이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반드시일당의 뒤를 이어 청년 한명이 집을 찾아온다.

"저는 총-오수안입니다. 이전까지의 오수안과는 다른 존재죠.

제가 총이고, 총이 접니다. 다들 서재로 들어가시죠. 이제 이 게임을 끝내야 할 때가 됐어요"

총-오수안은 오레오과자에 대한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확인하며 별의별 방법으로 오레오 과자를 흡입했다. 그냥 먹어도 보고 피부에 발라도 보고 끓여먹기도 하고... 그러다 가루로 부셔서 피워보기도 했다. 영화에서 봤던 마약쟁이들처럼 가루를 코로 들이마셔 보기도 했다.

"융햡은 불가역적이에요. 오수안은 이제 없습니다. 분리가 된다고 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고요. 지금은 오레오를 피우고서 총-오수안이 된 거잖아요. 오수안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저한테 지금 중요한 건 멍청한 게임이 끝나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오레오가 죽여준다는 것뿐이죠"

"그렇게 죽여줘? 나도 한한 붜봐. 피워보게"

박창식이 총-오수안 앞에 놓여 있던 파이프를 가져와 불을 붙였다. 몇 모금을 빨더니 캑캑거리며 연기를 내뱉었다.

"이거 그냥 설탕 태운 맛인데, 목 아파. 뿅 가지도 않고"

"그거는요... 창식 씨가 아직 오레오를 제대로 몰라서 그런 거예요" *p. 225, 226)

황당무계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게임이 현실화되면서 펼쳐지는 상황들은 그 이후 더 황당무계한 방법들이 등장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정말 현실적으로 그런일이 생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지금의 현실이, 과거와 달라진 그런 지금의 현실이 자못 씁쓸하기도 하지만 소설은 전반적으로 발랄한 톤을 유지한다.

오레오는 먹는 것이 아니라 피우는 것이다. 적어도 총 에게는 그렇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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